미메시스가 서구 사유에 작용하는 그 끈덕진 힘은 얼마나 큰가? 그것이 곧 문학이나 예술에서도 어쩔 수 없는 원초적인 뿌리 작용을 하고,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물론 이제는 의심의 시선에 그 힘이 풀이 죽은 것 같고, 거기에 변형으로 생겨난 더 실천적인 힘과 속도를 가진 시뮬라크르가 더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미메시스를 정면으로 다룬 책을 의외로 찾기 어렵다. <미메시스에서 시뮬라시옹까지>라는 책은, 미메시스만이 아니라 최근의 더 파괴적인 힘을 과시하는 시뮬라시옹(대개 시뮬라크르는 들뢰즈에, 시뮬라시옹은 보드리야르에 달라붙는 개념이고, 엄밀하게 그 쓰임새가 다르다) 까지 다룬다. 그러니 책 한 권으로 그 긴 흐름을 훑기엔 꽤 적당해 보인다.
(덧붙임-하지만 최근에 이 책은 구해서 본 결과, 책의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약간 다르다. 즉 책의 진행이, 미메시스와 시뮬라시옹의 어떤 대비와 긴장 속에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의 미학사를 살펴보는 방식이다. 즉 제목은 그냥 단순히 시작점에 미메시스가 끝점에 시뮬라시옹이 위치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닮기, 혹은 진짜인 척하는 것 이상이다. 진짜와 가짜라는 그 구분마저 흐지부지하게 만들곤 한다. 출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작용하는 (이미지라는) 힘의 위력이 중요해진다.
다시 미메시스로 와서, 여기에 해당하는 책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를 꼽을 수 밖에 없다. 부제가 '서구 문학에 나타난 현실 묘사'인데, 결국 리얼리티의 변화과정을 추적하는 장대한 기획이 담긴 책이다. 지금은 이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책의 영향과 반작용을 통해서 이와 유사한 주제를 가진 (더 발전한) 책들이 나온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아우어바흐가 결국 리얼리티에 주목하는 바람에 놓친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가 눈을 감은 이 부분-환상을 강조한 책이 있다. 바로 캐스린 흄의 <환상과 미메시스>인데, 아우어바흐의 책의 반작용-보완으로 읽는다면 효과적일 듯 싶다.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는 아쉽게도 현재 나오진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책도 예전에 나온 것이라서 활자도 매우 작고 가독성이 떨어진다. 전면적인 번역 손질과 편집에 신경을 쓴 개정판을 기대해 본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읽어야 하겠고, 그 외 미메시스와 시뮬라크르를 다룬 책들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도 벤야민의 선구적인 사유를 현대까지 (약간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이끌면서, 미메시스와 시뮬라크르라는 큰 주제를 부각하고 있다. 물론 부제는 '숭고와 시뮬라크르의 이중주'가 붙어 있지만, 숭고라는 자리에 미메시스가 들어가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루카치 미학>이란 책에도 미메시스가 자주 나온다. 폴 뢰쾨르의 <시간과 이야기> 1권에 나오는 '삼중의 미메시스'라는 소제목이 눈에 띈다. 그 밖에 미메시스가 묻어 있는 여러 책들을 찾아서 보는 것도 꽤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미메시스의 여행, 그리고 결국 시뮬라크르라는 괴물과 만나게 될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