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너무 오랫동안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 "나의 게으름을 남에게 알리지 마라!". 정말이지 '게으름에 이르는 길'을 어쩔 수 없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아침에 동아일보를 보다가 신간에서 '지젝'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요새 띄엄띄엄 읽고 있는 책이 <까다로운 주체>인데, 중간을 넘어서 버틀러 부분을 훑고 있는 중이다. 이걸 끝내면, 사 놓고 고히 책장에 모셔만 둔 <신체 없는 기관>을 볼 작정이다.

 

 

 

 

<지젝 Zizek>은 그 전에 나온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나 <슬라보예 지젝>과는 조금 차이가 느껴진다. 급하게 그의 사상을 요약해서 알려주려는 목적보다는 하나의 체계적인 지도를 담은 듯한 느낌이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지젝의 물리적 태생 지점인 슬로베니아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지젝은 직접적으로 강하게 자신의 나라에 대해 긴 연설은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하나의 회귀마냥 과거의 기억으로, 혹은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해서 건드리곤 한다. 스스로 자신을 백인 남자?로 여기기도 하지만, 그도 어느 정도는 이방인의 자리에 있음을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믿을만한 번역자가 옮겨서 오역에 대한 두려움은 일단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헤겔-라캉-맑스로 이어지는 삼각구도 안에서 지젝이 어떻게 이 힘들을 승화시켜 나가는지를 조금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감각의 논리>가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다. 들뢰즈는 화가로는 베이컨, 영화(감독)으로는 알랭 레네를 주목한 거 같다.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전하고는 전혀 다른 방법을  구사했고, 그러면서도 과거의 찌꺼기가 결국 발목을 잡는 꼴을 피하는 과감성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즉 발전보다는 비약에 가까운 시도였으리라..

궁금한게 있다. 대개 라캉과 들뢰즈를 거의 비슷한 무게를 두고 읽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과연 이 둘 중에 그래도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을까? 물론 지젝이 <앙띠 오이디푸스> 이전의 들뢰즈는 라캉과 대척관계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어떤 큰 흐름을 돌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큰 걸림돌인 니체를 알렌카 주파치치가 <정오의 그림자>에서 아주 가는 빛으로라도 라캉과의 이어짐을 시도하지만, 오히려 읽은 소감은 말레비치의 검은 표면과 더 밀착된 느낌이었다.

어쨌든, 들뢰즈와 라캉의 긴장된 역학 관계는 언젠가는 한쪽으로 대세가 기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라캉의 지젝처럼 들뢰즈에게도 누군가 하나 걸출한 인물이 나타난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스티븐 컨의 <육체의 문화사>라는 책이 탐이 나는데, 이 책은 아쉽게도 절판이다. 이 사람은 지식의 재단사라도 되는지, 방대한 시간에 흘러가는 지식들을 알맞은 구획으로 잘 포개어 담아내는 것 같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현대까지 다룬 <사랑의 문화사>도 왠지 흥미로울 것 같다.

켄타우로스.. 하체는 말처럼 힘있고 야생적인 네발인데, 상체는 인간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 그렇다면, <켄타우로스의 비평>에 담긴 몸놀림은 어떠할지 대강 짐작이 된다. 얌전하고 차분한 글쓰기는 아닐 터. 최근에 국산 텍스트의 섭취가 적었음을 반성하면서 발견한 책인데, 실제 섭취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겠다.

 

 

 

 

 

미술에 대한 책도 읽어야 한다. 누가? 나 말이다. 요새는 특히 '알레고리'를 익히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것만을 다룬 책이 나오면 좋으련만, 아직 보이질 않는다.  <미술사를 보는 눈> 같은 책도 한번 보면 미술에 대한 차분한 시력을 조금 높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우선 알베르토 망구엘의 <나의 그림 읽기>가 읽고 싶어진다.

미술, 미학에 관한 책을 자주 쓰는 진중권의 책은 뭔가 좀 아쉽다. 물론 스스로 많은 자료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옮기는 작업, 그 노고가 깃든 책이겠지만은.   <미학 오디세이>, <천천히 그림 읽기>, <성의 미학>,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등을 읽었고, 현재 <춤추는 죽음>을 보고 있는데, 언제나 <미학 오디세이>의 약간 다른 변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뭐가 부족할까? 그건 그의 책 제목에도 찍혀 있는 바로 '상상력'이 아닐까? 기존 미학 견해에 대한 얌전한 수거와 정리 이상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특히 <성의 미학>에서 너무 단순한 페미니즘 시각은 예상외로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구름 속에서도 빛은 숨어 있는 법.

 

 

 

 

<춤추는 죽음>은 필립 아리에스<죽음 앞에 선 인간>에서 다룬 미술 자료들을 토대로 저자가 다시 선별 작업을 거친 책이라고 한다. 전에 <미학 오디세이>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에서 모티브를 얻었듯이 말이다. 이렇게 대가의 방향에서 힌트를 얻어 스스로 무언가를 보태어 약간 다르게 돌출해내는 작업도 하나의 센스가 아닐까? 굳이 장점을 찾자면 말이다.

끝으로 필립 아리에스의 책들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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