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다 볼 만한 영화들이 DVD에 실려서 많이 나온다. 가끔 영미의 영향권 밖에 있는 영화들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은근히 흥분되는 일이다.
자이 장커 감독은 젊다. 중국 아니 아시아 영화의 어떤 새로운 줄기 하나를 세우고 있는 감독 중에 한 명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이미 <임소요>라는 영화로 범상치 않음을 알렸는데, 최근에 본 <세계>는 그 전에 보던 중국 영화하고는 뭔가 많이 달랐다. 재미로 따지자면, 쉽게 남한테 권할 영화는 아니지만 말이다.
<비정성시(A City of Sadness, 1989)>라는 영화로 중국 영화의 묵직한 획을 하나 첨가한 허우 샤오시엔 감독.. 그 이후엔 제대로 된 필력을 보여주질 못하는/않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서기라는 여배우를 자주 쓰는데, <밀레니엄 맘보>, <쓰리 타임즈>.. . <쓰리 타임즈>는 좀 건조한 영화다. 두 남녀가 서로를 마주보면서 습기찬 애정을 전하기 보다는 무작정 그녀의 흔적을 찾아 다니는 한 남자의 흐름이 두드러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Rain and Tear'는 건질만한 순간이다. 이 영화의 남자배우 장 첸은 최근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숨>에 나오기도 했다. 그 전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도 참여했던 옴니버스 영화 <에로스>에서 왕가위 감독 연출분에 공리와 함께 나오는데,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연기한다. 다시 허우 샤우시엔 감독으로 초점을 옮기면,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카페 뤼미에르>는 유럽 영화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감독 오지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의 현대판 버전이다. 좋은 영화라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아사노 타나노부도 나온다.
<색계>는 시간을 내어 따로 페이퍼를 써야겠다. 영화적 해석을 자극할 만한 짙은 심리의 꼬임이 침대 위에 걸터 앉아 있는 영화다. 아마 지젝이 좋아할 영화가 아닐까싶다.
구로사와 아키라.. 일본엔 정말 탐나는 감독들이 많다. 오즈 야스지로, 이마무라 쇼헤이, 미조구찌 겐지, 신도 가네토 등등. <자전거 도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의 박스세트도 눈에 띈다.
셰익스피어를 전에는 세익스피어라고 한 거 같은데.. 어쨌든, 문학으로서가 아니라 연극이나 영화로 자주 만나도 그가 발산하는 '인간이 처한 상황'의 떠도는 상징들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좀 익숙하지 않은 영화를 보도록 하자. 알제리에서 태어난 토니 갓리프 감독의 <추방된 사람들>은 영화를 찾는 사람들한테는 알려진 편이다. 최근에 아르젠토 감독의 딸 아시아 아르젠토가 나온 <트란실바니아>도 있는데, 다소 싱거운 맛이 나는 영화다. 여배우의 약간의 광기어린 모습들은 그렇게 와닿지도 않고 말이다. 커다란 상복이 있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 중에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로제타>, <아들> 들도 유명한데, 이 영화 <더 차일드>도 역시 칸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 동양인이 보기에는 약간은 좀 수긍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아니면 우리가 너무 할리우드 영화의 자극에 익숙해져서 섬세한 영화적 감각들이 둔해졌는지도..
우선 새로운 이미지의 도래를 알리는 영화들. <베오울프>와 <벡실>, 그리고 그 전에 극장판을 통해 그 이미지의 도발을 감행한 <공각기동대>의 후예들(TV판을 비롯한 시리즈).. <베오울프>는 좀 놀라운 영화다. 우리가 미래에 '이럴 것이다'라고 예감했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맛볼 수 있는 영화였다. 정말 배우 없이도 실사에 버금가는 영화들이 나올 것만 같다. <벡실>은 <베오울프>의 기술적인 노선과는 다르다. 실사 영화와 착각할 만한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만화적 이미지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방향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차원에서 어떤 쾌감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바로 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오울프>처럼 점차 그 틈이 사라지게 되면, 처음에 받은 충격은 이내 당연시되기 쉽다. 그 변화의 (작은 시간)과정에서만 우리는 놀랄 뿐이다. <베오울프>를 말하면서 안젤리나 졸리를 빼 먹으면 김빠지는 장사다. 유혹과 대가(재앙)의 되물림이 우리 욕망이 게으름피우지 않게 자극하는 성난 엄마의 손찌검이 아닐까? 무슨 말인지 통..
'개별 11인'이라는 어색한 제목을 가진 공각기동대 TV시리즈 2기의 합(Ghost In The Shell - Individual Eleven)이라 할 수 있는데, 비쥬얼에서 큰 공을 들였다면, 극장판으로 나와도 손색이 없을 구성을 갖고 있다. 줄거리의 핵심적인 것은 이미 그 전에 선보였던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괜찮다. 이상하게도 공각기동대는 극장판은 대단히 정성을 들여 만들어도 죽을 쑤는데, TV판은 오히려 인기가 많다. 나는 오히려 극장판이 더 끌린다. 왠만한 영화는 두 번 보질 않는데, 공각기동대 극장판은 2-3번은 봤으니 말이다. 과연 3번째 극장판이 나올 수 있을지.. 기다려지는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