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마지막 두 달에 걸쳐 구한 책들 중에서 좀 추려서 정리를 해 보았다. 읽은 책도 있고, 후일을 기약하며 그냥 꽂아두기만 한 책들도 있다. 이 '책의 손맛' 페이퍼는 책의 내용에 대한 소개도 있지만, 페이퍼 제목처럼 책의 외관이나 디자인 등 물리적인 특징들도 다룬다.
<- 평범한 제목을 가진 옥타브 마노니의 <프로이트>는 변별력이 약한 책 제목으로 눈에 띄기 어려운 책이다.
드디어 브루스 핑크의 <에크리 읽기>를 손에 쥐었다. 겉장의 표지는 마치 고다르 영화 <주말>의 중간 중간에 삽입된 자막같은 느낌이다. 양장본인데, 같은 출판사인 '도서출판b'에서 전에 나온 <신체 없는 기관>과 책의 외관(표지 디자인 말고)이 좀 흡사한 느낌이다. 본문에 쓰인 종이질은 <신체 없는 기관>에 비해서는 좋은 편이다. 오래 두고 볼 책은 종이질도 꼼꼼히 챙기는 것이 좋다. 나중에 책이 누렇게 바래진 걸 넘기려면 약간 곤혹스러우니까.
번역은 김서영 씨가 맡았는데, 전에 <라캉 읽기>도 큰 문제는 없었던 터라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본문의 편집은 무난하긴 하지만, 작은제목 등에 쓰인 글자폰트 등 좀 더 세련되고 간단명료했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런 책의 외양보다 책의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Routledge Critical THINKERS'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도 선을 보였다. 이 시리즈 말고도 'Routledge Philosophy Guidebook'도 좋은 책들이 많은데, 어쨌든 이 출판사는 불교 관련 책에서부터 현대 철학 사상까지 영양가 있는 책들을 많이 내놓는다.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라캉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약간 경미한 진동으로 건강한 거리감을 줄 거 같은 여자 '크리스테바'에 관한 간단한 입문서다. 크리스테바의 책들이 의외로 우리말 번역으로 많이 나와 있는데, 쉽지 않은 내용이고 번역도 약간 겁이 나는 상황에서, 일단 이 책으로 한숨은 돌릴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크리스테바를 건드리면 '라캉과 지젝 or 핑크'쪽에서 생산하는 지식의 색깔과 또 다른 빛깔과 방향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지적인 체력에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우선 '바흐친'과 기호학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아방가르드 작가들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라캉보다는 문학의 힘을 더 직접적으로 끌어 오는 것 같다. 둘 다 조이스를 특별하게 인용하는데, 이 점도 흥미롭다. 젊은 시절 '누보 로망'에 관한 논문도 썼다고 하는데, 영화적으로 보자면, 알렝 레네와 어떻게든 이어지는 선을 찾을 수 있다(마르그리트 뒤라스를 통해서도). 뭐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그것도 추가다.
옥타브 마노니의 <프로이트>는 부제가 '라깡학파의 프로이트 읽기'로 되어 있다. 어떤 책을 보다가 이 책이 자주 인용되길래 찾아봤더니 다행히 우리말 번역본이 있었다. 책 표지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책은 프로이트에 대한 '중립적인' 입문서가 아니다. 라깡의 과학주의적 그리고 반 적응주의적 입장의 입문서이다."라고. 슬슬 좀 입맛이 땡기는 사람도 있을 터..
융의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은 일단 연금술과 관련된 풍부한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비록 선명하지 못한 흑백의 그림일지라도, 융의 해설과 함께 연금술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과 연속성이 있는 책이기도 하다. '시공디스커버리총서'에서 나온 <연금술>은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역시 좋은 그림들이 많이 실려 있다. 어쩌면 내용보다 컬러로 된 신비한 그림들 때문에 손이 가는 책이다.
<연금술 이야기>는 현재 절판된 책이라서 어렵게 구한 책이다. 여기엔 그다지 연금술 관련 그림들이 많지는 않지만, 내용으로만 보자면, 연금술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데 가장 적당한 책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에 관한 부분('중국인들의 엘릭시르 탐닉'이란 제목)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이런 책들이 왜 재출간되지 않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카메라 폴리티카>
여기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품절이라 지금 새책으로 구하기는 좀 어렵다. <여신들로 본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간이라 괜찮고, <카메라 폴리티카> 하권은 가능할 것 같다. 류상욱의 <호모 시네마쿠스>는 <영화의 철학과 미학>으로 약간 증보가 되어 다시 나왔다. 이 책은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벌어진 영화 이론과 작가들을 진지하게 살펴보는 책인데, '시네아스트'의 시선이 녹아 있는 영화책이다. 특히 프랑스 '68 학생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가 흥미롭다.
<노자와 도교>
<거북의 비밀>은 중국 고대사회의 신화와 점, 예술 그리고 우주관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서술도 어렵지 않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두루 있어서 맛깔스런 책이기도 하다. 김성철 씨의 <중관사상>은 중론, 중관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적당해 보인다. 불교 대승 경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숫타니파타>도 여태 미루기만 했는데, 이번 기회에 읽으려고 산 책이다. 불교 경전은 너무 방대해서 짧은 시간에 뭔가를 얻기엔 막막해 보인다.
이렇게 간단하게 작년 2007년 마지막 두 달에 걸쳐 손에 쥔 책들을 추려서 정리해 보았다. 이런 작업은 내 스스로, '책과의 만남'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한 일인데, 어쨌거나, 2008년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 두달에 한번은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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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본문과 관련된 책들
-앨피에서 나온 Critical THINKERS 시리즈 중
일단 프레드릭 제임슨과 주디스 버틀러와 관련된 책을 볼 생각이다.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두려워하는가>는 전에 봤는데, 누군가 빌려가서 아무 소식이 없는 책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쓴 <언어의 감옥>이란 책을 갖고 있는데, 이 책도 날 잡아서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이젠 슬슬 데리다는 좀 거시기 하고, 바르트는 달콤한 거품 같아서 가끔 톡 터지는 신선한 자극은 있는데, 연속적으로 남는 혹은 쌓이는 맛은 덜한 편이다. 그게 매력이기도 하지만...
-악마에 대한 글쓰기-제프리 버튼 러셀의 책들
이런 책들 은근히 땡긴다. 사악한 글쓰기가 아니라 '사악함' '악마성'에 대한 글쓰기..
-숫타니파타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씨가 팔리어(빠알리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숫타니파타>도 갖고 있는데, 숫타니파타라는 텍스트의 가장 원형의 소리를 전하려는 노력이 깃든 책이지만, 처음에 보기에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우리말 해석과 밑으로 각주로 원문이 빼곡하게 있기 때문인데, 가독성에 좋은 구성일리 없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왜곡되지 않은 원래의 의미를 알려면, 이 책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초기 불교의 香! 석가제존의 직접적인 소리가 담겼다는 책이니만큼, 일독의 가치가 있는 경전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책들
아.. 줄리아 크리스테바.. 이 여자의 책들도 탐닉하려면, 긴 여정이 필요할 듯.. 탁월한 이론에서부터 소설까지 강렬하게 뻗는 글의 힘이 예사롭지가 않다. 마치 오랜만에 만나보는 무시무시한 내공을 지닌 여인무사가 아닌가? <영웅문>의 '매초풍'이 주는 섬뜩함이 중국무림이 아닌, 지적 시공간에서 이 여자를 통해서 뚜렷한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의 소설 중에 <사무라이>도 있지 않던가. 근데 요새 통 보이질 않는다.
솔출판사에서 <무사들>이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는데, 이마저도 품절이다. 그 외 <언어 그 미지의 것>, <사랑의 역사>, <사랑의 정신분석>, <포세시옹> 등도 이젠 새책으로 찾기 힘들다.
우선 초기 대표작으로 그녀의 기호분석이 등장하는 <세미오티케>와 <시적 언어의 혁명>이 필수로 보인다. 최근에 (원대한) 기획성이 농후한 천재적인 여성 3명-한나 아렌트, 멜라니 클라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를 다룬 책이 있는데, 그 중에서 멜라니 클라인에 관련된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이란 제목을 가진 책인데, 알라딘에서는 아직 보이질 않는다. 멜라니 클라인은 라캉하고 '번역 문제'로 나중에 심기가 안 좋았다고 하는데, 크리스테바한테는 존경의 대상으로 모셔지고 있다.
멜라니 클라인에 대한 책은 그 밖에 <멜라니 클라인>이 있고, <위대한 7인의 정신분석가>에서도 그로덱, 위니코트 등과 함께 짧게 다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