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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물과 같단다 - 라틴어린이환상동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카르메 솔-벤드렐 그림, 송병선 옮김 / 좋은엄마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라틴아메리카에는 사람이 살고, 당연히 어린아이들도 있어, 골목길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기대어 서성이거나 누비고 다닐 것이 뻔하다. 알갱이 작은 황토빛 먼지와 여기보다 더 강한 태양이 내리쬐는 곳에서...
그런데, 언뜻 라틴아메리카와 동화책을 함께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어린아이가 있는 곳이라면 그들의 작은 손에 펼쳐질 동화책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말이다. 우리에겐 아직 그곳이 낯설어서인지 사람사는 풍경의 공간에 딱히 들어갈 내용들이 아직 분명하게 잡히질 않나보다. 다만, '그들도 우리처럼..' 그런 막연함으로 일본이나 미국과는 다른 이국적인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라틴어린이환상동화'로 나온 이 책을 처음 손에 쥐고는 여느 책처럼 "음.. 새로운 읽을거리군"라며 그냥 책장을 넘기게 되진 않았다. 잠시라도 "이건, 또 어떤 세상일까? 어떤 다른 맛일까?"하는 기대감과 설레임이 작은 거품 만큼이라도 생기게 마련이다. 거기에다 마르케스의 동화라니..
기다림에 비해 만남의 시간이 너무 짧을 때가 있다. 이 동화 속의 형제 토토와 조엘의 짧고 친근한 이름을 막 귀에 넣고 미지의 여행을 즐기려는데, 벌써 책의 두터운 뒤 겉장이 손에 잡힌다. 환상은 짧아야 제 맛인가?
토토는 아빠를 졸라서 집에 보트를 들여놓는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 대가로 받은 선물인데, 과연 이 보트는 눈요기 말고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물론 어른들에겐 그렇지만, 아이들은 또 다르다. 무엇보다 토토는 수업 시간에 어느 시인이 '빛은 물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을 기억한다. "빛은 물과 같단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는 것과 같은 거지."
토토와 조엘에게는 과학자보다 시인이 더 현실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환상일지라도.. 어쨌든 예상했겠지만, 토토의 5층 집 안은 부모가 영화를 보러 나가는 사이, 전등에서 바닥으로 쏟아진 빛이 바다를 이루어 보트는 둥둥 뜨게되고, 두 형제는 노를 저으며 미지의 항해, 환상의 여행을 하게된다.
그러나 아무리 달콤한 것이라도 단 한번이라면 아쉬운 법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욕망은 어른들처럼 세속적이진 않더라도 결코 무시할 게 못된다. 빛 위를 타고 가는 것은 해봤으니, 이젠 물안경까지 끼고 빛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간잘간질해진다. 그리고 부모는 어김없이 매주 하루는 영화를 보러 자리를 비운다. 그러니 어쩌랴..
토토와 조엘의 더 깊어지는 빛물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 그 환상으로 얼룩진 마지막 몇 장은 남겨두고 나도 이 짧은 동화책에서 빠져 나와야 할 거 같다. 역시나 라틴아메리카 동화책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쇼파 위에 걸터앉아 자신들의 환상을 훔쳐보는 우리들을 쳐다보는 듯, 눈매가 인상적인 노란색 고양이의 그림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