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리 -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e시대의 절대사상 29
김석 지음 / 살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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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라캉의 글은 애매모호하다.

라캉의 입장에선 분명하고 명료한 주장은 오히려 병을 앓고 있는 진리일 가능성이 높다. 즉 우리 인간은 진리를 통째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먹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유기체의 소화 흡수 능력이 닿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의 글이 미로와 같고, 모호하다면, 그것은 읽는 자의 눈을 해메게 만들어 그 꼴을 즐기려는 천재의 장난질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저 멀리 그것?!에 닮으려는 전략적인 글쓰기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가령 입자적인 분명함(코키토적 주체가 선호하는)을 포기하는 대신 파장이라는 (중층적으로 꼬인) 역동적인 긴장감은 보존하려고 말이다. 

 

또 한 권의 라캉에 대한 입문서가 나왔다.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이란 부제를 가진 <에크리>인데, 라캉에서 좀더 클로즈업해 들어가 '에크리'라는 텍스트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른 라캉 입문서들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전혀 색다른 라캉의 출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책들에서 좀 아쉽게 다룬 부분을 약간 지그시 눌러 보기 좋은 윤곽을 만들기도 한다.

글쓴이도 라캉의 애매모호함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나름대로 가치를 부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라캉을 알기쉽게 설명하는 책이니 만큼, 그의 "모호함을 즐겨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설명 과정에서 라캉 이론의 중층적인 매듭을 잠시 풀어서 좀더 단순하고 명확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라캉의 진면목을 전달하는 최상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라캉 입문자들에겐 효과적일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는 기본적인 내공이 쌓이고 나서 나중에 어차피 맞닥뜨려야한다. 그렇다면, 라캉의 기이하게 살찐 주름진 살들의 부피를 억지로라도 약간 죽일 필요는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라캉과 어울리지 않는 명료함들도 잠깐의 효과적인 디딤돌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라캉의 중요한 이론인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다른 (입문 성격의) 책들에선,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중요성이 넘어오는 것을 강조하고, 대개 상징계에 대한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라캉이 <에크리>라는 책 이후에 상징계보다 실재계를 더 중요하게 다룬 것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상상계-상징계-실재계에 대해서 어떤 과정으로 중요성이 옮겨가고, 또 최후에는 세 가지를 다시 동등하게 인정하기도 하는 등 이론의 미세한 변화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에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바로 라캉 공식과 도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으로도 보이는 수학소의 활용은 라캉이 말년까지 고심한 문제였던 것 같다. 이것이 예전에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라는 책에서 라캉을 비판하는 큰 빌미가 되었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136쪽에서 '부성 은유의 공식'은 물론, 194쪽부터 시작하는 '욕망의 그래프'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고 상세한 편이다.

 

라캉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을 통해 정착한 상징계에서는 '주체 분열'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끊임없는 욕망의 운동이 발생하고 '빈 껍데기'를 마치 성배를 찾듯 헤맨다. 이런 '주체의 오디세이'는 주이상스를 통해 흘깃 그것이(실재) 있음을 어렴픗이 느낄 뿐이다.

그렇게 신나는 오디세이가 아님에도 왜 이렇게 라캉의 텍스트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도 라캉을 통과한 또 하나의 미끼, 이 책을 물었으니 말이다. 라캉에서 배운 걸 써먹는다면, 이런 비유도 가능하다. 라캉의, 라캉에 대한 책을 내가 고른 것이 아니라, 나는 이 작은 책의 덫에 걸려 든 것이다. 거기다가 이 책의 부제에 '마법'이 들어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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