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정리를 했다. 찾아야 할 책이 있어서, 하는 김에 정리도 한 것인데, 사 놓고 세워 놓기만 해서 얇고 얇은 먼지 옷을 입은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손끝 지문(부위)에 거무스름한 먼지를 묻히고서야 일이 대충 끝났다. 볕과 공기가 잘 드나드는 커다란 서재를 한번 꿈꿔본다.
루돌프 아른하임은 꽤 오래전부터 시각과 회화(예술), 시지각에 관한 연구로 어떤 수준의 단계를 대표하는 학자다. 지금은 새로운 이론들로 인해서 비판적인 (과거 연구로써) 검토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시각과 주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요즘, 한 번 제대로 겪어봄직한 텍스트의 저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각적 사고>와 <미술과 시지각>, <예술 심리학> 그리고 특이하게도 물리학적 접근(엔트로피를 중심으로 무질서와 질서, 구조)을 한 <엔트로피와 예술>이 있다.
시각과 결부된 주체가 회화에서 노니는 책을 잠깐 보았다. 이번엔 주체와 욕망 그리고 (문자)텍스트와의 진득한 엉킴을 구경할 만한 책이 보인다. <기호 주체 욕망>이란 책인데, 박찬부 씨는 전에 '라캉과 현대정신분석학회'를 이끌기도 했는데, 여기서 나온 얇은 학술지를 몇 번 본 기억이 난다. 정신분석과 문학에 대한 연구는 예전에 주로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젠 라캉이 자연스럽게 어떤 유용한 도구로, 이러한 접근을 다시 한번 부추기는 것 같다.
마르틴 졸리의 <영상 이미지 읽기>는 얇은 책이긴 하지만, 이미지 기호에 대한 이론과 실제 분석까지, 하나의 과정을 담은 실용적인 책이다. 뒤에 참고문헌에는 달랑 책 이름만 있는 게 아니라, 간략하게 책의 특성을 설명, 초보자들에게 선택의 길잡이도 한다. 마르틴 졸리의 책은 이것 말고 동문선에서 나온 <이미지와 기호>도 있다.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보던 대상-여자에서 (반대로 전환만 하면 그뿐인) 남자라는 대상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룬 것이지만, 이러한 전환을 생각해낸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봐서도 매우 힘들었음을 알 수 있다.
여성과 미술에 대한 책들은 페미니즘 시각 등을 통해서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미디어가 과거와 달리 비약적인 변화를 보이게 되면, 그 아찔한 격차 만큼 어떤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이것이 예술과 화학 반응을 한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렇게 변화가 왕성한 시기(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에 그것들을 몸소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메뉴얼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험 정신이 붙게 되고, 이것이 흡사 '실험 정신'이라는 칭송을 듣게도 한다. <뉴미디어 아트>란 바로 그러한 첨단 미디어가 예술에 흘러 들어가 여태 보지 못한 새로운 섬광(이미지)을 연출하는 모습들이 담긴 책으로 보인다.
이젠 너무도 유행에 뒤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 책방에 떠돌고 있다. 이 사조가 한때는 젊은 두개골을 바싹 긴장시켰던 적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차이를 마치 도식처럼 암기하던 사람들도 있었을테고, 너무도 극단적인 외침들도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 핑계를 대가면서 그칠 줄 모르는 사유의 광란을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잠잠하고 아무도 건드려주지 않는 이 시기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군불 지피기는 어떨까?
<이성의 파괴>
잠깐 잊고 있었던, 루카치.. 전에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와 <이라크>를 읽으면서 "맞아! 루카치가 있었지"라며 속으로 중얼거리던 기억이 난다. <역사와 계급의식>은 판을 거듭하면서 여전히 살아 있는 그의 책이고, <이성의 파괴>도 그 도도한 제목을 가지고 버티고 있다. 다만 <청년 헤겔>과 <레닌>, <영혼의 형식>, <미와 변증법> 같은 책들은 보이질 않는다. 하여튼 루카치에 대한 약간의 불씨에 자극을 받아 찾아보니까, <루카치 미학>이란 4권짜리 책이 눈에 띈다. 나는 '미메시스'라는 말이 들어가면 약간 지적 흥분을 느끼는데, 1, 2, 3권에 걸쳐 이 '미메시스'가 퍼져 있다. 어서 이 책부터 차근 차근 모아야겠다.
-DVD-
스탠리 큐브릭
스탠리 큐브릭의 박스세트(Stanley Kubrick Collection)가 곧 나올 모양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후기 작품인 <2001 : A Space Odyssey, 1968>부터 실린 거 같은데, 구태여 이 감독의 영화들에 대해 "봐야 한다, 이것만을 피해야 한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킬링>은 큐브릭의 초기 영화에 속한다. 나는 여태 <킬러스 키스 ,1955>를 맨 처음 영화로 알았는데, 찾아보니까 그 전에 <공포와 욕망 ,1953>이 있다. <공포와 욕망>에 대해선 금시초문인지라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하여튼 큐브릭 감독은 <영광의 길>에서 마이클 더글러스의 아버지인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와 만나면서 뭔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커크 더글러스를 주연으로 대작 영화 <스파타커스 , 1960>를 만들었는데, 영화는 지금봐도 상당히 잘 만든 영화지만, 정작 감독 본인은 그렇게 좋아하질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커크 더글러스에게 있다. 아무래도 힘과 돈이 있는 배우라서 간섭이 심했다고 하는데, 이를 계기로 큐브릭 감독은 그 후에 영화를 만들 때, 자신의 독자적인 힘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영화 만드는 걸 꺼려했다고 한다. 하여튼 이 영화에서, 수많은 전투병들이 열을 맞추어 진을 짜는 풍경은 다른 데서는 보기 힘든 광경 중 하나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1964>는 대단히 현대적인 시각이 깃든 영화로써, 그의 독특한 영화적인 풍자를 만끽할 수 있다. 특히 하늘에서 추락하는 카우보이는 압권이다. 거대하고 지루한 우주 묵시록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최근 <썬샤인>에도 그 영향력을 확인 할 수 있고, 너무도 유명한 그의 대표작 <시계태엽 오렌지>의 엽기성은 카메라의 과감한 움직임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안에서의 '빛(조명)'에 대한 실험적인 탐구가 돋보였던 <배리 린든>과 미친 아버지와 복도의 피바다가 인상적인 <샤이닝>도 빼놓을 수 없는 큐브릭의 영화다. <폴 메탈 쟈켓>은 더 한층 현대적인 영화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렇게 빼어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즈 와이드 샷>도 그러한 주제나 분위기는 다른 영화에서도 맛볼 수 있기에, 약간 시기적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무거운) 잔영을 남기기엔 불리했다고 보여진다.
하여튼 그가 누구인가? 스탠리 큐브릭.. 이렇게 건성 건성 그의 영화를 건드리기엔 너무도 탁월한 감독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