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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웃드하 불교
나카무라 하지메 외 지음, 혜원 옮김 / 김영사 / 1990년 10월
평점 :
절판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는 무엇인가?"
불교를 믿음의 종교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테고, 수행에 필요한 가르침을 얻으려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방대하고 다양한 사상의 세계에 매력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그러한 여러 접근에 대해 불교는 맞춤형 문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바라보지만, 그들 시선의 방향이나 강도는 상당히 다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불교의 넓다란 포용력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고, 삐딱하게 말한다면, 딱 부러지는 정체성이 과연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것이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엄격성이 약한 탓에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진 종교-사상의 다발이라고까지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초기 불교, 가령 상좌부의 강한 계율과 후기 밀교에서 세속의 욕망을 정면에서 긍정하는 몸짓을, 같은 범주로 보기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불교 안에 反불교적 성향을 찾는 건 어렵지가 않은데, 어떤 종교나 사상에서 뒤로 갈수록 그런 경향이 생길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불교가 그것들과 다른 것은, 그러한 서로 다른 층들이 과격하게 배격하거나 단절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여튼 괜한 말이 길어졌다.
나까무라 하지메와 사이구사 미쯔요시는 일본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학자다. 이 책의 제목이 <바웃드하 불교>인 것은, 불교에 대한 새로운 기획, 즉 농후한 종교적 색채에서 본래 불교의 모습에 더 윤곽을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인도에서는 불교를 '바웃드하 다르샤나(Bauddha darsana)'라고 부르며,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의 사상(체계)라는 의미가 짙다. 즉 우리가 흔히 '불교'를 '불교'라고 부른 것은, 일본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근대적 용어이고, 예전에는 '불법'이나 '불도'라고 불렀다.
더우기 중국, 한국, 일본 같은 북방(북전) 불교는 대승이 강한지라, 초기 불교 텍스트인 아함경의 직접적이고 커다란 영향권에 벗어나 있다. 거기다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가 온 것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문명(문화) 여과기를 거쳤기에, 어쩔 수 없는 오해와 왜곡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현재, 스리랑카와 같은 남방 불교와 우리나라 불교를 비교해 보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서로 다른, 그러나 공통점이 있는 종교라고 볼 여지도 있다. 즉 남방불교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승 경전들이 영향력이 없고,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소승이라 비하하지만, 그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순진하게 우리가 불교를 그냥 불교라는 이름으로 한 무더기로 덥석 잡는 다는 건 무모한 일이다. 그리고 최소한 그러한 엇갈림이 생겼던 배경에 대해서 알아두는 것이 (종교로서의) 불교, (사상으로서의) 불교학에 입문하는 자세가 아닐까?
<바웃드하 불교>, 이 책은 그러한 어지러운 불교의 형국을 잘 헤아리게 하는 분별력을 제공한다. 나까무라 하지메는 이 책 저자로 맨 앞에 이름이 올라와 있지만, 처음과 끝장에 짤막한 단서를 주고 있을 뿐이며, 전체적으로 이끄는 사람은 사이구사 미쯔요시다. 사이구사 미쯔요시는 이 책에서 문헌학적인 접근도 보여주는데, 용어에 대해서도 한자, 산스끄리뜨어, 빨리어를 표기하고, 중요한 부분은 '어근'까지 다루면서 정확한 전달에 신경을 쓴다.
특히 초기불교의 본래 모습인 <아함경>과 '아함경 사상'을 큰 줄기와 작은 줄기로 번갈아가며 짚어내고, 이러한 것이 어떻게 대승불교로 발달했는지 역사적인 이유와 사상적인 차이를 드러내며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의 중요한 사상인 '중관'과 '유식'에 대해서도 간결하지만, 핵심을 잘 요약해내고 있으며, '보살'과 '밀교'에 대한 정리도 깔끔하고 유용하다.
어떻게 보면, 불교개론서라도 볼 수 있지만, 불교의 기초보다는 불교의 기본을 되짚는 어떤 힘을 갖춘 책이라 생각한다. 360쪽에 가까울만큼 두툼한 분량에다, 글자도 작은 편이라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불교에 대한 간결한 기초를 쌓으려고 본다면, 약간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막연함이 아니라 좀더 분명한 입체감으로 감지하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시각을 줄 것이라 믿는다. 눈에 띄지 않는 투박한 책이지만, 머리 속에 들어가면, 뭔가 듬직한 알갱이 하나는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