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달에 구한 책들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읽을 것들이 많아서였을까? 8월에 구한 책들 중에서 몇 권을 추려보았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4.6판형(127x188mm) 크기를 가진 약간 아담한 책이다. 신구 가즈시게라는 일본 사람이 쓴 것인데, 역시나 동양인의 감성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정취이고,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한 아담한 느낌의 도식들이 자주 등장한다. 라캉을 고대로 택배(집 배달)라도 하듯 건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틀에서 검소하게 소화시킨 흔적도 느낄 수 있다.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라캉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볼 때는 약간 밋밋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라캉 기본서 몇 권을 보고 난 후 보면 좋겠다. 다른 책들이 주지 못하는 정적이면서도 묘한 컨셉의 흐름을 가진 책이다. 

<들뢰즈>는 이미 서평에서 밝혔듯이 이미지(영화와 회화)를 중심으로 엮은 들뢰즈 핵심 접근법이 실려 있다. 특히 주석이 없어서 번거롭게 눈의 시선을 아래 위로 옮길 필요 없이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그라나 들뢰즈의 거대한 두뇌 냄새를 맡기엔 양이 작을 수밖에 없다.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의 철학사상>, 이 책은 좀 더 분석적으로 들뢰즈를 탐색한다. 베르그송-니체-스피노자로 이어지는 들뢰즈 자신의 초점 이동을 추적하듯 구성한 책인데, 스피노자를 다룬 부분이 비중이 크다. 들뢰즈에 관심이 있다면, 어렵더라도 구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왜 어렵냐하면, 현재 품절이다.

*덧붙임*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의 철학사상>이 품절이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들뢰즈 사상의 진화>로 나와 있다. 이 책은 <들뢰즈의 철학사상(Gilles Deleuze : An Apprenticeship in Philosophy)>을 다시 새롭게 번역하고, 이 원서 내용과 다른 것을  2부에 추가한 꼴이다. 만약 먼저 나온 책보다 번역이 잘되었다면, 당연히 <들뢰즈 사상의 진화>를 보는 것이 더 유리할 것 같다. 

 

<논개>, 색동치마 같은 표지를 가진 책이다. 작가의 손끝에 많은 무게가 실렸는지, 단어들이 종이에 꽂히듯 사나워 보인다. 뼈마디가 거칠고 굵은 사람의 한 서린 춤을 보듯이 말이다. 그 기운을 다소 좀 죽이고 시간 속에서 감내하고 다시 내뱉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승기신론'은 원효대사와도 인연이 깊은 책이다(<대승기신론소>). 여기서 '론'은 불교 삼장(三藏, tri-pitaka)-경율논(經律論)에서 '논(론)'에 해당한다. '경'이 붙은 것은 붓다의 말씀과 가르침이 담겨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 직접성이 있다 하겠다. '율'은 계율과 관련된 것들이고, '논'은 그 후 심화된 불교의 다양한 해석과 연구들이라고 보면 될 듯 싶다. 이 책, <대승기신론 이야기>는 제목처럼 전설따라 삼천리를 가듯, 대승기신론에 얽힌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쉽게 간추렸다. 즉 대승기신론 텍스트 자체를 해석하는 책은 아니다. 준비운동겸 읽기에 좋아 보인다. 거기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부분이 자주 나온다.

 

 

이즈쓰 도시히코는 한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스무명의 천재를 합쳐 놓은 사람이라는 말은 과장이라 하더라도, 분명 동과 서를 회통하는 사유의 힘이 있는 보기 드문 사람으로 보인다. 원래 이슬람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로 유명한 사람인데, 영어나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희랍어, 라틴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 등 다양한 언어에 대한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학자들이 직접 접하기 힘든 텍스트들을 중력장처럼 끌어당기는 솜씨가 대단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의미의 깊이>에서는 '언어 아라야식'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의 신조어 같은데, 이렇게 불교 유식을 언어학적으로 끌어오는가 하면, 데리다, 이슬람, 수피즘 그리고 진언 밀교가 하나의 장(場)에서 이색적인 스침을 시도한다. 원래 이 책은 오래전에 <동양철학의 심층분석>이란 제목으로 나온 적이 있다. 지금은 읽어버려서 없지만, 기억해 보건대 번역이 거칠었던 것 같다. 다행히 이렇게 세련된 표지를 입고 다시 나타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책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회통의 축을 중심으로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돌아가니까,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호기심을 앞세운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이즈쓰 도시히코의 책 한 권을 발견해서 이 페이퍼에 덧붙인다. <의식과 본질>이란 책인데, 일본에 이즈쓰 도시히코 전집이 있을 터인데, 이렇게 계속 더 나오길 기대해 본다. 특히 불교 관련 책이 나오면 더 좋을 것 같다.(2013년 9월 덧붙임)

 

 

 

 

 

<파라켈수스> ...이 미스터리한 남자에 관한 유일한 책이 아닐까? 물론 그를 인용하거나 소개하는 책들은 빼고. 책을 잠깐 넘겨 보니까, 적당한 두께에 심심하지 않게 그림들이 있어서 약간 시간을 내면 금방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리 로트만의 <영화 기호학>은 예전부터 찾던 책인데, 용케 구했다. 민음사에서 나온 [뉴미디어총서] 1권이기도 한데, 환상, 쇼트, 몽타주, 플롯, 시간-공간과의 투쟁 등의 내용들이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다.

<시각영화(Visionary Film)>는 며칠 전에 구했는데, 그래서 2장까지 보는 중이다. 먼저 560쪽에 달하는 두툼함과 분홍빛이 감도는 세련된 표지는 일단 풍족감을 준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문의 글자크기도 작은 편이다. 보기엔 좀 불편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내용이 담겼으니까 감수할 만하다. 이 책은 1974년에 처음 나왔는데, 그 후에 넣고 빼고하는 다듬기를 해서, 세 번째 판이 나왔고, 이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앞에서는 <안달루시아의 개>와 <오후의 올가미>에 대한 흥미로운 비교가 눈에 띈다. 저자는 일종의 초현실주의와 몽환의 대비로 보고 침착하게 다른 자료들을 활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얹는다. 특히 이 책에서 아방가드르 영화를 다루는 방식은 짧은 정보가 아니라 줄거리나 화면 분석, 작가(감독)의 언급(이야기) 등 주관적 해석과 객관적 이해라는 균형감각이 보인다. 그러나 번역에서는 약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앞부분만 잠깐 보는 와중에도 틀린글자(오자)와 매끄럽지 않은 문장, 그리고 쉼표의 남발이 보인다. 네 명이 공동번역을 한 것인데, 문외한들도 아니고 영화를 전공한 사람들이라 더 아쉬움이 든다. 아마 각자 맡은 부분이 다를 것이고, 역자에 따라 좀 더 잘 된 곳도 있겠지만, 누군가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톤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 아닐까? 거기다 이런 아방가르드 영화 같이 드문 전문서적의 경우는 그런 성실함과 책임감이 더 요구될 것이다. 그래도 영화작가나 영화제목 옆에 꼼꼼하게 원어를 표기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어쨌든,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아방가드르 영화와 관련된 책으로 꽤 드물고 그 중에서도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사실이다. 미국 위주로 짜여진 책이지만, 나중에 보탰는지 유럽 영화에 대해서도 짧게 다루는 장이 있다. 번역상에 다소 약점이 있지만, 이쪽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서점에서라도 훑어보길 권한다.

 

=======================본문과 관련된 책들=====================

-대승기신론-

 

 

 

 

 

 

 

 

 

마명(馬鳴)보살이 지은 <대승기신론>은 쉬운 책은 아니다. 이와 관련된 책들도 논서치고는 꽤 많은 편이다.  <대승기신론에 대한 원효.법장의 주석비교>는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와 법장의 <기신론의기>를 비교, 분석한 책으로 보이는데, 어느 정도 기신론의 기본을 다진 후에 볼만한 책으로 보인다.   <대승기신론 통석>은 기신론 본문을 번역하고 주석을 붙인 책인데, 그 해석이 과거의 정해진 틀에 안주하지 않고, 저자의 개인적인 새로운 해석도 가미된 것 같다. 좀 더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썼다고 하니, 나중에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세계사에서 나온 <대승기신론>은 불교 관련 고전들을 꾸준히 번역해 온 송찬우씨가 옮긴 책이다. 기신론의 기본서로도 볼 수 있는데, 중국 감산대사의 <대승기신론직해>를 바탕으로 나머지 빠진 부분은 보완한 책이라고 한다. 기시론을 텍스트로 접할 경우, 고려해 볼 만한 책 중 하나로 보인다.

 

-이슬람-

 

 

 

 

 

 

 

 

 

 

 

 

 이즈쓰 도시히코가 번역한 <코란>이 일본에서는 표준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슬람(신비주의 포함)에 관한 책도 많이 쓴 편이다. 그에 대해서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불교가 좋다>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슬람도 결국엔 불교와 닮은 부분이 있다고 한다. 물론 "종교들도 알고 보면 다 뿌리는 같다"라는 말은 어느 신비주의자들의 흔한 감상적인 말로도 들리긴 하지만, 그것을 도출해 낸 과정이 타당성이 있다면, 그냥 한 귀로 넘길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학문적으로 그러한 것이 드러난다고 해서 과연 이 종교적인 엇나감이 부드럽게 맞춰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그것을 품을만한 사람의 개인적인 성찰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동양인으로서 이슬람에 대해서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의 책이니만큼, 그의 책 <이슬람>에도 한번 손때를 묻혀야 할 것 같다.  그 외 이슬람에 관한 많은 책들 중에서 대충 고른 것들이다. 우리에게 이슬람의 모습은 포용과 공격성이라는 이중적인 잣대를 대개 하는 약간 불안정한 그 무엇이다. 알고보면 대단히 포용성을 가졌다고 하지만, 외곽에서는 텁한 먼지들이 가끔 바람에 날리는 듯한 불협화음 같은 이미지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에서도 또 유별나게 기독교와 이슬람은 서로간에 적대적인 기류가 사라지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것이 국제정세에도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반발력이 강한 대극을 형성하고 있음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아방가르드 혹은 실험 영화 그리고 유리 로트만-

 

 

 

 

아방가르드-실험 혹은 전위 영화에 관한 책은 찾기가 힘들다. 아보스 보겔의 <전위 영화의 세계>도 우리가 접하기 힘든 좋은 영화들을 많이 소개한다. 그러나 절판이라 구하기는 어렵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은 그냥 그 자체로도 매력적으로 들린다. 레나토 포지올리의 <아방가르드 예술론>은 아방가르드 전반에 대해서 무난하게 잘 다룬 책으로 여기에 관심이 있다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아방 가르드 연극의 흐름>은 주목할 만한 책이다. 책 제목이 마치 연극에만 한정된 느낌을 주지만, 신화, 제의, 인류학, 성(性), 정신분석, 예술에 걸친 매우 지적인 자극을 머금고 있다. 나는 앙토네 아르토의 잔혹극 부분을 참고하려고 구한 책인데, 꽤 마음에 든다.

유리 로트만의 책들도 아쉽게도 품절이 많다. 품절된 책 중에 <영화의 형식과 기호>는 유리 로트만은 물론 야콥슨 등 거물들의 글들이 실려 있다. 그런데 유리 로트만의 글 '영화 기호학과 미학의 문제'는 <영화 기호학>과 겹치는 내용이다. 아마 분량으로 볼때는 <영화 기호학>에 (역자에 의해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보태어진 내용이 있는 것 같다. 사진 자료는 <영화의 형식과 기호>에 실린 '영화 기호학과..'가 더 크고 선명하다.  

 

 

-들뢰즈에 관한 책 몇 권-

본문에서 말했다시피 품절된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의 철학사상>은 <들뢰즈 사상의 진화>로 봐도 되니까 다행이다. 그리고 이정우씨를 비롯한 소운서원 학자들이 <들뢰즈 사상의 분화>라는 책을 내놨다. 여러 사람의 글을 모은 것 치고는 두껍지가 않은데, 국내 학자들의 글이니 만큼 우리 인문학의 흡수-배설 능력(역량)을 느껴 볼 수 있는 결과물로 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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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뢰즈 사상의 분화』
    from 도서출판 그린비 2007-09-03 11:13 
    <리좀총서란 무엇인가?><리좀총서>는 ‘들뢰즈 이후’(After Deleuze)의 독창적인 사유의 결과물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자 마련된 연구집합이다. 하나의 중심에 매이지 않고 무한대로 증식하는 생성의 개념인 리좀(rhizome, 뿌리-줄기)처럼 이 총서는 들뢰즈를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영역과 관점에서 들뢰즈의 사유를 확장시키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총서는 들뢰즈의 문제의식을 밀고나가, 다채로운 주제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