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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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의 강아지 칠성이는 꿈속에서 반갑게 나타난다. 엉덩이가 실룩거릴 정도로 꼬리까지 흔들면서.. 그러나  쫄랑쫄랑 바리 뒤를 쫓아오던 칠성이는 어디선가 멈춘다. 아무리 사랑스럽고 정다운 인연이라도 이승과 저승이 겹친 꿈속에서 잠시 만나 회포를 풀 지언정, 그것이 줄곧 이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계 또한 품고 있음이다. 그 애틋한 경계를 넘어가면, 인자한 할머니도 귀여운 칠성이도 더는 같이 가주질 못한다. '생명수'가 정확히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애쓰며 얻으려는 생명수는 바리의 손아귀가 닿고 싶어하는 지독한 열정의 대상이지만, 개인의 부귀에 큰 보탬이 되는 이기적인 욕심하고는 거리가 멀다. 어린 바리도 그것이 가엾은 혼(백)과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될거란 것은 어렴픗이 아는가보다.  

바리공주의 화신이랄 수 있는 바리는 이 현실에서 지옥을 본다. 사람이 타 죽는 지옥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곤경에서 핏줄이 갈라지는 아픔, 사방 천지에 널부러진 배고픔에 꺼진 시체들... 이 고통의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도, 아귀 같은 욕심으로 다른 선량한 남자들, 여자들을 괴롭히는 탐욕스런 인간들을 만날 뿐이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지옥(배)을 겨우 건너서 도착한 곳이 영국이다. 바리가 혹시 서방정토라도 닿은 것일까? 그러나 어쩌면 이곳이 바로 현실의 지옥 물줄기가 흘러 번지는 근원지인지도 모른다. 다양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은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고향(조국)에서 이고 온 원초적인 업(業)을 벗지 못하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룬다. 민족과 종교 그리고 국가라는 큰 얼개가 사람들에게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수많은 고통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 본거지에서 바리는 자기 생살이 떨어질 만한 비극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여태 보지 못했던 바리의 시퍼런 분노도 솟아났다. 그러나 바리는 바리공주가 아니던가. 한편으로 몽중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생명수, 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 뭇 생명들을 고통에 몰아 넣는 피부색과 종교의 갈등, 힘으로 깡패처럼 가엾은 나라 백성을 옥죄는 권력의 장(場)을 녹여줄 촉촉한 물은, 결국 찾았던가?

극한의 고통일지라도 자기 마음을 살펴 그 안에 실타래처럼 얽힌 모두의 얼굴을 보는 것. 그래서 용서하는 것. 그것이 인간들을 구원해 줄, 터진 지옥의 상처를 멎게 할 생명수가 아닐까.. 그렇다면 바리는 그것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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