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마도바르 영화에서 찰리 채플린의 손녀가 짧게 나온 것도 화제가 될 만큼, 채플린이 영화(라는 것)에 어떤 발화점을 가지고 있는 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릴 적에는 채플린 영화는 그냥 우스운? 영화쯤으로 여겼는데, 머리가 커지면서 그게 아님을 서서히 알게됐다. 그 희극에 신경을 쓰느라 자연스럽고 기발하게 놓여 있던 것들이 눈에 띄질 않았던 것이다.

 

 

 

 

찰리 채플린(Charles Spencer Chaplin)과 히틀러(Adolf Hitler)는 상반된 거울 이미지 같은 극과 극의 운명을 보여준다(물리학적인 비유를 든다면 둘 중에 하나는 반입자의 성질을 가진 거처럼). 콧수염도 그렇지만, 태어난 해가 같은 해인 1889년 4월생이다. 어떤 책에서 생일이 하루 차이라고 본 거 같은데, 찾아 보니까 나흘 정도의 간격이 있다. 채플린과 히틀러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거의 전지구적인 파급을 준 희-비극의 생성자 역할을 했다. 이 둘의 기막힌 겹침은 채플린이 그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에서 스스로 왜곡된(우스꽝스러운) 히틀러가 되어 실현하기도 하였다(이건 히틀러도 아니고 채플린도 아니여...) '만약에'라는 걸 즐기는 사람들은 히틀러가 앳된 시절 원했던 화가가 되었더라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상상역사를 그려본다. 그럼 반대로 채플린이 영화감독, 배우가 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정확한 제목은 알지 못해도, 채플린의 영화들은 TV를 통해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입자가 고르지 않은 흑백 화면과 프레임수가 적어 등장인물들의 동작이 빨라보이는(거기다 뒤뚱거리는 채플린의 걸음걸이) 등 채플린의 영화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작품으로 분절되지 않고, 그냥 하나의 -채플린 영화-로서 인식되기도 한다.

최근에 지젝(여기서 설명하는 것들은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를 참조)에 의해서 히치콕 영화가 풍부한 이론의 보기(실례, 實例)로 제시되는데, 채플린 영화도 자주 언급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라임라이트(limelight)>는 발레 무대와 관련된 '트레킹 숏'(tracking shot:카메라가 바퀴 위에서 이동하면서 찍는 숏, 라임라이트 이 영화 장면에서는 뒤로 물러서는 숏을 말함)을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 지젝은 이 장면을 정신분석학적 '얼룩', 그리고 '히치콕'적인 경지로 끌어올려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지젝은 "<시티 라이트(city lights)>는 영화사상 마지막 장면에 모든 것을 거는 가장 순수한 사례"라며 강한 어조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의 말을 통해 너무 기대를 가지고 봐서인지 나는 생각보다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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