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우리에게 그 자신의 피부(스크린)를 보게 하고, 또한 피부에 감춰진 다양한 것들을 텍스트들을 통해 읽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에 매료된 자는 눈이 멀도록 네모난 섬광 앞에 자신의 정지된 유기체를 놓는다. 마치 영상 앞의 제의(祭儀)처럼.. 그리고 영화에 대한 경전들을 찾아 헤맨다. 뭘 위해서?
오늘 잠시 영화라는 이미지神이 담긴 경전(책)을 더듬어보자.
미국 헐리우드 시스템이 영화라는 몸을 세속적이고 대중적으로 만들었지만, 그 미국 안에 또 다른 기이한 몸매를 가진 영화들도 있다(과연 미국에 없는 게 뭐가 있을까?) <시각영화(Visionary Film)>는 바로 미국의 작가주의 영화들을 다룬 평범치 않은 책으로 보인다. '작가주의'라는 말에도 맥락에 따라 온도차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체온은 미지근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덧붙여도 좋을 거 같고, 책도 이미 그것을 받아먹고 있다.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보여 준 여성 감독, 마야 데렌의 <오후의 올가미>를 비롯, 케네스 앵거, 스탠 브래키지,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 등의 활약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을 거 같다. 케네스 앵거의 영화에는 동성애 코드가 있고, 스탠 브래키지(Stan Brakhage)는 정말 실험적인 영화의 맛을 제대로 표현하는 감독 중 하나다. 그는 필름에 직접 색을 칠해서 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그래서 상영 길이에 비해 작업 기간이 상당히 길다), 독 스타 맨(Dog Star Man), 단테 쿼텟(The Dante Quartet) 등이 대표작이다. 나는 운이 좋아 보긴 봤지만, 우리가 아는 영화에서 많이 이탈한 '영상'이므로 큰 기대가 자칫 당혹감으로 바뀔 수도 있을 거 같다(국내 블로그에서도 검색해보면 맛보기로 올려진 영상이 몇 개 보인다). <전위영화의 이해>라는 책에도 여기에 나온 작가들 대부분을 만날 수 있다.
<영화인지기호학>.. 인지과학과 영화의 만남, 그 바탕엔 기호학적 시각을 깔고서 말이다. 신경과학(시각신경과학visual neuroscience)을 통해 미술을 설명하던 <이너비전>이란 책도 있었는데, 점차 눈이 아니라 더 원초적인 루트를 거슬러 올라가 근원적인 차원으로의 접근들이 행해지는 추세다(감각기관이 아니라 기관들을 관장하는 두뇌). <영화-감독의 미학>은 잘 눈에 띄지 않는 책같다. 저자(최영철)가 일본에서 영화를 공부한 경험 탓인지 일본 영화에 관한 글이 많고, 유럽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것도 보인다.
몽타주에 관한 책은 두 권을 골라봤다. 몽타주에 (실천) 미학적 맥박이 뛰기 시작한 그 초기를 다룬 <영화에서의 몽타주 이론>과 최근 영화들을 다룬 <현대영화의 몽타주>다. 초기 러시아 몽타주 이론가(감독)들이 비록 국가의 요구에 따르는 하나의 참여로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몽타주를 통해 관객에게 지적인 각성-능동성을 유도했던 태도는 요새 관객의 순응성을 강조하는 것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영화에서의 몽타주 이론>은 우리가 흔히 몽타주 하면 에이젠슈테인과 전함 포템킨을 떠올리는데, 쿨레쇼프와 푸도푸킨이라는 선배?들부터 다루고 있다.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기획한 영화이론 시리즈가 눈에 띈다. 영화 구조 문법의 기본(러시아 몽타주 이론에서는 마치 '단어'와 같은)이면서, 역시 영화 분석의 기본인 '쇼트'를 전문적으로 다룬 <쇼트>가 그것이다.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니라서 조금만 버틴다면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내공 하나를 얹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영화의 물리적 장치들인 '영상기계'와 기술과 관련된 <세계 영화영상기술 발달사>는 1900년 이전부터 최근까지의 영상기술의 발달을 방대한 자료들을 가지고 엮어내고 있다. 이와 좀 비슷한 형식의 책으로 지금은 찾기 어렵지만 <영상기계와 예술>도 있었다. 영화의 색채를 전문적으로 다룬 <영화색채미학>도 눈여겨 볼 만한 책으로 보인다. 회화나 디자인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관계인데, 영화에서는 꽤 드문 작업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결국 두 책은 영화를 가능케 하고, 영화 안에 상존해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가 영화의 익숙한 '겉'에 주의하느라 놓치던 것들을 상기시키는 낯설지만 필요한 텍스트다.
<영상 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앞의 두 책이 (감상자로서) 매니아타입에게 호기심을 준다면, 영상을 직접 대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라 미학적인 영상을 가능케 하는 원리들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