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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강의
남회근 지음, 신원봉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금강경(金剛經)은 소박하게 바로 눈 앞에서 뭔가를 내 놓는다. 근사한 (철학적인) 현학으로 심오함을 보일듯 말듯 우회적으로 번거롭게 펼쳐놓질 않는다.
그래서 어찌보면 싱거울 수도 있다. 대단한 경전이라 들어왔는데, 금강의 빛처럼 눈을 사로잡는 그리고 읽는 사람을 압도하는 무엇인가가 있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희미하게나마 왜 금강경을 위대한 경전으로 여기는지 알것도 같다. 금강경은 중생에게 무엇인가를 얹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집착하고 자기 몸에 축적하려는 욕망을 바로 보게 하려는 방편을 지닌 경전으로 보인다.
유(有)에도 눈길을 주지 말고, 그렇다고 공(空)에도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사고의 구성작용에서 벌어지는 유와 무도 결국 有의 또다른 놀음이지 않겠는가? 남회근 선생이 강조하듯 금강경 어디에도 空이란 말은 없다. 즉 금강경은 나중에 잘못 알려진 대로 공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공에 집착하는 거 조차도 경계해야 함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구마라습 한역본을 가지고 남회근 선생은 소명태자가 나눈 32분(分) 순서대로 정말 자세하고 친절하게 우리와 함께 금강의 빛을 나누고 있다. 특히 여러번에 걸쳐 "생각을 잘 보호하고(善護念), 집착하지 않으며(無著), 상을 갖지 않음(無相)"의 자세를 일러 주고 있다.
나는 금강경을 읽기 전에는 '금강'에서 어떤 단단함을 연상했으나. 읽은 후에는 '매끄러움'이라는 이미지도 덧붙이게 되었다. 즉 어떤 먼지나 잡티도 내려 앉을 수 없는, 그러한 단단하고 매끄러운 금강의 모습. 이것이 금강경에 대한 나의 첫맛이다.
책 끄트머리에 남회근 선생은 앞서 길게 강의한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해서 정리해 주는데, 독자(중생, 대중)를 끝까지 염려하고 살피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게 바로 큰선생의 면모가 아닐까? 그리고 역자(신원봉)도 우리말로 잘 다듬어서 옮겨 놓았다. 특히 본문에서도 주요 문구는 괄호 안에 원문(한자)을 꼼꼼하게 병기해서 한글과 한문을 편리하게 대조해가며 읽을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