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거리 (2disc) : 디지팩
유하 감독, 남궁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어느 영화제에서 조인성이 남우주연상을 탔다길래, 영화보다는 그의 연기가 궁금해져서 '비열한 거리'를 봤다. 요새 우리나라 영화에서 관객에게 노출되는 폭력 이미지의 강도가 많이 높아졌다, 이 영화도 성격상 어쩔 수 없이 그러한 거친 흐름을 담고 있지만, 쓸데없이 남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거친 골과 골 사이에는 한 사람의 인간적인 떨림과 70년대 정서가 엿보이는 남녀의 절제된 감정도 따라 흐른다.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의 연애는 대개 가볍게 에피소드식으로 다루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하나의 중요한 혈관처럼 가늘지만 줄곧 이어진다. 이것이 이 영화를 그냥 한 생각으로 단지 폭력영화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의리 혹은 배신으로 물든 남자들의 그 거친 세계는 더 큰 힘을 가진 자의 명령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개인적 판단이 거의 부재한) 자동 기계'와 닮았다. 그래서 주인공(조인성)은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아픔이 많은 여린 남자이지만, 보스의 명령을 실행할 때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 인정사정 없는 기계같은 수행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컨벨트{비열한 거리)에서 벗어난 곳, 즉 가족, 친구, 애인 곁에서는 정과 애정이 수줍게 숨쉬는 한 남자가 된다. 그래서 오래도록 그리워 한 여자 앞에서는 여러 감정의 산란으로 갈등하는 너무도 비효율적인 기계, 즉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주인공이 폭력과 살인 등 지독한 행동들을 함에도 불구하고 비열함이 이 남자에게 뿜어져 나오지는 않는다. 그 비열한 거리가 그를 그리하게 만든 거처럼 보이게 한다. 그 거리, 그 상황이 이 남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이 영화는 그러한 중층적인 인간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속력이 강해 보이던 의리도 비열한 거리의 생리에서는 언제든 배신으로 탈바꿈한다.

유하 감독의 이 영화는 비슷한 색깔을 가진 다른 영화들에 비해 두드러진 독창성이나 개성이 넘실거리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부실감이나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게 완성도를 높였다. 과거 '말죽거리 잔혹사'에 비해서도 따로 노는, 엇나간 장면이 많이 줄어들었다. 작품성, 예술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영화들에서 말끔한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건, 앞으로 더 좋은 영화들이 나올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징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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