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찌스 오너(Prizzi's Honor'1985)에서 찰리(잭 니콜슨)는 결혼식장에서 팜프파탈 이미지를 가진 아이린(캐서린 터너)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찰리는 마피아에서 해결사(킬러) 노릇을 하는데, 최고 보스인 영감 돈 코라도는 그의 대부로 서로의 손끝에 피를 내서 맹세까지 한 사이다. 즉 그의 정신적인 아버지인 셈이다.
보스 영감의 손녀딸 메이 로즈(안젤리카 휴스턴, 이 영화 감독인 존 휴스턴의 친딸이다)는 찰리를 좋아한다. 둘은 한때 결혼까지 할 뻔 했지만, 일이 틀어져서 그 후로는 친구?사이를 유지한다. 이 영화의 내용이 급격하게 비틀어지는 역할도 역시 메이의 몫이다. 여인의 그 장기적인 안목에서 나오는 음모라니..
찰리는 아이린과 결혼을 하고 나서 그 여자 역시 전문 킬러였음을 알게 된다. 그것도 자신이 속한 마피아를 속이고 돈까지 챙겼다. 손녀딸 메이의 고자질로 알게 된 보스도 찰리의 아내이기에 여기까지는 눈을 감아주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일이 기다린다(산 넘어 산이다). 보스의 지시로 찰리는 아주 중요한 일을 맡는데, 큰 몫을 불리려는 계획으로 은행가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아이린이 죽인 여자가 나중에 경찰청 경감의 아내로 밝혀진다.
이 경감의 아내는 엘리베이터에서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눌러 결국 화를 당하고야 만다. 이 여자의 실수는 자기는 물론 또 다른 여자의 죽음까지 불러 일으킨다. 항상 치밀한 계획에 끼여드는 이런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전체 시스템을 엉뚱하게 몰고 가질 않던가?
경찰쪽에선 눈에 불을 키고 점점 더 압박을 가하게 되고,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서 이 마피아 패밀리의 위기를 끝내야 한다.
원로?들의 회의 끝에 찰리에게 아내 아이린을 죽이라고 보스가 명령한다. 물론 찰리는 거절한다.
그러나 찰리는 패밀리와 직접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보스 돈 코라도의 피의 맹세로 이어진 관계이다. 그래서 차기 보스로 내정된 상황이기도 하다. 찰리는 갈등한다. 명예와 사랑 사이에서..
[말타의 매]로 유명한 존 휴스턴 감독의 이 영화는 찰리의 이 지독한 고민을 산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찰리의 내면에 일어나는 처절한 결단의 고통을 관객에게 전이시킬 수도 있을텐데, 오히려 영화는 거리를 두고 주저없이 이 둘의 비극적인 최후의 지점으로 향한다. 바로 그들의 침실로...
서로가 서로를 죽일 것임을 알고 기다리는 시간. 먼저 찰리가 칼을 손에 쥐고 침실위에 아무렇지 않게 눕는다. 곧 아이린이 이쁘게 단장하고 총을 숨기고 침실로 들어선다. 이 짧은 몇 초 동안 벌어지는 침실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두 사랑하는 남녀가 킬러라는 특이한 케이스는, 최근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Mr. and Mrs. Smith)'에서 새롭게 만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집이 거의 날라갈 정도로 두 부부의 총격전이 긴 시간동안 일어난다. 시각적인 재미는 주지만, 찰리와 아이린의 단 몇 초의 그 침실 장면이 연상되면서 씁쓸함을 한번 되새김질 하게 한다.
그래도 이 영화 미스터 미세스 스미스에서는 둘이 온갖 혈전을 벌이고서도 결국 화해하게 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 다행이다. 찰리와 아이린의 환생 버전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다시 찰리의 갈등을 한번 들춰보자. 그에겐 너무도 고통스러운 순간이겠지만..
명예와 사랑. 왜 찰리는 심장 가득 번진 사랑의 떨림을 간직하고서도 그 떨림의 대상인 아이린을 죽여야 했을까? 만약 패밀리와 찰리가 이어진 그 줄기가 가시적인 것이고, 질긴 것이라면, 아마 찰리는 차라리 그것을 도려내고 아이린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육체의 어디에도 새겨지지 않은 그 명예라는 거. 오히려 한 생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그것이 찰리를 조여맨다. 상징의 공기 안에 놓인 혈액, 그 피의 붉음이 심장 안에 흐르는 사랑의 혈액을 이긴다. 그 어쩔 수 없는 찰리라는 남자의 운명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