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소로처럼 보는 법
내 주변에는 소로를 닮은 사람이 있다. 어딘가 답답하기도 하고 가끔은 지치게도 하는 사람인데, 소로의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 아름다움을 보려 노력해야겠다.
거리를 두고, 시간을 두고, 여러 각도에서 훑어보기.
나만의 월든을 찾기에는 너무 정신 없는 삶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수록 더 찾아봐야지. 아름다움을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가끔 우리는 의미를 너무 빨리 창출한다. 어쩌면 머그컵처럼 보이는 저 물체는 완전히 다른 것일 수 있다. 물건과 사람을 너무 빨리 정의 내리면 그것들의 유일무이함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소로는 그러한 경향을 경계했다. "보편 법칙을 너무 성급하게 끌어내지 말 것." 소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특수한 사례를 더 명확하게 들여다볼 것." 눈앞에 보이는 것을 바로 규정하지 않고 기다리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소로는 그 속도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수준으로 낮추었다. 추측과 결론 사이의 틈, 보는 것과 본 것 사이의 틈을 최대한 길게 늘였다. 소로는 더 오래 머무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상기시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오랜 시간 들여다봐야만 볼 수있다."
조류학자는 공작새가 형형색색의 깃털을 뽐내는 생물학적 이유는 알아도 그 아름다움은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소로는 말한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피로에 지친 눈으로는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 소로는 "순진무구한 눈‘을 연마했다. 어린아이가 느끼는 경이를 한 번도 잃지 않았다. 산딸기를 따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랠프 월도 에머슨은 소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소년이고, 언제까지나 나이 든 소년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소로도 철저하게 의식적인 무지를 중요하게 여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유용한 무지를 전파하는 모임" 만들겠다고 했다.
소로처럼 천천히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각은 가장 속도가 빠른 감각, 예를 들어 미각보다 훨씬 빠른 감각이다. ‘음미하다‘와 비슷한 시각 관련 단어는 없다(어떤 대상에 시선이 머무른다‘라고 말할수는 있지만 이 표현에는 ‘음미한다‘ 같은 감각적인 느낌은 없다). 나는 보는 데 게으른 사람이다. 내 시선의 대상이 모든 일을 다해주길 바란다. 경치, 한번 나를 황홀하게 해봐. 제기랄, 아름다워지라고! 그 대상이, 예를 들면 알프스 산맥이나 모네의 그림이 내 말도 안 되는 기대에 못 미치면 나는 내가 아닌 그 대상을 탓한다. 소로는 다르게 생각했다. 아름다움에 익숙한 사람은 쓰레기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흠잡기 선수는 낙원에서도 흠을 찾아낸다."
소로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을 "마음 검사"로 여겼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시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보는 것의 역학은 양쪽으로 작용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무엇을 보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는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정말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만의 월든인 이곳에서 더 명료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시각적 깨달음, 소로가 성취한 "단하나의 확장"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망스럽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말에서 위안을 얻는다. 보는 데는 시간뿐만 아니라 거리도 필요하다고, 소로가 내게 말한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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