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사람‘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단순한 질문에는 좀 더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온전해지고 싶으냐? 최고의 모습으로 살고싶으냐? 저는 그 사람이 반쪽짜리 인생에 익숙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저 그런 삶에 적응했습니다. 그럭저럭 지내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그는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핑계를 대며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말에는 자기연민이 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반쪽짜리 인생이다른 사람들의 탓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상태를 지속할 이유를 찾기는 쉽습니다. 그 사람은 왜 그냥, "예, 낫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어떤 면에서는 의존하는 쪽이 더 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낫지는 않아도 더 쉬울 수 있습니다. 더 의미 있지는 않아도 더 쉬울 수 있습니다. 더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더 쉬울 수 있습니다. - P43
예수님은 그 사람의 핑계를 무시하고 온전함을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일을 명령하고 탁월한 삶으로 던져 넣으십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그런 삶을 받아들일 힘이나 능력이 있는 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말입니다.
죄에 눌린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틀에 박힌 그릇은 열정적인 삶을 담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초라하게 죽어 가는 상태로" 또 하루, 또 한 시간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잘 맞는지 아십니다. 그리고 한 말씀으로 우리가 그 일을 잘할 수 있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