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꺼내든 책.
이건 언제쯤 완독할 수 있을까...

마르쿠스의 명상록에 대한 파트를 다시 읽어봤는데 중간중간 의미있는 어구들이 있어 간단히 남긴다.

- 중요한 것은 생각의 가치이지, 생각의 출처가 아니었다.
- 마르쿠스는 모든 철학이 스스로의 유약함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는 스토아철학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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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지루해서 안 읽다가 오랜만에 펼친 책.
초반 구간을 지나니 순식간에 술술 넘어갔다.

불의의 사건으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맥. 어느날 기억하기 싫은 오두막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파파’로부터의 우편물을 받는다.

긴가민가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한 맥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한다.

하나님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깨주는 설정, 하나님의 속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녹여 설명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썼을까 감탄스럽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일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반절 정도 읽었는데 마지막까지 쭉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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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고증을 토대로 초대교회의 모습을 그려 낸 소설. 엄청 짧고 읽기 쉬워서 몇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읽으면서 삶과 연결된 예배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내용과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 삶과 연결된 예배 : 이런저런 종교와 철학이 만연하던 로마 시대, 푸블리우스는 글레멘드의 초대로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저녁 만찬 모임에 참석한다. 집에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난 후 응접실에 들어가며 푸블리우스는 “이제 예배가 시작되는 건가?” 라며 묻는다. 그러자 글레멘드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한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실제로 예배는 시작되었지.“

집에서 펼쳐진 만남도 지금의 예배와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정말 이웃들을 초대한 저녁 만찬에 가까웠다. 그러나 곳곳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났다. 처음 식사에 초대받은 외부인을 가장 상석에 앉히고, 노예와 자유인이 함께 앉았으며, 동일한 음식을 나눠받았다. 노예 해방을 주제로 토론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노래하였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어울려 놀았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함께 도왔다.

-
나의 일상이 예배가 되어야 하듯이 예배 또한 삶과 분리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홀로 와서 나 혼자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원들과 소통하고 교제하며 함께 예배드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이후 (어쩌면 이전부터)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상당 부분 개인화되었다. 소모임이 줄었고, 먼저 다가가는 걸 서로 조심스러워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공동체성이 옅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여기에는 예전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공동체 분위기에 대한 반발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런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해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준이 되는 것이 초대교회일 것이다. 형식은 옅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강한 1세기 교회 예배의 모습을 통해 다시 교회가 회복되기를, 먼저 우리 청년부가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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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우선 들어가며 부분을 읽었다. 그렇지만 다정함, 협력을 생존 전략으로 풀어쓴다는 점은 참신하고 좋았다.

협력은 아주 오래된 전략이다. 수백만 년 전 떠다니는 박테리아로 존재하던 미토콘드리아는 더 큰 단위의 세포 속으로 들어갔고, 미토콘드리아와 더 큰 세포가 힘을 합치자 동물의 몸에 힘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되었다." 우리 몸의 미생물 군집은,
다른 기능도 많지만, 특히 우리 몸이 음식물을 소화하고 비타민을 합성하며 장내 물질을 생성하는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하게해주는데, 이 협력관계는 미생물군과 우리 몸에 공히 이로운 결과물이다. 개화식물은 대부분의 식물 종보다 늦게 발생했지만,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과의 성공적 협력관계로 번성한 덕분에, 현재 우리의 정원을 지배하고 있다."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육상동물 개체의 5분의 1을 점하는 개미는 5천만 마리의 개체군이 하나의 사회로 기능하는 초개체 동물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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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며 쓰는 독서일기ㅎㅅㅎ..

이 책은 사실 수업 시간에 한번 다뤄볼까 싶어 꺼내 든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에리히 프롬이 생윤에 나오는 심리학자이면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사람이라 여유로울 때 다뤄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치만 아이들은 자습을 원했고... 우선 내가 먼저 읽고 2학기 수능 끝나고 해보기로...엉엉

근데 이 책은 수업을 차치하고서라도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걸 읽으면서 계속 느낀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에 임해야 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깨닫고 성찰하게 한다. 여러 깨달음 중 우선 한 가지만 정리해보겠다.

1.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에 ‘빠진다’고 표현한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무언가가 내 마음에 들어차고 온몸을 압도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프롬은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오히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동기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합일을 이루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랑의 능동성을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때 준다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준다는 것을 곧 ‘포기하는 것’, 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성격상 받아들이고 착취하고 혹은 저장하는 것을 지향하는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준다’고 하는 행위를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한다. 시장형 성격의 사람은 주려고 하지만 단지 받는 것과 교환할 뿐이다. 그에게는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것은 사기당하는 것이다.”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하는 능동적 활동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에 있어 보다 주체성을 갖고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정한 사랑이란 소모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생산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다른 존재들에게 계속해서 그런 사랑을 해나가도록 성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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