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여호와를 알라

-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알고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할 것.

- 아는 것과 아신 바 되는 것: 인간과 신의 경계는 흐릿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어떤 것보다 뚜렷하다. 불완전과 완전, 피조물과 창조주의 경계는 확실하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신 바’ 되어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이유 또한 그분의 허락하심과 은총 때문임을 상기하게 된 표현이었다.

- 오직 참되신 하나님: 하나님 혹은 예수님에 대한 형상을 만드는 것을 경계하라는 메시지였다. 우상이라는 것이 단순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물건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고정된 형상들(아버지), 장발에 백인 예수님, 십자가, 면류관 또한 우상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돌아볼 수 있었던 한편, 저자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형상을 부정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형상을 통해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더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것이 우상화될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하라는 메시지는 좋았다.

- 성육신과 삼위일체 : 신의 입장에서는 부활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이 더 놀라운 일임을. 관점의 전환. 삼위일체에서의 예수님의 위치 또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일 좀 더 제대로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기한 일을 겪었다. 모처럼 펌을 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거기에 내가 읽고 있던 책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심지어 그냥 일반 소설도 아니고 기독교 서적이..! 홀린 듯이 읽어나갔다. 50페이지 가량 읽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한 반가운 책이었다.

"심판을 하려면 심판받는 사람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야 하죠."

"당신은 교회를 마치 당신이 사랑하는 여인처럼 말하는데, 그렇다면 난 아직 그녀를 못 만난 것 같네요."
맥은 약간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일요일마다 내가 찾아가는 그곳은 아니에요."
그는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어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맥, 그건 당신이 인간이 만든 체계인 제도만 보기 때문이죠.
나는 그런 걸 세우러 온 게 아니에요. 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봐요. 교회란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살아 숨 쉬는 공동체이지 어떤 건물이나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
소박하게 나누는 삶과 모든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봐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바로 이 일을 주변사람들과도 나누는 것이죠. 나의 교회는 인간에 대한 것이며 삶이란 결국 관계에 대한 것이랍니다. 당신들이 세울 수 있는 게아니에요. 그건 내 일이고 또 내가 꽤 잘하는 일이랍니다." - P2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덕형이상학 정초의 목표: 도덕성의 최상의 원칙을 찾아 확립하는 것

하지만 "하나의 원칙이 손쉽게 사용될 수 있고 또 그렇게적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보인다고 해서 그 원칙이 옳은것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옳은 것으로 증명되지도 않은 원칙을 함부로 적용하는 것은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은 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칸트는 아직 확립되지도 않은 원칙을 서둘러 적용하려 하기보다, 결과에 대한 고려를 떠나 아주 엄밀하게 탐구하고 숙고함으로써 최상의 원칙을 찾아 확립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요청한다. - P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칸트 철학은 어려우면서도 매력이 있다.
칸트는 이성의 사용이 염세론으로 귀결된다는 관점을 뒤집어놓는다. 이성을 사용할수록 우리는 세계의 사실들에 굴하지 않고 인간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똑똑할수록 이기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똑똑할수록 선을 실천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아직도 칸트를 잘 몰라서 쉬운 것부터 계속 읽어보려 한다.
자유의 법칙을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도덕법칙은 이와 다르다. 지금 우리 눈앞의 모든 사람이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통해 발견하는 ‘자연의 법칙‘과 지금까지의 사실이 어떠하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지시하는 ‘자유의 법칙‘은 그만큼 큰 차이가 있다. 도덕형이상학 정초에서 칸트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자유의 법칙‘이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속 읽어가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너무 감상적으로 빠지지 않게 경계하면서 읽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