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이후 재일동포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 위안부, 일본식 이름, 부라쿠민
- 부라쿠민이라며 다른 학생들에게 소외받는 학생 두 명이 친구가 되는 게 왜 이리 뭉클한지.

모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가 된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았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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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꽉 찬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서사가 주는 힘이 이런 건가보다.
-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고 하길래 역사 교과서같을 거라 생각했다. 30년대에는 수탈에 힘들어하고 원자폭탄으로 전쟁이 끝나면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 예상한 건 참 짧은 생각이었다.
- 2권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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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그려진 건 선자의 시점에서 그려졌기 때문일 거다.
- 백이삭이라는 인물에 가끔씩 나를 투영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성찰과 다짐을 한다. 내 힘부터 길러야지 하는 다짐들.
- 성경 속 하나님은 종종 파격적이면서 헌신적이다. 버린 백성과 하나님 간의 결속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선지자에게 매춘부와 결혼해 자기의 자녀가 아닌 아이들을 기르게 하다니..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까지 뻗어 있는 걸까. 정말 알 수 없다.
- 일제강점기 시절 주님이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함께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이 참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렇겠지.
- 이 책에서 정성을 상징하는 것은 흰쌀밥이다. 내 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손녀들이 그릇에 붙은 밥풀을 다 먹지 않을 때마다 일제강점기 시절 쌀이 얼마나 귀했는지 말씀해 주시곤 했다. 쌀이 없어 만주에서 온 보리를 불려 죽을 해 먹었다는 이야기들, 배부르다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죽을 양보한 어느 한 가장의 이야기 전설 등과 함께. 지금도 반주하시고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강점기 시절을 얘기하시는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쌀 얘기다. 먹을 게 없는 서러움은 그 어떤 서러움보다 크게 각인되는 것 같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가 책에서 흰쌀밥 대목이 나올 때마다 상대를 정성스럽게 대하는 마음이 깊이 느껴져 더 뭉클했다.

숲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숲에 들어선 선자는 여기는 평소에 한수와 만나던 해변보다 더 고립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숲은 나지막한 바위들과 청록색 물이 펼쳐져 탁 트인 바다와는 달랐다. 마치 나뭇잎으로 둘러싸여 어두컴컴한 거인의 집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선자는 새소리가 들려서 어떤 새인지 알아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한수의 얼굴이 선자의 눈에 들어왔다. 한수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 P70

"어? 물론이지." 신 목사는 어리둥절하면서도 흔쾌히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호세아에게 창녀와 결혼하여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들을 양육하게 하셨죠. 주님께서 그를 배반하는 백성들과의 결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선지자 호세아를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이삭이 물었다.
"그래, 무엇보다도 그게 가장 큰 이유였지. 선지자 호세아는 주님의 요구에 순순히 따랐고." 신 목사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그가 전에 설교한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주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헌신하시지.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셔. 어떤 면에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인내하는 결혼 생활 같기도 하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빗나간 아이에게 쏟아붓는 사랑과 닮았다고도 볼 수 있다네. 호세아는 사랑하기가 힘든 사람을 사랑해야 할 때 하나님과 같이 행동하라는 부름을 받았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는 사랑하기가 어려워. 죄는 언제나 주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야." 신 목사는 이삭의 얼굴을 주의 깊게 보고 그가 이해했는지 확인했다.
이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님이 어떤 것을 느끼시는지 우리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물론이지. 네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와 고통을 함께 나누지 않을 수 없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단순히 주님을 흠모하거나 두려워하고, 주님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감정을 알아야 해 주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실 게 분명하니까. 우리는 주님의 고뇌를 이해해야 하지.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고난을 겪으시네. 주님은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으시지. 그걸 아는 게 우리에게는 위로가 되는 거야. 우리가 홀로 고통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게 말일세." - P105

눈앞에는 경희가 준비해둔 요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보자 선자는 오늘 처음 허기를 느꼈다.
경희가 냄비 뚜껑을 집어 들어 흰쌀밥을 보여주었다.
‘오늘만이야. 동생이 여기 온 첫날이니까. 이제 이곳이 동생 집이야." - P166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에서 열두 식구가 살면서 일을 나가는 남자들과 나머지 가족들이 교대로 잠을 잔다네. 돼지와 닭도 집 안에서 기르고 말이야. 수돗물도 없어. 난방도 되지 않고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에서는 더러운 꼴로 살 수밖에 없어. 서울에서 온 양반들이 거지꼴이 되는 걸 많이 봤다네. 목욕탕에 갈 돈도 없이 넝마를 걸치고 살고, 신발이 없어서 시장에서 짐꾼으로 일하지도 못해. 그들은 갈 곳이 없어. 일자리와 돈이 있는 사람도 살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 몇몇 사람들은 불법 거주를 하고 있어."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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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인생 경험을 쓰기만해도 책이 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경험들을 농축시켜 책을 만들 정도로 배움을 간직하는 사람. 내가 바라는 인간상 중 하나이다. 신기하게 그런 사람이 쓴 책은 술술 읽히면서도 빠트릴 내용이 없다. 이 책이 그랬고, 이전에는 <어린이라는 세계>가 그랬다. 또 그런 책을 만나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런 책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저장해둔 부분들 중 몇 개만 간추려 정리해본다.
- 쓰다 보니, 쓰기는 결국 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리 써놓아야, 써봐야 대화하고 발표하고 방송하고 강연할 수 있다.
- 거짓이 없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관성이 있어야한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하는 말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 이 사람에게 한 말과 저 사람에게 한 말이 같아야 한다. 머릿속 생각과 말이 일치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 나는 근거 있는 낙관주의가 좋다고 믿는다. 현실은 늘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가 전부는 아니다.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서 내일을 향해 희망의 근거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내일은 분명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 평생을 하나의 호칭으로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길다. 하나의 호칭에 갇혀 있기에는 이 세상에 할 일이 많다.
직장에서 더 높은 직함을 얻기 위해 열심인 것도 좋지만, 직장을 나온 이후에 필요한 새로운 호칭을 준비하는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 당신은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는가
- 공개적인 칭찬은 시기와 질투를 불러올 수 있다.
- 나는 어느 자리에 가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 세 가지를 떠올린다. 첫째는 이 모임 혹은 이 자리에 참석한 누군가와의 인연, 둘째는 감사한 일, 셋째는 나의 역할과 기여이다.
- 두 대통령은 풍자와 해학도 즐겨 썼다. 풍자는 비꼬아서 비판하는 것이고, 해학은 동정해서 감싸 안는 유머라고 한다.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것은 돕는다는 게 두 분의 철학이었기 때문에 이런 풍자와 해학이 수시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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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공의 윤리 끝

행운 평등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인 엘리자베스 앤더슨은 이렇게유자격 빈자와 무자격 빈자를 구분하는 것을 가리켜 "구빈법적 사고가 부활했다"고 꼬집었다." 이는 어려운 시민들을 심문하고 그들이 더 나은 선택을 했다면 빈곤을 피할 수 있었는지 가려낼 권한을 국가에 부여한다. 이런 ‘책임의 분해 관찰‘은 민주 시민이 서로에게 져야 할 책임을 받아들이기에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는 우리의 시민적 상호책임 근거를 동정이나 연대성이 아니라 ‘대체 그들은 어쩌다 저 꼴이 되었대?‘ 하고 먼저 따지는 것에 둔다.
...
둘째, 현명치 못함에 대한 그런 엄격함만이 문제가 아니다. 행운 평등 주의자는 공적 부조의 적격 대상자에게도 굴욕을 안긴다. 그런 사람을 대책 없는 희생자로 못 박음으로써 말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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