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말 들어봐라. 중국의 역사학자 사마천이 『사기』에서 돈에 대해 이렇게 썼어.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

"바로 그거지. 억(億)이라는 글자 뜻을 봐. 인(亻) 변에, 뜻 의(意) 자거든. 무슨 뜻이냐면, 그건 실재하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나 있는 숫자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그 옛날에는 경제 규모가 작아서 억이란 숫자를 쓸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런 시대에도 자기보다 만 배가 많으면 노예가 되고 마는 게 돈의 힘이었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억을 만 배 넘는 조(兆)가 예사로 쓰이고, 개인들도 몇 십조 재산을 갖는 시대가 되었으니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되겠니. 어느 재벌이 무슨 넥타이를 맸다 하면 그게 금방 유행 바람을 타고, 또 어느 재벌 부인이 무슨 귀걸이를 했다 하면 그게 또 불티나게 팔리고 그러잖니. 그런 게 다 사마천이 말한 노예근성 아니냐. 인간의 속성이 그런 거고, 그래서 인간은 자본주의와 궁합이 잘 맞는 거고."

미국 최고의 부자로 꼽혔던 카네기와 록펠러가 똑같이 말한, 부자가 되는 법 두 가지가 뭔지 알아? 그 유명한 말, 첫째 돈을 쓰지 말라, 둘째 수입이 좋을 때 아껴 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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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박노해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을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풀꽃도 꽃이다 1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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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종사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기업 출신답게 그런 경영 논리를 국가의 교육 경영에 도입하면서 ‘무한 경쟁’이라는 새 말을 신교육의 목표로 내건 것이었다.

자사고라는 것은 오래 터 닦아온 고교 평준화의 파괴였고, 차별 교육의 표본이었다. 공부를 잘해도 비싼 등록금을 낼 수 없으면 자사고는 열리지 않는 금단의 문이었다. 경제력으로 교육 차별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다니, 그보다 잔인한 비교육적 행위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성적 줄 세우기에 치여 그렇게 많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정작 학부모들이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나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자식만큼은 1퍼센트 안에 들게 해야 한다!’

엄마들이 일으키는 사교육 무한 경쟁의 광풍은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야 아이의 입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경탄스러운 금언까지 만들어내며 해가 바뀌고 바뀌어도 기세가 꺾일 줄을 몰랐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마침내 그 끔찍한 사건은 터졌다.

"오늘 또 여러분들의 기분이 어떨지 잘 알고 있다. 긴 말 하지 않겠다. 단, 성적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란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에 하나는 나와 남을 비교해 가며 불행을 키우는 것이다.

공부하는 능력은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은 그 누구에게나 한 가지 이상의 능력을 부여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듯이 인간의 모든 능력도 평등하고 공평하다.

학교 교육의 가장 큰 잘못은 시험 점수만으로 학생의 능력을 규정하고 속단하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니라 한평생 신명 나게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 귀하고 천한 직업은 없다. 도둑질과 사기가 아닌 한 그 어떤 직업이든 소중하고 존귀하다.

성공한 인생이란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한평생 열심히 즐겁게 해나가고, 그리고 사는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노년을 맞는 것이다.

인생은 연극이다. 그런데 그 연극은 극작가도, 연출가도, 주인공도 자기 자신이면서, 단 1회의 공연일 뿐이다.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

—교육가 닐

나는 나 혼자일 뿐이다

선도위원회는 사흘째 열리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마치 중죄인을 심판하는 법정처럼 무겁고 긴장되어 있었다.

"글쎄 말이야. 근데 할머니도 손자만큼 행복해하면서, 얘 그놈의 공부 기를 쓰면서 할 것 없다, 사람은 다 타고난 팔자대로 살게 돼 있다, 괜시리 에미들이 극성 떨고 설치고 야단법석인 게지, 하며 손자 놈 기를 살리는 거야."

"그래,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내가 당하고 보니 이건 정말 큰일 나게 생겼어. 교육계에선 무슨 대책이 없는 건가?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돼?"

부모가 자식에 대한 과욕을 버리고 바르고 참된 사람이 되게 도와주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일이야. 그 길을 잘 보여주는 시가 있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공부라는 것, 그건 각자가 선택한 직업에 알맞게만 적당히 하면 되는 것이고, 돈이라는 것도 하루 세끼 먹으면서 누추하지 않게 사람 품격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지면 되는 것 아닐까. 시인은 이 시에서 그걸 사람들에게 일깨우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어.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잖아."

"그건 아니지. 왕성한 기업 활동 없이는 우리 사회가 안 돌아가니까 기업 종사자들은 최선을 다해 뛰어야지. 단, 시나 책들을 꾸준히 읽어 인간성을 고양시켜 가면서 말이지."

엄마가 없는 곳으로
소년은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몸집은 큰 편이고, 발육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숙였던 고개를 완전히 들지 않았고, 눈길도 떨구고 있었다. 그런 몸가짐이 몸에 밴 것임을 설명하는 듯 양쪽 어깨가 표 나게 움츠러들어 있었다. 늘 주눅 들고, 기죽어온 애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문득 글에서 만난 아이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기의 욕망에 사로잡혀 아이를 들볶아온 어머니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자식의 모습이었다.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아니, 진짜 분한 건 내가 막 야단을 쳐도 큰 덩치로 떡 버티고 서서 꿈쩍도 안 할 때예요."

"아이고, 누가 아니래요. 잘 먹여 키워놨더니 어디 덩치로 한번 해보자 하는 식으로 버티고 서 있을 때는 저게 내 자식이 맞나 싶은 게 정이 뚝 떨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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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왜 흔들릴까

온갖 꽃이란 꽃은 다 피워놓고 4월은 이울고, 꽃과 함께 유록색 새싹들을 돋아 올리며 5월이 오고 있었다.

"씨바, 우리 왕쌤 꼰대 영 갈비라니까(우리 교장 영감탱이 영 갈수록 비호감이라니까)."

"이런, 말 같지 않은 소린 하질 마시오. 학교는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켜야 하는 게 그 절대적 의무고 책임이오. 그게 국가가 명하고, 전체 학부모들이 원하는 바요."

대통령이 되자마자 국민들이 ‘저 사람 왜 저래?’ 할 정도로 허둥지둥 허겁지겁 미국행을 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는 대통령으로서의 충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6·25 직후의 폐허의 가난 속에서 미국의 원조에 그저 감읍하고, 동물 사료용 가루우유마저 서로 많이 받아먹으려고 허겁지겁했던 거지 군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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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마 가문
에도 막부 성립의 결정적 고비였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야 집권자 도쿠가와 가문에 복속한 영주 가문으로, 내내 충성심을 의심받으며 차별을 받았다

죽은 자는 자기가 죽은 것을 어떻게 깨달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자기의 죽음을 슬퍼하고 한탄하는 산 자들의 얼굴을 그늘에서 쳐다보며 깨닫는 걸까?

그렇다면 슬퍼해 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남편 때도 그랬어요. 그이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데 저는 배가 고프더라고요. 그래서 밥을 먹었죠. 심지어는 감기 한 번 걸린 적도 없어요.

이번에도 그래요. 오쿠메 씨는 뭐라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헛소리를 하는데 저는 감자 껍질이나 벗기고 있어요. 독충에 물려도 소금만 발라 두면 그다음 날로 싹 나아요. 이상하지 않아요? 네? 이상한 년이죠?

기하치조
초목을 이용해서 천연 염색을 해 누런 바탕에 검정 줄무늬 혹은 격자 무늬가 있는 견직물

짓테
상대를 제압할 때 쓰는 무기로, 대체로 품에 감출 수 있을 만큼 짤막하다

"그런데 미나토 상회에서 자네에게 얼마를 내주던가?"

헤이시로가 물었다.

"부자는 다르구먼. 실컷 써, 실컷 쓰라고. 나도 원 없이 써 볼 테니까."

두 사람은 후부키를 구치소에서 꺼내고 처벌도 에도 추방 정도로 끝내게 하려면 누구한테 얼마를 상납해야 하는지를 상의했다. 이야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제 주머니에서 나온 돈도 아니다. 실컷 써, 실컷 쓰라고.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구나."

"안 될걸요. 계측기가 무거워서 이모부 허리에는 무리예요."

"그래도 음식은 맛있었나 보죠?"

"뭐, 맛이야 좋았겠지. 모르니까 먹은 거지. 안 보이면 모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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