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역사적인 인물이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히틀러가 대규모 나치스 집회를 연 역사적인 장소로도 유명하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나치스의 시발점이자 기폭제가 된 집회로 역사에 남았다. 이후 히틀러는 뮌헨 폭동을 일으켰다. 묘하게도 이 폭동 사건 역시 또 다른 비어홀 ‘뷔르거브로이켈러(Bürgerbräukeller)’에서 발생했다. 그 시대에 세계사를 바꾸는 정치 집회가 비어홀, 즉 맥줏집에서 주로 개최된 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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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독일의 뮌헨 맥주가 전통적인 강자 북독일 맥주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맥주 순수령’ 덕분이다?

맥주 순수령이 공포되었다. 1516년 4월 23일의 일이다. 순수령은 남부 독일의 맥주 품질을 눈에 띄게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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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꾼 두 번의 대규모 정치 폭동이 모두 비어홀, 즉 맥줏집에서 일어난 셈이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아무튼, 그 과정에 새롭게 세워진 시청사의 지하에 거대한 양조장이 딸린 비어홀・레스토랑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렇게 도시마다 탄생한 초대형 비어홀은 그 지역의 대중 집회 장소로 자주 활용되었다. 그리고 그 비어홀들은 자연스럽게 히틀러와 나치스의 정치 집회 및 폭동의 장소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와인 명산지 뮌헨과 바이에른주는 왜 17세기 이후 갑자기 와인 명산지에서 맥주 명산지로 탈바꿈했을까?’ 그 유명한 30년 전쟁 때문이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정확히 30년간 벌어진 이 대규모 전쟁은 독일 전역을 초토화했는데, 남부의 아름다운 포도밭도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당시 드넓은 포도밭이 대부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그 탓에 이 지역에서는 와인 양조가 불가능해졌다. 남부 독일의 양조 산업이 와인에서 맥주로 바뀌고 세계사의 물줄기마저 돌려놓은 데에는 ‘30년 전쟁’이라는 돌발변수가 있었던 셈이다.

권력은 필연적으로 독선을 낳고 부패와 타락을 불러온다. 단언하건대, 역사를 통틀어 여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도 시대도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대의 독일에서 가톨릭교회가 면벌부를 판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인츠(Mainz)의 대주교가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의 부호 푸거(Fugger) 가문에게 빌린 막대한 금액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아인베크 맥주를 마시고 용기를 내어
보름스 제국회의장으로 나아갔다.
(At the Diet of Worms,
Martin Luther was fortified with Einbeck beer…….)

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황제 카를 5세, 가톨릭 사제였던 루터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다

"저는 절대로 제 양심을 속이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정연한 논리가 제 잘못을 입증해 내지 못하는 한 말입니다. 제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지금 여기에 서 있습니다. 그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라는 말로 자기 변론을 끝맺었다.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마르틴 루터가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보여 준 양심을 저버리지 않은 용기 있는 태도와 흠잡을 데 없는 자기 변론은 전 유럽을 움직였다.

카를 5세는 대화를 통해 복잡한 종교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급기야 카를 5세는 무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그는 반가톨릭 단체인 ‘슈말칼덴 동맹(Schmalkaldischer Bund)’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황제 군은 반가톨릭 연합군을 손쉽게 격파하고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1547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를 5세는 자신이 신뢰하던 측근 작센공 모리츠(Moritz von Sachsen, 재위 1541~1547)의 배신으로 쓰라린 패배를 겪는다. 결국 그는 ‘아우크스부르크 화의(Peace of Augsburg)’에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역사적 선언을 하게 된다.

‘왜 최초로 순수령을 공포할 당시 ‘효모’에 대한 언급이 없었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거의 예외 없이 자연 발효로 술을 제조했고 효모에 대한 지식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도 발효가 된 후 나무통 바닥에 가라앉은 회갈색 점성 물질이 발효를 촉진한다는 지식 정도는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다.

빌헬름 4세의 궁정 전속 양조장은 보리를 제외한 원료, 즉 밀을 사용해 만든 바이첸비어를 거리낌 없이 독점적으로 생산했다.

맥주 양조와 판매를 하는 자가 질 나쁜 맥주를 판매할 경우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처벌 내용은 "맥주를 즉시 폐기 처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나눠 주어야 한다. 벌금은 1회 적발 시 5굴덴, 3회 적발된 자는 맥주 양조권을 박탈한다" 등이다.

날마다 최소 6개의 샘플을 관능검사할 것. 검사관은 시음하기 전날 밤 맥주나 와인을 절대로 과음해서는 안 됨. 관능검사 당일에는 미각을 둔하게 할 어떤 음식물도 섭취해서는 안 됨. 소금에 절인 맛을 내는 치즈, 사탕과자 등이 대표적임. 코담배와 씹는담배를 포함한 모든 흡연을 엄격히 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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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을 받아 든 루터는 단숨에 벌컥벌컥
맥주를 마신 뒤 의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의 두 뺨에는 홍조가 번져 있었다.
이후 마르틴 루터의 격정적인 연설과 뚝심 있는 행동은 유럽 종교사와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마르틴 루터를 도와 종교개혁의 물줄기를 바꾼 ‘선한 지킬 박사’와 나치스 정치 폭동의 도화선이 되어 세계사를 뒤흔든 ‘악한 하이드 씨’의 두 얼굴을 가진 맥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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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환이 닥친 뒤에는 걱정해도 소용없다 - P244

진나라는 초나라를 가장 방해되는 나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초나라가강해지면 진나라는 약해질 것이고, 진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가 약해질것이니 그 형세는 함께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왕을 위해서 계책을 마련했으니 여섯 나라가 서로 합종하여 화친을 맺어 진나라를 고립시키는 것보다 더 좋은 계책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합종하여 화친을 맺지 않으시면 진나라는 반드시 군대를 두 곳에서 일으켜 한쪽 군대는 무관으로 나가게 하고, 다른 한쪽 군대는 검중으로 내려 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초나라 중심부인) 언, 영郢 일대가 동요할 것입니다. - P245

신이 듣건대 (모든 일은)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은) 일어나기 전에 대책을 세워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환이 닥친 뒤에 걱정하면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이 점을 빨리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 P245

부귀하면 우러러보고 가난하면 업신여긴다
이렇게 하여 여섯 나라는 합종하여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맹약의 우두머리가 되고 아울러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였다. - P247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 뜻을 이루지 못한다
장의는 위나라 사람이다. 처음에는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종횡술을 배웠는데, 소진은 스스로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P271

그러고는 모두 함께 장의를 붙들어 수백 번 매질을 했으나, 장의가 구슬을 훔쳤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풀어 주었다.
장의의 아내가 말했다.
"아! 당신이 글을 읽어 유세하지 않았던들 어찌 이런 수모를 겪었겠습니까?"
그러자 장의는 자기 아내에게 말했다.
"내 혀가 아직 붙어 있는지 보아 주시오."
장의의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혀는 남아 있네요."
장의가 말했다.
"그럼 됐소." - P271

"장의는 천하에서 현명한 인물이니 나는 그를 뛰어넘을 수 없네. 지금은 운이 좋아 내가 먼저 등용되었을 뿐이지. 진나라의 실권을 잡아 휘두를 사람은 장의뿐일세. 그러나 그는 가난하여 다른 사람에게 등용되지못했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워서 일부러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 그의 뜻을 북돋운 것일세. 자네는나 대신 은밀히 그를 도와주게." - P273

"아! 이것은 내가 배운 유세술에 있던 것인데 알지 못했구려! 내가 소진만 못한 것이 분명하오. 이렇게 하여 내가 등용되었는데 어찌 조나라를칠 계책을 꾸미겠소? 나 대신 소 선생에게 ‘소군이 살아 있는 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며, 소 군이 있는 한 내가 감히 무엇을 할 수 있겠소‘
라고 전해 주시오." - P274

그 뒤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되어 격문檄文을 써서 초나라 재상에게알렸다.
예전에 내가 당신을 따라 술을 마셨을 때 나는 당신의 구슬을 훔치지 않았건만 당신은 나를 매질하였소. 당신은 나라를 잘 지킬지니, 내가 당신의 성읍을 훔칠 것이기 때문이오. - P274

싸울 때는 명분과 실속을 모두 얻어야 한다 - P274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 - P278

달콤한 말이 나라를 망친다 - P291

한때의 이익에 끌려 백대의 이익을 돌아보지 않는다. - P294

오른팔을 잘리면 싸울 수 없다 - P295

허우대는 어른, 생각은 어린아이 - P298

지혜주머니라고 불린 저리자
저리자의 이름은 질이고 진나라 혜왕의 배다른 동생으로, 어머니는 한나라 여자이다. 그는 우스갯소리나 행동을 잘하고 지혜도 풍부하여 진나라 사람들이 ‘지혜주머니‘라고 불렀다. - P313

남는 빛을 나누어도 밝음은 줄지 않는다 - P324

"저는 진나라에서 죄를 짓고 처벌될까 두려워서 도망쳐 나왔지만 몸을 안전하게 둘 만한 곳이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못사는 여자와 잘사는여자가 함께 길쌈을 하였는데, 못사는 여자가 ‘나는 초를 살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당신의 촛불에는 남는 빛이 있으니 그 남는 빛을나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당신의 밝음에 해를 끼치지 않고 나도 이익을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저는 곤궁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바야흐로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길입니다. 제 아내와 자식은 진나라에 있습니다. 부디 당신의 남는 빛으로 그들을 구제해 주십시오." - P324

너무 현명해도 재상이 못된다 - P326

지혜는 나이와 관계없다
감라는 감무의 손자이다. 감무가 죽은 뒤, 감라는 열두 살에 진나라 재상이던  문신후 여불위를 섬겼다. - P327

잃는게 없는 싸움을 하라 - P340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잠시 동안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그러고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진나라 소왕 50년 11월의 일이다. 그는 죽었지만 죄를 지은 것은 아니므로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겨 마을이 모두 제사를 지내 주었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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