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지식과 학문의 탐구를 속세와 내세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인간생활과 활동의 필수로 익무화하고 있다.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는 "그 누가 현세를원한다면 지식을 얻어야 하고, 그 누가 내세를 원한다 해도 지식을 얻어야 하며, 또그 누가 이 두 가지를 다 원한다 해도 역시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지식 습득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이슬람의 학문을 이야기할 때 으레 인구회자되는학문은 멀리 중국에까지 가서라도 구할지어다‘ 라는 말로 학문 탐구를 독려하고 있다. - P197

루어지면서 지역별 학문중심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찍이 헬레니즘 문화를 맛본데다가 페르시아와 인도, 심지어 중국 문화의 영향까지도 받아 오던 실크로드 육로의 요충지 부하라가 바로 그러한 중심지의 하나였다. 그 중심지 형성의 선도자는부하라 학맥의 삼총사로 불리는 성훈(聖訓) 학자 부하리와 의학자 이븐 시나, 수학자 알 콰리즈미다. 이들은 이슬람 세계를 두루 편답하면서 자신들의 학문세계를 개척하고 나서는 부하라에 돌아와서 여러 신학교와 사원들을 전전하면서 후학들에게학문을 전수했다. 이들 삼총사의 학문적 업적은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유럽 세계에도 널리 알려져 근대적 학문의 기반을 닦는 데 불후의 기여를 했다. - P197

가령 상사병에 관해서는 체중과 체력의 감퇴, 발열 등 만성적 증상이 나타나며, 그치료법은 사모하는 상대방과 결혼시키는 처방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그가 병리현상과 심리현상을 아우른 ‘심신의학법‘ 으로 한 왕자를 치료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망상증에 걸린 왕자는 자신이 소라고 믿고 소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자기를 잡아먹어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이븐 시나는 도살꾼으로 가장하고 이 왕자가 너무 여위어 앙상하니, 우선 살찌워 놓아야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왕자는 마음껏먹다 보니 병세는 어느새 말끔히 가시고 건강은 회복되었다. 이른바 심신의학법의 효험이다. 그밖에 그는 알코올을 소독제로 추천한 최초의 의사이기도 하다. - P199

중세 무슬림들은 수학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수학 발전에서 그들은 영(雲, 0)의 도입과 대수학의 정립이라는 두가지 특출한 기여를 했는데, 그 진두에는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 콰리즈미(780~850)가 있다. - P200

그가 쓴 「집합과 분할으 서」라는 논문이 12세기 인도 숫자에 대한 콰리즈미의서」라는 제하에 라틴어로 번역됨으로써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영을 포함한 숫자를알게 되었다. 숫자에 얽힌 사연에 무지한 유럽인들은 아랍인들에게 전수받은 이 인도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 로 오인한 나머지 16세기에 이르러 전통적으로 써 오던로마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대체해버렸다. 영어의 ‘사이퍼(cipher: 0, 암호)‘는
‘영‘ 혹은 ‘공(空)‘, ‘무(無)‘ 라는 아랍어 쉬프르에서, 그리고 알고리즘(algorism:아랍식 기산법, 아라비아 숫자)‘은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다. - P200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은 수를 단순한 영의 개념으로 본 데반해 알 콰리즈미는 상호관계적인 개념으로 인식함으로써 대수학이라는 새 학문을탄생시켰다. 그는 대수학에서의 문제풀이 절차가 마치 외과의사가 부서진 상처를다시 원상회복시키는 수술과정과 비슷하다고 하여 아랍어 외과 전문용어인 자브르(접골, 깁스)‘를 빌려 대수학을 ‘자브르‘ 라고 했는데, 그것이 영어 ‘앨지브러(algebra: 대수학)‘ 의 어원이다. - P201

태양의 땅‘ 호라즘, 스트라본은 이렇게 명명하면서 이곳엔 태양의 빛을받아 자란 고귀한 나라들이 있었다고기술하고 있다. 천혜의 땅에 찬란한문명이 깃들었다는 의미다. 기름진 델타에 2백만 년 전에 이미 문명이 싹다면, 그곳은 분명 인류문명의 한 발원지임에 틀림 없다. 이른바 인류문명의 발원지라고 하는 4대 고대문명론 이 도전을 받아야 할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런데 있다. - P233

히바는 박물관 도시‘ 답게 유적유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하는가에서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다. 유적유물은 역사의 퇴물이 아니라 보물이다. 그것은 어제의 증언이고 오늘의 자긍이며 내일의 길잡이다. 유적유물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 값어치를 제대로 헤아리는 사람만이 문명인이며 미래창조형 인간이다. - P241

한 시간 더 달려 드디어 팔미라(Palmyrtal)에 도착했다. 한사코 이곳을 찾은 것은실크로드의 전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 V. Richthofen) 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서북 인도로 가는 길 연변에서 고대 중국 비단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처음으로 이 길을 자이덴슈트라센(Seidenstrassen: 독일어로 비단길), 즉 ‘실크로드‘ 라고 명명했다. 그러다가역시 독일의 동양학자 헤르만(Herrmann A.)은 그 동안 중앙아시아에서 지중해 동안의 이 팔미라까지 이어지는 오아시스 곳곳에서 중국 비단 유물이 발견된 사실에근거해 이 비단교역의 길을 팔미라까지 연장하고 ‘실크로드(일명 오아시스로)"라고재천명했다. 요컨대, 팔미라에서 중국 비단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실크로드오아시스 육로는 오늘날처럼 지중해 동안까지 연장된 것이다.
- P321

이어 11세기까지는 비잔틴 시대를 맞는다. 이곳에 엉킨 숱한기독교 이야기는 이때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이다. 몽골군과 티무르군의 군화 자국도 역력하다. 11세기 투르크족의 유입에 묻어 들어온 이슬람 문명은 오늘로 이어진 주도 문명이다. 카파토키아를 비롯한 아나톨리아에 대한 로마제국의 지배를 되새길 때마다 저 유명한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곳을 정복하고는 개선장군답게 세계를 향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라고 포효(砲) 한다. 그러나 로마제국에도 해가 지는 날은 분명 있어,
오는 길은 가는 길의 시작이고, 승리는 패배의 예고였다는 사실(史實)을 세상은 보고야 말았다. - P361

역사상 원정이건 교역이건 간에 두 대륙을 오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잇는 다리가필요했음은 불문가지다. 기원전 4세기 유럽 쪽의 시티안으로 원정을 떠난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의 명령에 따라 최초의 다리가 놓였다. 70만 페르시아 군사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배와 뗏목을 이어 붙여 가교를 만들었다. 그 후2천여 년 동안 배로만 오갔지 그 누구도 다리를 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3년 사상 처음으로 두 대륙을 잇는 보스포루스 다리가, 그리고 15년 후인1988년에는 파티흐(정복자) 술탄 무함마드 다리가 놓였다. 두 다리 밑으로는 매년 5만여 척의 각종 선박이 지나간다. - P376

그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이스탄불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보스포루스 다리(일명 아타튀르크 다리)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갔다 오는 다리 여행을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차량들로 몹시 붐빈다. 유럽에서 아시아 쪽으로 가는 차량 통과료는 3리라(한국 돈으로 2천 원 정도)이나, 아시아에서 유럽 쪽으로 오는 통행료는 무료다. 유럽 쪽의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양쪽 인구는 비슷하지만 유럽 쪽에는 백화점이 7개가 있는 반면에 아시아 쪽에는 3개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다리는1950년에 건설계획을 짜 놓고 공사는 20년 후인 1970년에야 시작해 터키 공화국 수립 50주년이 되던 1973년 10월 29일에 총 공사비 2, 300만 달러를 들여 완공했다. 공사는 영국의 클리블랜드 엔지니어링과 독일의 호치티예프 사(社)가 맡았는데, 길이는 1,560미터고 폭은 33미터이며, 바다로부터의 높이는 64미터이다. 현수교(懸垂橋)로서 다리를 지탱하는 지름 0.5센티미터의 강철 철사만도 무려 10, 412개가 사용되었다. 하루에 20만 대의 차량과 60만 명의 행인이 지나다닌다. 2002년 통계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긴 현수교이며, 세계에서는 일곱 번째로 긴 다리라고 한다. - P377

오아시스로의 변천사를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극동에서 로마까지의 길이 일시에 개통된 것은 아니다. ‘세계의 지붕‘ 이라고 일컫는 파미르 고원을 사이에 두고 동서 각지에 짤막짤막한 길들이 단절적으로 널려 있었다. 그리고 파미르 고원 횡단로가 뚫리면서 이 길들이 서로 이어져 비로소 동서의 오아시스들을 관통하는 완결된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파미르 고원 서쪽의 서아시아 지방에는 기원전 6세기경에 이미 정비된 교통로가있었다.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 재위) 때에 인도 서북부의 간다라 지방부터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정연한 교통망이 사통팔달하여 영내 23개 주와의 연계가 원활했다. 그 바탕에서 오아시스로의 발단이라고할 수 있는 수도 수사부터 아나톨리아의 사르디스에 이르는 이른바 ‘왕의 길‘이 개통되었다. - P383

즉 한반도의 남단(경주) 에서 출발해 서울(한주)과 평양을 지나 강계(동황성) 에서압록강을 건넌 다음 선양(심주)이나 요중(광주)을 거쳐 고대 한 중 접경지인 초양(영주)에서 중국 땅으로 접어든다. 6세기께 초양은 고구려가 지배한 동북아 최대의 국제무역도시였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산하이 관(임투관)을 넘어 베이징(유주)에 도착한다. 이어 동·중· 서로의 세 갈래 길을 따라 남하해 뤄양에 이른 후 서진해 시안에 도달하면 서역으로 이어지는 오아시스로와 맞닿는다. 그렇게 되면 서단을 로마로 하고 동단을 경주로 하는 오아시스로의 전 노정이 복원된다. 그 총 연장거리는약 1만 5천 킬로미터(약 3만 7천리)로서, 하루에 100리씩 걸으면 주파하는 데 꼭 1년이 걸린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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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반도는 중국 및 일본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영국도 유럽대륙과 연결되어서 섬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타이,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등은 ‘순다(Sunda)‘ 라고 부르는 큰 대륙이었다. 현재의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태즈메이니아 역시 하나의 대륙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를 ‘대-오스트레일리아(Greater Austrailia)‘ 혹은 
‘사훌(Sahul)‘ 이라고 부른다. 순다와 사출 사이에는 수심이 낮은 바다 위에 섬들이 점점이산재해 있었다. 순다까지 육상으로 걸어온 초기 인류는 이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바다를 건너 사출, 즉 현재의 오스트레일리아 방향으로들어왔을 것이다. 항해 거리는 약 70킬로미터-에 달한다.(Desclèves 2017a, 1:116)

약 6만 5,000년전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주변 섬들에 들어와 살게 된 사람들을 애보리진(Aborigine)이라 부른다.
인류의 등장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보다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수천 년 안에24종의 대형 동물 중 23종이 멸종했다. 거대유대목 동물(giant marsupial), 예컨대 캥거루와비슷하게 생긴 키 2미터의 동물들은 초기 애보

리진이 제작한 암각화에도 등장하지만 이후 멸종했다. 인간이 이 멸종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이주가 한 번에 끝난 게 아니라 이후에 여러 차례계속되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000~5,000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개를 들여왔는데,
이것이 이 지역의 사냥 문화에 결정적 변화를가져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Préaud, 15)

아메리카에 이주한 최초의 사람들을 고(古)-인디언(Paleo-Indian)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통상 ‘인디언(인도 사람이라는 의미니 분명 잘못된 이름이다)‘이라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이주 역시 빙하기의 해수면하강과 관련이 있다. 바다가 현재보다 수십 미터 더 내려가 있으므로 베링해협은 바다가 아니라 바닥이 드러난 땅이었는데, 이를 베링기아(Beringia)라 부른다. 이렇게 북동시베리아와서부 알래스카가 육로로 연결되어 있던 약 1만6,000~1만 7,000년 전 시기에 아시아계 사람들이 이 육교(陸橋, land bridge)를 넘어 아메리카로 들어왔고, 그 후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주하며 확산해갔다는 것이 기존 정설이다.

레푸지움,refugium, 비교적 기후변화가 적어 다른 곳에서는 멸종한 종이 살아남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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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간 종주. 24.7km, 6시간38분, 3.7km/hr
체력은 기르는 것이 아닌 유지하는 것.
항상 느끼는 바지만 실천이 어렵다.

ㅇ 망이, 망소이의 난. 공산성, 공주 명학소
공주 명학소는 현재 내 사는 대전. 대전의 탄방동(숯구워 팔던곳?) 일대다.
지금은 번화가이고 대전에서 아파트값이 매우 비싼곳 중의 하나다.
이 당시 공주는 충청도 제일가는 도시, 공주목.

망이 · 망소이 난과 공산성
고려시대 민중 봉기와 공산성.
고려시대에는 금·은 세공품, 도자기, 종이 등을 만드는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소‘ 라고 불렀다. 공주에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명학소‘ 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 살던 망이 · 망소이 형제가 1176년(명종 6) 귀족들의 횡포와 차별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공주목으로 진격해 공산성을 점령하고 반란의 본부로 삼았다. 
공산성이 다시 한 번 역사의 무대가 되는 순간이다. 
정부는 이들을 달래려고 명학소를 말 잘들으라는 의미의 ‘충순현‘ 으로 잠시 미봉책으로 승격시키고 조위총의 난을 진압한 정부는 군대를 명학소로 돌려 난을 일으킨 이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자 이들은 다시 세차게 일어나 충청도 일대를 휩쓸었으나, 관군의 반격으로 
망이 · 망소이의 난은 진압이 되고 말았다.

ㅇ고려사절요. 망이, 망소이 난 기사는 한줄. 6월에 망이의 고향 명학소를 승격하여 충순현이라 하였다.
(신서원 판, 신편 고려사절요 중권 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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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3-12 2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그리고 부러워요

대장정 2022-03-12 21:2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게으름피우다 간만에 하니 힘들어요ㅠㅠ 꾸준해야는데요~~☆☆

청아 2022-03-12 2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4키로요!! 대장정님 와우👍👍<희박한 공기 속으로> 제 인생 논픽션입니다ㅎㅎ

대장정 2022-03-12 22:1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ㅎㅎ 그런가요. 죄송한데요, 전 읽으면서 좀 짜증이 많이 나더라고요. 돈 벌이에 ㅎㅈ한거 같은, 준비가 안돼있고 기상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언능 산에서 내려와야지, 게기다가 다들.... ㅠㅠ

청아 2022-03-12 21:43   좋아요 3 | URL
저도 분노하며 읽었어요. 노트북등등을 본인이 직접 짊어질것도 아니면서 셰르파에게 주어 참극의 발단 중 하나가 되었죠ㅠㅠ

대장정 2022-03-12 21:57   좋아요 3 | URL
네, 분노라는 표현이 맞겠네요. 에베레스트를 돈으로 오르려다.ㅡㅠ 모든 화근은 돈이다.

페넬로페 2022-03-12 22: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제가 산책 나갔다가~~
제가 사는 구의 둘레길이 24km정도 되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지인에게 하루에 24km를 다 걸을 수 있을까? 라고 했거든요^^
대장정님은 6시간 반만에 거뜬하게 걸으셨네요.그것도 산길을요^^
역시 ‘대장정‘님이십니다^^

대장정 2022-03-12 23:02   좋아요 3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저는 쬐끔 걷는 수준이고 하루저녁 날 새서 100km씩 산타는 사람들 수두룩하더라구요ㅠㅠ~~☆☆

바람돌이 2022-03-13 0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닉네임 대장정이 마땅한 날이네요. 하루 24킬로라니....
대장정님 체력 짱입니다. ^^ 공주가서 공산성 걸은적은 여러번인데 명학소가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몰랐는데 지금은 대전에 소속된 탄방동이군요. 다음에 이 지역 가게 되면 기억해야겠네요.

대장정 2022-03-13 09: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장시성(루이진)에서 산시성(옌안) 까지 장장 15,000km를 행군한 홍군의 대장정에서 차용했네요. 탄방동 남선공원에 가면 망이망소이난 기념탑도 있고 동네 유래도 소개해 놓고 있습니다~~☆
 

대망1 VS 도쿠가와 이에야스1, 소송, 대법원 판결문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도6425 판결

[저작권법위반]〈회복저작물(덕천가강)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대망)의 이용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대망’ 사건)〉[공2021상,249]

【판시사항】

1995. 12. 6. 법률 제5015호로 개정된 저작권법 부칙 제4조 제3항의 규정 취지 및 위 규정에서 허용하는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 이용행위의 범위

【판결요지】

1995. 12. 6. 법률 제5015호로 개정된 저작권법(이하 ‘1995년 개정 저작권법’이라 한다)은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외국인의 저작권을 소급적으로 보호하면서, 부칙 제4조를 통하여 위 법 시행 전의 적법한 이용행위로 제작된 복제물이나 2차적저작물 등을 법 시행 이후에도 일정기간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1995년 개정 저작권법으로 소급적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게 된 외국인의 저작물(이하 ‘회복저작물’이라 한다)을 1995년 개정 저작권법 시행 전에 적법하게 이용하여 온 자의 신뢰를 보호하는 한편 그동안 들인 노력과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하였다. 특히 2차적저작물의 작성자는 단순한 복제와 달리 상당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칙 제4조 제3항을 통해 회복저작물의 2차적저작물 작성자의 이용행위를 기간의 제한 없이 허용하면서, 저작권의 배타적 허락권의 성격을 보상청구권으로 완화함으로써 회복저작물의 원저작자와 2차적저작물 작성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자 하였다.

1995년 개정 저작권법 부칙 제4조 제3항은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로서 1995. 1. 1. 전에 작성된 것을 계속 이용하는 행위에 대한 규정으로 새로운 저작물을 창작하는 것을 허용하는 규정으로 보기 어렵고, 위 부칙 제4조 제3항이 허용하는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게 되면 회복저작물의 저작자 보호가 형해화되거나 회복저작물 저작자의 2차적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할 수 있다. 따라서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과 이를 이용한 저작물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더라도, 위 2차적저작물을 수정·변경하면서 부가한 새로운 창작성이 양적·질적으로 상당하여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로 볼 정도에 이르렀다면, 위 부칙 제4조 제3항이 규정하는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참조조문】

구 저작권법(1995. 12. 6. 법률 제501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조 제1항저작권법 제3조 제1항제136조 제1항 제1호, 부칙(1995. 12. 6.) 제4조 제1항, 제2항, 제3항

【전 문】

【피 고 인】 피고인 1 외 1인

【상 고 인】 피고인들

【변 호 인】 변호사 김진희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법 2020. 5. 8. 선고 2019노442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 1이 2012. 3. 15.경부터 영리를 목적으로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회복저작물인 소설『○○○○(△△△△ △△△△)』일본어판의 번역물을 무단으로 복제·배포하는 방법으로 원저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하였고, 피고인 2 주식회사는 대표이사인 피고인 1이 위와 같이 영리를 목적으로 원저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원심은 1995. 12. 6. 법률 제5015호로 개정된 저작권법(이하 ‘1995년 개정 저작권법’이라 한다) 부칙 제4조 제3항의 규정 취지와 내용에 비추어 보면, 1995년 개정 저작권법으로 소급적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게 된 외국인의 저작물(이하 ‘회복저작물’이라 한다)에 관한 저작권 침해가 위 부칙 조항에 의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이 1995. 1. 1. 이전에 작성되어야 하고, 위 2차적저작물의 이용권한을 가지는 자가 저작물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로 이용행위를 하여야 하는데, 피고인들이 원심 판시 □□□□년판『◇◇』1권의 내용을 일부 수정·증감하여 원심 판시 ☆☆☆☆년판『◇◇』1권을 발행한 것이 1995. 1. 1. 이전에 작성된 □□□□년판『◇◇』1권의 이용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보아 피고인들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2.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

가. 1995. 12. 6. 법률 제5015호로 개정되기 전의 저작권법 제3조 제1항은 “외국인의 저작물은 대한민국이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보호된다. 다만 당해 조약 발효일 이전에 발행된 외국인의 저작물은 보호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1995년 개정 저작권법은 소급보호를 원칙으로 하는 베른협약(Bern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Literary and Artistic Works) 제18조 제1항을 받아들여 종전 저작권법 제3조 제1항 단서 규정을 삭제하였다. 1995년 개정 저작권법은 위와 같은 개정으로 소급적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게 된 회복저작물에 대해, 부칙 제4조를 통해 그 시행 전의 이용행위에 대해서는 면책됨을 선언하면서(제1항), 그 시행 이후에는 일정 범위의 이용행위를 허용하였다. 1995년 개정 저작권법 부칙 제4조는 법 시행 이후에 허용되는 행위에 대해, 회복저작물의 복제물로서 1995. 1. 1. 전에 제작된 것은 1996. 12. 31.까지 계속하여 배포할 수 있고(제2항),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로서 1995. 1. 1. 전에 작성된 것은 이 법 시행 후에도 이를 계속하여 이용할 수 있되, 그 원저작물의 권리자는 1999. 12. 31. 이후의 이용에 대하여 상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3항)고 규정하였다.

위와 같이 1995년 개정 저작권법은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외국인의 저작권을 소급적으로 보호하면서, 부칙 제4조를 통하여 위 법 시행 전의 적법한 이용행위로 제작된 복제물이나 2차적저작물 등을 법 시행 이후에도 일정기간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회복저작물을 1995년 개정 저작권법 시행 전에 적법하게 이용하여 온 자의 신뢰를 보호하는 한편 그동안 들인 노력과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하였다. 특히 2차적저작물의 작성자는 단순한 복제와 달리 상당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칙 제4조 제3항을 통해 회복저작물의 2차적저작물 작성자의 이용행위를 기간의 제한 없이 허용하면서, 저작권의 배타적 허락권의 성격을 보상청구권으로 완화함으로써 회복저작물의 원저작자와 2차적저작물 작성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자 하였다.

1995년 개정 저작권법 부칙 제4조 제3항은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로서 1995. 1. 1. 전에 작성된 것을 계속 이용하는 행위에 대한 규정으로 새로운 저작물을 창작하는 것을 허용하는 규정으로 보기 어렵고, 위 부칙 제4조 제3항이 허용하는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게 되면 회복저작물의 저작자 보호가 형해화되거나 회복저작물 저작자의 2차적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할 수 있다. 따라서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과 이를 이용한 저작물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더라도, 위 2차적저작물을 수정·변경하면서 부가한 새로운 창작성이 양적·질적으로 상당하여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로 볼 정도에 이르렀다면, 위 부칙 제4조 제3항이 규정하는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나. 위 법리와 원심에서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비추어 살펴본다.

1) 원심 판시『○○○○(△△△△ △△△△)』일본어판은 1995년 개정 저작권법 시행일 이전에 공표되어 1995년 개정 저작권법 시행으로 대한민국에서 소급하여 보호를 받게 된 회복저작물이고, □□□□년판『◇◇』1권은 위 회복저작물을 번역한 2차적저작물이다. 피고인들은 □□□□년판『◇◇』1권의 내용을 일부 수정·증감하여 원심 판시 ☆☆☆☆년판『◇◇』1권을 발행하였다. □□□□년판『◇◇』1권과 대비하여 ☆☆☆☆년판『◇◇』1권에는 인명, 지명, 한자발음 등을 개정된 외국어표기법이나 국어맞춤법에 따라 현대적 표현으로 수정하거나, 번역의 오류를 수정한 부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고 자주 쓰이는 유사한 단어를 단순하게 변경하거나, 조사를 생략 또는 변경하거나, 띄어쓰기를 수정한 부분들이 다수 있으나, 이러한 부분들은 양 저작물 사이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2) □□□□년판『◇◇』1권에서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을 ☆☆☆☆년판『◇◇』1권에서는 두 문장으로 분리하거나, 반대로 분리된 문장을 한 문장으로 결합한 부분, 지문과 대화문의 위치를 변경한 부분 등이 다수 있다. 또한 ☆☆☆☆년판『◇◇』1권에는 □□□□년판『◇◇』1권의 어구나 어절을 수정하거나, □□□□년판『◇◇』1권에 없는 내용을 새로 추가한 부분도 있다. 이러한 수정·변경된 내용들에 의해 □□□□년판『◇◇』1권과 ☆☆☆☆년판『◇◇』1권 사이의 동일성은 상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한편 앞서 본 법리에 따라 양 저작물의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단순히 양 저작물을 대비할 것이 아니라, 2차적저작물인 □□□□년판『◇◇』1권의 창작적인 표현이 ☆☆☆☆년판『◇◇』1권에 포함되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년판『◇◇』1권에는 회복저작물인『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표현을 그대로 직역한 부분도 많이 있으나, 이를 제외한 어휘와 구문의 선택 및 배열, 문장의 장단, 문체, 등장인물의 어투, 어조 및 어감의 조절 등에서 표현방식의 선택을 통한 창작적 노력이 나타난 부분이 다수 있고, 이러한 창작적인 표현들이 ☆☆☆☆년판『◇◇』1권에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위 2)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년판『◇◇』1권과 ☆☆☆☆년판『◇◇』1권에 차이점들이 있지만, 위와 같은 공통된 창작적인 표현들의 양적·질적 비중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년판『◇◇』1권은 □□□□년판『◇◇』1권을 실질적으로 유사한 범위에서 이용하였지만,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로 볼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4) 그렇다면 ☆☆☆☆년판『◇◇』1권은 □□□□년판『◇◇』1권과의 관계에서 1995년 개정 저작권법 부칙 제4조 제3항이 정하는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 그런데도 원심은 위 부칙 제4조 제3항의 이용행위가 실질적 동일성이 유지되는 범위에서의 이용만을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피고인 1이 ☆☆☆☆년판『◇◇』1권을 작성한 것은 위 조항에서 허용하는 □□□□년판『◇◇』1권의 이용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1995년 개정 저작권법상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는 이유 있다.

3.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노정희(재판장) 박상옥(주심) 안철상 김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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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5. 8. 선고 2019노442 판결

[저작권법위반][미간행]

【전 문】

【피 고 인】 피고인 1 외 1인

【항 소 인】 피고인들

【검 사】 조아라(기소), 윤효정(공판)

【변 호 인】 변호사 오승종(피고인들을 위하여)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1. 23. 선고 2017고단4808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들을 각 벌금 700만 원에 처한다.

피고인 1이 위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100,000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위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한다.

피고인들에 대하여 위 각 벌금에 상당한 금액의 가납을 명한다.

【이 유】

1. 항소이유의 요지(사실오인, 법리오해주1) )

○ 피고인들은 1994년 이전에 □□□□년판 『◇◇』의 내용을 일부 수정, 증감한 ☆☆☆☆년판 『◇◇』주2) 1권의 작성을 완료하였고, 인쇄를 위한 원판 필름까지 모두 제작하였다. 피고인들이 ☆☆☆☆년판 『◇◇』1권을 발행한 것은 1995. 1. 1. 이전에 작성된 2차적 저작물의 이용행위에 해당하므로, 구 저작권법(1995. 12. 6. 제5015호로 개정되어 1996. 7. 1. 시행된 것, 이하 ‘구 저작권법’이라 한다) 부칙 제4조 제3항(이하 ‘이 사건 부칙조항’이라 한다)에 따라 허용되는 적법한 행위이다. 2004년 하반기부터 2005. 2.경까지 공소외 1이 한 작업은 ☆☆☆☆년판 『◇◇』1권의 작성이 아닌 최종 인쇄 직전에 이루어지는 ‘필름 OK 교정 확인 작업’이다.

○ 설령 ☆☆☆☆년판 『◇◇』1권의 작성이 구 저작권법 발효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년판 『◇◇』은 1995. 1. 1. 이전에 작성된 2차적저작물이고, ☆☆☆☆년판 『◇◇』1권은 □□□□년판 『◇◇』을 토대로 원문과 맞지 않는 단어, 외래어 표기법, 맞춤법 규정과 어법에 비추어 어색하게 된 문구를 찾아 바로잡는 방법으로 수정 작업한 결과물이다. ☆☆☆☆년판 『◇◇』1권은 원저작물인 『△△△△ △△△△』일본어판을 토대로 새로 번역한 별개의 저작물이 아니라, □□□□년판 『◇◇』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저작물이다.

○ 이 사건 부칙조항 해석상 별개의 새로운 저작물 작성 이르지 않는 오류오역을 바로잡는 단순한 수정, 증감행위는 허용되는 이용행위라 할 것인데, 피고인들이 □□□□년판 『◇◇』을 수정, 증감하여 ☆☆☆☆년판 『◇◇』 1권을 발행한 것은 □□□□년판 『◇◇』의 오류, 오역을 바로잡는 단순한 수정, 증감행위로 그 이용행위에 해당한다. 나아가 저작권법 제14조제58조의2 제1항은 저작인격권적 성질을 갖는 수정, 증감권(오류, 오역 바로잡기)을 저작자에게 보장하는바, 2차적저작물의 번역저작자인 피고인 회사에게도 저작인격권적 성질을 갖는 수정, 증감권이 보장되므로, 피고인들이 ☆☆☆☆년판 『◇◇』1권을 수정 및 발행한 것이 새로운 저작물에 해당하더라도, 이 사건 부칙조항이 허용하는 □□□□년판 『◇◇』의 이용행위에 해당한다.

2. 항소이유에 관한 판단

가. 이 사건 부칙조항의 적용요건

○ 구 저작권법은 주3) 회복저작물의 소급보호를 규정하면서 회복저작물을 그 시행 전에 적법하게 이용하여 온 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하여 부칙 제4조의 규정을 통해 그 시행 전의 적법한 이용행위에 대해서는 면책됨을 선언하는 한편(제1항), 그 시행 이후에도 일정 범위의 이용행위를 허용하고 있는데(제2항, 제3항), 특히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에 관하여 “회복저작물 등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로서 1995. 1. 1. 전에 작성된 것은 이 법 시행 후에도 이를 계속하여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 위와 같은 이 사건 부칙조항의 규정취지 및 내용에 비추어 보면, 회복저작물에 관한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위 부칙조항에 의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저작물이 1995. 1. 1. 이전에 작성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위 2차적저작물의 이용권한을 가지는 자’가 ‘저작물의 동일성을 유치한 채’로 이용행위를 하여야 한다.

나. ☆☆☆☆년판 『◇◇』1권의 작성시기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들은 2004년 하반기부터 □□□□년판 『◇◇』의 내용을 일부 수정, 증감하여 ☆☆☆☆년판 『◇◇』1권의 원고를 집필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2004년 하반기경 이루어진 위 작업이 최종 인쇄 직전에 하는 필름 OK 교정 확인 작업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피고인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 ☆☆☆☆년판 『◇◇』은 총 12권에 달하는 번역 소설로서, 원본과의 비교, 오역 수정, 표기 또는 표현의 변경을 위해서는 방대한 작업이 필요하고, 인쇄 필름 제작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인 회사에서 세계대백과사전을 출간하면서 1994년 무렵 자금난을 겪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피고인 회사가 자금난 속에서 굳이 그 제작과 보관에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인쇄 필름을 미리 제작해 둘 필요는 없어 보이고, 인쇄를 위한 원판 필름까지 모두 제작한 상태였다면 오히려 당시 상당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번역 소설의 수정판 출간을 미루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피고인 회사에서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시기에 ☆☆☆☆년판 『◇◇』1권의 출간을 위한 원고 작성 및 필름 제작 작업이 이루어졌다거나 자금 등이 집행되었다는 아무런 객관적인 자료도 없다.

○ 피고인 회사에서 현재 보관하고 있는 ☆☆☆☆년판 『◇◇』 1권의 인쇄 필름은 쪽필름이 아닌 주4) 통필름 형태로, 통필름이 국내에 도입된 시기는 피고인들이 ☆☆☆☆년판 『◇◇』1권의 원고 집필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1994년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이다. 피고인들이 1995년 이전에 제작한 쪽필름을 보관하고 있었다면 통필름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라도 굳이 사용 가능한 쪽필름을 폐기하고 통필름을 새로 제작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 피고인들은 항소심에서 “자금난으로 인하여 1992년경 2,000만 원을 지원받는 대가로 ▽▽▽▽▽에 □□□□년판 ◇◇을 ’○○○○‘이라는 이름으로 발행하여 판매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년판 『◇◇』은 1994년경 원고 집필이 완료되었으나, ▽▽▽▽▽의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2005년에 비로소 발행된 것이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1은 수사단계부터 원심법정에 이르기까지 “2000년경까지 □□□□년판 『◇◇』의 재고가 꾸준히 팔리고 있었기 때문에 ☆☆☆☆년판 『◇◇』 인쇄를 보류하였다.”고 진술하였을 뿐(공판기록 375쪽) ▽▽▽▽▽ 관련 진술을 한 적은 없다. ’○○○○‘은 1992. 9. 30. ’펴낸이 피고인 1, 펴낸곳 ◎◎◎◎◎, 재판1쇄, 독점판매처 ▽▽▽▽▽‘로 발행되었는데, □□□□년판 ◇◇을 가로쓰기하고 인명과 지명, 한자발음 등을 외국어표기법에 따라 수정한 정도에 불과하였는바, 그 무렵까지 ☆☆☆☆년판 『◇◇』1권의 원고 집필은 완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피고인 1은 검찰에서 ‘☆☆☆☆년판 『◇◇』에는 번역자가 공소외 2, 공소외 1을 포함한 8명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위 8명은 모두 □□□□년판 『◇◇』의 번역에 참가했던 사람들이다. ☆☆☆☆년판 『◇◇』의 수정작업은 공소외 1 혼자 담당하였고, 편집부 직원 공소외 3이 도와주었을 뿐이다. 공소외 1이 □□□□년판 『◇◇』과 원작 소설을 비교하며 표기가 달라진 부분, 표현이 달라진 부분, 어색한 부분을 찾는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총 20권에 대한 수정작업을 하는데 1권 당 보름 이상은 소요되었을 것이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증거기록 927~928쪽).

○ 공소외 1은 검찰에서 “□□□□년판 『◇◇』의 번역에 참가했던 분들이 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년판 『◇◇』의 수정작업은 제가 책임지고 할 수밖에 없었다. 2004. 9.경 성남시 분당구 ◁◁동에 있는 집에서 작업하였다. 일본어로 된 원작 소설, □□□□년판 『◇◇』, □□□□년판 『◇◇』을 가로쓰기로 조판한 교정지 3종류를 비교하면서, 이름, 지명 등 한자를 틀리게 표기한 부분, 한글 표기 중 오자가 있는 부분을 고쳤다.”, “□□□□년판 『◇◇』1권의 제목 중 ’▷▷▷‘를 ’♤♤♤♤‘로, ’♡♡♡‘를 ’●●●‘으로 바꾸고, ’▲▲▲‘를 ’■■■‘로 바꾸었다.”고 진술하여 그 작업 시기, 경위, 방법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증거기록 1131~1133쪽). 공소외 1은 2004년 하반기경 ☆☆☆☆년판 『◇◇』1권의 새로운 번역 또는 수정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당시 수행한 작업이 최종 인쇄 필름을 유리판 형광등에 비추어 보면서 눈에 띄는 한자 오탈자만 바로잡는 필름 OK 교정 확인 작업임에도 검찰에서 잘못 진술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사단법인 ◆◆◆◆◆협회의 2020. 1. 9.자 사실조회회신은 “26권인 일본어판을 번역하는데 1권당 약 70일, 총 약 1,800일, 약 90개월(7년 8개월)이 걸리리라 예상된다.”는 내용이나 이는 최초 번역에 걸리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년판 『◇◇』번역본을 수정, 증감한 ☆☆☆☆년판 『◇◇』의 작성에 걸리는 시간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다. ☆☆☆☆년판 『◇◇』1권의 발행이 □□□□년판 『◇◇』의 이용행위인지 여부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들이 ☆☆☆☆년판 『◇◇』 1권을 발행한 것이 1995. 1. 1. 이전에 작성된 □□□□년판 『◇◇』의 이용행위라고 볼 수 없다. 피고인들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 ☆☆☆☆년판 『◇◇』1권은 원심 판시 별지 일람표 기재와 같이 □□□□년판 『◇◇』을 어휘의 단순 변경, 조사 생략, 문장의 단순 분리·결합 또는 위치 변경 등을 통하여 사소한 수정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다. 번역자의 창작적 노력에 의하여 추가된 표현(□□□□년판 『◇◇』과 원작 소설에 모두 존재하지 않는데도 추가된 표현)이나 □□□□년판 『◇◇』 1권에는 없으나 원작 소설에는 존재한 표현을 부가한 부분, 원작 소설을 보다 적확히 전달하기 위하여 새로이 선택한 표현을 다수 포함하고 주5)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년판 『◇◇』1권은 □□□□년판 『◇◇』과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수정, 증감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 외국 소설을 번역하는 작업의 특성상 오탈자의 수정, 현대적 어법으로의 변환, 표기법의 변환 등과 같은 단순 수정작업은 □□□□년판 『◇◇』만을 사용하여 가능하였을지라도, □□□□년판 『◇◇』에 없는 표현을 추가하거나 원작 소설을 보다 적확히 전달하기 위하여 새로운 표현을 선택하기 위하여는 ☆☆☆☆년판 『◇◇』1권의 번역자가 원저작물인 원작 소설을 참조하는 것이 불가피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년판 『◇◇』1권이 □□□□년판 『◇◇』의 단순 이용행위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 ☆☆☆☆년판 『◇◇』1권에는 □□□□년판 『◇◇』의 표현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사소한 변경을 가한 부분도 상당하여 ☆☆☆☆년판 『◇◇』1권을 □□□□년판 『◇◇』과 구별되는 사회통념상 별개의 2차적저작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는 번역물인 2차적저작물의 특성상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이러한 점 때문에 □□□□년판 『◇◇』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에 근거하여 위 소설과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수정된 ☆☆☆☆년판 『◇◇』1권을 복제, 배포하는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 오탈자의 수정, 표기법의 변경에 따른 수정 등을 넘어서 기존의 2차적저작물인 번역 소설에는 없던 표현을 추가하고 기존의 번역 소설과 전혀 다른 표현으로 원저작물인 소설의 표현을 번역한 번역 소설을 발행, 판매하는 것을 기존의 2차적저작물의 이용행위로서 허용한다면, 이는 원저작물이 외국 문학작품일 경우 1995년 이전에 이를 번역하여 2차적저작물을 출판하였던 자는 1996년 저작권법의 시행에 따라 새로이 보호를 받게 된 회복저작물의 저작권자로부터 아무런 권한을 부여받지 않고서도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새로운 번역을 통하여 회복저작물을 복제, 배포할 수 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 고발인과 같이 1996년 저작권법의 시행 이후 회복저작물의 저작권자로부터 2차적저작물 작성 및 이용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는다고 하더라도 1995년 이전에 번역물이 이미 출판된 경우에는 사실상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

○ 피고인 회사가 2차적저작물인 □□□□년판 『◇◇』의 이용권한자이고, 2차적저작물의 번역저작자로서 저작인격권을 갖는다 할지라도, 2차적저작물의 이용권한자는 앞서 본 이 사건 부칙조항 적용요건인 ‘저작물의 동일성을 유치한 채’로 이용행위를 할 것을 요한다. 그런데 앞서 본바와 같이 ☆☆☆☆년판 『◇◇』1권은 □□□□년판 『◇◇』과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수정, 증감되어 이 사건 부칙조항의 적용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였다.

3. 직권판단(양형부당)

가. 항소법원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사유에 관하여는 항소이유서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에도 직권으로 심판할 수 있는 것이므로 피고인이 사실오인만을 이유로 항소한 경우에 직권으로 양형부당을 이유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제1심의 양형보다 가벼운 형을 정할 수 있다(대법원 1990. 9. 11. 선고 90도1021 판결 등 참조).

나. 피고인들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의 정도가 상당히 크고, 저작권자로부터 저작권 계약을 맺고 새로운 번역소설을 출간한 출판사의 피해 역시 작지 않다. 고발 이후에도 계속하여 저작권 침해 행위를 하여 그 죄책이 가볍지 않다.

그러나 피고인 1 역시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들여 □□□□년판 『◇◇』을 발행, 판매하던 중 예기치 않게 1996년 저작권법이 시행됨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은 측면이 있다. 피고인들과 주식회사 ▼출판사의 공소외 4와 사이에 관련 민사사건에서 조정이 성립하여 피해 일부가 주6) 회복되었다. 피고인 1에게 벌금형 이외의 범죄전력이 없다. 그 밖에 피고인 1의 나이,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 및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조건들을 종합하면 원심이 피고인들에 대하여 선고한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4. 결론

그렇다면 원심판결에는 위에서 본 직권파기사유가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에 따라 이를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음과 같이 다시 판결한다.

범죄사실 및 증거의 요지

원심판결 해당 부분 기재와 같다.

법령의 적용

1. 범죄사실에 대한 해당법조 및 형의 선택

피고인 1: 포괄하여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 제1호, 벌금형 선택

피고인 2: 포괄하여 저작권법 제141조제136조 제1항 제1호

1. 노역장 유치

피고인 1: 형법 제70조 제1항제69조 제2항

1. 가납명령

피고인들: 형사소송법 제334조 제1항

판사   김우정(재판장) 김예영 이원신

주1) 채증법칙위반 주장은 채증법칙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주장으로 본다.

주2) □□□□년판 『◇◇』은 20권, ☆☆☆☆년판 『◇◇』은 1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저작권법위반이 문제되는 것은 ☆☆☆☆년판『◇◇』1권이므로, □□□□년판은 □□□□년판『◇◇』으로, ☆☆☆☆년판은 ☆☆☆☆년판『◇◇』1권으로 표시한다.

주3) 구 저작권법의 시행으로 소급보호의 대상이 된 외국인의 저작물을 ‘회복저작물’이라고 한다.

주4) 쪽필름 1장은 책 1개 페이지 크기이고, 통필름 1장은 책 16개 페이지의 전지 크기이다. 16장의 쪽필름을 전지 크기의 인쇄용 아스테이지(투명비닐)판에 책 페이지 순서대로 배열하여 테이프로 이어 붙여 종이 전지에 인쇄하는 방법으로 인쇄를 하다가 인쇄기술의 발달로 전지 크기의 아스테이지판에 16개 페이지가 순서에 맞게 배열된 통필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주5) ★★★★★위원회 작성의 감정서에 의하면, 위와 같은 창작성 있는 수정·증감으로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 300곳 이상이다(증거기록 823쪽 이하).

주6) 피고인들이 공소외 4에게 8,500만 원을 4회에 걸쳐 분할지급하고 ☆☆☆☆년판『◇◇』의 복제, 배포 등을 하지 않되, 이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확정되는 경우 확정 이후부터 이에 대한 복제, 배포 등을 할 수 있고, 다만 위 8,500만 원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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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05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작권도 어렵지만

법은 정말 어렵군요 😅

대장정 2022-03-05 22:1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어려운거 투성이에요. 세상살기 힘들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