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행성은 자원도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곳이니까. 처음에는 희소 자원을 가져오기 위해서 개발되었지만 거주 환경이 좋아서 개척 이주를 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 내 남편과 아들도 지구와는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며 개척 이주 행렬에 동참했던 거라네."

"우주 개척 시대의 서막이 열린 때였어. 워프 항법이 상용화되고, 여러 행성의 개척에 성공하면서 연방 정부가 우주로 확장된 시기지. 다들 다른 행성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시대였고, 그건 내 남편과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네."

우주선은 비록 빛의 속도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동하는 우주선을 둘러싼 공간을 왜곡하는 워프 버블을 만들어서 빛보다 빠르게 다른 은하로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딥프리징은 우주 개척의 다음 단계를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의료계에서도 수요가 있었어.

호기심과 결의가 뒤죽박죽 섞인 열정으로 가득했지. 우리의 프로젝트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도달했어. 사소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되었지. 하지만 삶이란 정말 예측할 수 없더군.

워프 항법은 우주 개척 시대의 눈부신 전성기를 열었지만 인류에게 무한대의 속도를 제공해주진 못했다. 다른 은하까지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년이 넘게 걸렸다.

사람들이 딥프리징 기술을 유일한 대안이자 해결책으로 제시했던 것도 바로 유한한 인간의 시간과 무한한 우주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함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우스운 일이지.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 경제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방식만을 사용했던 것이 연방 아닌가.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우주 정거장’

"당신, 나이를 추정해보니 백일흔 살이더군요. 도대체 여태 어떻게 살아남으신 겁니까? 그동안 정거장에는 대체 몇 번을 오간 건가요?"

"같은 곳에 묻히는 것에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시네요."

"고집 센 할머니를 설득하는 방법은 혹시 연구하신 적 없습니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남자는 노인이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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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혼에 가해진 충격을 감수해야만 했다. 케플러는, 천문학이라는 마구간에서 원형과 나선형을 쓸어 치우자, "손수레 한가득말똥"만 남았다고 했다. 원을 길게 늘인 달걀의 모습(타원)을 그는 이렇게 말똥에 비유했던 것이다. - P138

타원의 공식을 이용하여 분석을 다시 시도했다. 그 공식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가 처음 만들어낸 식이었다. 결과는 튀코 브라헤의관측값과 완전히 일치했다. "자연의 진리가, 나의거부로 쫓겨났었지만, 인정을 받고자 겉모습을 바꾸고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왔으니… 아, 나야말로 참으로 멍청이였구나!" - P139

행성의 운동을 규정한 케플러의 첫 번째 법칙을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같다.
제1법칙. 행성은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태양은 그 타원의 초점에있다. - P140

케플러는 궤도가 아무리 심하게 찌그러진 타원이라도 이 두 넓이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행성이 태양과 멀리 있을 때의 길고 뾰족한 부채꼴의 넓이는 행성이 태양과 가까이 있을 때의 짧고 넓적한 부채꼴의 넓이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것이 행성의 운동을 규정한 케플러의 두 번째 법칙이다.
제2법칙.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은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넓이를 휩쓴다. - P141

수성이 영어로 머큐리Mercury 인데 머큐리는 본래 로마 신화에서 신들의 심부름꾼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 를 뜻하니 잽싸게 도는 수성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금성에서 지구, 화성으로 이어지면서 행성들은 차례대로 점점 더 느리게 돈다. 신들 중의 왕격인 유피테르Jupiter의 영어 이름인 주피터의 이름을 딴목성이나 사투르누스 Saturnus의 이름을 딴 토성 같은 외행성들은 그이름에 걸맞게 아주 천천히 장중하게 움직인다. - P143

케플러의 세 번째 법칙, 즉 조화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제3법칙. 행성의 주기 (행성이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를 제곱한 것은행성과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세제곱한 것에 비례한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일수록 더 천천히 움직이되, 그 관계가 수학 공식-P2=a3을 정확하게 따른다. - P143

여기서 내가 의도하는 바는, 천체의 작동기제를 논함에 있어 신이 생명을 부여한 신성한 유기 생물보다 태엽이나 추 같은 동인으로 작동하는 시계 장치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시계의 운동이 시계추단 하나에서 비롯되듯 천체들의 온갖 움직임의 거개가 극히 단순한 이 자기력 하나로 인하여 구현되는 것이다. - P145

뜬소문과 인간의 광기가 파도처럼 시골까지 덮쳐, 힘없는 자들일수록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었는데 그 와중에 혼자 사는 늙은 여인들은 마녀 사냥에 걸려들기까지 했다. - P147

"다수가 그른 길을 걷지 않는 한, 나역시 다수의 편에 서고 싶다. 그 까닭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과학을 설명해 주려고 무진 애를 쓰는 바이다." - P148

또 다른 상황에서 그는편지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수학 계산의 쳇바퀴에 저를 온종일 매어두지는 마십시오. 철학적 사색은 제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오니, 제게 사색할 여유를 허락해 주십시오." - P148

케플러가 스스로 지은 비문을 읽어 보자.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재고 있다. 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지만, 육신은 땅에 남는구나." 그러나 30년 전쟁으로 그의 묘마저 사라졌다. - P152

오늘날 케플러의 묘비가 다시 세워진다면 그의 과학적 용기를 기리는 뜻에서 이런 문장을 새겨넣으면 어떨까. "그는 마음에 드는 환상보다 냉혹한 현실의 진리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 P152

그에게는 계시로 밝혀진 신이 세가지 위격으로 존재하는삼위일체의 신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이신 유일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생각이었기에, 뉴턴은 평생토록 이 비밀을지키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 P154

그분이 연구에 얼마나 열심이셨는지 방을 비우는 적이 거의 없었고,
있다면 오로지 학기 중 강의할 때뿐이었습니다. 그분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은 얼마 없었고, 강의를 들어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이해하는 학생이 없으니 그분의 강의는 벽에다 대고하는 것이었습니다. - P156

물체가 떨어지는 일은 태초부터 있었다. 달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사실은 까마득한 옛적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현상이 같은 힘에 따라 일어난다는 엄청난 사실을 최초로 알아낸 사람이뉴턴이었다. 뉴턴의 중력 법칙을 만유인력의 법칙‘ 이라고 하는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뉴턴의 중력 법칙은 우주 어디에서나 성립하는 범우주적 성격의 보편 법칙이기 때문이다. - P157

만년에 뉴턴은 과학자들의 단체인 영국 왕립학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조폐원장 자리에도 취임하여 위조 화폐의 유통을 통제하는 데 온정성을 쏟기도 했다. 본래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뉴턴은 나이를 먹어가며 그 증상이 심해졌고 또 사람 대하기를 점점 더 꺼려 했다. - P158

뉴턴의 풀이는 그의 요구대로 익명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해결책의 뛰어남과 독창성으로 말미암아 저자의 이름이 저절로 밝혀졌다. 베르누이는 해답을 보자
"발톱 자국을 보아 하니 사자가 한 일이다."라고 평했다고 한다. 뉴턴은 그때의 나이가 55세였다. - P160

죽기 바로 전 뉴턴은 이렇게 썼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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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제안서는 값싸게 종이로 먼저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친절한 충고와 함께퇴짜를 맞았다. 케플러는 즉시 모형 제작에 들어갔다.  - P131

"이 발견 덕분에내가 느낀 환희를 나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아무리어려운 계산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설이 코페르니쿠스의 궤도와 과연 일치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즐거움이 물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고말 것인가? 나는 밤낮을 수학적 노동으로 지새웠다." - P131

당시에 행성의 겉보기 운동에 관하여 누구보다 정확한 관측 자료를 다루는 딱 한 사람 있었다. 그는 고국을 버린덴마크의 귀족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 Rudolf II의 황실 수학자로 일하고 있던튀코브라헤Tycho Brahe였다.  - P131

그를 만날 필요성을 케플러는 절감했다. 마침 튀코브라헤도그 당시 수학적 명성이 점점 커가던 케플러를 초청하면 어떻겠냐는 루돌프 2세의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튀코 브라헤는 케플러를 프라하로 불렀다. - P131

"나는 위선을 행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나의 신앙은 진지한 것이다. 나의 신앙이 농락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 P132

케플러는 튀코 브라헤가 있는 곳을 속세의 오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로 여겼다. 케플러는 그곳을 자신이 추구하던 "코스모스의 신비" 를 마침내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마음에 그리고 있었다. - P133

튀코 브라헤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35년전부터 우주의 정확하고 질서정연한 움직임을 측정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었다. - P133

케플러가 남긴 다음의 글에서 우리는 당시 그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튀코 브라헤는 비할 데 없는 부자지만 재물을 활용할 줄 모른다. 튀코브라헤가 소유한 그 어떤 기구라도 나와 내 가족의 전 재산을 합친 것보다 더 비싸다." - P133

그러나 튀코 브라헤는 숨을 거두기 전에 자신의 관측자료를 케플러에게 물려준다고 유언했다. 그리고 "마지막 밤은 가벼운혼수상태에서 시를 짓는 사람처럼 다음의 독백을 되풀이했다. ‘내 삶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가 헛된 삶을 살았다고 하지 않게 하소서!‘ - P135

케플러는 자신이 수행한 긴 계산 과정을 따라가다가 혹시 지루하다고 불평할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이런 메모를 하나 남겨 뒀다. "이 지루한 과정에 진력이 나시거든. 이런 계산을 적어도 70번 해본 저를 생각하시고 참아 주십시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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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는 그 연작에 관한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녀가 죽은이후 다락방에서 수십 점의 작품들이 같은 제목이 붙은 채로 발견되었을 뿐이다. 한때 연구자들은 그 연작을 류드밀라의 숨겨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류드밀라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남은 기록이 하나도 없었고, 곧 추측도 해석도 잊히고 말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을 주는  아름다운 세계. 비록 류드밀라는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가상의 세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 세계가 실제로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 조용히 도시락을 먹고 있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데이터, 류드밀라의 행성 같지 않아?"
"에이, 설마."

더욱 기이한 사실이 연이어 보고되었다. 그 행성은 이미 오래전 모항성의 거대 플레어 폭발에 의해 불탔고, 우주망원경이 수신한 데이터는 폭발에 휩쓸리기 직전 행성의 모습을 포착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사라진 행성을 보고 있는 겁니다. 한때 실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류드밀라의 세계를요."

"결과가 너무 이상해요. 아기들이 할 만한 생각이 아니에요."
분석된 데이터가 화면에 뜨기 시작하자 연구원들은 말문이 막혔다.

기계에 따르면 아기들의 울음은 각각 이런 의미를 가졌다.
「어떻게 하면 더 윤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다들 거기에 잘 계신가요?」
「아냐,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여기야.」

"그러니까 노이즈겠지. 노이즈가 아니라면 아기들의 울음을 해석했을 때 기껏해야 ‘배고파‘, ‘불편해‘ 정도. 그것도 제대로 된 언어보다는 어떤 감정이나 불쾌한 감각 정도로만 나타나는 게 정상일거야."

"아기들.......
"복잡하고 심오하고 철학적인 아기들."

"보시는 그대로요. 아기들의 입속말을 분석한 데이터예요. 혹시그날 기억나세요? 류드밀라의 행성이 발견된 날이요. 그런데 그때녹음된 데이터가 다 이런 식이었어요."

"무언가가 아기들의 뇌 안에 있어요."

한나가 말했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요. 이건 외부의 어떤 요인을 도입하지 않고는 설명이 안 돼요."

만약에 뇌 속의 ‘그들’이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마치 기생충이나 미생물이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전염되듯 말이다. 그들은 공기 중에 분포해 있거나, 바이러스처럼 환경에 널리 퍼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감염을 위한 최초의 접촉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 언어를 습득하기 전, 세계와 삶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기 전, 생존을 위한 욕구만 존재하는 사고 패턴을.

그러나 수빈은 다음에 일어난 일 역시 알고 있었다. 그 아기들은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 성장하지 않았다.

상자 속의 아기들은 이타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아주 이상한 가정 하나를 해보자.

수만 년 전부터 인류와 공생해온 어떤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추측이지만, 유년기 이상으로 성장한 인간에게 머무르는 것은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듯합니다. ‘떠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떠나야 한다’라는 의미의 대화가 몇 군데 있었어요."

"혹시, 유년기 기억 상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일곱 살 이후로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대부분 잊어버리잖아요."

인류 역사상 수많은 가상 세계가 창조되었지만 왜 오직 류드밀라의 행성만이 독보적이고 강렬한 흔적을 세계 곳곳에 남겼을까.

"우리에게 그들이 머물렀기 때문이겠죠."

막연하고 추상적이지만 끝내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 우리를 가르치고 돌보았던 존재들에 관한 희미한 그리움.

수빈은 순간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느낀 적 없는 무언가가 아주 그리워지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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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 편지가 네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가 떠났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이겠지. 어른들이 많이 화가 났을까. 그동안 나처럼 성년이 되기 전에 마을을 뛰쳐나온 사람은 없었으니까. 

너도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할 거야.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시초지‘로 가고 있어, 맞아. 우리가 순례를 다녀오는 그 장소를 말하는 거야.

이동선 말인데, 생각해보면 아무도 그 이상한 기계가 어떻게작동하는지를 말해준 적이 없었어. 별문제 없을 거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는 수밖에. 물론 순례 의식에 참여하는 그 누구도 겁먹은 표정을 드러낸 적은 없지. 당연하게도, 어른이 되러 가는길에 고작 낡은 기계에 겁을 먹는 건 부끄러운 일이니까.

망각. 그것은 내가 순례의식에 대해 가진 최초의 의문이기도해. 만약 내게 일기를 쓰는 습관이 없었다면 나 역시 돌아오지않은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버렸을 거야. 매년 순례의식이 끝난후 집에 돌아오면 나는 일기에 적어둔 그 질문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흔적을 되새겼어.

어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이 편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야. 동시에 왜 내가 시초지로가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지. 편지를 끝까지 읽고 나면 너도 나를 이해하게 될거야.

귀환의 마지막 절차, 대면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장식하는 데에 쓰라는 이야기였어. 그런데 왜 그중 아무도 절반이 넘게 남은 꽃다발의 의미를 말하지 않았을까.

귀환의 날을 앞두고 선생님에게 물었던 적이 있어. "혹시 순례자들은 시초지에서 험한 일을 당하는 건가요? 무서운 일이 생기나요? 그래서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요?"

선생님은 아주 귀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웃더니, "데이지, 그럴 리가있겠니?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선택을 하는 거란다. 누구도 그선택을 강요하지 않아." 하고 알 듯 모를 듯한 대답만 돌려주셨지. 험한 일 같은 건 없다는 이야기일까?

꽃다발이 내던져져 있었어. 내가 만들었던 꽃다발이라는 걸한눈에 알아봤지. 신경 써서 묶은 꽃이 이렇게 버려져 있다니.
속상한 마음에 다시 주워서 집에 꽂아두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꽃다발을 주우려고 갔는데…

거기에 누가 있었어. 버려진 꽃다발은 그 남자의 것이었어.
그는 울고 있었어.

"그게 뭐예요?"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 물건 때문에 슬프신가요?"
"나는 시초지에 두고 온 것 때문에 슬퍼."

마을로 돌아간 나는 혹시 올해 귀환자들에 대해 아느냐고 아이들에게 물었어.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돌아온 사람들은 누구이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또 누구일까? 그는 무엇을 두고왔을까? 두고 온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 건 아닐까? 혹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 중 누군가가 그가 말한
‘두고 온 것일까?

나를 포함한 아주 소수의 아이들만이,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이 있는 이유가 시초지에서의 비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했어.

"정말로 그 순례가 위험하다면,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우리를 보내겠어?"

나도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진심으로 믿었던 건 아니었어. 저 밖에 아주 무섭고 두려운곳이 있고 어른들이 우리를 그곳으로 떠민다는, 그런 상상을 하기가 괴로웠던 거야.

왜이 마을에는 어른이 적고 아이들만 이렇게 많을까?
떠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그 남자는 왜 그렇게 세상을 다 잃은 듯 울고 있었을까?

"릴리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이 도시를 만들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1년 전의  일이다."

이타사는 분리주의 정책을 고수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도심은 개조인들의 구역으로, 도시 외곽은비개조인들의 구역으로철저하게 구분되었다. 도심은 화려하고 단정하고 아름다웠고, 외곽은 버려진  이들의 세계였다. 외곽에서는 다툼과 시비가 자주 일어났다.

"릴리 다우드나는 100년도 전의 사람이야. 그리고 바로 그녀가 이 악몽 같은 세계를 만들었지."

*다음은 올리브의 음성 기록이다.
릴리 다우드나는 2035년에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다.

디엔의 정체가 릴리 다우드나라는 사실도 천천히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도 디엔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좋은 대학을 나와과학자로서의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녀가 왜 갑자기 불법 바이오해커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무성한 추측만이있을 뿐이었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릴리는 ‘처음으로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라고 쓰고 있다. 그 전까지 누구와도 연인 관계를 맺은 흔적이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던 릴리가 왜 갑자기 아이를 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릴리의 심경 변화로 보아 그녀는 오직 혼자서만 도망치는 삶에 싫증이 난 것으로 보인다.

릴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로써 나는 태어날 가치가 없었던 삶임을 증명하는가?‘

릴리는 나에게서 스스로를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원치 않았던 존재로 태어난 릴리. 세계에서 배제된 릴리. 그러나악착같이 살아남아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가능성을 입증한 릴리다우드나.

내가 마을에 살았을 때, 나는 사람들이 나의 얼룩에 관해 무어라고 흉보는 것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 나는 나의 독특한얼룩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 어떤 결점들은 결점으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델피의 올리브,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다.
그녀의 사랑은 여기에 잠들고 결실은 후에 올 것이다.‘

정말로 지구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곳이라면, 우리가 그곳에서배우게 되는 것이 오직 삶의 불행한 이면이라면, 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왜 여기가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왜 여기가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그리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를 보겠지. 우리의 원죄. 우리를 너무 사랑했던 릴리가 만든 또 다른 세계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그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 되겠지.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거야.

소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할 것이 남았어. 내가 처음으로마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던 계기, 그 오두막 뒤에 있던 귀환자 말야. 정해진 성년식보다 조금 더 빨리 지구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그 남자에게 몰래 찾아가 물었어. 혹시 지구에서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는 슬픈 진실을 말해주었지. 지구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 그의 쓸쓸한 죽음에 관해. 그가 남겼던, 행복해지라는 유언에관해.

나는 말했어. 당신의 마지막 연인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일이 있지 않겠냐고. 나는 그에게 지구로 다시 함께 가겠냐고 물었어.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소피, 이제 내가 먼저 떠나는 이유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어.
그럼 언젠가 지구에서 만나자.
그날을 고대하며,
데이지가.

"나는 최초의 조우자였지."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그 이야기를 하곤 했다.

도구의 사용, 상징언어의 존재, 사회적 상호작용…… 분명한지성의 증거.

대면은 접촉의 최종 단계였다. 원칙대로라면 지성 생명체와의접촉은 원거리에서 근거리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위험요소를 완전히 분석하고 신변의 안전을 확보한 후에야 대면 접촉을시도할 수 있다.

"그들은 영혼이 이전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진다고 믿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두 번째 루이를 만났어."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두 번째 루이는 2년 뒤에 죽었다.
며칠 뒤 세 번째 루이가 찾아왔을 때 희진은 그를 도저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정말 같은 영혼을 가졌을까? 같은 루이일까?

세 번째 루이는 이전의 루이들처럼 그림을 그렸고 희진을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했다. 세 번째 루이도 다른 무리인들보다 몸집이 작았고 팔이 두 개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전의 루이들보다 더 짧은 시간을 살다 죽었다.

희진은 루이들이 다른 무리인들에 비해 수명이 짧은 이유가희진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무리인과 지구 생명체들이 서로의 생화학적 구성을 공유한다면 희진이 가져온 수많은 지구에서의 미생물들은 그들의 신체에 치명적일 수도있었다. 그리고 그 가정은 희진을 슬프게 했다.

세 번째 루이의 장례가 예정된 날, 무리인들의 천적이 동굴 거주지를 집단으로 공격해 왔다. 희진에게는 숨거나 도망칠 곳이없었다. 루이도 없는 동굴 안에 혼자 남겨져 두려움에 떨었다.
해가 저물 때까지 공격은 계속되었다. 무리인들은 천적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번의 공격으로 많은 무리인들이 죽었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숨을 거두기 전 할머니는 연구노트의 처분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기록의 사본을 남기고, 원본은 할머니와 함께 화장했다. 찬란했던 색채들이 한 줌의 재로 모였다.
나는 할머니의 유해를 우주로 실어 보내 별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기술과 기교만존재하던 시뮬레이션 아트에 실재성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 찬사를 들을 때 류드밀라의 반응은 항상 같았다.
"당연하죠. 그 행성은 정말로 있으니까요. 저는 본 대로 그려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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