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이 편지가 네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가 떠났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이겠지. 어른들이 많이 화가 났을까. 그동안 나처럼 성년이 되기 전에 마을을 뛰쳐나온 사람은 없었으니까. 

너도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할 거야.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시초지‘로 가고 있어, 맞아. 우리가 순례를 다녀오는 그 장소를 말하는 거야.

이동선 말인데, 생각해보면 아무도 그 이상한 기계가 어떻게작동하는지를 말해준 적이 없었어. 별문제 없을 거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는 수밖에. 물론 순례 의식에 참여하는 그 누구도 겁먹은 표정을 드러낸 적은 없지. 당연하게도, 어른이 되러 가는길에 고작 낡은 기계에 겁을 먹는 건 부끄러운 일이니까.

망각. 그것은 내가 순례의식에 대해 가진 최초의 의문이기도해. 만약 내게 일기를 쓰는 습관이 없었다면 나 역시 돌아오지않은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버렸을 거야. 매년 순례의식이 끝난후 집에 돌아오면 나는 일기에 적어둔 그 질문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흔적을 되새겼어.

어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이 편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야. 동시에 왜 내가 시초지로가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지. 편지를 끝까지 읽고 나면 너도 나를 이해하게 될거야.

귀환의 마지막 절차, 대면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장식하는 데에 쓰라는 이야기였어. 그런데 왜 그중 아무도 절반이 넘게 남은 꽃다발의 의미를 말하지 않았을까.

귀환의 날을 앞두고 선생님에게 물었던 적이 있어. "혹시 순례자들은 시초지에서 험한 일을 당하는 건가요? 무서운 일이 생기나요? 그래서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요?"

선생님은 아주 귀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웃더니, "데이지, 그럴 리가있겠니?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선택을 하는 거란다. 누구도 그선택을 강요하지 않아." 하고 알 듯 모를 듯한 대답만 돌려주셨지. 험한 일 같은 건 없다는 이야기일까?

꽃다발이 내던져져 있었어. 내가 만들었던 꽃다발이라는 걸한눈에 알아봤지. 신경 써서 묶은 꽃이 이렇게 버려져 있다니.
속상한 마음에 다시 주워서 집에 꽂아두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꽃다발을 주우려고 갔는데…

거기에 누가 있었어. 버려진 꽃다발은 그 남자의 것이었어.
그는 울고 있었어.

"그게 뭐예요?"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 물건 때문에 슬프신가요?"
"나는 시초지에 두고 온 것 때문에 슬퍼."

마을로 돌아간 나는 혹시 올해 귀환자들에 대해 아느냐고 아이들에게 물었어.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돌아온 사람들은 누구이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또 누구일까? 그는 무엇을 두고왔을까? 두고 온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 건 아닐까? 혹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 중 누군가가 그가 말한
‘두고 온 것일까?

나를 포함한 아주 소수의 아이들만이,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이 있는 이유가 시초지에서의 비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했어.

"정말로 그 순례가 위험하다면,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우리를 보내겠어?"

나도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진심으로 믿었던 건 아니었어. 저 밖에 아주 무섭고 두려운곳이 있고 어른들이 우리를 그곳으로 떠민다는, 그런 상상을 하기가 괴로웠던 거야.

왜이 마을에는 어른이 적고 아이들만 이렇게 많을까?
떠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그 남자는 왜 그렇게 세상을 다 잃은 듯 울고 있었을까?

"릴리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이 도시를 만들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1년 전의  일이다."

이타사는 분리주의 정책을 고수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도심은 개조인들의 구역으로, 도시 외곽은비개조인들의 구역으로철저하게 구분되었다. 도심은 화려하고 단정하고 아름다웠고, 외곽은 버려진  이들의 세계였다. 외곽에서는 다툼과 시비가 자주 일어났다.

"릴리 다우드나는 100년도 전의 사람이야. 그리고 바로 그녀가 이 악몽 같은 세계를 만들었지."

*다음은 올리브의 음성 기록이다.
릴리 다우드나는 2035년에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다.

디엔의 정체가 릴리 다우드나라는 사실도 천천히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도 디엔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좋은 대학을 나와과학자로서의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녀가 왜 갑자기 불법 바이오해커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무성한 추측만이있을 뿐이었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릴리는 ‘처음으로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라고 쓰고 있다. 그 전까지 누구와도 연인 관계를 맺은 흔적이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던 릴리가 왜 갑자기 아이를 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릴리의 심경 변화로 보아 그녀는 오직 혼자서만 도망치는 삶에 싫증이 난 것으로 보인다.

릴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로써 나는 태어날 가치가 없었던 삶임을 증명하는가?‘

릴리는 나에게서 스스로를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원치 않았던 존재로 태어난 릴리. 세계에서 배제된 릴리. 그러나악착같이 살아남아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가능성을 입증한 릴리다우드나.

내가 마을에 살았을 때, 나는 사람들이 나의 얼룩에 관해 무어라고 흉보는 것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 나는 나의 독특한얼룩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결점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 어떤 결점들은 결점으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

‘델피의 올리브,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다.
그녀의 사랑은 여기에 잠들고 결실은 후에 올 것이다.‘

정말로 지구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곳이라면, 우리가 그곳에서배우게 되는 것이 오직 삶의 불행한 이면이라면, 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왜 여기가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왜 여기가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그리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를 보겠지. 우리의 원죄. 우리를 너무 사랑했던 릴리가 만든 또 다른 세계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그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 되겠지.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거야.

소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할 것이 남았어. 내가 처음으로마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던 계기, 그 오두막 뒤에 있던 귀환자 말야. 정해진 성년식보다 조금 더 빨리 지구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그 남자에게 몰래 찾아가 물었어. 혹시 지구에서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는 슬픈 진실을 말해주었지. 지구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 그의 쓸쓸한 죽음에 관해. 그가 남겼던, 행복해지라는 유언에관해.

나는 말했어. 당신의 마지막 연인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일이 있지 않겠냐고. 나는 그에게 지구로 다시 함께 가겠냐고 물었어.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소피, 이제 내가 먼저 떠나는 이유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어.
그럼 언젠가 지구에서 만나자.
그날을 고대하며,
데이지가.

"나는 최초의 조우자였지."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그 이야기를 하곤 했다.

도구의 사용, 상징언어의 존재, 사회적 상호작용…… 분명한지성의 증거.

대면은 접촉의 최종 단계였다. 원칙대로라면 지성 생명체와의접촉은 원거리에서 근거리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위험요소를 완전히 분석하고 신변의 안전을 확보한 후에야 대면 접촉을시도할 수 있다.

"그들은 영혼이 이전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진다고 믿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두 번째 루이를 만났어."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두 번째 루이는 2년 뒤에 죽었다.
며칠 뒤 세 번째 루이가 찾아왔을 때 희진은 그를 도저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정말 같은 영혼을 가졌을까? 같은 루이일까?

세 번째 루이는 이전의 루이들처럼 그림을 그렸고 희진을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했다. 세 번째 루이도 다른 무리인들보다 몸집이 작았고 팔이 두 개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전의 루이들보다 더 짧은 시간을 살다 죽었다.

희진은 루이들이 다른 무리인들에 비해 수명이 짧은 이유가희진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무리인과 지구 생명체들이 서로의 생화학적 구성을 공유한다면 희진이 가져온 수많은 지구에서의 미생물들은 그들의 신체에 치명적일 수도있었다. 그리고 그 가정은 희진을 슬프게 했다.

세 번째 루이의 장례가 예정된 날, 무리인들의 천적이 동굴 거주지를 집단으로 공격해 왔다. 희진에게는 숨거나 도망칠 곳이없었다. 루이도 없는 동굴 안에 혼자 남겨져 두려움에 떨었다.
해가 저물 때까지 공격은 계속되었다. 무리인들은 천적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번의 공격으로 많은 무리인들이 죽었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숨을 거두기 전 할머니는 연구노트의 처분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기록의 사본을 남기고, 원본은 할머니와 함께 화장했다. 찬란했던 색채들이 한 줌의 재로 모였다.
나는 할머니의 유해를 우주로 실어 보내 별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기술과 기교만존재하던 시뮬레이션 아트에 실재성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 찬사를 들을 때 류드밀라의 반응은 항상 같았다.
"당연하죠. 그 행성은 정말로 있으니까요. 저는 본 대로 그려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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