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언어들을 어루만졌습니다.
누구는 이런 모습을 보고 ‘활자중독자‘라는 별명으로 불러주었는데, 이제는 별명 하나 더 듣게 되었습니다.
문/장/수/집/가/ - P4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가기때문이다.
이태준 〈책〉 중- - P4

문득 내 어머님께서 뚝 꺾어주시던 그 솔가지, 달콤한 물이 쪼르르 흐르던 그 가지가 이것이 아니었던가 싶어지면서내 입속이 환해진다.
-강경애 <내가 좋아하는 솔> 중- - P4

세상에 죽음을 제도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삶을 인도하는 종교가 될 것이다.
- 홍사용 <궂은비> 중 - - P4

봄이 왔다. 가난한 방 안에 왜꼬아리 분盆 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른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盆 안에 놓인 땅 한군데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 이상 <조춘점묘〉 중- - P5

모든 욕망 버리고 눈 쌓인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수도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그런 은수자隱修子가 되고싶다.
- 최인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중 - - P5

그곳에 배치된 관리관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한국인은 비자 없이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한참 후에야 겨우 한국인은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관리관이 "네가 북한 Corée du Nord 에서 왔는지 남한Corée du Sud에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고 늘어졌다.
손봉호 <약소국민의 여권〉 중 - - P5

여행의 무게를 재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온 우리에서 처음출발할 때의 우리를 빼면 되는 것일까? 여행이 무엇인지 잘모르겠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난 여행이 무엇인지를 너무 모른다.
- 김중혁 <여행의 무게〉 중 - - P6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기타의 플랫을 계속 수건으로 닦아가며 연주했고, 드러머가 심벌을 때릴 때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물방울이 마치 폭발하듯 휘날렸다. 그 장관이 펼쳐질 때마다 관객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 하종강 <딥 퍼플을 만나다> 중 - - P6

그건 그렇다 치고, 공책은 또 뭔가. 설날 저녁에 그날 하루종일 찾아온 세배객을 차례대로 한 사람 한 사람 기억에서 떠올려 이름을 적었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권해 올리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고 다 드시고서.
- 손영목 <세배객 인명록> 중- - P6

교문 앞을 통과하는데 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한 여학생이교문에서 막 한 발을 빼고 있었다. 나의 가슴은 금강 상류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소 내가 그토록 흠모해마지않던 소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재무 <혼자서만 꺼내 보던 내 마음벽장 속의 이야기〉 중- - P7

일 년 전보다 나는 깨끗해져 있었다. 시간과 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자목련을 바라보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입영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입대까지는 석 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하얀 목련이 피고 짐을 몰랐겠는가. 너와 함께 이 세상을 건너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디밀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목련이 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 이정록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 - - P7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 P12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인 것이다. - P12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 페이지를 읽어 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 P13

이러는 나도 남의 책을 가끔 빌려 온다. 약속한 기간을 넘긴 것도 몇권 있다. 그러기에 책은 빌리는 사람도 도적이요 빌려주는 사람도 도적이란 서적 윤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일생에 천권을 빌려 보고 구백구십구권을 돌려보내고 죽는다면 그는 최우등의 성적이다. 그러나 남은 한권 때문에 도적은 도적이다.  - P13

책을 남에게 빌려만 주고 저는 남의 것을 한권도 빌리지 않기란 천권에서 구백구십구권을 돌려보내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 P13

이태준 (1904~?) 소설가 강원도 철원 출생. 호는 상허 192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조오치대학 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함. 1933년 구인회에 참가 1939년 순수문예지 《문장》을 주재하여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기여함. 광복 후 1946년에 월북함. 단편소설<오몽녀>(1925)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아무일도 없소>(1931),
<불우선생>(1932), <달밤>(1933), <손거부>(1935), <가마귀>(1936), <복덕방>(1937), <패강냉>(1938), <농군>(1939), <밤길>(1940), <돌다리>(1943) 등과 중편 「해방전후」(1946), 장편 상의 월야 (1946), 수필집 『무서록」(1944)과 문장론 문장강화(1946) 등과 사후에 이태준전집1-9』(1988), 이태준단편전집1-2」(2016) 등이 나옴. - P14

"왜 나비는 안 그려주는기요."
한다. 나는 갑자기 하하 웃고
"그러면 진작 말하지 무엇이 부끄러워."
하며 다시 옥양목 쪽을 받아 들었다.
그러나 그린 그림이 모두 나비를 그리지 못할 매화와 연화이니 처녀맘을 만족시킬 수 없어 다시 돌려주며
"이 애야, 매와 연에는 나비를 그리면 격이 아니다. 이다음 다른 꽃을 그리거든 나비를 네 소원대로 그려주마."
하고 달래었다. - P16

"그러면 그려주마. 다른 사람보고 내가 그렸다고 하지 마라."
하고 매화에다 나비 두 마리를 그려주었더니 처녀는 기쁨을 금치 못해하며 돌아갔다. 처녀가 돌아간 후 벼루를 치우며 생각하니 옥양목에라도자수만 하면 꽃 주머니라고 귀하게 여길 그들에게 격을 찾는 내가 고소되어 한참 웃었다. - P17

백신애 (1908~1939) 소설가 경상북도 영천 출생. 아명은 무잠. 호적명은 백무동,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영천 자인 공립보통학교 교원을 하다가 1930년 도일하여 니혼대학 예술과를 다님, 1932년 귀국하여 창작에 매진하다가 위장병 등의 악화로 32세에 요절함. 1929년 《조선일보》에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함. 주요 작품으로 <꺼래이>(1934), <적빈>(1934) 등 10여 편이 있음. 2007년 고향 영천에서 백신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백신애 문학제를 개최함. 사후에 (원본) 백신애전집(2015), 백신애: 한국근대문학전집』(2013), 혼명에서 백신애 중단편선(2019) 등이 나옴. - P17

‘냉면‘이란 말에 ‘평양‘이 붙어서 ‘평양냉면‘이라야 비로소 어울리는 격에 맞는 말이 되듯이 냉면은 평양에 있어 대표적인 음식이다. 언제부터이 냉면이 평양에 들어왔으며 언제부터 냉면이 평안도 사람의 입에 가장많이 기호에 맞는 음식물이 되었는지는 나 같은 무식쟁이에게는 알 수도없고 또 알려고도 아니한다. - P18

잔칫날 - 그러므로 약혼하고 편지부치는 날에서부터  예물 보내는 날, 장가가는 날, 며느리 데려오는 날, 시집가는 날, 보내는 날, 장가와서 묵는 날, 가는 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국수가 출동한다. 이 밖에 환갑날, 생일날, 제삿날, 장례날, 길사, 경사, 흉사를 물론하고 이 국수를 때로는 냉면으로 때로는 온면으로 먹어 왔다. - P19

심지어는 정월 십사일 작은 보름날 이닦기엿, 귀밝이술과 함께 수명이 국수 오리처럼 길어야 한다고 ‘명길이국수‘라 이름 지어서까지 이 냉면 먹을 기회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매 평안도 사람의 단순하고 담백한 식도락을 추상할 수 있어 흥미가 새롭다.
- P19

속이 클클한 때라든가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화풀이로 담배를 피운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런 때에 국수를먹는 사람의 심리는 평안도 태생이 아니고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박에 져서 실패한 김에 국수 한양푼을 먹었다는 말이 우리 시골에 있다. 이렇게 될 때에 이 국수는 확실히 술의 대신이다. 나같이 술잔이나 다소 할 줄 아는 사람도 속이 클클한 채 멍하니 방안에 처박혀있다간 불현듯이 냉면 생각이 나서 관철동이나 모교 다리 옆을 찾아갈때가 드물지 않다. - P19

김남천 (1911~1953) 소설가 문학비평가 평안남도 성천 출생. 아명은 김효식, 1929년 일본호세이대학에 재학 중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동경지회에 가입 이후 국내에서 카프맹원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하여 194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까지 올랐으나 1953년 휴전직후 숙청당함. 문단 활동은 1931년 희곡 <파업조정안(罷業調停案)>과 소설 <공장신문(工場新聞)>(1931), <공우회(工友會)>(1932> 등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작품을 썼고, 주요 작품으로 <남매>(1937), <처를 때리고>(1937), <소년행>(1938), <경영>(1940), 장편소설 「대학」(1939), 창작집「맥」(1947) 등이 있음. 영화와 소설관련 비평집이 다수 있음. 사후에 김남천전집 1~2(2000) 등이나옴. - P21

나의 해석은 그와 다르다. 나락이라는 것은 우리가 얼른 보기에나 생각하기에 그리 신기할 것이 없다. 한길에 금싸라기 한 개가 떨어졌다 하면그것은 집을망정 나락 한 알이 떨어졌다 하면 그것을 누가 집을 터이냐. - P24

그러나 우리가 배가 고플 때 나락은 우리를 살릴지라도 금은 우리를 살리지 못할 것이다. 나락이란 그렇게 평범하고 우스꽝스럽지마는 또는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고마운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항상 우스꽝스럽고 대수롭지 않은 것이 가장 귀하고 고마운 것이 되는 것이다. - P24

또는 단순하고 평범한 것에 항구불변의 진리가 있다. 나는 이 점에 들어서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데서 향내를 맡는다는 의미로 도향이라고 한다.  - P24

내가 만일 나락을 먹지 않고 서양사람 모양으로 밀가루로 만든 것을많이 먹는 나라에 났더라면 ‘밀 향기‘로 별호를 지었을는지도 모르지마는 조선에 난 까닭에 도향이요, 평범 단순한 것 중에 가장 인생의 절실히필요하고 또는 우리가 먹어야 산다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진리가 가장영원성이 있는 까닭에 내 별호가 도향이다. 이만하면 대개 의미가 통하여질 것 같다. - P24

나도향 (1902~1926) 소설가 서울 출생. 호는 도향 본명은 나경손 필명은 나빈 배재학당 졸업 후 경성의전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도쿄에서 고학함, 그러나 다시 중단하고 귀국함. 1922년동인지 <백조>>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나 질병으로 25세의 나이에 요절함. 주요 작품으로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등과, 장편 환희(1922), 소설집 『진정』(1923), 『청춘」 (1927)이, 사후에 나도향전집1-2」(1988), 나도향 : 한국 근대문학전집』(2014) 등이 있음. - P25

나는 조그만 범선 한 척을 바다 위에 띄웠다. 붉은 돛을 달고 바다 한복판까지 와서는 노도 젓지 않고 키도 끊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맡겨떠내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 P26

나는 뱃전에 턱을 괴고 앉아서 부유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의 운명을 생각하였다. 까닭 모르고 살아가는 내 몸에도 조만간 닥쳐올 죽음의 허무를 미리 다가 탄식하였다. - P26

서녘하늘로부터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 들어온다. 그 검은 구름장은 시름없이 떨어뜨린 내 머리 위를 덮어 누르려 한다. - P26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 P27

‘그 어린애가 잘 자라는가?‘
‘그들은 그저 그 섬 속에서 사는가?"
그 뒤로 나는 바람 부는 아침, 눈 오는 밤에 몇 번이나 베갯머리에서이름도 모르는 그 어린아이가 병 없이 자라기를 빌어 주었다. - P30

그날은 바다 위에 일점풍도 없었다. 성자의 임종과 같이 수평선 너머로 고요히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석조에 타는 붉은물결을 멀리 보며 느꼈다. 이 외로운 섬 속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속에서도 우리의 조그만 생명이 자라나고 있지 않은가. 그 어린 생명이 교목과 상록수와 같이 장성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이 쓸쓸한 우리의 등뒤가 든든해지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는가! - P31

심훈 (1901~1936) 시인 소설가. 영화인 서울 출생. 본명은 심대섭, 호는 해풍. 아명은 삼준또는 삼보 경성제일고 다니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 퇴학당함.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항저우 치장대학에서 공부함. 1923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사에 입사하고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역으로 출연. 우리나라 최초 영화소설 「탈춤」(1926)을 《동아일보》에연재하기도 함.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하여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둠. 신문사에(1928년), 경성방송국에서(1931년) 근무하다가 사상 문제로 바로퇴직함, 1932년 고향인 충남 당진으로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하다가 이듬해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사에 입사하였으나 다시 낙향함. 1936년 장티푸스로 요절함.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1930)과 불사조 (1930)를 신문에 연재하다가 일제 검열로 중단을 당함.
1932년 향리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하여 무산됨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1933)와 직녀성(1934)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고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 사후에 심훈전집1~3」(1953), 심훈문학전집(3권)』(1966), 심훈: 한국근대문학전집(2013), 심훈전집 우리가 알아야할 해풍의 모든 것(2016) 등이출간되었음. - P32

일제시대에 내가 시니 산문이니 죄그만치 썼다면 그것은 내가 최소한도의 조선인을 유지하기 위하였던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해방 덕에 이제는 최대한도로 조선인 노릇을 해야만 하는 것이겠는데어떻게 8·15 이전같이 왜소구축한 문학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이냐?
- P35

자연과 인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문학에 간여하여 본 적이 없다.
오늘날 조선 문학에 있어서 자연은 국토로 인사는 인민으로 규정된 것이다.
국토와 인민에 흥미가 없는 문학을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냐? - P35

시가 걸작이던지 태작이던지 옳은 시던지 그른 시던 지로 결정되는것이지 괴테를 순수시인이라고 추존한다면 막심 고리키 오탁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이 양 거장에 필적할 문학자가 조선에 난다면괴테는 단연코 나오지 않는다. 조선적 토양에서는 막심 고리키에 필적할만한 사람만이 위대한 것이요 또 가능성이 분명하다. - P36

시와 문학에 생활이 있고 근로가 있고 비판이 있고 투쟁과 적발이있는 것이 그것이 옳은 예술이다. - P36

"나와 골육을 논은 처나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돌 지나 넉 달도못 된 계집애도 내가 자유로 조종할 자신이 없는데 어찌 인민 전체의 생활과 복리를 좌우하고 농락까지 하는 정치에 생각이 미치겠습니까. 가정생활도 수습 못한다고 한 말도 이런 경제적이 아닌 정신적인 관점에서우러난 말입니다."
‘인민 전체의 생활과 복리를 좌우하고 농락하는 정치‘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R교수는 확실히 겸손한 선비다. - P42

정지용 (1902~1950) 시인 충청북도 옥천출생. 휘문고보와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 광복 후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함. 6·25때 납북되어 동두천부근에서 비행기 폭격에 의해 사망함. 문학활동은 휘문고보 학생 시절에 《요람》 동인으로 활동한것을 비롯하여 김영랑과 박용철을 만나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였고 유학 시절 《학조》, 《조선지광》, 《문예시대> 등과 도시샤대학 내 동인지에 여러 작품을 발표함. 1940년대 이태준과 함께 《문장지의 시부문 심사위원이 되어 많은 역량 있는 신인을 배출하기도 하는데, 박두진·조지훈·박목월 등 청록파와 이한직·박남수 등이 그들임. 저서로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등 두 권의시집과 시선집 『지선(1946) 그리고 문학독본(1948), 산문」(1949)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음, 사후 정지용시전집』(1987), 정지용전집1-2(1988), 정지용전집1-3(2015) 등이 간행되었음.
정지용문학을 기리는 행사로, 1988년 5월부터 시작한 지용제라는 문학 축제와 1989년부터 시작한 정지용문학상 시상식, 그리고 옥천 생가 옆에 건립한 정지용문학관은 2005년 5월 15일 생일에 맞추어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 P44

가을의 누이, 김기림 (시인)
누이야 너는 오늘은 무엇을 하고 있니? 강가의 수수밭에서 까마귀들이 수까마귀처럼 흩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니? 겨울이 허둥지둥강면으로 썰매를 타고 오기 전에 그들의 기름진 슬픔을 묻을 데를 찾아서 산 모록 수풀로 날아가는 것을 바래 보내고 있니? 까마귀의 검은 얼굴은 겨울을 부끄러워한다더라. - P45

김기림 (1908~?) 시인 문학평론가 함경북도 학생 출생. 본명 김인손, 호는 편석촌, 1933년구인회에 참가. 일본 유학 후 신문사 기자, 영어 교사로 근무함. 1945년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가담하였으나 월남하여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즈음에 탈퇴 전향함. 서울대학교 조교수로 강의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를 모름. 1930년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및 주지주의에 관한평론발표함.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등과 몇 편의 소설이 있음. 저서로 시론」(1947), 문장론(1949), 시의 이해(1950) 등과 사후에 김기림전집1-6(1988), (원본)김기림시전집(2014) 등이 나옴. - P46

효조(曉鳥), 계용묵 (소설가)
이런 이야기를 누가 한다.
명필 추사의 선생 조광진이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니, 잠자리에서 갓 깨어 일어난 참새들이 뜰 앞 나뭇가지에서 재재거리는 소리에그만 필흥이 일어나, 저도 모르게 필묵을 베풀어 새벽 새라고 ‘효조‘ 이자를 제물에 써버렸다. - P47

그것이 자기의 글씨인데 조자의 치킴이 되지를 않아서 내어버렸던것으로 지금 보아도 그게 마음에 거슬리어 붓을 좀 넣어 본 것이라고 하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주인은 어성을 높이어 하는 말이, 당신은 글씨를쓸 줄만 알고 볼 줄은 모른다고 하면서, 효조라면 새벽 새일 테니 잠자리에서 갓 깨어 나온 새가 무슨 흥이 있어서 꼬리가 올라가랴 언제나보아도 새벽 새는 꼬리를 처뜨리고 우는 법이라, 자기가 이 글씨에 고가를 주고 사다가 머리맡에 걸고 사랑하는 것도 그 ‘효조‘라는 데 있어 조자의 치킴을 용하게 처뜨린 데 가치를 찾았던 것으로 인제 아까운 글씨를 버렸다고 하면서 떼어 던지더라는 것이다. - P48

계용묵 (1904~1961) 소설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일본 도요대학에서 수학하다가 중퇴하고조선일보사 등에서 근무함. 1925년 5월 《조선문단》 제8호에 단편 <상환>으로 등단한 이래 40여편의 단편을 남겼음. 1935년 《조선문단>에 <백치아다다>를 발표하였고, 작품집으로 병풍에 그린 닭이(1944), 『백치아다다」(1945) 별을헨다」(1950) 외에 수필집 상아탑(1955) 등과 사후에계용묵전집1-2」(2004) 이 있음. - P50

작년 봄 내가 한 달포를 두고 몹시 앓았을 때 의사를 찾아가니 그 말이돌아오는 가을을 넘기기가 어렵다 했다. 말하자면 요양을 잘한대도 위험하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맘껏 먹었다. 연일 철야로 원고와 다투었다. 이러고도 그 가을을 무사히 넘기고 그 다음 가을, 즉 올 가을을 앞에두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학도 얼마만치 농담임을 알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의 몸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이라야 다만 나는 온순히 그 앞에 머리를 숙일 것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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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망가진다는 말은 역겹지만 실제로 이렇게쇼조를 눈앞에서 보니 수긍되는 부분이 있었다. 노쇠하다는 건 성숙이 아니라 고장나고 풍화되어가는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오는 늙음이어째서 이렇게 다를까. 쌓은 덕의 차이일까, 경제적격차 때문인가 아니면 전생이 얽혀 있나.

2005년 현재, 치매를 일으키는 메커니즘은 아직해명되지 않았다. 알츠하이머형의 치매는 뇌에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축적되어 정상적인 뇌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라지만, 베타 아밀로이드가 왜 축적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애초부터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너무 커서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치매에 걸리느냐 걸리지 않느냐는 홀짝도박 같은 측면이 있어서 겐타로와 시즈카도 예외가아니다.

"그렇지. 아이가 나쁜 짓을 하는 걸 발견했을 때괜히 이해하는 척하지 말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심하게 야단을 쳐야 해. 도둑질한 그 자리에서 혼을 내야 효과도 있어. 만약 쇼조씨눈에 띄지 않았다면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그래서 쇼조 씨를 도우려고……….."
"나 대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야단쳐 주었어. 은의를 생각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실례라고? 웃기지 마라, 나는 옛날부터 어디에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몰상식한 남자야.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나."

순식간에 구니히코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몰상식하면 네놈은 뭐냐. 듣자 하니 연금지급일인 매달 15일에 쇼조 씨 대리인으로 우체국에 간다고 들었다. 아버지 돈을 슬쩍하고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쪽이 훨씬 염치가 없지 않냐."

갑자기 구니히코 부부의 표정이 환해졌다.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결국 겐타로가 원하는 대로 억지로개조하는 것이지만, 철저히 비난받고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앞선 조건보다 한발 물러난 조건이 마찬가지로 그다지 좋지 않아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상투적인 사기수법이다.

사람 수만큼 행복이 있고 가정 수만큼 불행이 있는 것은 알지만 인생의 종착역이 슬슬 눈앞에 나타나면 아무래도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자문하게 된다.

"좀 더 원만하게 썼으면 좋을 것을. 꿩도 울지 않으면 총을 맞지 않는다는 속담도 모르나."
*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면 재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

"요즘 아스팔트는 크게 나눠서 보수성, 배수성性, 투수성 이렇게 세 종류가 있어. 즉 물이 고이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나뉘지. 보수성은 1제곱미터당 5리터의 물을 표층 내에 모을수 있어. 배수성은 알이 굵은 아스팔트로 경사를 만들어 물을 그대로 도랑으로 흘러보내지. 물이 고이기 어려우니까 비가 와도 걷기 쉽다는 이점이 있어.
투수성은 땅속까지 직접 빗물이 스며들게 하니까 배수수단이 필요없어. 보게나, 빗물이노상까지 스며들었으니 꽤 젖어 있지 않은가."
겐타로 말대로 아스팔트를 벗긴 노상 부분은 많은물을 빨아들여 진흙처럼 되어 있다. 요 며칠 밀어닥친 한파의 영향으로 아스팔트 바로 아래는 서리가내린 듯 하얗다.

마을을 만드는 것도 부수는 것도 같은 사람이 한다는사실에 허무함을 느꼈다.

그의 발언은 대체로 옳다. 소년 범죄는 그 잔혹성에 주목하는 편이라 빈발하는 듯 보이지만요수십년 검거 수는 감소하고 있다. 역시 고령자 검거 수가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특필해야 한다. 게다가 이런 범죄는 가정과 병원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이제는 개인의 성품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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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부터 이 나라는 늙는 것, 약해지는 것을 악덕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을까. 예전이라면 나이를 먹는다는건 성숙의 증거이고 약해지는 건 비호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근래 10년 동안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약육강식도 아니고 이제 경제력과 지위라는 뒷배가 없으면 안심하고 나이를 먹지도 병에 걸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서장이 면목 없다는 듯 변명하지만 그런 사정을 시즈카도 모르지 않는다. 지쿠사 경찰서뿐만 아니라 어느 교도소,
유치장도 노인으로 한가득이다. 가벼운 죄부터 무거운 죄까지 모조리 노인이 차지하고 있다. 현역 판사 시절, 그리고 퇴직 후에도 몇 번인가 수용 시설을 시찰했지만 방문할 때마다 노인 죄수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자주 한탄했다.
이런 노인 죄수는 교도소 바깥세상보다 담장 안이 살기 편하기 때문에 갱생하기 어렵다. 출소해도 바로 또 죄를 짓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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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건 대부분 울적한 것이야."
유감스럽지만 시즈카도 반론할 여지가 없었다. 선은 어렵고 악은 쉽다 판사로 일했던 40년 세월 동안 뼈저리게느꼈다. 정의를 따르는 데는 귀찮은 수속과 각오가 필요한데 악행을 하는 데는 아무런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 한순간 양심에 뚜껑을 닫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사람의 마음도 제도도 마찬가지다.

하여튼 사람은 계급을 만들고 싶어 한다. 자기 아래에 다른 사람을 놓고 싶어 한다. 수입의 많고 적음도 사회적 지위와도 관계없는, 어쩌면 사람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통역하면 세계화, 지구 규모화라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나라와 나라 사이를 가로막던 구조와 법률이 철폐되고사람 · 물건 · 돈이 국경을 넘어 찾아오는데 이는 꿈도 미래 이야기도 아닌 2005년 현재 시작된 일입니다. 쉽게 말해외국 기업체가 일본 시장에 진출하거나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난 것 등입니다. 장벽이 없어지면 균일화가 진행되어나라와 지역마다 격차가 없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당연히 단점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싼 노동력이 흘러들어오기때문에 젊은 층의 취업 사정이 악화하는 것입니다. 한편 고령자 쪽은 연금 제도가 파탄 나지 않는 한, 현역 때 벌었던 금액 이상의 연금을 받기 때문에 가장 유복한 세대가 되리라고 예상됩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든 악당은 돈이 많은 곳을 노리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한 군데에 봉을 모아놓고 고사카이가 열변을 토한다. 우스이의 증언을 생각하면 추임새를 넣거나 회장을들뜨게 만드는 바람잡이도 섞여 있었겠지. 요컨대 영감 상법"을 응용한 것인데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노인이 앞다퉈 먹이에 달려든다.
* 상품이나 서비스에 영험한 힘이 있다고 속이고 파는 상술.

사기죄 구성 요건은 기망→착오→교부(처분) 행위→재산의 이동이라는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안건의 경우,우선 문제는 기망에서 착오의 단계로, 투자 어드바이저인 고사카이의 기망을 증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틀림없이 고사카이도 사기 그룹의 한 사람이겠지만 ‘시니어 서포트 주식회사 상장 준비실‘에서 설명을 의뢰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하면 입증은 어렵다. 게다가 업적 악화와 분식결산 사이의 인과 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어서 기업이사기 행위를 저질렀다고 입증하기 힘들다. 모두에게 보여준 자료는 ‘시니어 서포트‘ 측에서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고사카이 자신도 피해자가 된다.

속은 쪽에도 책임이 있다.
남에게 의지하려고 하지 마라.
물론 그것도 사고방식의 하나이지만 시즈카는 이에 완전히 동의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왜냐하면 그건 법의정신을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헌법은 인권을 인정하고 법률이 그 확대를 억제한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있다.건강한 자보다 병든 자를, 부자보다 가난한 자를, 그리고 강자보다 약자를 돕는다.

법이 약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기에 나는 여자면서 판사를 목표로 했다. 여성의 위치가 지금만큼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였기에 더욱 그랬다. 판사 임명을 받았을 때도 정당함보다 상냥함을 우선으로 하는 재판관이 되자고 결심했다. 엄격하고 준엄하더라도 마음속에 확실한 조리만 있으면 상냥함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노인이 울고 있다. 불합리와 악랄과 기댈 곳이 없음에 분노해 비관하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어떻게 법조계에 몸을 담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빠른 사람이 임자라든가, 투자가인 당신들에게만이라든가, 요컨대 자신은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쉽게 걸려들지. 다른 사람이 어떻든 자신만 이익을 보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꼬임에 빠지는 거야. 본래 몇백 만,
몇천 만 엔이라는 돈은 말라서 더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일해야 얻을 수 있는 금액이야. 그걸 그저 자고 일어난 것만으로 손에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시점에서 나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해."

적어도 재판관 자리에서 본 경험과 비교해 보면 사기 피해자는 대개 자신을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명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당연히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사기꾼에게 그런 사람만큼 알맞은 사냥감은 없다. ‘묘하게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 쉽다‘라고 사기 상습범에게 여러번 들은 적이 있다.

타인보다 현명하니까 자신은 그들보다 대접을 더 받아야 한다. 그래서 뜻밖의 행운도 선민의식도 당연하다 옆에서 보면 웃음이 나오는 이론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존재 의식이 된다.

"그렇지만, 겐타로 씨. 그것도 역시 강자의 논리예요. 궁지에 빠진 쥐도 고양이를 물어요. 학대당한 사람, 궁지에몰린 사람이 역습하는 것은 본능일지도 몰라요. 천성까지 법률로 판가름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일리 있는 말이군. 하지만 시즈카 씨. 전에 어느 법률가에게 들었는데, 재판은 범죄 행위를 판가름하는 것이지 죄를 저지른 사람의 마음을 판가름하는 건 아니라더군."
"맞아요. 법률은 사람 마음을 제어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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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을 겪었기 때문에 간혹 의주로 피란한무능한 임금으로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조는 문예를 아끼고 키운 인문군주였다.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펴내게 지시하며 왕실 소장본까지 내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한석봉을 만년에 조용한 곳으로 가서편안히 작품활동 많이 하라며 한적인 가평군수로 내려보낸 것도 감동적이다. 또 율곡 이이에게는 매월당 김시습 전기를 지어오라고 명하기도했다. 그래서 영·정조 시대 문인들은 선조의 치세를 일컬어 그의 능이름을 따서 ‘목릉성세(穆陵盛世)‘라고 칭송했다.  풀이하자면 선조대왕 문예부흥기라는 뜻으로 명문이 나오면 ‘목릉성세에도 이런 문장은 없었다‘라며 칭송하곤 했다. - P279

동의보감의 편찬 원칙
허준은 『동의보감』 편찬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병을 고치기에 앞서 수명을 늘리고 병에 안 걸리도록 하는 방법을 중요시한다. 둘째, 처방은 요점만을  간추린다. 셋째,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약초 이름에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쓴다는 것이었다. - P279

책이 완성되어 광해군에게 바치자 광해군은 출판을 서두르게 하여광해군 5년(1613) 에 개주 갑인자(甲) 목활자로 출간되었다. 이때 허준의 나이 76세였다. 내의원에서 펴낸 『동의보감』 초간본 중 보존상태가 좋은 3종(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 서울대 규장각소장본)은 국보 제319호로 지정되었다. - P281

이 책을 완성한 뒤 허준은 칠순을 넘긴 고령임에도 끊임없이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의서를 펴냈다. 그것이 온역(疫, 급성 전염병으로티푸스로 추정된다고 함)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신찬 벽온방과 성홍열에대한 처방책인 『역신방(辟疫神方)』이다.  그리고 1615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동의보감」이 완성되고 5년 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광해군은 그에게 보국숭록대부라는 칭호를 내렸다. - P281

허준의 묘는 임진강을 굽어보는 파주 진동면에 자리 잡았다. 민통선가까이 있어 오랫동안 방치되던 것을 군 당국 협조로 새 단장을 했고1992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했다. - P281

고양군, 오늘날 서울 중랑구 망우동과 구리시 교문동 경계에 있는 이 산이 망우산(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묫자리 (동구릉의 건원릉)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언덕에 올라 이제 나는 ‘근심을 잊게 됐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 P286

그러나 이에 대한 전거를 보면 비슷하지만 상황 설명이 약간 다르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9년(1683)  3월 25일 기사에 태조의 존호를 올리는대신들의 논의 중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태조께서는 자손들이 뒤따라 장사 지낼 곳이 20개소에 이를 정도로 많게 된다면 내가 이제부터 근심을 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곳(동구릉)의 가장 서쪽 한 가닥의 산봉우리를 이름하여 망우리(忘憂里)라  하였습니다. - P286

종친 1품은 사방 100보로 하고 이하 10보씩 줄여 문무관 1 품은 사방 90보, 문무관 2품은 사방 80보, 문무관 3품은 사방 70보, 문무관4품은 사방 60보, 문무관 5품은 사방 50보, 문무관 6품 이하 및 생원 · 진사는 사방 40보 - P291

일찍이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누추한 서재를 읊은 누실명(陋室銘)」에서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산은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요
물은 깊지 않더라도 용이 살면 신령스럽다

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有龍則靈 - P295

1. 불굴의 애국지사 묘역: 한용운 · 오세창 · 방정환 등
2. 찬란한 문학 위인 묘역 : 계용묵 · 김말봉 · 박인환 등
3. 생생한 역사 위인 묘역: 장덕수 · 조봉암 · 지석영 등
4. 감동의 예술 위인 묘역 : 이중섭,이인성 · 권진규·차중락 등 - P301

10월 12일 이화학당은 유관순의 시신을 인수해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14일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그런데 1935년에 이태원공동묘지 전체가 망우리로 이장할 때 무연고 묘로 분류되면서 여기에합장된 것이다.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때 순국했고 유관순 열사의 후손이 있을 수 없어 무연고 묘가 되었던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넋을 우리가 이렇게밖에 기릴 수 없게 되었다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 P304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1962년에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2019년에는 1등 서훈인 대한민국장으로 승격 추서되었으며 중랑구에서 매년 기일인 9월 28일에 추모식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 P304

나에게 이중섭을 한마디로 소개하라면 ‘그리움의 화가‘라고 하겠다.
인간 누구나 품고 있는 그리움의 감정을 이중섭처럼 가슴 저미게 형상화한 화가는 드물다. 이중섭의 <황소> <달과 까마귀> <매화> 그리고수많은 은지화(紙) 모두 그리움의 감정으로 읽으면 그의 예술이 더욱 절절히 다가올 것이다. 시에 소원이 있다면 그림에 이중섭이 있다. - P311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 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 P317

겨울밤에 오는 눈은 어머님 소식
혼자 누운 들창이 바삭 바삭
잘 자느냐 잘 크느냐 묻는 소리에
잠 못 자고 내다보면 눈물 납니다 - P341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웃지요.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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