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을 겪었기 때문에 간혹 의주로 피란한무능한 임금으로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조는 문예를 아끼고 키운 인문군주였다.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펴내게 지시하며 왕실 소장본까지 내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한석봉을 만년에 조용한 곳으로 가서편안히 작품활동 많이 하라며 한적인 가평군수로 내려보낸 것도 감동적이다. 또 율곡 이이에게는 매월당 김시습 전기를 지어오라고 명하기도했다. 그래서 영·정조 시대 문인들은 선조의 치세를 일컬어 그의 능이름을 따서 ‘목릉성세(穆陵盛世)‘라고 칭송했다.  풀이하자면 선조대왕 문예부흥기라는 뜻으로 명문이 나오면 ‘목릉성세에도 이런 문장은 없었다‘라며 칭송하곤 했다. - P279

동의보감의 편찬 원칙
허준은 『동의보감』 편찬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병을 고치기에 앞서 수명을 늘리고 병에 안 걸리도록 하는 방법을 중요시한다. 둘째, 처방은 요점만을  간추린다. 셋째,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약초 이름에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쓴다는 것이었다. - P279

책이 완성되어 광해군에게 바치자 광해군은 출판을 서두르게 하여광해군 5년(1613) 에 개주 갑인자(甲) 목활자로 출간되었다. 이때 허준의 나이 76세였다. 내의원에서 펴낸 『동의보감』 초간본 중 보존상태가 좋은 3종(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 서울대 규장각소장본)은 국보 제319호로 지정되었다. - P281

이 책을 완성한 뒤 허준은 칠순을 넘긴 고령임에도 끊임없이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의서를 펴냈다. 그것이 온역(疫, 급성 전염병으로티푸스로 추정된다고 함)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신찬 벽온방과 성홍열에대한 처방책인 『역신방(辟疫神方)』이다.  그리고 1615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동의보감」이 완성되고 5년 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광해군은 그에게 보국숭록대부라는 칭호를 내렸다. - P281

허준의 묘는 임진강을 굽어보는 파주 진동면에 자리 잡았다. 민통선가까이 있어 오랫동안 방치되던 것을 군 당국 협조로 새 단장을 했고1992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했다. - P281

고양군, 오늘날 서울 중랑구 망우동과 구리시 교문동 경계에 있는 이 산이 망우산(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묫자리 (동구릉의 건원릉)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언덕에 올라 이제 나는 ‘근심을 잊게 됐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 P286

그러나 이에 대한 전거를 보면 비슷하지만 상황 설명이 약간 다르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9년(1683)  3월 25일 기사에 태조의 존호를 올리는대신들의 논의 중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태조께서는 자손들이 뒤따라 장사 지낼 곳이 20개소에 이를 정도로 많게 된다면 내가 이제부터 근심을 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곳(동구릉)의 가장 서쪽 한 가닥의 산봉우리를 이름하여 망우리(忘憂里)라  하였습니다. - P286

종친 1품은 사방 100보로 하고 이하 10보씩 줄여 문무관 1 품은 사방 90보, 문무관 2품은 사방 80보, 문무관 3품은 사방 70보, 문무관4품은 사방 60보, 문무관 5품은 사방 50보, 문무관 6품 이하 및 생원 · 진사는 사방 40보 - P291

일찍이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누추한 서재를 읊은 누실명(陋室銘)」에서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산은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명산이요
물은 깊지 않더라도 용이 살면 신령스럽다

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有龍則靈 - P295

1. 불굴의 애국지사 묘역: 한용운 · 오세창 · 방정환 등
2. 찬란한 문학 위인 묘역 : 계용묵 · 김말봉 · 박인환 등
3. 생생한 역사 위인 묘역: 장덕수 · 조봉암 · 지석영 등
4. 감동의 예술 위인 묘역 : 이중섭,이인성 · 권진규·차중락 등 - P301

10월 12일 이화학당은 유관순의 시신을 인수해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14일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그런데 1935년에 이태원공동묘지 전체가 망우리로 이장할 때 무연고 묘로 분류되면서 여기에합장된 것이다.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때 순국했고 유관순 열사의 후손이 있을 수 없어 무연고 묘가 되었던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넋을 우리가 이렇게밖에 기릴 수 없게 되었다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 P304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1962년에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2019년에는 1등 서훈인 대한민국장으로 승격 추서되었으며 중랑구에서 매년 기일인 9월 28일에 추모식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 P304

나에게 이중섭을 한마디로 소개하라면 ‘그리움의 화가‘라고 하겠다.
인간 누구나 품고 있는 그리움의 감정을 이중섭처럼 가슴 저미게 형상화한 화가는 드물다. 이중섭의 <황소> <달과 까마귀> <매화> 그리고수많은 은지화(紙) 모두 그리움의 감정으로 읽으면 그의 예술이 더욱 절절히 다가올 것이다. 시에 소원이 있다면 그림에 이중섭이 있다. - P311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 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 P317

겨울밤에 오는 눈은 어머님 소식
혼자 누운 들창이 바삭 바삭
잘 자느냐 잘 크느냐 묻는 소리에
잠 못 자고 내다보면 눈물 납니다 - P341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웃지요.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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