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언어들을 어루만졌습니다. 누구는 이런 모습을 보고 ‘활자중독자‘라는 별명으로 불러주었는데, 이제는 별명 하나 더 듣게 되었습니다. 문/장/수/집/가/ - P4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가기때문이다. 이태준 〈책〉 중- - P4
문득 내 어머님께서 뚝 꺾어주시던 그 솔가지, 달콤한 물이 쪼르르 흐르던 그 가지가 이것이 아니었던가 싶어지면서내 입속이 환해진다. -강경애 <내가 좋아하는 솔> 중- - P4
세상에 죽음을 제도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삶을 인도하는 종교가 될 것이다. - 홍사용 <궂은비> 중 - - P4
봄이 왔다. 가난한 방 안에 왜꼬아리 분盆 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른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盆 안에 놓인 땅 한군데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 이상 <조춘점묘〉 중- - P5
모든 욕망 버리고 눈 쌓인 히말라야의 설산으로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수도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그런 은수자隱修子가 되고싶다. - 최인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중 - - P5
그곳에 배치된 관리관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한국인은 비자 없이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한참 후에야 겨우 한국인은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관리관이 "네가 북한 Corée du Nord 에서 왔는지 남한Corée du Sud에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고 늘어졌다. 손봉호 <약소국민의 여권〉 중 - - P5
여행의 무게를 재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온 우리에서 처음출발할 때의 우리를 빼면 되는 것일까? 여행이 무엇인지 잘모르겠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난 여행이 무엇인지를 너무 모른다. - 김중혁 <여행의 무게〉 중 - - P6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기타의 플랫을 계속 수건으로 닦아가며 연주했고, 드러머가 심벌을 때릴 때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물방울이 마치 폭발하듯 휘날렸다. 그 장관이 펼쳐질 때마다 관객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 하종강 <딥 퍼플을 만나다> 중 - - P6
그건 그렇다 치고, 공책은 또 뭔가. 설날 저녁에 그날 하루종일 찾아온 세배객을 차례대로 한 사람 한 사람 기억에서 떠올려 이름을 적었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권해 올리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고 다 드시고서. - 손영목 <세배객 인명록> 중- - P6
교문 앞을 통과하는데 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한 여학생이교문에서 막 한 발을 빼고 있었다. 나의 가슴은 금강 상류로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평소 내가 그토록 흠모해마지않던 소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재무 <혼자서만 꺼내 보던 내 마음벽장 속의 이야기〉 중- - P7
일 년 전보다 나는 깨끗해져 있었다. 시간과 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자목련을 바라보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입영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입대까지는 석 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하얀 목련이 피고 짐을 몰랐겠는가. 너와 함께 이 세상을 건너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디밀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목련이 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 이정록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 - - P7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 P12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인 것이다. - P12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 페이지를 읽어 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 P13
이러는 나도 남의 책을 가끔 빌려 온다. 약속한 기간을 넘긴 것도 몇권 있다. 그러기에 책은 빌리는 사람도 도적이요 빌려주는 사람도 도적이란 서적 윤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일생에 천권을 빌려 보고 구백구십구권을 돌려보내고 죽는다면 그는 최우등의 성적이다. 그러나 남은 한권 때문에 도적은 도적이다. - P13
책을 남에게 빌려만 주고 저는 남의 것을 한권도 빌리지 않기란 천권에서 구백구십구권을 돌려보내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 P13
이태준 (1904~?) 소설가 강원도 철원 출생. 호는 상허 192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조오치대학 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함. 1933년 구인회에 참가 1939년 순수문예지 《문장》을 주재하여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기여함. 광복 후 1946년에 월북함. 단편소설<오몽녀>(1925)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아무일도 없소>(1931), <불우선생>(1932), <달밤>(1933), <손거부>(1935), <가마귀>(1936), <복덕방>(1937), <패강냉>(1938), <농군>(1939), <밤길>(1940), <돌다리>(1943) 등과 중편 「해방전후」(1946), 장편 상의 월야 (1946), 수필집 『무서록」(1944)과 문장론 문장강화(1946) 등과 사후에 이태준전집1-9』(1988), 이태준단편전집1-2」(2016) 등이 나옴. - P14
"왜 나비는 안 그려주는기요." 한다. 나는 갑자기 하하 웃고 "그러면 진작 말하지 무엇이 부끄러워." 하며 다시 옥양목 쪽을 받아 들었다. 그러나 그린 그림이 모두 나비를 그리지 못할 매화와 연화이니 처녀맘을 만족시킬 수 없어 다시 돌려주며 "이 애야, 매와 연에는 나비를 그리면 격이 아니다. 이다음 다른 꽃을 그리거든 나비를 네 소원대로 그려주마." 하고 달래었다. - P16
"그러면 그려주마. 다른 사람보고 내가 그렸다고 하지 마라." 하고 매화에다 나비 두 마리를 그려주었더니 처녀는 기쁨을 금치 못해하며 돌아갔다. 처녀가 돌아간 후 벼루를 치우며 생각하니 옥양목에라도자수만 하면 꽃 주머니라고 귀하게 여길 그들에게 격을 찾는 내가 고소되어 한참 웃었다. - P17
백신애 (1908~1939) 소설가 경상북도 영천 출생. 아명은 무잠. 호적명은 백무동,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영천 자인 공립보통학교 교원을 하다가 1930년 도일하여 니혼대학 예술과를 다님, 1932년 귀국하여 창작에 매진하다가 위장병 등의 악화로 32세에 요절함. 1929년 《조선일보》에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함. 주요 작품으로 <꺼래이>(1934), <적빈>(1934) 등 10여 편이 있음. 2007년 고향 영천에서 백신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백신애 문학제를 개최함. 사후에 (원본) 백신애전집(2015), 백신애: 한국근대문학전집』(2013), 혼명에서 백신애 중단편선(2019) 등이 나옴. - P17
‘냉면‘이란 말에 ‘평양‘이 붙어서 ‘평양냉면‘이라야 비로소 어울리는 격에 맞는 말이 되듯이 냉면은 평양에 있어 대표적인 음식이다. 언제부터이 냉면이 평양에 들어왔으며 언제부터 냉면이 평안도 사람의 입에 가장많이 기호에 맞는 음식물이 되었는지는 나 같은 무식쟁이에게는 알 수도없고 또 알려고도 아니한다. - P18
잔칫날 - 그러므로 약혼하고 편지부치는 날에서부터 예물 보내는 날, 장가가는 날, 며느리 데려오는 날, 시집가는 날, 보내는 날, 장가와서 묵는 날, 가는 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국수가 출동한다. 이 밖에 환갑날, 생일날, 제삿날, 장례날, 길사, 경사, 흉사를 물론하고 이 국수를 때로는 냉면으로 때로는 온면으로 먹어 왔다. - P19
심지어는 정월 십사일 작은 보름날 이닦기엿, 귀밝이술과 함께 수명이 국수 오리처럼 길어야 한다고 ‘명길이국수‘라 이름 지어서까지 이 냉면 먹을 기회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매 평안도 사람의 단순하고 담백한 식도락을 추상할 수 있어 흥미가 새롭다. - P19
속이 클클한 때라든가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화풀이로 담배를 피운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런 때에 국수를먹는 사람의 심리는 평안도 태생이 아니고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박에 져서 실패한 김에 국수 한양푼을 먹었다는 말이 우리 시골에 있다. 이렇게 될 때에 이 국수는 확실히 술의 대신이다. 나같이 술잔이나 다소 할 줄 아는 사람도 속이 클클한 채 멍하니 방안에 처박혀있다간 불현듯이 냉면 생각이 나서 관철동이나 모교 다리 옆을 찾아갈때가 드물지 않다. - P19
김남천 (1911~1953) 소설가 문학비평가 평안남도 성천 출생. 아명은 김효식, 1929년 일본호세이대학에 재학 중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동경지회에 가입 이후 국내에서 카프맹원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하여 194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까지 올랐으나 1953년 휴전직후 숙청당함. 문단 활동은 1931년 희곡 <파업조정안(罷業調停案)>과 소설 <공장신문(工場新聞)>(1931), <공우회(工友會)>(1932> 등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작품을 썼고, 주요 작품으로 <남매>(1937), <처를 때리고>(1937), <소년행>(1938), <경영>(1940), 장편소설 「대학」(1939), 창작집「맥」(1947) 등이 있음. 영화와 소설관련 비평집이 다수 있음. 사후에 김남천전집 1~2(2000) 등이나옴. - P21
나의 해석은 그와 다르다. 나락이라는 것은 우리가 얼른 보기에나 생각하기에 그리 신기할 것이 없다. 한길에 금싸라기 한 개가 떨어졌다 하면그것은 집을망정 나락 한 알이 떨어졌다 하면 그것을 누가 집을 터이냐. - P24
그러나 우리가 배가 고플 때 나락은 우리를 살릴지라도 금은 우리를 살리지 못할 것이다. 나락이란 그렇게 평범하고 우스꽝스럽지마는 또는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고마운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항상 우스꽝스럽고 대수롭지 않은 것이 가장 귀하고 고마운 것이 되는 것이다. - P24
또는 단순하고 평범한 것에 항구불변의 진리가 있다. 나는 이 점에 들어서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데서 향내를 맡는다는 의미로 도향이라고 한다. - P24
내가 만일 나락을 먹지 않고 서양사람 모양으로 밀가루로 만든 것을많이 먹는 나라에 났더라면 ‘밀 향기‘로 별호를 지었을는지도 모르지마는 조선에 난 까닭에 도향이요, 평범 단순한 것 중에 가장 인생의 절실히필요하고 또는 우리가 먹어야 산다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진리가 가장영원성이 있는 까닭에 내 별호가 도향이다. 이만하면 대개 의미가 통하여질 것 같다. - P24
나도향 (1902~1926) 소설가 서울 출생. 호는 도향 본명은 나경손 필명은 나빈 배재학당 졸업 후 경성의전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도쿄에서 고학함, 그러나 다시 중단하고 귀국함. 1922년동인지 <백조>>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나 질병으로 25세의 나이에 요절함. 주요 작품으로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등과, 장편 환희(1922), 소설집 『진정』(1923), 『청춘」 (1927)이, 사후에 나도향전집1-2」(1988), 나도향 : 한국 근대문학전집』(2014) 등이 있음. - P25
나는 조그만 범선 한 척을 바다 위에 띄웠다. 붉은 돛을 달고 바다 한복판까지 와서는 노도 젓지 않고 키도 끊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맡겨떠내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 P26
나는 뱃전에 턱을 괴고 앉아서 부유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의 운명을 생각하였다. 까닭 모르고 살아가는 내 몸에도 조만간 닥쳐올 죽음의 허무를 미리 다가 탄식하였다. - P26
서녘하늘로부터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 들어온다. 그 검은 구름장은 시름없이 떨어뜨린 내 머리 위를 덮어 누르려 한다. - P26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 P27
‘그 어린애가 잘 자라는가?‘ ‘그들은 그저 그 섬 속에서 사는가?" 그 뒤로 나는 바람 부는 아침, 눈 오는 밤에 몇 번이나 베갯머리에서이름도 모르는 그 어린아이가 병 없이 자라기를 빌어 주었다. - P30
그날은 바다 위에 일점풍도 없었다. 성자의 임종과 같이 수평선 너머로 고요히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석조에 타는 붉은물결을 멀리 보며 느꼈다. 이 외로운 섬 속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속에서도 우리의 조그만 생명이 자라나고 있지 않은가. 그 어린 생명이 교목과 상록수와 같이 장성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이 쓸쓸한 우리의 등뒤가 든든해지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는가! - P31
심훈 (1901~1936) 시인 소설가. 영화인 서울 출생. 본명은 심대섭, 호는 해풍. 아명은 삼준또는 삼보 경성제일고 다니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 퇴학당함.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항저우 치장대학에서 공부함. 1923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사에 입사하고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역으로 출연. 우리나라 최초 영화소설 「탈춤」(1926)을 《동아일보》에연재하기도 함.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하여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둠. 신문사에(1928년), 경성방송국에서(1931년) 근무하다가 사상 문제로 바로퇴직함, 1932년 고향인 충남 당진으로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하다가 이듬해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사에 입사하였으나 다시 낙향함. 1936년 장티푸스로 요절함.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1930)과 불사조 (1930)를 신문에 연재하다가 일제 검열로 중단을 당함. 1932년 향리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하여 무산됨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1933)와 직녀성(1934)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고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 사후에 심훈전집1~3」(1953), 심훈문학전집(3권)』(1966), 심훈: 한국근대문학전집(2013), 심훈전집 우리가 알아야할 해풍의 모든 것(2016) 등이출간되었음. - P32
일제시대에 내가 시니 산문이니 죄그만치 썼다면 그것은 내가 최소한도의 조선인을 유지하기 위하였던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해방 덕에 이제는 최대한도로 조선인 노릇을 해야만 하는 것이겠는데어떻게 8·15 이전같이 왜소구축한 문학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이냐? - P35
자연과 인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문학에 간여하여 본 적이 없다. 오늘날 조선 문학에 있어서 자연은 국토로 인사는 인민으로 규정된 것이다. 국토와 인민에 흥미가 없는 문학을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냐? - P35
시가 걸작이던지 태작이던지 옳은 시던지 그른 시던 지로 결정되는것이지 괴테를 순수시인이라고 추존한다면 막심 고리키 오탁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이 양 거장에 필적할 문학자가 조선에 난다면괴테는 단연코 나오지 않는다. 조선적 토양에서는 막심 고리키에 필적할만한 사람만이 위대한 것이요 또 가능성이 분명하다. - P36
시와 문학에 생활이 있고 근로가 있고 비판이 있고 투쟁과 적발이있는 것이 그것이 옳은 예술이다. - P36
"나와 골육을 논은 처나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돌 지나 넉 달도못 된 계집애도 내가 자유로 조종할 자신이 없는데 어찌 인민 전체의 생활과 복리를 좌우하고 농락까지 하는 정치에 생각이 미치겠습니까. 가정생활도 수습 못한다고 한 말도 이런 경제적이 아닌 정신적인 관점에서우러난 말입니다." ‘인민 전체의 생활과 복리를 좌우하고 농락하는 정치‘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R교수는 확실히 겸손한 선비다. - P42
정지용 (1902~1950) 시인 충청북도 옥천출생. 휘문고보와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 광복 후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함. 6·25때 납북되어 동두천부근에서 비행기 폭격에 의해 사망함. 문학활동은 휘문고보 학생 시절에 《요람》 동인으로 활동한것을 비롯하여 김영랑과 박용철을 만나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였고 유학 시절 《학조》, 《조선지광》, 《문예시대> 등과 도시샤대학 내 동인지에 여러 작품을 발표함. 1940년대 이태준과 함께 《문장지의 시부문 심사위원이 되어 많은 역량 있는 신인을 배출하기도 하는데, 박두진·조지훈·박목월 등 청록파와 이한직·박남수 등이 그들임. 저서로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등 두 권의시집과 시선집 『지선(1946) 그리고 문학독본(1948), 산문」(1949)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음, 사후 정지용시전집』(1987), 정지용전집1-2(1988), 정지용전집1-3(2015) 등이 간행되었음. 정지용문학을 기리는 행사로, 1988년 5월부터 시작한 지용제라는 문학 축제와 1989년부터 시작한 정지용문학상 시상식, 그리고 옥천 생가 옆에 건립한 정지용문학관은 2005년 5월 15일 생일에 맞추어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 P44
가을의 누이, 김기림 (시인) 누이야 너는 오늘은 무엇을 하고 있니? 강가의 수수밭에서 까마귀들이 수까마귀처럼 흩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니? 겨울이 허둥지둥강면으로 썰매를 타고 오기 전에 그들의 기름진 슬픔을 묻을 데를 찾아서 산 모록 수풀로 날아가는 것을 바래 보내고 있니? 까마귀의 검은 얼굴은 겨울을 부끄러워한다더라. - P45
김기림 (1908~?) 시인 문학평론가 함경북도 학생 출생. 본명 김인손, 호는 편석촌, 1933년구인회에 참가. 일본 유학 후 신문사 기자, 영어 교사로 근무함. 1945년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가담하였으나 월남하여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즈음에 탈퇴 전향함. 서울대학교 조교수로 강의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를 모름. 1930년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및 주지주의에 관한평론발표함.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등과 몇 편의 소설이 있음. 저서로 시론」(1947), 문장론(1949), 시의 이해(1950) 등과 사후에 김기림전집1-6(1988), (원본)김기림시전집(2014) 등이 나옴. - P46
효조(曉鳥), 계용묵 (소설가) 이런 이야기를 누가 한다. 명필 추사의 선생 조광진이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니, 잠자리에서 갓 깨어 일어난 참새들이 뜰 앞 나뭇가지에서 재재거리는 소리에그만 필흥이 일어나, 저도 모르게 필묵을 베풀어 새벽 새라고 ‘효조‘ 이자를 제물에 써버렸다. - P47
그것이 자기의 글씨인데 조자의 치킴이 되지를 않아서 내어버렸던것으로 지금 보아도 그게 마음에 거슬리어 붓을 좀 넣어 본 것이라고 하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주인은 어성을 높이어 하는 말이, 당신은 글씨를쓸 줄만 알고 볼 줄은 모른다고 하면서, 효조라면 새벽 새일 테니 잠자리에서 갓 깨어 나온 새가 무슨 흥이 있어서 꼬리가 올라가랴 언제나보아도 새벽 새는 꼬리를 처뜨리고 우는 법이라, 자기가 이 글씨에 고가를 주고 사다가 머리맡에 걸고 사랑하는 것도 그 ‘효조‘라는 데 있어 조자의 치킴을 용하게 처뜨린 데 가치를 찾았던 것으로 인제 아까운 글씨를 버렸다고 하면서 떼어 던지더라는 것이다. - P48
계용묵 (1904~1961) 소설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일본 도요대학에서 수학하다가 중퇴하고조선일보사 등에서 근무함. 1925년 5월 《조선문단》 제8호에 단편 <상환>으로 등단한 이래 40여편의 단편을 남겼음. 1935년 《조선문단>에 <백치아다다>를 발표하였고, 작품집으로 병풍에 그린 닭이(1944), 『백치아다다」(1945) 별을헨다」(1950) 외에 수필집 상아탑(1955) 등과 사후에계용묵전집1-2」(2004) 이 있음. - P50
작년 봄 내가 한 달포를 두고 몹시 앓았을 때 의사를 찾아가니 그 말이돌아오는 가을을 넘기기가 어렵다 했다. 말하자면 요양을 잘한대도 위험하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맘껏 먹었다. 연일 철야로 원고와 다투었다. 이러고도 그 가을을 무사히 넘기고 그 다음 가을, 즉 올 가을을 앞에두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학도 얼마만치 농담임을 알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의 몸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이라야 다만 나는 온순히 그 앞에 머리를 숙일 것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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