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족이 33만 5천 가구이고, 1인 가구는 무려 584만 9천 가구라고 한다. 이혼이나 사별 이후 아빠나 엄마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족, 조손 가족 등의 경우는 153만 9천 가구이다. 고령자 부부,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갖지 않는 딩크족, 단독 가구의 수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과거에 정상가족이 아니라고 여겼던 가족의 형태가 이제는 수적으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은 결혼을 통해 형성되는데, 요즘은 결혼한 수의 약 30퍼센트 이상이 이혼을 한다고 한다. 이는 과거에는 경시되었던 한부모 가족의 급격한 증가로 나타난다. 외국인과의 결혼과 동거로 인한 다문화 가족의 증가,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1인 가구 등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1인 가구의 경우, 자신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이 자기소개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만 하더라도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유행했을 만큼 산아제한정책을 장려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아동수당이나 세금 감면 혜택을 비롯해 다양한 출산 정책을 펴내고 있다. 시대에 따라 출산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뀐 것이다.
인간의 성행위 목적이 결코 재생산, 즉 임신 및 출산에 있는 것이 아니며 부부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표현하는 데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성과 사랑의 결합은 성을 금기가 아니라 즐거움과 탐구의 새로운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배우자와의 성적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근대 이후에 등장한 삶의 양식으로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 간의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근대 이전의 결혼 계약의 기초는 상대방의 성적 매력이 아니라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였다. 결혼과 섹슈얼리티는 아이를 낳기 위한 목적, 즉 재생산을 위해서 결합되었다. 결혼의 의미는 생계를 꾸리고 다음 세대로 가계를 이어가는 것이었고, 개인의 선호는 고려되지 않았다.
놀라운 점은 오늘날 가족이 점차 해체되고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정상가족의 이데올로기는 강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상가족이라는 형태가 남성 가부장을 중심으로 아내와 어린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의 형태가 국가의 통치에도 편리할 뿐 아니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를 지속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아시아 국가의 사회문화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가족을 국가가 발전하는 데 있어 기본 단위로 여긴다. 모두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는 가족이 잘되어야 하며, 그래야 국가도 마찬가지로 잘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가족을 국가의 최소 단위로 전제할 때 국가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 본다. ‘국가’라는 단어의 ‘가’가 ‘가족’을 뜻하고 있으며, 대통령을 아버지라는 의미가 내포된 ‘국부’로 지칭해온 것을 생각해보면, 가족과 국가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갖는지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가족의 역할은 그 구성원의 자유의지나 개별성을 생각하기보다 각자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하고 아버지의 몫, 어머니의 몫, 자녀의 몫 등 그 역할에 따른 책임이 규정되어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역할을 논할 때,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순한 젠더 구분보다 가족 내의 위치에 따른 역할 관념이 크게 작용한다. 가령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이고, 어머니의 역할이 무엇인지, 또 아들이라면 어때야 하고 딸이라면 어때야 하는지 말이다. 심지어 더 세분화해 큰아들이라면 어때야 하고, 막내딸이라면 으레 요구되는 임무가 있다는듯 가족 내에서 각자가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에 응당한 역할과 바람직한 태도가 결정된다.
현대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보면, ‘밥그릇 싸움’에서 혈연, 학벌, 동향 등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는지 과시하기를 좋아한다. 어디 성 씨라든지, 어느 동향이라든지, 조상 중에 어떤 직위를 누리신 어르신이 있다든지, 어느 학교 출신이라든지 하는 점들을 지나치게 강조하곤 한다. 이것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지위와 가치를 높임으로써 권력 다툼에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즉, 혈연, 학벌, 동향 등 확대된 가족주의는 패거리주의를 만들어왔다.
가족주의 문화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다른 가족들을 경쟁 상대, 심지어 적으로 대하는 태도에 있다. 가족주의가 내부의 단결과 결속을 중시하다 보니 다른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눔과 배려보다 경쟁과 질투를 앞서게 된다.
결혼은 한국 사회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넘어선 친족 간의 여러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는 관계이다 보니 그만큼 더 많은 자기희생과 결단을 요구한다.
완전한 행복을 위한 젠더해방?
요즘 젊은 남성들은 가부장적 문화의 혜택을 받은 것은 윗세대의 남성들이고 자신들은 배제되었다고 느낀다. 여성은 성별에 따른 구조적 불평등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남성은 각종 여성 우대 정책으로 ‘역차별’을 당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젠더 간의 불평등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은 수많은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2012년의 자료를 보면 여성은 배우자로 4년제 대졸 이상의 공무원ㆍ공사 종사자를 선호하며, 남성의 경우 배우자의 직업으로 교사와 공무원을 이상적인 조건으로 꼽고 있다. 또한 남성은 성격, 경제력, 외모와 가치관의 순으로 여성은 성격, 외모, 경제력, 가치관 순으로 배우자를 고려한다.
록산 게이의 사례를 살펴보면 사회문화적 배경과 심리적 문제로 인해 ‘신체화 장애’를 겪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록산 게이의 자전적 고백은 사회가 바라보는 몸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나타낸다. 몸을 바라보는 관점과 인식에 따라서 자신의 몸에 대한 대우와 삶에 대한 가치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대 사회는 개개인에게 이상적인 몸의 잣대를 부여하고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며, 그러한 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암묵적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만남의 부재는 20대 여성에게 외로움과 우울함을 특별히 가중하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제각각 다른 ‘몸 테크닉’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사회에서 몸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별, 연령, 직업, 위계 등에 따라 다른 방식의 테크닉을 모방과 학습을 통해 배우고 몸에 장착한다.
몸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사회적 현상은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규율 권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규율 권력은 왕이 국가를 통치하던 시절에 존재했던 군주의 권력과 달리 개인의 신체, 몸짓, 시간, 품행을 총체적으로 포획하는 권력으로 일종의 미시 권력을 뜻한다.
규율 권력이 잘 드러난 공간 형태가 바로 판옵티콘이다. 판옵티콘은 1791년 영국의 제레미 벤담이 죄수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제안한 감옥 건축 양식이다.
규율 권력은 궁극적으로 체제에 복종하고 훈련된 신체, 즉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체는 한편으로 경제적으로 효용을 높일 수 있는 몸이 되며, 정치적으로는 체제에 반항하지 않는 순응하는 몸이 된다.
우리는 학교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각자가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배웠다. 그렇지만 막상 사회에 나가보면 대체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살기가 힘들다.
경멸과 혐오의 태도는 안타깝게도 세상에서 서로 보듬고 살아야 하는 약자들이 오히려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는 모양을 야기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친 규범을 이상화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타인과 자신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형성해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타인이다.
사회는 수많은 가족의 총합이며, 가족은 하나의 작은 사회와 다름없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전23권 세트누군가로부터 좋은 책을 선물 받는다는 것은 참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반강제 선물)
데카르트는 인간의 몸은 선박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선박을 이끄는 선장 격인 정신(영혼)은 인간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몸에 한정된다고 본 것이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인간이 육체와 정신, 혹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다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 틀을 뿌리내리게 하였다.
서양 세계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신의 의지가 반영된 산물이라면, 동아시아에서 인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자연의 부분이지 어떤 절대적 존재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체액설에서 각각의 체액이 인간의 장기에 각각 대응하는 부분으로서 기능한다면, 동아시아에서 강조한 오행설은 다섯 가지의 원소가 등장하지만 상생과 상극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서양의 몸 인식에서 분할된 구조와 기능이 강조된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상호 연결과 상보적 효과가 중시된다.
동아시아 의학에서 몸은 마음과 완전히 분리된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 나아가 몸은 마음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부모가 된 몸으로서’라고 표현할 때, 그 몸은 부모로서의 사회적 위치와 자격을 의미하는 것이지, 아이를 낳은 부모의 생물학적 신체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의학은 몸을 마음과 사회, 자연과 우주를 통합하는 개방적인 체계로 보았다.
후기 근대성은 이와 같은 근대성의 경향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급진화되는 것을 일컫는다.
후기 근대성을 명명하는 방식은 학자에 따라 다른데,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독일의 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이를 ‘제2근대성’이라고 하고, 사회구조화 이론을 구축한 영국의 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이를 ‘고도 근대성’이라고 일컫는다. 또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현대 서구 사회의 불안정한 삶을 설명한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이를 ‘액체 근대’라고 명명한다.
몸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자 자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재료로서, 어떻게 몸을 가꾸고 관리하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와 지위, 성향 등을 표현해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이제 건강의 문제는 질병이 닥쳤을 때 다루어야 할 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노화의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 성인병을 사전에 관리하고, 몸매를 가꾸고, 노후 건강을 위한 영양식품 섭취 등이 삶의 주된 관심사이자 자아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남자의 뱃살, 용서받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때로는 사회가 몸의 질병을 만든다
우리는 일상의 어떤 부분에서 허기를 느낄까? 정말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고 싶을 때 허기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허기는 단순히 물질적 결핍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 무엇인가 마음이 공허하고 헛헛할 때 또한 허기를 느낀다.
록산 게이는 어린 시절 주변 친구들에게 심각한 폭행을 경험했다. 남학생들에게 집단적으로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는데, 이때 ‘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 내 존재 자체가 관심을 끈다는 것이 폭행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몸을 추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