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는 인간의 몸은 선박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선박을 이끄는 선장 격인 정신(영혼)은 인간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몸에 한정된다고 본 것이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인간이 육체와 정신, 혹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다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 틀을 뿌리내리게 하였다.

서양 세계에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신의 의지가 반영된 산물이라면, 동아시아에서 인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자연의 부분이지 어떤 절대적 존재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체액설에서 각각의 체액이 인간의 장기에 각각 대응하는 부분으로서 기능한다면, 동아시아에서 강조한 오행설은 다섯 가지의 원소가 등장하지만 상생과 상극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서양의 몸 인식에서 분할된 구조와 기능이 강조된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상호 연결과 상보적 효과가 중시된다.

동아시아 의학에서 몸은 마음과 완전히 분리된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 나아가 몸은 마음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부모가 된 몸으로서’라고 표현할 때, 그 몸은 부모로서의 사회적 위치와 자격을 의미하는 것이지, 아이를 낳은 부모의 생물학적 신체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의학은 몸을 마음과 사회, 자연과 우주를 통합하는 개방적인 체계로 보았다.

후기 근대성은 이와 같은 근대성의 경향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급진화되는 것을 일컫는다.

후기 근대성을 명명하는 방식은 학자에 따라 다른데,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독일의 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이를 ‘제2근대성’이라고 하고, 사회구조화 이론을 구축한 영국의 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이를 ‘고도 근대성’이라고 일컫는다. 또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현대 서구 사회의 불안정한 삶을 설명한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이를 ‘액체 근대’라고 명명한다.

몸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자 자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재료로서, 어떻게 몸을 가꾸고 관리하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와 지위, 성향 등을 표현해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이제 건강의 문제는 질병이 닥쳤을 때 다루어야 할 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노화의 속도를 조정하기 위해 성인병을 사전에 관리하고, 몸매를 가꾸고, 노후 건강을 위한 영양식품 섭취 등이 삶의 주된 관심사이자 자아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남자의 뱃살, 용서받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때로는 사회가 몸의 질병을 만든다

우리는 일상의 어떤 부분에서 허기를 느낄까? 정말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고 싶을 때 허기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허기는 단순히 물질적 결핍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 무엇인가 마음이 공허하고 헛헛할 때 또한 허기를 느낀다.

록산 게이는 어린 시절 주변 친구들에게 심각한 폭행을 경험했다. 남학생들에게 집단적으로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는데, 이때 ‘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 내 존재 자체가 관심을 끈다는 것이 폭행의 대상이 될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몸을 추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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