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통치를 통해서는 일시적 복종을 끌어낼 수 있으나, 아시리아의 경우처럼 오래 유지되기는 힘들었다. 페르시아의 포용과 관용,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통치가 제국을 운영하는 데 성공적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인류의 자산으로 남았다.

車同軌書同文 (거동궤서동문)

"여러 지방(地方)의 수레의 너비를 같게 하고

글은 같은 글자를 쓰게 한다."

천하가 통일된 상태를 이름.

변화의 배경에는 몽골의 재상이 된 거란족 출신의 야율초재가 있었다. 몽골은 민족이나 종교를 초월해 충성심과 능력을 중요시하는 사회였다. 성을 공격하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중국 기술자를 등용했고 페르시아와 위구르의 상인들을 등용해 국가의 재정을 맡기는 식이었다.

鯨呑 (경탄)

"고래가 작은 물고기를 통째로 삼킨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자기 마음대로 함을 비유함.

‘제국주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2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제국이란 다른 민족이나 나라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국가를 의미한다. 앞서 살펴본 제국들이 그 예다. 두 번째 의미는 맥락으로 살펴야 한다. ‘제국’에 ‘주의’가 붙으면 19세기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달한 국가들이 자본 확장을 위해 다른 지역의 영토를 식민지로 삼는 것이다.

도시는 내가 속한 곳이자 나의 정체성을 구성해주는 일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대의 발명품이자 인류의 문명 그 자체가 도시다. 소크라테스는 "시골에 있는 건물과 나무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가르친다"라고 했다. 인류의 문명이 탄생한 곳이 도시이고, 도시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 자체로 인류의 삶을 알 수 있다.

近悅遠來 (근열원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흠모해 모여든다."

덕이 널리 미침을 이르는 말.

사전에서 도시를 찾아보면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도시의 구성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家給人足 (가급인족)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해 살기 좋음.

잉여생산물의 존재가 도시를 만드는 근간이다. 잉여가 생기고 빈부격차로 인해 계급사회가 되는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다. 도시가 생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청동기 시대가 되어야 한다.

제국의 성패는 지배수단의 효율성과 안정성에 있었다.

도시는 인류가 공간에 대해 공통으로 만들어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인 의사소통의 집적과정을 통해 일궈낸 문명 최대 발명품인 것이다.

大同小異 (대동소이)

"전국 시대 사상가인 혜시의 소동이, 대동이 론에서 비롯된 말."

거의 같고 조금 다름.

도시의 광장은 당대의 사람들이 실제로 모이는 생활 속 공간으로 해당 국가의 성격을 짐작하게 해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四通八達 (사통팔달)

"길이 사방팔방으로 통해 있음."

길이 여러 군데로 막힘 없이 통함.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만든다"라는 말은 중세를 넘어 근대로,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된다.

白眉 (백미)

"중국 촉나라 마량의 5형제 중

흰 눈썹이 섞인 양의 재주가 가장 뛰어나다."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이르는 말.

먼저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고대부터 상식으로 여겨졌던 우주의 법칙이 진리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두 번째, 갈릴레이에 의해 학문의 방법이 관찰이나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험과 수학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세 번째, 이전까지 과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 궁극적인 것에 대한 설명인 ‘왜’가 중요했다.

그러나 뉴턴에 의해 ‘왜’가 아니라 자연 현상 자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고 수학을 통해 보편적인 법칙을 증명해 내는 것이 과학이 된다.

格物致知 (격물치지)

사물의 이치를 구명해 자기의 지식을 확고하게 함.

기술의 사전적 의미는 2가지인데, 첫째로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이다. 둘째로 ‘사물을 잘 다룰 방법이나 능력’이다. 사전의 설명을 보니 기술이 있으려면 과학이 먼저 존재해야 하는 것 같다.

亡羊之歎 (망양지탄)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다."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

刮目相對 (괄목상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한다."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말함.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그의 제국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그 중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기원전 280년 알렉산드리아에 무세이온 Museion을 건축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9명의 학문과 예술의 여신들에게 헌정된 장소로 박물관museum의 어원이 된다.

他山之石 (타산지석)

"다른 산의 돌."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도

자기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함.

이슬람은 인간 삶과 행동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삶의 방식 그 자체인 종교다. 보수적일 수 있는 이 종교를 믿는 세력권에서 어떻게 중세 시대에 고대의 유산과 주변 지역의 다양한 것들을 포용하며 과학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개방적 태도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호기심이다.

一日千里 (일일천리)

"하루에 천 리(千里)를 달린다."

말이 매우 빨리 달림을 이름, 진보하는 것이 몹시 빠름.

"내가 만유인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략…) 내가 모르는 다른 방법으로 발생할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일반적으로 물체를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표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라며 과학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밝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정리하자면 18세기 계몽주의로 기존의 권위와 질서가 모두 바뀌게 되는데, 이를 바꾸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과학, 인간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전의 사람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법칙을 발견하려 했던 일들이 창조주의 위대함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18세기 이후의 과학은 인류의 행복과 사회적 진보를 목적으로 변했다. 과학이 가지는 합리성과 효율성은 진보된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시대정신이 되었다.

‘병 속 식량’은 전쟁중 의도치 않는 기술 향상을 겪게 된다.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던 영국군은 병에 든 무엇인가를 먹는 프랑스 병사를 보고 잡아다가 그 원리를 알아냈다. 영국군은 잘 깨지는 유리병의 단점을 보완해 캔에 음식물을 넣는 통조림을 만들어냈다. 집에 있는 통조림 햄이나 참치의 역사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때 동원된 사회 이론이 사회진화론이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이 이론은 약한 민족이나 국가가 강한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쳤고 서구 열강은 이런 과학과 이성, 합리성을 내세우며 식민지 사람들을 압도했다.

五里霧中 (오리무중)

"짙은 안개가 5리나 끼어 있다."

무슨 일에 대해 방향이나 상황을 알 길이 없음을 이르는 말.

연합군이 승리한 후 하버는 스위스로 피신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18년에 그는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된다. 독가스 연구 과정에서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했는데, 이 덕에 비료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농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이었다. 얼마 후 하버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 한 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더욱 강력한 독가스 개발에 매진한다. 그러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하버는 국외로 추방된다. 이유는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추방된 그는 다음해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독일이 항복하고 난 후 연합군의 상대는 일본뿐이었다. 미국은 일본에 원자 폭탄을 사용할 것을 결정했고,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투하했다. 원자 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능가했다. 순식간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방사선 피폭의 피해로 대대로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다. 인간의 이성과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과학을 발전시키고 지지했던 인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양자역학의 세계를 반대했던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며 확률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大經大法 (대경대법)

공명정대한 원리와 법칙.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라는 인권단체에서는 4월 9일을 ‘사법 암흑의 날’로 정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인혁당 사건’이라고 불리는 1, 2차 인민 혁명당 사건 때문이다. 1차는 1960년대에 일어났다.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지하조직이 교수, 언론, 학생 등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발표했다.

金科玉條 (금과옥조)

"금옥과 같은 법률."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규칙이나 교훈.

法久弊生 (법구폐생)

좋은 법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폐단이 생김.

중국의 법체계는 수·당나라 시기의 율령으로 완성되었다. ‘율령격식’으로 불리는데 율律은 죄를 정하고 처벌하는 형법에 해당하고, 영令은 국가를 다스리는 내용이 담긴 행정법이다. 격格은 황제나 왕이 수시로 내리는 칙서나 금령을 모은 것이고, 식式은 율과 령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세세한 것을 규정하는 법률이다. 기본 법은 율과 령이고 격과 식은 추가 시행령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민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와 같은 신분의 동료에 의한 합법적 재판 또는 국법에 따르지 않는 한 체포·감금·점유 침탈·법익 박탈·추방 또는 그 외의 어떠한 방법에 따라서라도 자유가 침해되지 아니하며, 또 짐 스스로가 자유민에게 개입하거나, 또는 관헌을 파견하지 아니한다(마그나카르타 39절).

主權在民 (주권재민)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전, 유럽에서 법의 주권자는 왕이었고 법의 목적은 왕에 의한 통치였다. 그러나 시민혁명을 통해 법의 주권자는 왕이 아닌 국민으로 변했다. 그리고 법의 목적은 국가에 위임한 국민의 권리가 국가 권력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 방향으로 서서히 흘러갔다.

千慮一得 (천려일득)

"천 번을 생각하면 한 번 얻는 것이 있다."

많이 생각할수록 좋은 것을 얻음을 비유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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陵谷之變 (능곡지변)

"높은 언덕이 변해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높은 언덕으로 변한다."

세상일이 극심하게 뒤바뀜을 이르는 말.

영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인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은 산업보다 앞섰다. 혁명의 결과로 왕의 권한은 제한되었고 시민들의 권한은 법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시민혁명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왕에서 시민으로 바뀐 것이다.

영국 왕은 대대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게 되었다.

식민지 사람들은 ‘대표 없이 과세할 수 없다’라고 저항했고 인지세는 1년 만에 폐기되었다. 그러나 후속 법안이 마련되었다. 타운센트 법이라고 하는데 유리·납·페인트·종이·차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이었다. 식민지 사람들은 다시 저항했고 영국은 1770년, 차에 관한 영국 동인도 회사의 특권만을 남기고 다른 세금을 없앴다.

역사적 흐름을 볼 때 미국의 독립혁명은 세계 최초 민주공화국의 탄생을 낳은, 세계 정치사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독립전쟁을 독립혁명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勢不十年 (세불십년)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

권력과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음.

‘1명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말은 이런 과정에서 생긴 것일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제국뿐 아니라 그렇지 못한 제국도 (당시에는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를 남겼더라도) 결과적으로 인류가 발전하는 역사적 경험을 남겨주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것에 익숙한 상태에서 타인의 것을 접하게 되면 처음에는 그것들을 부정하고 파괴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제국으로 묶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융합이 일어나고 이런 융합은 주로 이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발전적인 성향과 결과를 가져왔다.

經天緯地 (경천위지)

"온 세상을 다스림."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온 세상을 다스림.

이러한 키루스의 전설이 역사적 사실임을 알려주는 유물이 ‘키루스의 원통’이다. 기원전 539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 발표한 것으로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문이라고 불린다.

"모든 세상의 왕인 나 키루스는 바빌론, 수메르, 아카드의 왕이다. (… 중략…) 나의 군대는 평화적으로 바빌론을 행진했고, 수메르와 아카드의 모든 백성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나는 모든 수메르와 아카드의 신들도 아무 탈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 중략…)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의 전통과 종교를 존중할 것이다. 나는 결코 전쟁으로 통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억압해서도 차별해서도 안 되며, 이유 없이 남의 재산을 강탈해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서도 안 되며, 부채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노예로 삼는 일을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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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지방분권적인 성격이 강한 중세 유럽에서 제국의 황제는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 신성로마 제국에서 황제는 10세기 무렵, 오토 대제가 서유럽에 침략한 마자르족을 물리치고 교황에게 황제라는 칭호를 얻으며 형성되었다. 교황은 황제의 군사적 힘, 황제는 교황의 신성성이 갖는 권위에 서로 의지하는 동맹 관계였다.

결국 제후들은 교황의 편을 들었고 안팎으로 지지를 잃게 된 황제는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껴 직접 교황이 있는 북이탈리아의 카노사로 향했다. 한겨울에 알프스를 넘은 황제는 교황이 있는 성 앞에서 맨발에 허름한 옷을 입고 교황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 사건을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한다.

중세의 황제와 교황권의 갈등은 이렇게 교황의 승리로 끝났을까. 이후 다시 힘을 키워 기회를 노리던 하인리히 4세는 로마로 진군해 그레고리우스 7세를 쫓아냈다. 이런 식의 교황과 황제의 갈등 혹은 동맹 관계는 중세 내내 지속되었다.

국가를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은 자들의 체계화된 제도와 절차적 관계라고 본다면 운영체제가 단일하게 발전된 것은 동양이었다.

發憤圖强 (발분도강)

강성해지기 위해 분발함.

개인이나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분발함

시작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다. 이를 계기로 중세가 강요한 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점점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고가 발달했다. 이런 변화가 예술이나 종교, 사상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서양과 동양은 역사적 경험이 달랐다. 동양은 왕토 사상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세금 부담이 당연했지만 서양은 고대 시기부터 스스로 무장한 평민들이 기득권과 싸워 정치에 참여할 권한을 획득한 경험이 있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자연은 인간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보았다. 계약의 대상은 왕으로, 개개인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권한을 왕에게 위임하고 왕이 절대적 권한을 갖는 전제정치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형태라고 보았다.

반면 같은 영국의 철학자 로크는 달랐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생명·자유·재산에 대해 자연권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했다. 국가가 세워진 이유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연권을 온전하게 누리기 위해서이고, 개인이 자신의 권리로 왕이나 국가와 계약을 맺는 것은 권리를 모두 넘긴 것이 아니라 잠깐 맡긴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생각들이 쌓여 18세기 프랑스의 법관이자 귀족 출신인 몽테스키외는 국가의 정치 형태를 공화정과 군주정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공화정은 여럿이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 형태로 주체에 따라 귀족 공화정과 민주 공화정으로 나눌 수 있고, 군주정은 군주 1명이 다스리는 정치 형태로 정해진 법에 따라 다스리는 입헌군주제와 통치자가 마음대로 다스리는 전제정치로 구분했다. 이 중 몽테스키외가 가장 긍정적으로 본 것은 영국식의 입헌군주제였다.

국가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전형적인 발명품이고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분단된 조국에 사는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그러나 소외되고 가난한 자를 사랑하라는 하나님과 예수의 크리스트교가 폭력적인 제국주의와 함께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에 신의 이름으로 행한 잔혹하고 무참한 행위를 알았다면 신은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

九折羊腸 (구절양장)

"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는 말.

특히 이슬람교의 교리는 그들의 테러 대상인 크리스트교와 그 뿌리가 같으며 사회적 약자 편에서 신의 뜻을 전하는, 사랑이 충만한 종교다. 선함과 사랑을 추구하는 종교를 목숨처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왜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고 대립하는 것일까. 답은 역사 속에 있다.

종교 = 믿음 + 제도
사전에서는 종교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 그 대상·교리·행사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애니미즘·토테미즘·물신숭배 따위의 초기적 신앙 형태를 비롯해 샤머니즘이나 다신교·불교·기독교·이슬람교 따위의 세계 종교에 이르기까지 비제도적인 것과 제도적인 것이 있다.’

믿음이란 합리적인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믿는 마음’이다. 종교에서 믿음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눈으로 본 적 없고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많은 것을 신의 뜻으로 믿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종교는 개인적 차원으로 볼 때,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하고 이해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나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데, 개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구성원들의 생활 방식과 사회 구조를 규정하며 믿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정신적인 큰 틀을 제공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종교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역사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종교의 특성을 염두에 두며 원시 시대부터 종교가 역사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보자.

管中之天 (관중지천)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본다."

소견이 좁은 것을 이름.

근본적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자연재해 같은 주변의 현상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가지의 종교가 등장했다.

먼저 모든 것에 의식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이다. 원시 인류부터 사람들은 사람이 영혼과 육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원론적 인식이 주변의 것들에게 반영되어 산, 강, 바람, 태양, 달, 바위, 동물, 나무 등에도 모두 그 안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런 애니미즘은 다신교의 기원이 된다.

다음으로는 동물숭배가 있다. 특정 동물이 가지고 있는 우월성과 인간에게 주는 위협감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고,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거나 동물의 번식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로 동물을 숭배하기도 했다. 아직도 동물을 숭배했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특정 동물은 공동체의 수호신으로 섬겨지기도 했는데 이 동물은 집단공동체의 조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웅녀 또는 로마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키운 암 늑대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동물숭배를 큰 의미로 토테미즘totemism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샤머니즘shamanism이 있다. 샤머니즘의 핵심은 샤먼이라는 존재다. 샤먼은 초자연적 존재와 연결되어 미래의 일을 예언하거나 병을 고치고 불행을 막고 악령을 쫓는 등의 행위를 하는 존재다. 우리에겐 무당이 있다.

반면 종교는 다르다. 종교는 대표적으로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이 있는데, 이와 같은 종교에는 선과 악에 대한 신이 부여한 기준이 있고 삶을 지배하는 생활양식과 사회적 규범이 정해져 있다. 신화의 신이 혼돈 속에 태어나 그냥 존재했다면, 종교의 신은 우주를 만들고 자연을 만든 전지전능한 절대적인 존재이며 인간은 신의 뜻대로 살아야만 사후에 신의 세상으로 갈 수 있다.

특징들을 정리해보면 신화는 원시적인 것으로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고 의사소통을 시작하는 단계에 형성되어 자연과 인간에 대한 당시의 이해가 구전된 것이다. 종교는 신화 이후 문명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초월적인 권위를 제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敬天愛人 (경천애인)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함.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노동했다고 예수를 비난했고, 예수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 외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사상도 거부했다. 세상의모든 인류는 한 가족으로 신은 특정 종족만을 사랑하거나 다른종족을 억압하는 존재가 아닌 만인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브라만 중심으로 사회가 운영되자 크샤트리아와 바이샤의 불만은 높아졌고 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는 기원전 7세기무렵 우파니샤드 철학으로 정리된다. 기존 브라만교의 교리를거부하며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진리가 있으므로 브라만을통하거나 그들의 제사의식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명상과 사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등장한 종교가 불교와 자이나교다.

싯다르타의 탄생은 매우 신묘했다.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50세에 휜 코끼리가 옆구리로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임신을 하게 된다. 출산이 다가와 친정집
으로 이동하다 산기를 느껴 보리수 아래에서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울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고 첫울음을 터트렸다.

넷째 날 다시 시장에 간 싯다르타는 병들고 늙고 가난한 승려를 보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매우 평온해 보였다. 왕궁으로돌아온 그는 깊은 생각에 빠져 삶의 고통이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욕망에서 벗어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29세에 출가한다. 그 후 6년간 다른 수행자들이 하는 모든 고행을 따라하다가 욕망을 극복하려는 자신의 의지 자체가 욕망이었고 고통임을 깨닫고 부처(깨달은 자)가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불교의 교리는 모든 사물은 변하며 동시에 모든 것은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달아 중도의 길을 걸으면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불교는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을 통해 자신의 욕망에 대해고요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은 원래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성으로 
인간의 타고난마음이다. 인이 세상에 발현되기
위해서는 수양을 해야 하고, 수양의 목적은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기 위함이었다.

유교에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도 거의 없다. 기록에 의하면 공자의 제자 중 하나가 사후 세계가 궁금해 물으니 공자는 "10년 뒤의 일도 모르는데 죽은 후를어찌 아냐"라고 답했다고 한다.

죽음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접근 방식과 시각이 다른 종교와 달랐다. 정리하자면 신에 대한 초자연적인 해명이 따로 있지 않았으나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 집단 내에서 바람직한 삶의 의미와 방법을 제시하는 체계라는 면에서 유교는 종교라고 볼 수 있다.

도가, 도교는 종교일까? 사후 세계나 절대자인 신의 존재를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을 초월하는 자연의 이치를 믿으며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며 현실적인 욕구의 실현을 해결하려는 것이니 종교의 범주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瓜葛 (과갈)

"오이와 칡은 다 같이 넝쿨로 자라는 풀이란 뜻."

일가친척을 의미함.

632년, 무함마드가 죽자 장인인 아부 바르크가 무함마드의 뒤를 이어 초대 칼리프가 되었다. 칼리프는 아랍어로 ‘뒤따르는 자’라는 의미로 이후 이슬람 제국의 정치, 종교 지도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일정한 세금만 낸다면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상관하지 않았고, 이슬람교로의 개종도 강요하지 않았다. 또한 같은 아랍인이 아니라도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세금을 면제하고 민족적 차별도 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 수니파의 ‘수니’는 예언자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우마이야 계열이다. 시아파의 ‘시야’는 알리의 당파를 의미하는데 이들은 무함마드의 후손이 정통 계승자여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들의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첫째, 북방의 유목민족들이 세운 북조의 국가들은 한족을 다스리기 위해 유교와는 다른 새로운 종교가 필요했다. 둘째, 승려 집단의 특징 때문이었다. 당시 불교 승려들은 최신 지식을 갖춘 지식인으로 종교적 영험함도 가진 집단이었다. 왕은 이들을 정치적 고문이자 국가의 스승으로 삼아 국가를 위해 일하게 했다.

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 염화미소拈華微笑다

도가의 경전인 노자의 『도덕경』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라는 부분이 있다. 외적 형식보다는 실제적인 참선 수행을 중시하는 도교와 불교가 만나 선종이 된 것이다. 즉 선종은 인도만의 불교에서 벗어나 중국 특유의 개성을 가진 종교로 중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종은 불교를 아버지로, 도가를 어머니로 탄생한 중국화된 불교라고 평가받는다.

自家撞着 (자가당착)

자기의 언행이 전후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음.

결국 에스파냐는 대서양 쪽으로 가는 항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개척 하며 무역과 약탈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소외되고 가난한 자를 사랑하라는 하나님과 예수의 크리스트교가 폭력적인 제국주의와 함께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에 신의 이름으로 행한 잔혹하고 무참한 행위를 알았다면 신은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

葛藤 (갈등)

"칡과 등나무."

일이나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함의 비유,

서로 상치되는 견해·처지·이해 따위의 차이로 생기는 충돌.

대부분 종교의 신은 사랑과 자비를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며 착하고 정직하게 살 것을 당부한다. 종교는 동일 공동체 내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는 큰 순기능을 발휘한다. 어려운 이를 돕는 등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 선한 인간의 품성을 표출하며 사회를 안정시킨다. 개인들에게는 불안한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세속의 권력과 만나면 무서울 정도로 잔인하게 역기능을 보이는 것이 종교이기도 하다.

혁명이 일어나면 ‘단번에‘, ‘새로운 것‘의 변화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사건이 쿠데타인지, 변혁인지, 혁신인지, 개혁인지,
의거인지 등의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하는 것은 변화된 세상에살며 혁명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다. 즉 특정 사건이 혁명으로 평가되는지, 아닌지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 후에 혁명의 영향으로 변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변화의 혜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사건을 혁명이라고 이름 붙여주어야 혁명이 된다.

蓋棺事定 (개관사정)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한다."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음.

경제적 혁명
日就月將 (일취월장)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것을 이룩하고,
한 달이 지나면 크게 앞으로 나아감."
세월이 지날수록 크게 발전하는 모습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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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첫걸음!

분단 후 남쪽에서는 독재와 이에 대한 저항의 역사가 전개됩니다. 이승만 정부에 저항했던 4·19 혁명, 박정희 정부의 유신에 대한 부마항쟁, 신군부를 거부했던 5·18 광주민주화항쟁, 전두환 정부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6월항쟁. 이 정신은 2016년 촛불 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람은 의식주만 해결하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이 믿는 것을 실천하며 방향성을 가질 때 삶의 의미가 존재합니다. 그런 개개인의 방향성이 모여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현재의 세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제국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 목적이 식민지를 얻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단순 무력으로 다른 지역을 침략해 자국의 영토로 삼아 지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타국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근대 전까지 국가는 일부 귀족이나 왕의 것이었고 대부분의 사람은 지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근대 시민혁명으로 주권은 시민들의 것이 되었다.

국가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전형적인 발명품이고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분단된 조국에 사는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前車覆轍 (전거복철)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

함수로 역사를 상상해보자. 함수식은 y=f(x)로 표현된다. 미지의 수 x를 함수식 f(x)에 넣으면 y라는 답이 나오는 약속이다. 그래프로 그린다면 x는 가로, y는 세로의 값을 기준으로 하나의 점으로 만나고 점들의 모임은 선이 되어 함수식의 그래프로 표현된다.

南橘北枳 (남귤북지)

"남쪽 땅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

사람도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이름.

일상 속에서도 국가는 참 중요하다. 어떤 외국인과 만났다고 상상해보자.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이 기본 신상 정보일 텐데, 그 정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국가다. 국적을 알게 되면 이런저런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반대로 해외에서 내가 외국인으로 존재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또한 "Where are you from?"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그들도 자신이 아는 한국 정보를 통해 나라는 개인을 상상할 것이다.

쉽게 말해 주권은 국가의 주인으로 갖는 권리다. 그런데 사전에서는 주권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정보가 따로 있지 않다. 왜일까. 바로 지역과 시간에 따라 역사 속에서 주권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의 주권은 왕에게 있었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민’에게 있다.

"주권은 누구의 것이고, 누구의 것이어야 옳은가?" "바람직한 주권자의 모습은 무엇인가?" "지배자에게 주어지는 권력은 어디까지인가?"

社稷 (사직)

"토지신과 곡식신"

옛날에 임금이 국가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사직단에서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냄.

이후 사직은 국가의 기반 또는 국가라는 뜻으로 변함.

4대 문명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은 청동기를 기반으로 시작 되었고, 지배자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치수였으며, 문자를 사용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국가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황허를 중심으로 한 소국들 사이에는 천명의 개념이 정착한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어기면 하늘에서 자연재해로 경고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폭정을 계속한다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천명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천명은 자손으로 이어지기에 왕위는 핏줄을 통해 세습되었다.

유가의 시작은 공자로,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주나라였다. 공자는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아들은 아들답게’를 강조하며 의리와 도덕심, 예를 강조했다. 공자가 죽고 약 100년 후 그의 가르침을 잇는 맹자가 등장한다. 맹자는 이상적인 통치자란 천명을 잘 받드는 사람이고, 천명은 곧 백성들의 마음이라고 했다.

이 시기 왕들은 인재를 등용하는 데 신의 계시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한 개인의 객관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했다. 많은 인재가 사회와 인간, 국가 운영 등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와 사색을 했고, 인정받은 사상가들은 그들의 생각을 국가라는 틀 안에서 실천해보려고 했다. 제자백가의 생각들은, 특히 유가는 이후 동아시아 세계를 움직이며 큰 방향을 제시하는 깃발이 되었다.

하지만 너무 강력했던 법가의 정책 때문에 진시황제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진승과 오광의 반란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저항이 일어났다. 법만 있고 덕이 없는 황제에 대한 천명이었을까. 진나라는 통일한 지 14년 만에 멸망했다.

중국 역사가 그동안 축적한 지방 통치 방법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주나라의 봉건제, 다른 하나는 진나라의 군현제다. 봉건제의 제후들은 각자 자신의 지역을 다스리며 거의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그에 비해 군현제는 전국을 군현으로 나누고 관리를 파견해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제도다.

한고조 유방은 수도와 주변지역은 군현제로 다스리고, 변방은 건국을 도운 부하들을 제후로 보내 봉건제를 시행했다. 건국의 과정에서 큰 공이 있는 이들에 대한 대우 등 여러 요인으로 군현제와 봉건제를 합한 군국제를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고 싶었던 한고조 유방은 얼마 뒤 반란을 핑계로 건국을 도운 제후들을 죽이고 자신의 아들과 친척을 제후로 보냈다.

이후 중국의 통치 이념은 주로 유교가 되었다. 유교이념에 따라 나라의 주권자는 황제이고, 황제는 천명에 따라 백성을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중국과 주변 동아시아에 자리 잡게 되었다. 국토는 당연히 황제의 것이고, 황제의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백성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야하는 것은 당연했다.

서양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서양에서 근대로의 혁명과정은 개인의 재산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왕이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한 저항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저항이 국민주권사상까지 흐르게 된다. 하지만 동양은 천명사상과 유교에 의해 왕은 다스림의 주체이고, 백성은 다스림의 대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幹國之器 (간국지기)

국가를 다스릴 기량이 있음을 이름.

폭정을 당한 경험 때문에 로마의 시민들이 왕정을 거부하고 공화정을 유지하려 애썼던 것처럼 특정 지역 사람들이 공유한 역사적 경험은 그 지역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나침반 같은 역할을 했다. 고대 국가에 대한 경험이 달랐던 동양과 서양은 각기 다른 나침반을 가지게 된 것이다.

群雄割據 (군웅할거)

"많은 영웅이 각각 한 지방에 웅거해 세력을 과시하며 서로 다툼."

여러 영웅이 세력을 다투어 땅을 갈라 버티고 있음을 이름.

이를 율령이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율령격식律令格式이다. ‘율’은 형벌, ‘령’은 행정에 관한 법, ‘격’은 율령을 개정한 내용을 집대성한 것, ‘식’은 시행세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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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첫걸음!

분단 후 남쪽에서는 독재와 이에 대한 저항의 역사가 전개됩니다. 이승만 정부에 저항했던 4·19 혁명, 박정희 정부의 유신에 대한 부마항쟁, 신군부를 거부했던 5·18 광주민주화항쟁, 전두환 정부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6월항쟁. 이 정신은 2016년 촛불 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국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 목적이 식민지를 얻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단순 무력으로 다른 지역을 침략해 자국의 영토로 삼아 지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타국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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