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첫걸음!

분단 후 남쪽에서는 독재와 이에 대한 저항의 역사가 전개됩니다. 이승만 정부에 저항했던 4·19 혁명, 박정희 정부의 유신에 대한 부마항쟁, 신군부를 거부했던 5·18 광주민주화항쟁, 전두환 정부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6월항쟁. 이 정신은 2016년 촛불 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람은 의식주만 해결하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이 믿는 것을 실천하며 방향성을 가질 때 삶의 의미가 존재합니다. 그런 개개인의 방향성이 모여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현재의 세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제국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 목적이 식민지를 얻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단순 무력으로 다른 지역을 침략해 자국의 영토로 삼아 지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타국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근대 전까지 국가는 일부 귀족이나 왕의 것이었고 대부분의 사람은 지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근대 시민혁명으로 주권은 시민들의 것이 되었다.

국가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전형적인 발명품이고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분단된 조국에 사는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前車覆轍 (전거복철)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

함수로 역사를 상상해보자. 함수식은 y=f(x)로 표현된다. 미지의 수 x를 함수식 f(x)에 넣으면 y라는 답이 나오는 약속이다. 그래프로 그린다면 x는 가로, y는 세로의 값을 기준으로 하나의 점으로 만나고 점들의 모임은 선이 되어 함수식의 그래프로 표현된다.

南橘北枳 (남귤북지)

"남쪽 땅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

사람도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이름.

일상 속에서도 국가는 참 중요하다. 어떤 외국인과 만났다고 상상해보자.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이 기본 신상 정보일 텐데, 그 정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국가다. 국적을 알게 되면 이런저런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반대로 해외에서 내가 외국인으로 존재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또한 "Where are you from?"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그들도 자신이 아는 한국 정보를 통해 나라는 개인을 상상할 것이다.

쉽게 말해 주권은 국가의 주인으로 갖는 권리다. 그런데 사전에서는 주권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정보가 따로 있지 않다. 왜일까. 바로 지역과 시간에 따라 역사 속에서 주권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의 주권은 왕에게 있었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민’에게 있다.

"주권은 누구의 것이고, 누구의 것이어야 옳은가?" "바람직한 주권자의 모습은 무엇인가?" "지배자에게 주어지는 권력은 어디까지인가?"

社稷 (사직)

"토지신과 곡식신"

옛날에 임금이 국가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사직단에서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냄.

이후 사직은 국가의 기반 또는 국가라는 뜻으로 변함.

4대 문명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은 청동기를 기반으로 시작 되었고, 지배자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치수였으며, 문자를 사용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국가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황허를 중심으로 한 소국들 사이에는 천명의 개념이 정착한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어기면 하늘에서 자연재해로 경고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폭정을 계속한다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천명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천명은 자손으로 이어지기에 왕위는 핏줄을 통해 세습되었다.

유가의 시작은 공자로,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주나라였다. 공자는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아들은 아들답게’를 강조하며 의리와 도덕심, 예를 강조했다. 공자가 죽고 약 100년 후 그의 가르침을 잇는 맹자가 등장한다. 맹자는 이상적인 통치자란 천명을 잘 받드는 사람이고, 천명은 곧 백성들의 마음이라고 했다.

이 시기 왕들은 인재를 등용하는 데 신의 계시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한 개인의 객관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했다. 많은 인재가 사회와 인간, 국가 운영 등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와 사색을 했고, 인정받은 사상가들은 그들의 생각을 국가라는 틀 안에서 실천해보려고 했다. 제자백가의 생각들은, 특히 유가는 이후 동아시아 세계를 움직이며 큰 방향을 제시하는 깃발이 되었다.

하지만 너무 강력했던 법가의 정책 때문에 진시황제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진승과 오광의 반란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저항이 일어났다. 법만 있고 덕이 없는 황제에 대한 천명이었을까. 진나라는 통일한 지 14년 만에 멸망했다.

중국 역사가 그동안 축적한 지방 통치 방법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주나라의 봉건제, 다른 하나는 진나라의 군현제다. 봉건제의 제후들은 각자 자신의 지역을 다스리며 거의 독립적으로 존재했다. 그에 비해 군현제는 전국을 군현으로 나누고 관리를 파견해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제도다.

한고조 유방은 수도와 주변지역은 군현제로 다스리고, 변방은 건국을 도운 부하들을 제후로 보내 봉건제를 시행했다. 건국의 과정에서 큰 공이 있는 이들에 대한 대우 등 여러 요인으로 군현제와 봉건제를 합한 군국제를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고 싶었던 한고조 유방은 얼마 뒤 반란을 핑계로 건국을 도운 제후들을 죽이고 자신의 아들과 친척을 제후로 보냈다.

이후 중국의 통치 이념은 주로 유교가 되었다. 유교이념에 따라 나라의 주권자는 황제이고, 황제는 천명에 따라 백성을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중국과 주변 동아시아에 자리 잡게 되었다. 국토는 당연히 황제의 것이고, 황제의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백성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야하는 것은 당연했다.

서양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서양에서 근대로의 혁명과정은 개인의 재산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왕이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한 저항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저항이 국민주권사상까지 흐르게 된다. 하지만 동양은 천명사상과 유교에 의해 왕은 다스림의 주체이고, 백성은 다스림의 대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幹國之器 (간국지기)

국가를 다스릴 기량이 있음을 이름.

폭정을 당한 경험 때문에 로마의 시민들이 왕정을 거부하고 공화정을 유지하려 애썼던 것처럼 특정 지역 사람들이 공유한 역사적 경험은 그 지역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나침반 같은 역할을 했다. 고대 국가에 대한 경험이 달랐던 동양과 서양은 각기 다른 나침반을 가지게 된 것이다.

群雄割據 (군웅할거)

"많은 영웅이 각각 한 지방에 웅거해 세력을 과시하며 서로 다툼."

여러 영웅이 세력을 다투어 땅을 갈라 버티고 있음을 이름.

이를 율령이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율령격식律令格式이다. ‘율’은 형벌, ‘령’은 행정에 관한 법, ‘격’은 율령을 개정한 내용을 집대성한 것, ‘식’은 시행세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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