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떻게 될까, 응?"
나, 그러니까 알렉스는 동무들 셋, 즉 피트, 조지, 그리고 딤ㅡ 이름처럼 정말 멍청한 딤"과 함께 ‘코로바 밀크바‘에 앉아서 맑았지만 춥고 깜깜한 그날 저녁에 무얼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지. 코로바 밀크바는 뭔가를 섞은우유를 파는 데였는데, 여러분들은 아마 이런 장소가 어떤곳인지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군. - P7

젖가슴 부근에는 조나 마이크 같은 사내들의 이름이 적힌 은빛 배지를 달고 있었지.
아마 열네 살이 되기도 전에 같이 잔 놈들의 이름이겠지 - P10

그 시절에는 해만 떨어졌다 하면 경찰력이 부족한데다가 우리같이훌륭한 젊은 놈들이 설치는 관계로 나이 지긋하신 부르주아들을 많이 볼 수 없었거든. 이 교수 타입의 늙다리가 그거리를 통틀어 유일한 치였지. 우리는 아주 점잖게 다가갔고, 내가 말을 걸었어. "실례합니다. 형씨"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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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 별 소득이 없자 그는 다시 저널리즘으로 돌아와 친구 플리니오 아폴레요 멘도사와 함께 소련과 동유럽 등지를 비밀리에 여행하며 소비에트사회주의를 맛보았다. 석 달 뒤 여행에서 돌아온 가보는 오랫동안 자신과의 결혼을 기다려 온 메르세데스에게 청혼했다. 메르세데스와 결혼할 마음을 먹은 지 16년, 처음 청혼한 지 12년이나 지났을 때였다. 1958년, 두 사람은 드디어 바랑키야에서 결혼했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메르세데스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다. - P129

어느 날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그는 서른다섯 살의 카를로스 푸엔테스를만났다. 이미 15년간 가보는 문학에 헌신했는데 무엇을 보여 줄게없었던 반면, 푸엔테스는 1958년 당시 라틴아메리카 붐 세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 P130

가보식 ‘썰‘의 결정판 백 년의 고독 초판
가보는 1967년 마흔 살에 백 년의 고독을 발표하기 이전까지는 무명 작가였다. 그가 1년 6개월에 걸쳐 『백 년의 고독을 쓰는 동안 메르세데스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원고를 다 쓰고도 출판사에 부칠돈이 모자라 절반만 보내야 했을 만큼 부부는 너무나 가난했다. 우여곡절 끝에 ‘백년의 고독이 세상의 빛을 보면서 가보는 첫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와함께 세계문학의 중심축도 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로 넘어갔다. - P131

(현재 환율로 약 6,000원)가 없어 원고의 반만 보내야 했다. 하지만 출판 담당자가 나머지도 읽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해 돈을 부쳐 주는 바람에 『백 년의 고독』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 P132

백 년의 고독이 출판되었을 때, 내가 아마 가장 놀랐을 것이다. 그 정도로 성공할 줄 몰랐다.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가보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가보는 이렇게 말했다. 1967년은 가보가 첫 번째로 맞이한 전성기였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카르멘발체스에이전시에 의해 국제 문학 시장에 소개되었다. 초판 500부에서 시작된책은 이제 남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문학의 왕좌는 자연스럽게 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로 넘어갔고, 그는 무명 작가에서갑자기 남미의 세르반테스가 되었다. 나아가 그는 라틴아메리카의고독을, 아니 익사 직전의 문학 전체를 구해 냈다. 그리하여 1982년에는 그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에게는평생 믿지 못할 마법 같은 일이었다. - P132

"저는 여자들을 잘 이해하고 그들과 더 잘 소통합니다. (…) 결혼에 관한 핵심적인 조언을 하자면 여자들은 부부 사이의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끝내는 논쟁으로 끝납니다. 그들을 믿고잊어버리고 앞으로 나가세요. 절대 논쟁하지 말고 그냥 앞으로 나가요."
- 이브 빌런 외, 다큐멘터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중 - P133

1980년대까지 선배들이 험난한 민주화 투쟁 끝에 얻어 낸 평화 속에서 내가 안전하게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것처럼, 콜롬비아의 20대들도 불완전하지만충분히 안전한 평화를 누리고 있음을 보았다. - P138

마약왕파블로 에스코바르
‘은 아니면 납‘, 즉 ‘내게 협조하여 돈을 벌든지, 아니면 나를 반대하여 죽든지 하나를 택하라‘
는 구호 아래 한때 전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퍼센트를 점유한 인물이다.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건설, 자동차 등의 사업에도 뛰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하지 못한 사회 인프라 구축과 빈민 구제 사업도 벌여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에 정계로까지 진출하여 한때 대통령을 꿈꾸기까지 했지만,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공조 작전으로 인해 범죄자로 쫓기다 결국 사살되고 말았다. - P147

바랑키야에서 본 마그달레나강
마그달레나강은 콜롬비아 서쪽에서 남북으로 관류하다가 바랑키야에 이르러 마침내 카리브해로 흘러든다. 가보는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보고타의 폭력적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카리브 최대 해안 도시 바랑키야로 강물처럼 흘러들어 저널리스트이자 문학인으로서 본격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보헤미안 같았던 이 시절의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윤락가 여성들과 문학인들의 모임인 바랑키야 그룹이었다. - P160

피델과 쿠바에 대한 사랑
가보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정치적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글을 쓰는 데 의미를 두었다. - P165

가보와 피델 카스트로
가보는 보고타 사태 때 피델 카스트로와 우연히 마주친 이래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는 혁명에 동조하는 이들과 본격적인 사회주의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면서 지식인들의 비판이 이어질 때도 가보는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이에붐세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가보를 ‘카스트로의 궁정 작가‘라 비난하기도 했다. 카스트로에 대한 가보의 지극한 사랑은 1976년에 발표한 『족장의 가을』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 P169

가보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칠레 인구의 10퍼센트로 하여금 망명길에 오르게 한 피노체트의 독재정권을 비롯하여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학살을 비판했다. 그런 그가 카스트로에 대해 조건 없는 지지를 보낸 것에는 어쩐지 석연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 권력과 명예욕이었는지, 아니면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열정이었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듯하다. - P171

카르타헤나의 중심 렐로흐성
내전으로 쑥대밭이 된 보고타를 뒤로 하고 카르타헤나에 온 가보는 "고통 없는 고독과 바다가끝없이 펼쳐져 있었다"라고 표현했다. 16세기, 에스파냐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관문으로 건설된 이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카리브를 대표하는 도시가 된 카르타헤나는 가보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20대의 많은 날을 보냈다. 그가 소유한 저택과 그의 유해도 이곳에 있다. 또한 부모님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소설화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 P174

카르타헤나의 거리
식민지풍의 건물, 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오래된 성벽, 화려한 색깔로 페인트칠한 집 등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가운데 원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카르타헤나는 마치 1년 내내 축제 중인 도시 같다.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가보의 소설을 영화화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 P179

리오아차의 바다
에스파냐의 대표적인 식민지 마을인 리오아차는 16세기에 영국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가습격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가보의 부모님이 신혼 생활을 한 곳이고, 백 년의 고독에서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반란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가보의어머니 루이사는 리오아차의 바다보다 넓은 바다는 없다고 했다. 여행자는 이 바다 앞에서 오랜만에 마음이 편해졌다. - P187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은 적 없음.)
가슴 아픈 젊은 부부의 사연이 담겼을 것 같은 헤밍웨이의 이 소설은 단문을 무기로 내세우던 작가의 특징을 잘 나타내 준다. - P195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의 가보
1982년, 가보는 영국의 그레이엄 그린과 독일의 귄터 그라스와 경합한 끝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노벨재단은 그가 약자들의 편에 서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서구의 경제적착취와 국내의 압제적 상황에 강력하게 대항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카리브 지역의 예복을 입고 시상대에 선 가보는 수상 연설을 통해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고독을 웅변적으로 설파했다.

반복이 과장법과 함께 사용되면 유머는 증폭된다. 하지만 과장은자칫 잘못 사용하면 거부감을 낳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꽤 많은 장치다. 하지만 가보는 특유의 이야기 재능을 통해 이 산을 가볍게 넘어 버린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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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술라와 아마란타의 역할 모델인 가보의 외할머니 미나
백 년의 고독에서 마콘도를 실질적으로 다스린 우르술라는 가보의 외할머니 미나를 모델로한 것이다. 외할머니는 빵과 과자를 만들어 팔며 가정 경제를 이끌어 갔을 만큼 현실감각과강한 생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카리브에 떠도는 미신과 주술도 신봉했는데, 그런 모습은 어린 가보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가보의 문학을 상징하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마술적‘이라는 말은 외할머니가 남긴 문화적 유산과 다름없다. - P111

아라카타카에 있는 가보의 기념물마콘도라는 가상공간을 낳은 아라카타카의 기차역 주변에는 가보의 소설 구절을 적은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대개 고독 속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반면, 여성들은 한결 강인하고 지혜로우며 다채롭고 복합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백 살 넘게 살면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우르술라의 모습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 P114

그에게 20세기 문학을 일깨워 준 ‘바랑키야 그룹‘의 돈 라몬 비녜스도 아니었다. 그의 스승은바로 윤락 여성들이었다. 그의 소설에는 아내보다 윤락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인물이 더 많이 나온다. 그는 왜 윤락 여성에 집착한 것일까? - P118

가보는 열두 살 때 섹스를 경험하고는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경험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는 마지막 장편소설로나이 아흔 살 노인이 성매매 업소의 10대 소녀와 사랑을 나누는 작품을 남겼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최소 514명의 여자와 잠을 잤다는 노인의 말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가보가 젊은 시절 임질을 반복적으로 앓을 정도로 성매매 업소를 즐겨 드나든 것은 사실이다. - P118

바랑키야의 거리
젊은 시절 가보는 바랑키야에 살면서 성매매업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 때문에 임질을 반복적으로 앓기도 했다. 그러나 윤락여성들로 대표되는 집 밖의 여자들은 그에게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 준 제2의 어머니이자 연애 코치이자 공부방 누나로서, 그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 P120

청년 가보
20대의 가보는 주로 바랑키야와 카르타헤나를 오가며 저널리스트이자 문학인으로서 본격적인 길을 걸었다. 저널리즘은 그를 계속 땅에 붙어 있게 했으며, 그것이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재능과 만나면서 현실의 시적 변형이라는 그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밑바탕이 되었다. - P125

그는 드디어 조용히 글을 쓸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돌아가는 비행기를 환불해서 식비에 썼다. 힘들게 두 번째 장편소설이될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초고를 썼지만 ‘아무도 출판하려 하지 않다‘가 되어 버렸다. - P126

가보 부부와 두 아들
‘가보는 열네 살 때, 아버지와 친한 친구의 딸인 메르세데스 라켈 바르 파르도를 동네에서 처음 보고 훗날 결혼할 것이라고 막연히 예감했다. 둘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별다른 진전이없다가 무려 16 년이 지나고 나서야 부부의 연을 맺어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56년을 이어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가보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가보는 자신의 작품 어디서든 메르세데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는 가보가 죽고 6년 뒤인 2020년에 멕시코시티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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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디에가의 여자들
우르술라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절대 법칙에 따르면, 백 년의 고독의 주인은 6대에 걸친 남성들이 아니라 우르술라가  차지해야 할 것이다. 우르술라는 남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부터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등 주요 남자 인물들의 죽음을 지켜본 뒤 소설막판에 가서 생을 달리한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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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의 장례식 모습2014년, 가보는 여든일곱 살의 나이로 멕시코시티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 속인물들이 대부분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과는 달리, 그는 생전에 바라던 대로 가족과 지인들에 둘러싸여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전 세계가 애도하는 가운데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멕시코시티와 고향 아라카타카는 노란색의 물결로 가득 찼다. - P105

시에나가의 바나나농장 노무자들의 요구 사항은 별것 없었다.
일요일에는 일을 시키지 말라, 의료 시설을 개선하라, 막사에 화장실을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미국에 근거지를 둔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는 노무자들에게 돈 대신 회사 구매소에서 버니지아 햄을 살수 있는 배급표를 주었고, 노무자들은 비좁은 막사에 살면서 화장실 대신 50개의 휴대용 변기를 배급받았다. - P104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회사의 비리를 폭로한 대가로 감옥에 간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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