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술라와 아마란타의 역할 모델인 가보의 외할머니 미나
백 년의 고독에서 마콘도를 실질적으로 다스린 우르술라는 가보의 외할머니 미나를 모델로한 것이다. 외할머니는 빵과 과자를 만들어 팔며 가정 경제를 이끌어 갔을 만큼 현실감각과강한 생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카리브에 떠도는 미신과 주술도 신봉했는데, 그런 모습은 어린 가보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가보의 문학을 상징하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마술적‘이라는 말은 외할머니가 남긴 문화적 유산과 다름없다. - P111

아라카타카에 있는 가보의 기념물마콘도라는 가상공간을 낳은 아라카타카의 기차역 주변에는 가보의 소설 구절을 적은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대개 고독 속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반면, 여성들은 한결 강인하고 지혜로우며 다채롭고 복합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백 살 넘게 살면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우르술라의 모습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 P114

그에게 20세기 문학을 일깨워 준 ‘바랑키야 그룹‘의 돈 라몬 비녜스도 아니었다. 그의 스승은바로 윤락 여성들이었다. 그의 소설에는 아내보다 윤락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인물이 더 많이 나온다. 그는 왜 윤락 여성에 집착한 것일까? - P118

가보는 열두 살 때 섹스를 경험하고는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경험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는 마지막 장편소설로나이 아흔 살 노인이 성매매 업소의 10대 소녀와 사랑을 나누는 작품을 남겼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최소 514명의 여자와 잠을 잤다는 노인의 말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가보가 젊은 시절 임질을 반복적으로 앓을 정도로 성매매 업소를 즐겨 드나든 것은 사실이다. - P118

바랑키야의 거리
젊은 시절 가보는 바랑키야에 살면서 성매매업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 때문에 임질을 반복적으로 앓기도 했다. 그러나 윤락여성들로 대표되는 집 밖의 여자들은 그에게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 준 제2의 어머니이자 연애 코치이자 공부방 누나로서, 그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 P120

청년 가보
20대의 가보는 주로 바랑키야와 카르타헤나를 오가며 저널리스트이자 문학인으로서 본격적인 길을 걸었다. 저널리즘은 그를 계속 땅에 붙어 있게 했으며, 그것이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재능과 만나면서 현실의 시적 변형이라는 그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밑바탕이 되었다. - P125

그는 드디어 조용히 글을 쓸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돌아가는 비행기를 환불해서 식비에 썼다. 힘들게 두 번째 장편소설이될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초고를 썼지만 ‘아무도 출판하려 하지 않다‘가 되어 버렸다. - P126

가보 부부와 두 아들
‘가보는 열네 살 때, 아버지와 친한 친구의 딸인 메르세데스 라켈 바르 파르도를 동네에서 처음 보고 훗날 결혼할 것이라고 막연히 예감했다. 둘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별다른 진전이없다가 무려 16 년이 지나고 나서야 부부의 연을 맺어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56년을 이어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가보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 가보는 자신의 작품 어디서든 메르세데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는 가보가 죽고 6년 뒤인 2020년에 멕시코시티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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