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역사를 읽으며] 『난처한 미술이야기』 존중(尊重)이라는 한 단어 앞에서
※ 존중(尊重)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
‘尊’은 높일 존, ‘重’은 무거울 중이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일이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난처한 미술이야기』를 어느덧 여덟 권째 읽고 있다.
한두 권 읽다 말 책이었다면 굳이 저자의 생각까지 붙들고 씨름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시리즈에는 분명한 힘이 있다. 무엇보다 도판이 풍부하고 설명이 쉽다. 작품 하나를 던져놓고 미술사적 용어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정치와 종교, 사회와 권력을 함께 끌어온다. 고대에서 중세로, 르네상스에서 종교개혁과 바로크로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의 큰 흐름을 이만큼 재미있게 보여주는 대중서는 흔치 않다.
그래서 계속 읽었다.
그런데 1권의 머리말을 읽을 때부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미술의 가치를 설명하려는 저자의 열정이 때때로 미술에 너무 많은 것을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미술은 인류의 역사이고 과거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는 데에는 나도 이견이 없다. 인간은 문자를 만들기 훨씬 전부터 동굴 벽에 동물을 그리고, 돌과 뼈를 깎으며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표현했다. 음악과 춤 역시 문자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과 함께했을 것이다. 문자가 생긴 뒤에는 문학이 인간의 생각과 삶을 기록했고, 과학과 수학 또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해 온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미술은 분명 인류의 역사를 읽는 중요한 통로다. 그러나 그것이 미술만의 특권은 아니다.
그러다 저자가 선진국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는 선진국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세계와 인류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의 깊이와 폭’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굳이 틀렸다고 할 생각이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이해’라는 말이다.
그 이해가 얼마나 깊었는지, 얼마나 넓었는지, 그리고 누구의 시선에서 세계와 인류를 바라본 이해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제국주의 시대의 서구가 세계를 바라보는 과정에는 자신들을 중심에 놓고 다른 문명과 문화를 분류하고 평가했던 태도도 분명히 존재했다. 다른 문화를 동등한 주체로 바라본 이해도 있었겠지만, 힘을 가진 쪽의 기준으로 세계를 재단한 이해 역시 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신들의 이해’이기는 하다.
그 이해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고 폭이 얼마나 넓었는지는 따로 따져볼 일이다. 편협한 이해였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이해이고, 거대한 박물관과 미술관은 오히려 그들이 세계와 인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들의 이해의 깊이와 폭을 보여준다’는 말 자체에는 굳이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이어서,
“인류의 업적에 대한 존중까지 담아냅니다.”
라고 말한다.
존중.
나는 그 단어에서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런던과 파리와 뉴욕의 거대한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문화재와 미술품이 있다. 그것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연구하며 보존해 온 역사가 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문화재와 미술품이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정당한 거래와 기증으로 건너간 것도 있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팔려나간 것도 있다. 그리고 전쟁과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와 불평등한 힘의 관계 속에서 본래 있던 곳을 떠난 문화재도 적지 않다.
그 복잡한 역사를 한마디로 ‘존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존중했다면 꼭 가져와야 했을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다.
서구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옮겨진 뒤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세계에 널리 알려진 문화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 개발과 훼손 속에서 사라졌을 문화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미술품이 새로운 연구를 통해 인류의 역사와 미술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사실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반출된 뒤 잘 보존되고 연구되었다는 사실과, 애초에 그것을 가져갈 권리가 있었느냐는 문제는 전혀 다르다.
결과적으로 얻어진 효용을 앞세워 그 이전의 행위까지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위험해진다. 식민지 지배 이후 철도와 산업시설, 근대적 제도가 남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식민지 지배 자체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행위 이후 긍정적인 결과가 생겼다는 사실이 그 행위의 정당성을 거꾸로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가져왔기 때문에 보존되었다.”
이 말 역시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문화재를 가져갈 수 있었던 힘의 관계는 지워버린 채, 가져간 사람에게 다시 보존자의 공로와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하는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호쿠사이가 떠올랐다.
『내 손 안의 미술관, 호쿠사이』를 읽으며 작품 설명 아래 적힌 소장처를 따라가다 보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한 서구의 미술관 이름이 거듭 나타난다.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대부분을 약탈품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상당수는 근대 일본에서 거래되고 수출되어 서양의 수집가들에게 넘어갔다.
그럼에도 일본 미술의 걸작을 보기 위해 일본이 아니라 뉴욕과 보스턴, 런던과 파리의 미술관을 찾아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묘한 생각이 든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일본이다.
근대 일본은 자신의 수많은 미술품과 문화재가 서양으로 빠져나가는 일을 겪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이 힘을 갖게 되자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많은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자신의 문화가 힘센 나라로 흘러가는 경험을 했다고 해서 다른 민족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문화재를 ‘소유한다’는 것과 그 문화를 ‘존중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세계의 미술품과 문화재를 많이 모았다는 사실은 그 나라의 힘과 경제력, 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을 연구하고 분류한 기록은 그들이 세계와 인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미술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한 원천이 될 수 있다는 말에도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거기에는 미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과 수학이 있고, 철학과 문학이 있으며, 음악과 스포츠도 있다. 수많은 인간의 지적·문화적 성취가 함께 한 사회의 역량을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 역시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라고 말한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존중’이라는 말 앞에서는 자꾸 발이 멈춘다.
수집했다고 해서 존중한 것은 아니다.
연구했다고 해서 존중한 것도 아니다.
보존했다고 해서 처음의 소유가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다.
아름답다고 감탄했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사람들까지 존중했다는 뜻도 아니다.
어쩌면 박물관과 미술관은 인류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장소인 동시에, 힘을 가진 사람들이 세계의 아름다운 것들을 어떻게 발견하고, 연구하고, 보존하고, 또 소유해 왔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과 미술관 역시 하나의 역사다.
그 안에 놓인 작품의 역사만이 아니라, 그것을 누가 만들었고 누가 가졌으며, 어떤 힘의 관계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하는 역사다.
『난처한 미술이야기』를 여덟 권째 읽으면서 나는 이제 그림만 보고 있지 않다. 그림을 설명하는 저자의 시선도 함께 보고 있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며 감탄하기도 하고, 어느 문장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어느 문장 앞에서는 책장을 덮고 한참 생각한다.
좋은 책은 반드시 저자에게 동의하게 만드는 책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한 단어를 붙잡고 저자에게 따져 묻게 만드는 책도 좋은 책이다.
『난처한 미술이야기』에서 내가 붙잡은 그 한 단어는,
존중(尊重)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묻고 싶다.
그렇게 존중했다면, 왜 그토록 많은 것들을 가져갔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