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세계와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이해의 깊이와 폭을보여주며, 인류의 업적에 대한 존중까지도 담아냅니다. 그들에게미술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원천인 셈입니다. - P5
그간 많은 미술품을 보아왔지만 나의 질문은 언제나 ‘인간에게미술은 무엇일까‘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제가 찾은 대답이 바로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미술 이야기가 여러분의 눈과 생각을 열어주는 작은 계기가 된다면 너무나 행복하겠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편집 방향, 원고 구성과 정리에 있어서 사회평론 편집팀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기록해둡니다.
2016년 두물머리에서 양정무 - P5
이 시기는 ‘작가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카라바조, 베르니니 등 굵직굵직한 작가들이 유럽 곳곳에 등장합니다. 8권에서는 보로미니, 안니발레 카라치, 프란스 할스, 페르메이르, 무리요를더해 개성 넘치는 10명의 작가를 집중 조명하여 바로크 미술이 어떻게펼쳐졌는지 살피고자 합니다. - P6
바로크 시대에 유럽의 지도가 완성되면서 나라마다 미술의 성격도 분명해집니다. 이 책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의 바로크 미술을 순서대로살펴봅니다. 처음 등장하는 이탈리아 바로크는 거침이 없습니다. 구도와움직임, 색채와 명암 등 모든 조형적인 표현이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 P6
네덜란드의 경우 남부 지역은 가톨릭 세계에 묶이면서, 북유럽 특유의 섬세한 표현을 자랑하던 이곳 미술은 이탈리아 바로크와 융합합니다. 루벤스가 이 같은 미술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면 네덜란드 북부 바로크 미술이 이룬 눈부신 성과는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P6
한편 스페인은 16세기부터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자기 통제 아래 두며미술 역시 두 지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강력한 가톨릭 신앙에 기반한 엄격하고 절제된 미술, 동시에 화려한 이슬람과 중세 미술의 전통이이어지면서 스페인의 미술가들은 극도로 장식적인 후기 바로크 미술 세계를 이끌어냅니다. - P7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함께 유럽 근대 미술의 양대 산맥입니다. 르네상스가 고전적 균형과 안정적 조화를 강조했다면, 바로크는 탈고전적 화려함과 빠른 움직임을 강조합니다. - P7
바로크 미술은 너무나 화려하고 강렬한 세계이기에 도리어 거부감을 줄정도로 표현이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 시각 문화가 보여주는 스펙터클의 세계를 접하다 보면 시선의 움직임을 극적으로강조하는 바로크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 P7
결국 바로크 미술로의 여행은 현대 시각 문명의 시원을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노정입니다. 이제부터 강렬한 바로크 미술에 빠져볼까요. - P7
태양처럼 강렬한 바로크 미술은 혼란스러운 로마의 새벽으로부터 떠올랐다. 바스러진 영광을 되찾으려는 간절함은 끝을 모르는 화려함을 낳았으나, 그 이면에는 미처 물러가지 못한 어둠이 잔재했다. 로마의 중심을굳건히 지키는 성 베드로 광장, 그 찬란하고 위태로운 시대의 흔적 위로뜨거운 햇빛이 선명히 타오른다. - 성 베드로 광장, 바티칸 시국 - P12
바티칸, 강렬하고 뜨거운바로크 세계의 중심 #바로크 #바티칸 #천사의 다리 #성 베드로 대성당 #베르니니
바티칸은 이탈리아 심장부에 있는 단검이다 ㅡ 토마스 페인 - P15
로마 및 바티칸 시국 테베레강을 건너면 바로크 미술의 심장 같은 바티칸이 성큼다가온다.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순례자와 관광객 모두의 마음을설레게 한다. - P16
산탄젤로성과 천사의 다리, 135~139년, 로마 산탄젤로 성은 로마 제국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과 가족 묘지로 지었다. 성 앞에 놓인 다리의 정식 이름은 폰테 산탄젤로Ponte Sant‘Angelo다. 폰테는 다리, 산탄젤로는 성스러운 천사를 뜻한다. - P17
베르니니, ‘유대인의 왕‘ 십자가 명패를 든 천사(왼쪽), 가시 면류관을 든 천사(오른쪽), 1667년,천사의 다리 천사의 휘어질 듯 흔들리는 자세와 일렁이는 옷자락이 인상적이다. 현재 다리에는후대에 다시 제작한 작품이 자리하고, 원작은 로마의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에 있다. - P20
바로크라는 용어는 일그러진 진주를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17세기 미술 경향에반감을 품은 후대 사람들이 ‘기괴하다‘ ‘이상하다‘ ‘터무니없다‘는 의미를 담아 바로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P24
이제 이해돼요. 로마를 찾아오는 이에게 좀 더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려고한 결과가 바로크 미술이었다는 거네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천사의 다리는 고된 여정을 거쳐 바티칸을 찾은 순례객이나 여행객을 환영하는 적극적인 시각 장치였습니다. 베르니니는 환상적인 천사 조각상으로 바티칸에 막 들어선 이들에게 당신은 이제 천국의 세계에 들어왔음을 축복하려던 겁니다. 그러면 이제 발길을 성 베드로광장으로 옮겨볼까요? - P25
베르니니, 성 베드로 광장, 1656~1667년, 바티칸 시국 산 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이라고도 한다. 베르니니가 1656년 설계해 11년 후 1667년에 완공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이며, 베르니니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 P26
성 베드로 광장 콜로네이드, 1660~1667년, 바티칸 시국
맨 위에는 140명의 성인 조각상이 올라가 있다. 이 조각상들은 1662~1673년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완성했다. - P28
다시 보니 콜로네이드가 양팔로 보이기도 하고, 열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성인 이후 교황의 상징은 천국의 열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면서 천국의 열쇠를 내려줍니다. 그리고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열쇠는 교황을 상징하는데, 베르니니가 광장을 설계할 때 중요하게 고려한겁니다. - P30
사실 베르니니를 잘 몰랐는데 위대한 미술가였네요.
미켈란젤로가 16세기를 대표하는 로마의 작가라면, 베르니니는 17세기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17세기 로마를 ‘베르니니의 세계‘라고 부를 정도로 베르니니는 건축, 조각, 회화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발휘했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다음 페이지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 P31
지금은 이어폰만 꽂으면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는성 베드로 대성당 옆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비밀스럽게 연주된 곡이었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천사의 음악‘처럼 아름다운 이 곡을 독점하기 위해 복사를 금하고 악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에 1770년대까지는 바티칸을 찾아야만 겨우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1770년14살의 모차르트가 시스티나 예배당을 방문해 이 곡을 딱 한 번 듣고 외워서 악보로 적어낸 다음부터 널리 연주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P33
성 베드로 대성당이 처음부터 호화롭게 꾸며진 건 아니었습니다. 준공 당시에는 텅 비어 있었다고 해요. 혹시 ‘장엄하다‘라는 표현을 아세요? 우리에겐 씩씩하고 웅장하다라는 형용사로 익숙하지만, 성스럽고 종교적인 건축물을 꾸밀 때 장식하다 대신 ‘장엄하다‘라는 동사로도 표현합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텅 빈 성 베드로 대성당을 장엄한 주인공입니다. - P34
베르니니, 다키노, 1624~1635년, 성 베드로 대성당
천개‘라는 뜻의 발다키노는 제대나 설교단 주위에 세워진 네 개의 기둥과 윗부분에 장치되는 덮개를 말한다. - P36
베드로 성인의 무덤, 성 베드로 대성당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고 초대 교황이된 베드로 성인의 무덤 위에는 중앙 제대가 있고, 그 위에 발다키노가 설치되어 있다. - P38
판테온도 역사적인 건축물인데 함부로 뜯어도 되나요?
그럴 리가요. 판테온의 청동을 끌어다 쓴 걸 보고 "바바리안(야만인)이 못한 일을 바르베리니가 했다!"라며 조롱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바르베리니는 교황 우르바노 8세의 가문을 말합니다. 우르바노 8세의 본명은마페오 바르베리니입니다. 우르바노 8세가 야만인만도 못한 문화재 파괴범이라고 비꼰거죠. 말이 나온 김에 다음 페이지에 우르바노 8세 가문의 문장 coat of arms이 담긴 대리석 받침대를 볼까요? - P38
화려한 바로크의 천재 기획자 베르니니가 교황의 무덤까지 만들었나요? ‘베드로의 의자‘에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의자 바로 왼쪽에는 바오로 3세의 무덤 기념물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우르바노 8세의 무덤 기념물이 자리합니다. 16세기에 제작된 바오로 3세의 무덤은 르네상스와바로크 사이 매너리즘이라고 부르는 다소 기교적인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반면 베르니니가 만든 우르바노 8세의 무덤은 바로크 미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교황의 자세만 보아도 차이가 느껴지지 않나요? - P50
크고 화려하면 멋있지만, 그것이 정작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죠.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후대 비평가들은 바로크 미술을 난잡하고 일그러진 양식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가톨릭 세계가 겪은 위기를떠올리면 17세기 바로크 미술이 왜 그렇게 과장된 표현에 집착했는지 이해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화려함의 배경에는 위기와 도전의 시간이 있었던 거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가 바로크 미술이 연출한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어지는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P54
예술은 혼돈에 대한 승리다. -존 치버 - P56
16세기 초반부터 로마는 엄청난 사건을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활동하던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로마 교황청에 일종의 공개서한인 『95개조 반박문을 보내 교회의 타락을 낱낱이비판합니다. 때마침 금속활자가 발명되면서 반박문이 유럽 전역에 퍼지자교회의 권위는 크게 흔들립니다. 영원히 하나일 것만 같던 가톨릭 세계는루터를 지지하는 쪽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갈라섰습니다. - P57
트리엔트 공의회에 모인 학자들은 논의 끝에 종교 미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세부 지침을 내립니다. 바로크 미술을 당시 사람들의 시선으로감상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니 눈여겨봐주세요. 첫째, 종교 미술은 명쾌하고 명확하며 이성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둘째, 사실적인 해석을 나타내야 한다. 셋째, 종교 미술은 신앙을 감성적으로 고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P64
언어로 된 지침을 적절하게 해석해서 그림으로 나타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미술가들이 종교 미술의 새로운 조건에 적응한 이시기는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매너리즘은 미술사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있는 미술을 뜻합니다. 이 용어는 양식 style, manner을 뜻하는 마니에라maniera에서 온 말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라고도 하죠. - P64
이 적응기가 없었더라면 바로크도 탄생하지 못했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창조력을 잃고 과거의 미술을 따라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의 슈퍼스타보다 이 시기작가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매너리즘 양식이 생겼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P65
1571년에는 책을 검열하는 기관까지 만들었습니다. 이후금서목록은 계속 늘어나 수천 권에 이르렀는데요. 여기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존 밀턴의 『실낙원』은 물론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등 뛰어난 학자들의 책이 올랐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시작된 가톨릭의 금서 지정은 1966년까지 계속됩니다. - P74
교회에서 진리라고 굳게 믿었던 지식을 다시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군요.
맞습니다. 더는 과학을 부정할 수 없는 시대가펼쳐진 거죠.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혼돈의 와중에도 인간은 진리에 한 발짝 다가섰습니다. 이처럼 빛과 어둠이 강렬하게 교차한시대가 바로 17세기입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화가는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여기에 첫 번째 답을 내놓은 작가가 있습니다. - P88
인생의 모든 다양성, 모든 매력, 모든 아름다움은빛과 그림자로 구성된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 P90
빛과 어둠으로 현실을 겨눈 카라바조 #바로크 #카라바조 #콘타렐리 예배당 벽화 #테네브리즘#카라바지즘 - P91
바로크 시대의 미켈란젤로 로마의 뒷골목을 그린 화가라고요? 바로 카라바조입니다. 카라바조는 어둠의 화가로 불립니다. 그의 그림 속에 로마의 어두운 뒷골목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카라바조는 로마의 깊은 그림자로부터 영감을 얻어 미술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선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 P96
카라바조는 어떤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일구었습니다. 그는 비록 일찍 생을 마감했지만 동시대 화가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쳤고 결국미술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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