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는 목이 졸려 죽은 것이 아니었다. 죽은 후에 약에 취한 누군가가 레나가 죽은 줄 모르고 스카프를 감아 목을 졸랐다. 이것이그 사건의 진상이다.
실제로 그 판단은 옳았다. 해가 진 후에도 눈은 쉴 새 없이 내려서 점점 더 쌓여갔다. 레나의 짐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뒤뜰 소각로로 옮겼을 때에는 완전히 눈보라였다. 우산은 거의 쓸모가 없었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을 파고드는 발이 무거워서 목적지까지도착하는 데 평소의 배가 넘는 거리를 걸은 듯했다.
물론 그날 밤 주방의 냉장고는 이미 고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이스박스에 옮겨 담은 약간의 얼음은 가자마 유키가 다 써버렸고, 제빙실의 서리도 다 녹았다. 적어도 저택 안에서는 얼음을 새로 만들기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한 가지다. 범인은 건물 밖에 쌓인 눈을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가져온 것이다.
진상을 알면서도 나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히카와가 다가왔을 때 시체의 얼굴에 옷을 덮어 그들의 눈에서 진실을 감추려 했다. 물론 살인으로 꾸며 젊은이들을 유도하면 경찰 신고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 아래 한 일이다. 설령 진상이 병사였든, 약물 남용으로 인한 중독사였든 변사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관이 떼거지로 저택에 드나드는 것은 내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눈을 가져올 수 있었던 사람은 한 명으로 한정된다.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사람은 바로 그 청년, 히카와 하야토다.
장서실 바닥에 지하로 통하는 비밀 구멍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이나마 고뇌가 사그라졌을 것이다. 현장이 밀폐되어있지 않았다면 ‘네 사람 중 하나‘라는 빠듯한 확률이 다소나마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비밀 구멍이 장서실 쪽에서만 열린다는 것을 알고 그의 고뇌는 다시 같은 수준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나 살롱에 온 기노우치 신이 탁자의 아이스박스를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박스 속에는 물이 들어 있었다. 전날 밤 가자마가 아이스박스를 거꾸로 들고 속을 비웠는데 말이다. 이것이 바로 밤중에 누가 그 박스에 눈을 채웠다는 증거아니겠는가.
자신의 명확한 의지 아래 살인을 저질러서 자신을 살인의 심리적인 속박에서 해방시키려 한 것이다. 희생자로 아사오를 선택한 것은 글씨체를 흉내 내기 쉽고, 몸집이 작으며, 레나 사건과는 관계없이 자살할 동기가 있다는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임이틀림없다. 이상이 아사오 겐지로의 죽음에 관해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핵심은 바로 ‘이성‘이다. 둘째 날 오후, 장서실 회랑에서 히카와는 대담하게 딱 잘라 말했다. 자신에게 ‘신‘은 자기 자신의 이성이라고. 같은 범죄 행위를 저지른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이성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듯 ‘이성‘에 대한 강한의지를 드러냈다.
따라서 범인이 눈을 입수하려면 현관이나 뒷문, 둘 중 하나로 밖에 나가야 한다. 그날 밤 이 문들은 둘 다 잠겨 있어서 열쇠 없이는안에서도 열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음 날 아침에 문을 억지로 비틀어 연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문을 열기 위한 열쇠는 둘 다 하룻밤 내내 히카와가 보관하고 있었다.
‘진상‘은 바뀌어야 한다. 쓰바키모토 레나를 죽인 것은 네 사람 중 하나가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특정 인물 한 명이었다는 식으로바뀌어야 한다.
이성을 잃은 상태로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진상‘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 진상을 여러 사람이 인정하는 ‘현실‘로서 이대로 방치하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절대로.......그리하여 그는 이런 결의를 굳히기에 이르렀다.
벌써 10년도 더 전일까. 이 저택의 이 방에서 이성을 잃고 그 아이의 목을 조른 내 모습이 환상이 되어 피어오른다. 거울 반대편에세운 또 하나의 저택에서 직접 그린 그 아이의 초상화를 지하 통로로 가져가서 미친 듯이 난도질하던 내 모습이 그 환영에 겹쳐서흔들린다........
지난달 초순, 멜버른에 사는 그의 형 아다치 모토하루足立基春 씨(재미있게도 그는 내가 학창시절 때 친하게 지낸 구마시로 노스케라는 남자의 지인인 모양이다)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결의를 굳히기에 이르렀다.
벌써 10년도 더 전일까. 이 저택의 이 방에서 이성을 잃고 그 아이의 목을 조른 내 모습이 환상이 되어 피어오른다. 거울 반대편에세운 또 하나의 저택에서 직접 그린 그 아이의 초상화를 지하 통로로 가져가서 미친 듯이 난도질하던 내 모습이 그 환영에 겹쳐서흔들린다........
지난달 초순, 멜버른에 사는 그의 형 아다치 모토하루足立基春 씨(재미있게도 그는 내가 학창시절 때 친하게 지낸 구마시로 노스케라는 남자의 지인인 모양이다)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흑묘관과 시계관, 같은 건축가가 만들어낸 두 건물에서 똑같은 시기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묘한 현실을 나는 도대체 어떤기분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굳이 쓰지 않도록 하겠다. 슬슬 석양이 질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 공교롭게도 바깥 날씨는 나빴지만, 기분 때문인지 쏟아지는 빗소리는 온기를 띠고 있는 것같았다.
1989년 9월 5일. 이곳 타스마니아 섬의 겨울은 천천히 봄을 향하고 있다.
이성이라는 ‘신‘ 때문에 친구를 살해한 그 청년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역시 욕망과 격정을 이성으로 억누르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그를 비교해보고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모토하루 씨의 아내 데루미는 원래 성이 ‘고가‘로, 고가 정계사의 회장이었던 고가 미치노리 씨의 친동생이라는데, 고가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데루미가 후견인을 맡아온 후계자 아들이 올해 8월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듣건대 그 아들은 가마쿠라의 ‘시계관’이라 불리는 저택에 살았는데, 그곳을 찾아온 사람 몇 명을 살해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계관이라는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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