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단계의 캔버스를 보고 바로 내 ‘기억‘과 연결시킨 기사코의 통찰력은 역시 날카롭다 해야 할 것이다.
"그 후로 몇 번이나 기억해내 보려고 했는데요,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잘 안 나요. 너무 아득해서 손이 닿질 않아요. 뭐랄까, 뭔가 모양이 다른 조각이 잔뜩 섞인퍼즐 같은 느낌이라서요. 그래서 왠지 붓이 가는 대로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는데........"
무서운 그림.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기울어진 석탑의 뾰족한 끝에 가슴이 꿰뚫린 남자. 유리 십자가에 책형을 당한 인면의 야수. 고층 빌딩 사이에서 아스팔트에 배까지 삼켜진 여자. 눈이 먼 아기를 물고 있는 거대한 개. 하늘에서 늘어뜨려진 밧줄로 목을 맨 노인. 그림 한 장 한 장을 기사코는 다시 한 번 골똘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떠한 형태로든 28년 전에 어머니 미와코가 죽은 열차사고와 관련된 작품이 나올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뭘 어떻게 그리면 될지, 어디서부터 그리면 될지 도통 갈피를 못 잡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달 전에 일어난 화재와 어머니 사와코의 죽음에 대한 내 생각. 정체불명의 인물이 보낸 두 번째 편지. 시마다 기요시에게 들은 나카무라 세이지의 이야기와 이 집 ‘인형관과의 관계.....한다. 저번 달에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나와 가케바의 대화를 언뜻 들은 기사코는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이다. 어쩌면 나중에 가케바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쿡쿡 쑤시는 듯한 옛 기억. 너무나 아득한 풍경. 편지를 보낸 사람이 집요하게 기억해내라‘고 되풀이해 닦달하는 것. 내 ‘죄‘, 내 ‘추악함....... 그 문제만은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이 내 간절한 소망이다. 설령 언젠가 ‘그‘에게 살해당할 운명이라 하더라도.
붉은 꽃 흐드러지게 핀 피안화, 가을바람. 붉은 하늘. 두 줄기 검은 선, 선로 다가오는 굉음. 마치 거대한 뱀 같은, 뱀의 사체 같은 열차의 모습. 흐르는 물. 어린아이.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 때때로 마음 어딘가에서 흔들리는 그 단편들을 어떻게든 그려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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