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코뮤지엄에 다녀왔다.
혜화역 일대에 출몰하는 20대는 성대생과 배우지망생이 반반치킨으로 섞여있다. 계단을 올라가는 두 사람의 손에 각각 한계효용체감법칙 정리노트와 형광펜쳐진 연극대본이 있었다. 미시경제 소비자이론 대략 중간고사 범위인 듯하다.
아르코 지난 전시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향기전시인데 1층은 글로 도배, 2층은 향이 다 뒤섞여 구분할 수가 없었다. 해외에서 오래 활동했다는데 영어 인터뷰도 어설펐다. 네임밸류와 해외숭배라는 사대주의의 악습이 보인다. 베니스 한국관을 잘 운용할 실력있고 아이디어 많은 무명의 국내작가도 충분하다.
작렬하는 아라비아 사막의 한가운데 백골처럼 바싹 말라가지만 생명의 비가 내리기만하면 고대의 세계수로 자라날 씨앗이 오매불망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좋았다. 단상이다.
1) 강석호의 회화 다섯 점은 모두 다른 주제인데, 스타일상으로는 격자무늬 패턴을 반복
2) 문이삭의 조각은 찐덕한 흘러내리는 조형을 쌓았다. 구현한 물성의 질감이 특이.
3) 노은주의 3연작은 동료의 작업실을 대상으로 삼는다. 회화가의 작업물품을 네덜란드 정물화마냥 상세히 볼 수 있어
훗날 2020년대 물질문화의 사료로 사용될 것 같다. 반지하 작업실에서 열악한 예술가의 사회경제적 현실이 드러난다
4) 권오상의 프린트 봉고는 반사되는 유리창을 어떻게 처리했는지가 핵심이다. 모자이크지마 모자이크아닌 것이 특이.
5) 박광수가 가장 유쾌하다. 엄지돌리기 하는 펜의 궤적이 드로잉 그대로 떨어져내린다. 60프레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간다. 엘리멘탈의 불인간 같은 존재가 걸어다닌다
6) 폐관되는 인미공 근처 세탁소와 미용실 주인 인터뷰가 잡지에도 있고 영상에도 있다. 세탁소 아저씨는 동네에 기여한 것
이 없다고 하고 미용실 아줌마는 자신도 미술계통인 미용일을 하니 호의적이다. 인미공에 대한 서로의 다른 관점이 재밌다.
7) 잡지는 다 읽었다. 큐레이터의 울분이 보인다
8) 이민지는 반짝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를 어떻게 구현할지 물성탐구했다
9) 김규림은 1억 화소로 찍은 8439장의 렘브란트의 <야경>을 보여준다. 전체상은 안 보이고 물감 픽셀단위의 모공이 보인다
10) 홍진훤이 귀하다. 미국, 한국, 파키스탄의 노동을 병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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