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저크Just Jerk가 세계 춤 대회 Body Rock 2015년에 나와 전통 무용을 가미한 댄스를 선보였는데 우승은 하지 못했다. 중간에 힙합스러운 테마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하회탈을 쓴 댄서들의 서정적이고 한국전통적 무용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apUSlqsFjI&t=210s



우승자가 다이내믹하고 폭발적인 군무를 선보였다는 것을 벤치마킹해 2016년 다음 해에는 형광 곤룡포 태권도, 트랜스포머 변신 합체 안무를 선보였고 이것이으로 우승한 덕에 기세를 이어 2017년에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도 나갔다. 그 기반에는 한국 크루뿐 아니라 교포 멤버가 포함되어 있어 미국과 글로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연을 디자인한 데 있다. 솔루션을 제공하는 감각있는 디자이너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종묘제례락의 의식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일무가 세종문화회관과 미국 뉴욕 등에서 공연하고 호평을 받고 있다. 공연 감독은 패션 및 무대 디자이너 출신 정구호


https://www.youtube.com/watch?v=0r1-eMrHOdM


깊은 콘트라베이스 템포에 오종이 생각나는 북유럽풍 미니멀한 스테이지가 인상적이다. 


저스트 저크의 2015년 한국풍 공연이 우승하지 못했던 것에는 다이내믹한 안무의 부족도 있었겠지만 Kpop이 글로벌 트렌드로 포지셔닝되기엔 아직 이른 시기였기 때문이다. 세계가 아직 한국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문화는 전파속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응이 다르다. 춤이나 음악 같이 직관적 이해가 가능한 문화에서 약간의 한국어만 배우면 특별히 어렵지 않은 가사의 Kpop을 지나 이제 미술, 무용 등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는 하이컬처가 퍼진다. 11월에는 이건희 컬렉션전이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저스트 저크와 일무 둘 다 같은 꽃봉오리 무브먼트라서 생각나서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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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뮤지엄 옥승철전

게임 시나리오나 챕터 선택하듯이 교차로에서 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재밌는 동선이다. 팝아트와 애니작화풍의 작가의 전시테마와 맞닿아있다.

이스터섬 모아이 조각상같은 4m 크기의 대형 여성군상은 얼굴만 있고 긴 머리칼이 몸과 팔을 대신한다. 으레 그런 대형상들이 얼굴만 강조하듯이. 목이 없다.

옛날 만화 고기덩어리의 나이테 모양 마블링 절단면같은 잘린 목 그림과 넘어져 있는 두상 조각도 목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사람 형상에 얼굴만 강조되고 목이 없다는 게 공통된 모티프다.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현대인을 상징할 수도.

원색의 캐릭터 얼굴, 무채색의 눈동자가 없는 얼굴 아웃라인도, 피규어풍 조각도 목이 없다

고글 쓴 변신 만화풍 페이스들은 남자는 화내고, 여자는 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도시인의 감정상태일지도 모른다.

분노하고 싸우려는 얼굴의 눈동자는 갈라져있는데, 이런 번개형 선처리가 녹색 광자포(작품제목은 spike)쏘는 장면에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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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1994-1995년 강릉공항 영상을 봤다. 정말 오래 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pFntrT1-Q4&list=TLPQMTUwODIwMjU21QcewMlxHg&index=5


비행시간은 지금과 다를 바 없다.

강릉-서울 55분

강릉-나고야 1시간 50분

곧, 30년 동안 비행속도와 거리가 현저히 바뀌지 않고 멈춰있다는 말이다.


인천-나리타 2시간 반에서 1시간으로 단축이 되거나

인천-런던 13시간에서 5시간으로 단축이 된다면

전세계 도시 공간의 체감이 완전 달라질테지만


지금으로서는 기상 상황, 항로 충돌 등의 여러 문제로 인해 비행 시간을 줄이는 것은 요원해보인다.

그렇다면 서비스질을 높이거나, 공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F&B를 들여오거나 라운지를 만들거나, 출입국 시간을 줄여서 신속히 도심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거나, 지금까지 없던 공항을 신설해서 더 다양한 허브를 만드는 등의 방법이 있겠다


조금 더 이상적인 옵션은 개인 비행 장치로 외국 여행하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로 어디든 여행을 떠나듯이


폭우, 난기류 등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100년 후에는 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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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1409490005809


https://iumkorea.com/korea_trip3-2/


오늘자 한국일보에는 이종찬 광복회 회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현시점의 한일관계에 대해 이 회장은 “일본은 이웃이자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하며, “전전(戰前) 일본”과 “전후(戰後) 일본”을 구분해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사 문제와 미래 협력을 혼동할 필요가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 기조에 따른 관계 개선 방침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이어 “우리를 침략하고 괴롭히며 식민 통치를 한 일본은 전전 일본”이라면서 “전후 일본은 평화를 존중하고 이웃과도 잘 지내려는 일본”이라고 구분했다.


바야흐로 한일 협력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한일관계의 변화를 배경으로, 역사 현장 또한 서서히 그 모습을 바꿔왔다. 과거 서울 한복판, 광화문 정면에는 웅장한 건물이 서 있었다. 1926년에 건립된 조선총독부 청사였다. 이 건물은 경복궁의 정면을 가로막듯 자리하며,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의 정치 변화를 묵묵히 지켜봤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 중앙청,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활용됐으며, 고려청자·백자·금속공예품 등 귀중한 문화재가 전시됐지만, 외형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상징이라는 복합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총독부 청사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한쪽에서는 식민 지배의 상징을 서울 중심부에 그대로 두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역사적 건축물로서의 가치와 근대 건축사적 의미를 고려해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는 쉽지 않았다.


30년 전 1995년 오늘 김영삼 대통령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청사 해체를 공식 결정했다. 작업은 전면 폭파가 아닌 단계적 철거 방식으로, 약 1년에 걸쳐 진행됐다. 철거 과정에서 붉은 섬광과 연기가 포착된 영상이 공개되며 ‘폭파설’이 돌았지만, 실제로는 절단과 해체를 병행한 방식이었다.


해외 언론의 반응은 다양했다. 일본 주요 신문들은 “역사적 건축물의 철거는 아쉽지만, 한국 사회의 상징적 선택”이라고 보도하며, 이를 한일관계의 민감한 역사 인식 문제와 연계해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 일부 언론은 “식민지 시대 상징물 철거 논쟁은 세계 각지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반복되는 현상”이라고 해석하며, 독일과 동유럽 사례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건축 전문지들은 청사의 설계적 특징과 당시 동아시아 건축사에서의 위치를 조명하며, 정치적 상징성과 건축사적 가치가 충돌한 전형적 사례로 평가했다.


철거된 부재 일부는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 서편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낮은 위치에 놓인 기둥과 석재는 관람객이 내려다볼 수 있도록 배치됐으며, 이는 제국주의 권력의 종말을 상징한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그곳은 기념 공간이라기보다는, 시간 속에 조용히 놓인 흔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사는 남기는 것만큼이나 지우는 방식으로도 기억된다. 조선총독부 청사의 철거와 이전은 물리적 형태를 없앴으나, 오히려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더 선명히 각인된 사건이 됐다. 이 과정은 역사 기억의 보존과 삭제, 그리고 상징의 재배치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남겼으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本日付の韓国日報の記事には、李鍾贊光復会会長のインタビューが掲載されており、光復80周年を迎えた現在の日韓関係について、「日本は隣国であり、共に未来を設計できる国だ」と述べた上で、「戦前の日本」と「戦後の日本」を区別して見るべきだと訴えていると報じられました。


これは、韓日関係において「過去の問題と未来の協力を混同する必要はない」とする李在明大統領の「国益中心の実用外交」に基づく韓日関係改善方針と軌を一にするものとみられます。


引き続き李会長は、「我が国を侵略し、苦しめ、植民地支配を行ったのは戦前の日本」であり、「戦後の日本は平和を尊重し、隣国とも良好な関係を築こうとする日本である」と区別しました。


まさに日韓協力の時代を迎えていると言えます。こうした日韓関係の変化を背景に、歴史の現場もまた徐々にその姿を変えてきました。


かつてソウルの中心、光化門の正面には、壮大な建物がそびえておりました。1926年に建てられた朝鮮総督府庁舎です。この建物は景福宮の正面を遮るように建ち、長い年月にわたりこの地の政治的変化を黙して見つめてきました。解放後は米軍政庁、中央庁、さらに国立中央博物館として利用され、高麗青磁や白磁、金属工芸品などの貴重な文化財が展示されましたが、その外観は依然として植民地時代の象徴という複雑な意味を帯びておりました。


総督府庁舎をどうするかは、長らく議論の的となってきました。一方では、植民地支配の象徴をソウルの中心にそのまま残すのは不当だとする主張がありました。反対に、歴史的建築物としての価値や近代建築史上の意義を踏まえて保存すべきだという声もあり、社会的合意は容易には得られませんでした。


30年前、1995年の今日、金泳三大統領は光復50周年を機に庁舎の解体を正式に決定しました。作業は全面的な爆破ではなく段階的な撤去方式で行われ、およそ1年にわたり進められました。撤去の過程で赤い閃光と煙が映った映像が公開され「爆破説」が広まりましたが、実際には切断と解体を併用する方法でした。

海外メディアの反応はより多様でした。


日本の主要紙は「歴史的建築物の撤去は惜しいが、韓国社会の象徴的な選択」と報じ、日韓関係における歴史認識の敏感さと関連付けて分析しました。米国や欧州の一部メディアは「植民地時代の象徴物を巡る撤去論争は、世界各地の過去清算過程でも繰り返される現象」と解釈し、ドイツや東欧の事例と比較しました。特に建築専門誌は、庁舎の設計上の特徴や当時の東アジア建築史における位置づけを紹介し、政治的象徴性と建築史的価値の衝突という典型的な事例と評価しました。


解体された部材の一部は、忠清南道天安の独立記念館西側に移され展示されています。低い位置に置かれた柱や石材は来館者が見下ろせるよう配置され、それが帝国主義権力の終焉を象徴すると説明されています。しかしその場所は記念空間というよりも、時の流れにそっと置かれた痕跡のようにも見えます。


歴史は残すことと同じく、消すことによっても記憶されます。朝鮮総督府庁舎の撤去と移設は、物理的な形を失わせた一方で、人々の記憶の中により鮮明に刻まれる出来事となりました。そしてその意味は、保存か撤去かという両方の観点から、今日に至るまでなお議論され続け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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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문화역 아시아프 1부에 출품한 작가 중 몇 명만 글로 다뤄보자(4)


1. 유석주, 관망, 장지에 먹, 유채, 2024

2. 유석주, 7월 16일 놀이터, 장지에 먹, 유채, 2024


평범한 드로잉인가 생각하다가 재료가 먹인 것을 보고 아주 유심히 뜯어본 작품이다.

먹으로 이런 목탄 스케치감을 줄 수 있다니. 자세히 보면 먹의 필선이 보이는데 인상은 크로키다.


가장 지적인 작품 중 하나였다. intellectual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렇다.

우선 의도적인 불완결성이 보인다. 

선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색은 캔버스를 다 채우지 않았다.

따라서 보는 이가 이미지를 읽고 빈 공간을 채우는 과정이 요구된다.

직관적인 그림이 아니어서 즉각적 소비보다는 치밀한 해석과 진중한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도형과 구상 사이의 경계에서 시각적 추리가 유도된다. 

왼쪽의 <관망>도 오른쪽의 <놀이터>도 사물의 형태와 단서가 암시되지만

완전히 구현되어 있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처럼 퍼즐을 맞춰가는 지적 여정이 필요하다.


동양화라고 해도 서양화라고 해도 원색 계열이지만 채도가 약간 다소 눌린 듯한

노란색과 발간색이 회색과 연녹색 톤에 배치되어있다.

색채가 절제되어있다. 동서양 그 어떤 관습적 문법에도 속해있지 않는데

으레 어떤 색과 기법은 어떤 소재를 다루어야만해 (배접, 단청으로는 길상 상징을 그려야해) 같은 중력의 자장을 벗어나

자기 하고 싶은 무언가를 탐험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먹의 필선인듯하면서 목탄 크로키인듯하면서, 바스키아의 낙서같으면서

형태를 포착하는 분석적 선이다. 작가의 관측과정이 읽힌다. 연구와 관찰의 결과 같다.


시점과 공간도 특이하다.

원근법도 아니고 시점이 약간 병합되어 있는 듯한 공간 구조다. 굳이 말하자면

큐비즘적의 지적 전통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누워있는가 테이블.

그래서 사진처럼 단순한 장면을 포착하는 게 아니라 구성에 대한 메타적 사고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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