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26시간 배 타고 가야한다는 오가사와라제도 치치시마에 6일마다 들어왔다 나가는 배를 환송하는 낭만 치사량 가득한 엔딩

마지막 장면 생각 안 하고 보다가 눈물 났다

이런 환송은 협회차원의 일일까? 정책지원의 결과일까? 그런데 누가 시켜서 했거나 돈을 받았다고 보기엔 뭔가 진심이 가득한 환대로 느껴지고 다이빙하는 자도 스스로 재밌어서 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하다

내 기준 초심 잃은 여행유투버를 대체할 다크호스 1황

술 담배 안하고(콜라만 먹고) 두려움 없이 탐험해서 매 콘텐츠가 재밌고 편집도 빨라서 순식간에 긴 영상을 본다. 누가 여행영상업이 레드오션이라고 했는가! 오히려 기존의 엇비슷한 프레임에 식상해하는, 그러나 한 매체와 분야에 길들여진 시청자가 신성의 탄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여행 음식 예능 노래 등등은 매력넘치는 신규 콘텐츠가 나오면 대기하던 이들이 곧바로흡수한다

https://youtu.be/XhSAhHkEKnU?si=nGApw5tkWHjfpVS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일본여행비가 올랐다. 많이~

APA 비즈호 1인실 1박 5만원, LCC 왕복 8만원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같은 호텔이 지금은 15만원? 20만원?

LCC는 10월부터 유류할증료 붙어서 왕복 30만원 언더를 찾기 힘들다. 운좋게 출발편 8만, 10만원을 찾아도 어차피 도착편이 20만원이다.

이전과 비교해 대략 필수 비용이 2배는 되는 셈

아무리 엔화가 850으로 낮아졌다고 해도 이는 소비할 때의 착시효과일 뿐이지 가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고, 2배 오른 호텔과 항공권 가격을 감산할만큼은 아니다.

러우전쟁, 호르무즈 해협사태 등으로 고유가, 인플레, 원자재, 그리고 일본 디플레 서민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사나에노믹스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인 것 같다.

유투브에 구독자 몇 없고 조회수 몇 천 몇 만 나오지만 도쿄 오사카 여행 브이로그가 많았었는데 이 모두 잠시 잠깐의 일장춘몽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대개 대학생들이 알바비, 사회초년생들이 월급 모아 휴가가서 찍은 여행기다. 일본어를 못 하기에 한국인이 찍은 비슷한 인스타, 브이로그를 보고 구글지도에 맛집을 핀해두고 가서 거의 비슷비슷한 곳만 카메라에 담는다. 일본 현지에 오랜 산 한국인이나 현지인이 찍은 브이로그와 비교했을 때 관점, 주제, 내용이 다르다. 천편일률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때는 남들이 하는 것 비슷하게 따라하는 정석 코스를 추종하는 것도 사실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일단 남들 한다는 거 다 해봐야 기본 위에 변주가 가능하니까.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 대신 깡시골 소도시부터 여행을 시작하는 것은 흔치 않다.

여튼, 그런 여행영상도 코로나 이후 일시적인 특혜에 힘입은 것이고, 이제는 금전적 장벽이 생겨서 많이 줄어들 것 같다. 100만원 내외의 경비로 갈 수 있었기에 가능한 여행이었고, 그것이 2010년대 후반에는 동남아였다. 긴 항공시간은 젊은 신체가 제공하는 체력으로 견딘 것이다. 아마 또 다른 저가 여행지가 개발되면 그곳으로 가겠지. 아직은 일본 소도시나 대만의 타이중, 타이난말고는 큰 선택지가 없다. 인도? 몽골?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일본여행을 포함해 자유여행 자체가 냉전 붕괴 잏후 1992년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전에는 비자 발급도 어려웠다. 외교관이나 상사에 근무하거나 공적 목적이 있어야 출국 허가가 났다. 92년 이후에도 중산층 이상이어야, 버블 이전의 부자나라이던 일본을 갈 수가 있었다. 1997년엔 IMF로 한국이 힘들었다. 2008-12년에는 1500원 수준의 엔고로 인해 유학생의 삶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들었다. 코로나 때는 봉쇄였고. 그러니까 옆나라라고 하지만 대충 1992-1996, 2000-2007, 2014-2019, 2023-2026 정도가 너도 나도 일본여행을 갈 수 있었던 트렌드가 형성된 시절이 아닐까? (전문가가 아니라 실제 경험자들의 의견 환영)

이런 타임라인은 마치 견당사나 통신사, 북학파의 연행을 떠올리게끔한다.

전근대에는 이동이 어려웠고, 일생에 단 한 번만 외국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단 한 번의 체험은 자신뿐 아니라 폐쇄된 사회를 격변시키는 지적 충격을 가져왔는데, 삼장법사는 산스크리트어를 배워 불교를 도입하고, 견당사는 당나라의 행정, 법령을, 북학파는 청나라의 문물과 서학을 수입한다.

역관, 무역같은 특수 직종이 아닌 이상 여러 번 갈 수 없었다. 한 번의 경험만으로 충분하며, 혹은 두 번은 허락되지 않았다. 최치원은 시험 통과하고 관료까지 했지만 귀국 후 다시 돌아갈 길이 막혔다. 그러나 설령 무역상이라고 해도 항구에만 접안했고 비즈니스 외국어만 했지 일상에 섞여 살고 도시 내부까지 가본 것은 아니었을테다. 그러니 지금처럼 성도 들어가보고 도시 내부에도 가볼 수 있었던 통신사, 연행사의 여정 기록은 매우 귀한 사료. 또한 역으로 지금의 관광지 탐방이 얼마나 인류사에서 혜택받은 경험인지 느낄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사회라 관광도 상품이기 때문에 돈이라는 허들이 있지만 말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북촌의 작은 정원들 -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골목 정원 이야기
최윤선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963년 영어 문제
문제집은 커녕 학교 가는 것도 힘들고
알파벳을 가르칠 교사도 없던 시절 최고 수준 문제
https://www.instagram.com/p/DetZ4eaEvml/?img_index=2&dlrf=M3M2dTJ2YXE0Ymx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메리칸 학원 1
이민진 지음, 정소영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민진의 신간 아메리칸 학원 영문 원서 뒤에 백 페이지 정도만 남겨두고 발 빠르게 번역된 우리말 번역본을 집었다. 빨리빨리의 민족, 급속 번역 기능이라도 있었는가, 원서 발매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원서를 채 다 읽기 전에 역서도 금방 나왔다. 지난 파친코의 유명세와 성공에 더불어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지 않을까

번역본은 당혹스러운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마치 배우자나 이성 친구의 방귀, 처럼 존재하지만 바로 직면하지 않았던 민낯의 이민과 교육서사를 다루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각의 인물을 사실상 까페와 술자리에서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던 지인이 겪은 리얼한 인생 이야기처럼 읽을 가능성이 높다.

당혹스러운 건 영어로 읽다가 한국어로 읽어서다. 영문소설에 걸맞는 표현법이 번역투로 직역되었을 때 노출 콘크리트처럼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또한, 인물을 내 나름의 경험에 비추어 나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이스를 부여하다가 이 화자들이 정말 한국어로 말을 했을 때 이정도 톤앤매너인가, 하는 낯선 감각이 있다.

특히 이 책의 내용상 영어로 읽어도 거의 한국어로 읽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진짜 한국어로 읽었을 때 영어의 표현과 어휘로 번안된 한국의 무언가가 때론 과감하게 때론 뿌옇게 다가온다.

2D 캐릭터였던 원피스가 실사화되었을 때 적나라함과 당혹스러움과 비슷하다고 표현해보고 싶다. 픽션 속 인물은 실재 존재하는 사람으로부터 레퍼런스를 따와 만든 것이지만 정말 살과 뼈를 가진 인간 배우가 이를 연기할 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장단점이 둘 다 존재하겠고, 특성이 그렇다는 거지 호오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에는 룩백도 그랬다. 이런 애니화와 실사화의 간극마냥,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느껴진다. 같은 스토리에 같은 인물인데도 어떤 언어로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다. 물론 파친코도 그랬고, 파친코도 한일영으로 다 읽었는데 전혀 다른 소설이었는데, 그래도 그것은 한 세대 전 20세기 초중반의 옛날 이야기 같았는데, 이건 정말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바로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역자는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토니 모리슨, 헨리 제임스의 대사들, 그리고 아메리칸 학원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유도라 웰티는 읽어 보았다. 그런데 그 책은 시간을 두고 다듬은 흔적이 있는데 이 책은 너무 급하게 번역했고 편집부에서도 다듬어주지 않아 곳곳에 그 성급함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좋은 번역으로 실력을 보여주었던 이라 아쉬움은 배가 된다. 마치 신축 아파트에 마감 공사가 덜 된 흔적이 느껴진다랄까. 아까 언급했던 낯설고 당혹스러운 감각은 유명 해외 스튜디오의 조감도와 설계안이, 실제 시공되었을 때 다른 느낌과 비슷하다면, 이건 입주 시작한 매물에 페인트칠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예컨대 23쪽 두 번째 줄에 대개를 ‘대게‘로 오타냈다.
이외에도 문장을 도착어인 우리말의 표현에 맞게 다듬어야하는데 영어의 직역이 남아있는 부분은 35-36쪽 외국인이 운영하는 그 특별한 학원에 보내는거야, 가 눈에 띄는데 중학생 여자아이가 할 만한 말투가 아니다. 영어로 읽었을 때는 그 나름의 사고방식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한국어로는 선뜻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33쪽의 ‘자기가 쓸모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도 ‘쓸모 있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에 들었다‘ 정도로 순화해야할성 싶다. 25쪽의 ‘뛰어난 단거리 주자‘도 형용사와 명사로 압축해 표현하는 구미의 표현법이고, 한국어는 용언을 살려 100미터 달리기를 잘한다, 정도로 매만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좋은 부분도 있었으니, 26쪽 ‘벌충하고자‘는 매우 마음에 든 표현이었다.

이건 호오의 문제는 아니고, 스타일상 차이가 느껴지는(따라서 역자의 역어 선택이 중요한 부분인데) 18쪽의 2년 임대계약 보증금은 직역이고 틀리지 않았지만 전세로 이해했었다. 21쪽 고치 속에 들어앉다, 25쪽 특목고도 눈에 들어온다. 24쪽의 ‘외향적일 수도 있을텐데‘보다 ‘이었을 수도 있었을텐데‘가 나을 것 같다.

계속 걸리는 것은 신태헌의 지칭어인데, 외국은 성으로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신씨가 무엇을 하다는 의미에서, 신을 주어로 쓰는 표현은 자꾸 걸린다. 직급 혹은 공적 명칭을 같이 부르는 문화에서 신이사, 신태헌, 태헌선배 정도로 하면 좋은데, 영어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가 한국어로 바뀌니까 낯설고 우둘투둘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 신이 천상의 신을 의미하는 말이라 더더욱.

22쪽 ‘신은 존에게 형과 다름없는‘, 55쪽 ‘그녀가 추앙하듯 신을 바라보는‘이 예시다. 물론 시간에 쫓겨 번역 납품을 해야해서 본 실력이 발휘될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한국출판시장은 바이럴 될 때 매출이 나고 대만이나 일본처럼 꾸준한 스테디셀러 매출이 별로 없기에 완성도가 떨어져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더 전략적이라는 점은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계속 걸리는게 있어도 끝까지 안 읽지는 않겠다. 허나, 영어 원서 독해 후 번역본을 손에 집는 이와, 그 반대의 독서 여정은 전혀 다른 감각을 낳으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