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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학원 1
이민진 지음, 정소영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10월
평점 :
이민진의 신간 아메리칸 학원 영문 원서 뒤에 백 페이지 정도만 남겨두고 발 빠르게 번역된 우리말 번역본을 집었다. 빨리빨리의 민족, 급속 번역 기능이라도 있었는가, 원서 발매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원서를 채 다 읽기 전에 역서도 금방 나왔다. 지난 파친코의 유명세와 성공에 더불어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지 않을까
번역본은 당혹스러운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마치 배우자나 이성 친구의 방귀, 처럼 존재하지만 바로 직면하지 않았던 민낯의 이민과 교육서사를 다루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각의 인물을 사실상 까페와 술자리에서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던 지인이 겪은 리얼한 인생 이야기처럼 읽을 가능성이 높다.
당혹스러운 건 영어로 읽다가 한국어로 읽어서다. 영문소설에 걸맞는 표현법이 번역투로 직역되었을 때 노출 콘크리트처럼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또한, 인물을 내 나름의 경험에 비추어 나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이스를 부여하다가 이 화자들이 정말 한국어로 말을 했을 때 이정도 톤앤매너인가, 하는 낯선 감각이 있다.
특히 이 책의 내용상 영어로 읽어도 거의 한국어로 읽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진짜 한국어로 읽었을 때 영어의 표현과 어휘로 번안된 한국의 무언가가 때론 과감하게 때론 뿌옇게 다가온다.
2D 캐릭터였던 원피스가 실사화되었을 때 적나라함과 당혹스러움과 비슷하다고 표현해보고 싶다. 픽션 속 인물은 실재 존재하는 사람으로부터 레퍼런스를 따와 만든 것이지만 정말 살과 뼈를 가진 인간 배우가 이를 연기할 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장단점이 둘 다 존재하겠고, 특성이 그렇다는 거지 호오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에는 룩백도 그랬다. 이런 애니화와 실사화의 간극마냥,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느껴진다. 같은 스토리에 같은 인물인데도 어떤 언어로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다. 물론 파친코도 그랬고, 파친코도 한일영으로 다 읽었는데 전혀 다른 소설이었는데, 그래도 그것은 한 세대 전 20세기 초중반의 옛날 이야기 같았는데, 이건 정말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바로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역자는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토니 모리슨, 헨리 제임스의 대사들, 그리고 아메리칸 학원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유도라 웰티는 읽어 보았다. 그런데 그 책은 시간을 두고 다듬은 흔적이 있는데 이 책은 너무 급하게 번역했고 편집부에서도 다듬어주지 않아 곳곳에 그 성급함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좋은 번역으로 실력을 보여주었던 이라 아쉬움은 배가 된다. 마치 신축 아파트에 마감 공사가 덜 된 흔적이 느껴진다랄까. 아까 언급했던 낯설고 당혹스러운 감각은 유명 해외 스튜디오의 조감도와 설계안이, 실제 시공되었을 때 다른 느낌과 비슷하다면, 이건 입주 시작한 매물에 페인트칠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예컨대 23쪽 두 번째 줄에 대개를 ‘대게‘로 오타냈다.
이외에도 문장을 도착어인 우리말의 표현에 맞게 다듬어야하는데 영어의 직역이 남아있는 부분은 35-36쪽 외국인이 운영하는 그 특별한 학원에 보내는거야, 가 눈에 띄는데 중학생 여자아이가 할 만한 말투가 아니다. 영어로 읽었을 때는 그 나름의 사고방식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한국어로는 선뜻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33쪽의 ‘자기가 쓸모 있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도 ‘쓸모 있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에 들었다‘ 정도로 순화해야할성 싶다. 25쪽의 ‘뛰어난 단거리 주자‘도 형용사와 명사로 압축해 표현하는 구미의 표현법이고, 한국어는 용언을 살려 100미터 달리기를 잘한다, 정도로 매만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좋은 부분도 있었으니, 26쪽 ‘벌충하고자‘는 매우 마음에 든 표현이었다.
이건 호오의 문제는 아니고, 스타일상 차이가 느껴지는(따라서 역자의 역어 선택이 중요한 부분인데) 18쪽의 2년 임대계약 보증금은 직역이고 틀리지 않았지만 전세로 이해했었다. 21쪽 고치 속에 들어앉다, 25쪽 특목고도 눈에 들어온다. 24쪽의 ‘외향적일 수도 있을텐데‘보다 ‘이었을 수도 있었을텐데‘가 나을 것 같다.
계속 걸리는 것은 신태헌의 지칭어인데, 외국은 성으로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신씨가 무엇을 하다는 의미에서, 신을 주어로 쓰는 표현은 자꾸 걸린다. 직급 혹은 공적 명칭을 같이 부르는 문화에서 신이사, 신태헌, 태헌선배 정도로 하면 좋은데, 영어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가 한국어로 바뀌니까 낯설고 우둘투둘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 신이 천상의 신을 의미하는 말이라 더더욱.
22쪽 ‘신은 존에게 형과 다름없는‘, 55쪽 ‘그녀가 추앙하듯 신을 바라보는‘이 예시다. 물론 시간에 쫓겨 번역 납품을 해야해서 본 실력이 발휘될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한국출판시장은 바이럴 될 때 매출이 나고 대만이나 일본처럼 꾸준한 스테디셀러 매출이 별로 없기에 완성도가 떨어져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더 전략적이라는 점은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계속 걸리는게 있어도 끝까지 안 읽지는 않겠다. 허나, 영어 원서 독해 후 번역본을 손에 집는 이와, 그 반대의 독서 여정은 전혀 다른 감각을 낳으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