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 인류가 AI와 결합하는 순간
레이 커즈와일 지음, 이충호 옮김, 장대익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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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의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에서 인지 범주화 실험을 언급하며 나온 동서양 사고방식 차이 실험이 있다.


원숭이 팬더 바나나 세 가지 중 연관성이 있는 두 가지는 무엇인가?


총체적 사고에 익숙한 동양인은 맥락을 중요시해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다는 데 착안한다. 사물 간의 관계와 맥락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편 개별 특징을 파악하는데 익숙하고 분석적 사고를 하는 서양인은 동물, 포유류라는 분류학적, 형태적 유사성에 근거해 원숭이와 팬더를 묶는다. 사물의 속성과 범주를 중요시한 것이다.


어느 무엇이 더 좋다라는 말도 아니고 사람마다 차이가 분명히 있는 일반화다. 무엇보다 어디까지 동양이고 서양인지에 대한 지리적 문화적 구별도 애매하다. 하지만 이 리트머스 시험지가 경향성에 있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는 모양인지 다큐에서 조명 후 이 문제만 각종 짤로 많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의 경향성 차이는 미술감상 방식의 차이와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들여온 서양미술을 배치하는 기획자도 관람하는 감상자도 그 작품이 원래 위치한 서양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서양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듯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전시 인트로, 캡션 설명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서양을 거칠게 정의해 서유럽으로 일단 고정하고 동양은 한국이라고 생각해보자. 서양미술관에서 서양인이 자신의 서양전통작품을 감상할 때는 형식, 구성, 조형에 초점을 맞춘다. 색채, 형태, 원근법, 구성의 조화, 기술적 완성도을 일별하며 한 걸음 더 이해해보려한다. 시선이 개별적이고 사고가 분석적이다. 작품을 요소별로 나누어 관찰한다. 화면 내 일관성, 형식과 논리에 주목한다.


그러나 서양미술관의 서양작품을 한국에 들여온 혹은 현지에서 감상하는 동양인의 감상방식은 대략 정서, 관계, 맥락 중심이다. 가족관계와 사제지간 학파를 따진다. 작품이 주는 느낌, 정동, 의미를 파악하려한다. 이쁘다! 재밌다! 하는 단발성 감탄이 지배적이다. 기하학적 선의 리듬과 반복패턴에 주목한다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작가의 신분과 삶의 서사까지 포괄적으로 본다. 전시 인트로, 도록, 캡션에 불필요하게 과다한 작가의 생애와 사생활이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서양은 작가의 사생활, 정신문제, 가족관계가 보조적인 설명에 그치는 데 반해 동양은 작가의 (도덕적) 문제가 작품 해석에 깊게 관여한다. 다만 우리와 관계없는 먼 나라 옛 사람이라서 문제삼지 않는 것일 뿐. 문화적 위계질서가 작품해석에 영향을 준다. 이 화가는 사대부 출신이라 그런지, 문인화풍이라그런지 붓끝이 고요해 하는 식으로.


그런데 쿠사마 야요이가 강박장애로 인해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갔다는 것이 반복된 모티프를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일인가? 반고흐가 고갱이 떠난 후 비관하여 자기 귀를 자른 것이, 김홍도가 양반이 아닌 중인 문인화가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아 장영실처럼 유교사회의 신분제도를 뛰어넘었다는 것이, 작품의 색채와 기법을 이해하는데 꼭 수반되어야하는가? 배경, 출신, 신분, 맥락이 보조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이해에 선행될 경우에는 개별 작품 감상이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


서양의 조형에 대한 응시는 그림을 또렷하게 바라볼 때만 가능하기에 작품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시간과 노력 매우 많이 필요하다. 특히 다리와 허리가 중요하다. 개별 작품을 미세하게 보기 위해 작품 앞에 서서 시간을 많이 할애야한다. 무엇보다 색채, 조형 어휘가 구체적이다


한편 동양의 맥락중심, 관계적 시선은 그림을 나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기에, 좋은 작품이 좋은 날씨에 좋은 자연에서 관람되면 더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 더 좋다는 말은 아니다. 새가 양 날개로 날듯이 두 사고방식을 동시에 운용하는게 온전한 관람경험에 이바지하리라고 생각한다. 개별 요소에 대한 분석적 이해가 결여된 느낌위주의 감상은 휘발적이고,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형식 위주의 감상은 건조하여 미술감상이 아닌 수학문제 탐구와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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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김홍도미술관에 다녀왔다.


3전시실에 표암 강세황이 제발을 단 8폭 병풍이 있다. 스승의 해석이 후각 청각 등 감각적 깊이를 더해주어 그림과 평론이 함께 짝을 이루어 보는 맛이 좋다. 3D렌더링도 특이하다.



과교경객

놀란 나그네


아래 해석을 읽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놀라는 애니메이션이 보인다.

교저/수금/경기어(라제성)

라/경어(수금지비) 인/경어(라지경)

모상 입신

표암 평


다리(교) 아래(저)

수금(물새)가

노새(라) 발굽(제) 성(소리)에 놀라고(놀랄 경 일어날 기 어조사 어 at)

노새(라)는 물새의 날아오름(수금지비)에 놀라고

사람(인)은 노새의 놀람(나지경)에 놀라는데

모상(놀라는 모양새가) 입신(입신의 경지다)

표암 평(표암 강세황이 평하다)


1. 교저수금 경기어 (라제성)

다리아래 물새는 놀란다 / 노새발굽소리에

2. 라 경어 (수금지비)

노새가 놀란다 / 물새의 날아오름에

3. 인 경어 (라지경)

사람이 놀란다 / 노새의 놀람에

차동훈, 거리풍정, 3D영상, 각 4분, 2016


김홍도 그림, 강세황 글, 행려풍속도병, 1778년, 비단에 엷은 색, 각 폭 90.9cmx42.7cm, 국립중앙박물관


행려풍속도병 중 오른쪽에서 네번째 폭 놀란 나그네(과교경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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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예술창작터에 다녀왔다.


이 두 사진의 메시지로 내용을 갈음한다.


사랑을 회복하는 일

사랑이 있는 시대


자기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하는 일의

존귀함. 그것이 바로 나를 구원함으로써 세계를 회복하는 일




자살율 1위라는, 2위에 비해서도 2배 높다는 비통한 오이시디 통계. 1일 평균 38명이 자살한다는 이 나라에서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보통의 마음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두가 저리고 아프다. 조여지고 조인트까이고 망가지고 망가뜨리며 하루를 보낸다.

밀려 오르는 분노와 걷잡을 수 없는 짜증과

들들볶임과 무기력과 우울을 달래느라

아침에는 까페인 오후에는 니코틴 저녁에는 알코올에 의지하고

맴맴 시끄러운 소리가 불청객처럼 침입하는 나날에

아무리 잘해보려고 애써도 말짱 도루묵. 가만히 있었더니 벼락거지. 조용히 있었더니 존내무시. 드러내지 않았더니 계급차별

고통이

습기처럼 숨이 턱턱 막히고

한기처럼 뼈까지 애린다

사랑이 없다면 이날을 어찌 버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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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바톤에 다녀왔다. 로팍, 바톤, PBG, 두아르트, 핌, 필의 갤러리와 타르틴 한남이 있는 대사관 언덕길이다.


지난 겨울 마곡 스페이스K에서 개인전을 했던 최민영 작가가 여름에는 한남동 바톤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그때 봤던 펭귄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도서관 그림도 있다.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 같은 느낌이다. 독일 사람들의 상상계에 지하 책 도시가 있는 듯해 픽션과 아트에서 많이 드러난다. 이 작품을 독일사람들이 애정할 것 같다.


어제 평창 갤러리 세줄 손정기전 리뷰하면서 소형 그림은 대형 회화의 가성비 있는 미니어쳐가 아니고 큰 그림은 작은 그림의 픽셀 확장이 아니라, 각각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소형에서 보여준 모티프를 느슨하게 양과 종류만 느슨하게 확장해서 화면을 채우는게 아니라 사람의 시선의 범위를 계산해서 눈길이 닿는 부분별로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는게 관객입장에서는 더 재밌다. 어느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다가 옆을 보거나 다른 화폭 같고 작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다가 뒤로 걸어가 전체를 인식하게 되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전체를 보다가 앞으로 걸어가 부분부분을 뜯어 보게 되면 각기 다른 맛이 느껴지게 하는게 대형화의 재미다.


소형보다 대형 캔버스를 더 잘 그리는 작가가 있을까? 그게 바로 손정기였고 최민영이다.



전체적으로 차가운데 따뜻한 기묘한 느낌이다. 거대 설산 앞의 창도 없는 까페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포니테일한 여자의 모습에서 특히 비현실적인 풍경 속의 현실적인 일상이 보인다. 있기 힘든 경관에 있을 법한 모습이다. 걸려있는 작품에서 반복되는 테마로 으스스하지만 언캐니하지만 위협과 공포는 결여된 동물 세 마리 혹은 조형물 세 개가 있는데 두 마리는 쌍이고 한 마리는 다른 계열이다. 조각도 그렇다. 강물 속에는 알 수 없는 얼굴이나 생명체가 부유한다.


대형화폭의 부엉이에서 보이는 거대한 붓의 스트로크감과 방향이 남다르다. 이 그림을 보고 소형보다 대형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어둠 속 조그마한 새들의 눈을 형광 민트 옐로우 계열색으로 붓질 하나에 끝냈다. 일필휘지다. 화룡점정이 따로 없다.


치타나 새 등의 동물이 휘리릭하고 휘날리는 스트로크가 인상적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梁(양)나라의 저명한 화가 張僧繇(장승요)가 금릉에 있는 安樂寺(안락사)라는 절에서 하얀 용 네 마리의 눈동자만 빼고 벽에 그려서 사람들이 왜 그리지 않았느냐고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하늘로 날아가버린다" 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자 용 두 마리에 눈동자를 찍어 넣었더니 하늘로 날아갔고 지금은 두 마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최민영 작가도 필시 새 세 마리가 아니라 여섯 마리 그렸을텐데 세 마리는 눈을 그려넣자마자 날라가버렸을 것이다. 어떤 작가는 눈을 망막의 혈관까지 극사실적으로 그리는데 단 한 붓질에 이리 생동감있는 눈을 그리다니. 부엉부엉!


펭귄들이 삼삼오오 노니는 것에 집중해서 요리조리 탐색해보면 윌리를 찾아서 같은 느낌이라 대형 작품을 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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