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바톤에 다녀왔다. 로팍, 바톤, PBG, 두아르트, 핌, 필의 갤러리와 타르틴 한남이 있는 대사관 언덕길이다.


지난 겨울 마곡 스페이스K에서 개인전을 했던 최민영 작가가 여름에는 한남동 바톤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그때 봤던 펭귄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도서관 그림도 있다.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 같은 느낌이다. 독일 사람들의 상상계에 지하 책 도시가 있는 듯해 픽션과 아트에서 많이 드러난다. 이 작품을 독일사람들이 애정할 것 같다.


어제 평창 갤러리 세줄 손정기전 리뷰하면서 소형 그림은 대형 회화의 가성비 있는 미니어쳐가 아니고 큰 그림은 작은 그림의 픽셀 확장이 아니라, 각각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소형에서 보여준 모티프를 느슨하게 양과 종류만 느슨하게 확장해서 화면을 채우는게 아니라 사람의 시선의 범위를 계산해서 눈길이 닿는 부분별로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는게 관객입장에서는 더 재밌다. 어느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다가 옆을 보거나 다른 화폭 같고 작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다가 뒤로 걸어가 전체를 인식하게 되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전체를 보다가 앞으로 걸어가 부분부분을 뜯어 보게 되면 각기 다른 맛이 느껴지게 하는게 대형화의 재미다.


소형보다 대형 캔버스를 더 잘 그리는 작가가 있을까? 그게 바로 손정기였고 최민영이다.



전체적으로 차가운데 따뜻한 기묘한 느낌이다. 거대 설산 앞의 창도 없는 까페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포니테일한 여자의 모습에서 특히 비현실적인 풍경 속의 현실적인 일상이 보인다. 있기 힘든 경관에 있을 법한 모습이다. 걸려있는 작품에서 반복되는 테마로 으스스하지만 언캐니하지만 위협과 공포는 결여된 동물 세 마리 혹은 조형물 세 개가 있는데 두 마리는 쌍이고 한 마리는 다른 계열이다. 조각도 그렇다. 강물 속에는 알 수 없는 얼굴이나 생명체가 부유한다.


대형화폭의 부엉이에서 보이는 거대한 붓의 스트로크감과 방향이 남다르다. 이 그림을 보고 소형보다 대형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어둠 속 조그마한 새들의 눈을 형광 민트 옐로우 계열색으로 붓질 하나에 끝냈다. 일필휘지다. 화룡점정이 따로 없다.


치타나 새 등의 동물이 휘리릭하고 휘날리는 스트로크가 인상적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梁(양)나라의 저명한 화가 張僧繇(장승요)가 금릉에 있는 安樂寺(안락사)라는 절에서 하얀 용 네 마리의 눈동자만 빼고 벽에 그려서 사람들이 왜 그리지 않았느냐고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하늘로 날아가버린다" 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자 용 두 마리에 눈동자를 찍어 넣었더니 하늘로 날아갔고 지금은 두 마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최민영 작가도 필시 새 세 마리가 아니라 여섯 마리 그렸을텐데 세 마리는 눈을 그려넣자마자 날라가버렸을 것이다. 어떤 작가는 눈을 망막의 혈관까지 극사실적으로 그리는데 단 한 붓질에 이리 생동감있는 눈을 그리다니. 부엉부엉!


펭귄들이 삼삼오오 노니는 것에 집중해서 요리조리 탐색해보면 윌리를 찾아서 같은 느낌이라 대형 작품을 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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