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의외로 멀지 않다. 반포에 있는 서울경부고속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8900원이다. 이정도면 왠만한 서울 외곽지역 고양, 용인, 안산 가는 것과 똑같은 시간이다. 버스전용 차선으로 130km로 달려서 그런가보다. 경부고속 타고 천안아산까지 적토마처럼 우다다 내달린다.


생각보다 가까워 놀랐고, 생각보다 번화가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젊은 인구가 받춰주고 유동인구와 소비인구가 꽤 되는 중소도시의 활기참이 느껴진다. 신세계 백화점 안에는 노출콘크리트와 인더스트리얼 풍의 천장 아래 서울 유명 맛집들이 입점해있고, 참깨번에 패티퀄로 유명한 다운타우너 햄버거나 눈 앞에서 츄뤽~우쮝~촵하고 자몽을 착즙해 유기농시럽과 섞어주는 아메리칸 트레일러도, 예산사과로 왕건이가 알알이 씹히는 사과파이 매장도 눈에 띈다. 중산층이 모이는 힙한 신세계를 마주보고 도로 맞은 편에는 빌딩에는 온갖 병원부터 빵집까지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업체끼리 아웅다웅 어깨를 겨누며 웅성웅성거리고 있다. 대기업과 자영업이 시장을 잘 나눠가진 좋은 예시처럼 보인다. 천안터미널과 천안역의 중심부를 약간만 벗어나도 자전거, 아시아식료품점 등 베트남 간판이 꽤 보인다. 글로벌화되는 세계에서 수도의 중심부는 선진국 중심으로 국제화하고 외곽은 개도국 중심으로 국제화한다. 충청은 조선의 지명이었으니 이제 아쉽지만 충주는 버리고 청주는 아직 건재한 편이니 놔두고 천안, 세종을 묶어서 불러야할 것 같다. 천세청? 천세도? 일산에서는 특이하게 아빠와 10대 후반 딸아이가 같이 산책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천안에서는 할머니와 10대 초중반 아이들이 같이 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인구는 많은데 나이가 들어가는 인구이고 4-50대는 친정엄마에게 애 맡기고 돈 벌러 다른 지역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라리오갤러리천안과 천안시립미술관에 들렀다. 일단 천안시립부터. 가는데 버스 405타고 35분 정도 걸린다. 시립미술관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시외곽에 위치해있다. 보는데 20분도 안 걸린다. 돌아오는 버스는 유관순사적지 종점을 찍고 귀환하기에 나를 데려다줬던 바로 그 버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타면 시간이 절약된다. 지방에서 버스는 시간당 1대 있는 경우가 많이 놓치면 노답. 캐치볼이나 릴레이 같은 감각이다. 부메랑을 던지고 그 위에 올라탔다가 중간에 내렸다가 부메랑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올라타서 원래 던진 자리로 돌아가는 셈



이번 전시는 AI에 대한 테마다. 8명의 작가 작품을 볼 수 있다. 각 작가별 특징에 대해 대충 적어보면 이렇다



노상호의 작품은 인터넷 이미지의 홍수를 편집해 네모난 화면에 살짝 어긋났는데 전체적으로 맞는 4프레임을 보여주면서 이미지의 진실성에 대해 질문하고,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를 조합해서 불타는 눈사람 캐릭터를 다수 배치하기도 한다.



정아사란의 작품은 물결 포말을 물성으로 보여준 작품을 보여주며 부유하는 가상세계와 실제의 물질과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정말 바다가 출렁이는면서 윤슬이 빛나는가? 아니면 작품에서 보여져서 그렇게 보이는가



김다윤은 타인과 교류, 군중 사이에서 스침을 회화로 나타내며 인터넷 시대의 소통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김보원은 동공이 움직이지 않는 리얼타임엔진으로 만든 3D 사람과 대화를 통해 AI 가상아바타와의 소통과 감정 교류가 가능한지 질문한다





김웅현은 엑스포와 관련된 소품을 모두 불러오고 세대별로 사람별로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이벤트를 다 다르게 기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00년대 이후에 태어나 93 엑스포를 경험하지 못한 10대 여아에게 VR기계로 체험시킨 영상작품도 만들었다



김현주는 LLM모델, 데이터마이닝, 코퍼스와 시각화를 활용한 작품을 보여주었고




이아영은 장지에 수묵화를 그리되 정확히 무엇을 나타내지 않는 사물을 그려 관객이 이게 뭐지? 하면서 계속 들여다보게한다




임현하은 디지털 이미지의 휘발성과 알고리즘 광고에 의해 제약당한 소비자 선택권에 의문을 제기하며 온라인광고를 자수로, 천으로 엮어 노동집약적인 거대한 손바느질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인사이트는
1) 전시나 작가가 AI라는 테마를 완전히 소화하지 않았다. 디지털, 온라인, 상품소비, 군중 속의 고독, 디지털 아바타, 사이버세계의 교류는 10-20년 전의 이슈다. 말이나 기술 일부만 AI로 치환한듯하고, 정말 AI에 대한 특별한 인사이트는 없었다

2)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왜 그 지점을 비판하기 위해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득이 없다.

3) 디지털 소외는 오프라인 대면이 시작점, 벤티지 포인트라는 전제에서 출발했고, 세대 간 시선의 차이는 기억의 부재가 한계라는 전제에서 출발했고, 광고알고리즘에 의한 선택은 제한이 수동성이라는 이분법에서 출발했고, 맞춤형 콘텐츠 착취문제는 개인화는 억압이라는 프레임에서, 디지털 자아의 인간미 부족은 눈을 통한 교감이 공감이라는 프레임에서, 가상 세계 속 정서적 교류 약화는 가상현실의 관계는 가짜라는 인식에서, 피상적 소비와 이미지 과잉은 가벼움은 의미없다는 인식에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인식은 디지털은 덜 진실하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모두 다 일종의 고정관념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고 그 편견은 AI가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질문과 그에 대한 해결이 고루하고 올드해보인다.

공감은 눈에만 있는가? 공감의 기준은 시대마다 바뀌고 기계와 공감하기 위해 인간이 아바타화해서 그들의 무대에서 공감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눈이 아니라 프레임, 색변화 같은 비신체적 방식으로 공감할 수는 없는가?

느린 관계만이 진짜인가? 익명기반 커뮤니티 속에 공감은 없는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소비 속 짧게 모였다가 헤치는 강렬한 연대는 반드시 잘못되었나?

가벼우면 반드시 의미없는가? 단기간 소비되었다 바이럴은 그치지만 데이터화되어서 누군가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인터넷밈도 축적되고 아카이빙되면 의미있지는 않은가? 짤 줍줍, 밈, 반복재생gif 등에 담긴 집단 무의식이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포착하면 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물질적 실재만 영향력있는가? 촉감이 아닌 데이터 상의 연결정도, 정서적밀도도 사회적 실재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소외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많았는데 대안은 없었지 않았나? 과계의 깊이다 단절과 연결의 이분법으로만 설명되는가? 연결 방식의 질적 전환은 안되는가? 오래된 인연만이 연결인가? 가까이있는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지 않은가? 인간 대 인간의 연결을 넘어 인간-비인간, 비인간-인터페이스간의 새로운 관계모델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손에 닿는 물리적 거리 대신 반응성을 정서적 연결의 새로운 척도로 삼아볼 수 있지 않을까?

사용자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고 능동적 주체성이 상실된다는 비판, 필터링과 알고리즘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비판은 누구나할 수 있지 않은가? 억압이 아니라 예측된 선택이라는 새로운 체계로 받아들이면 안되는가? 어차피 이전의 삶도 자본의 제약, 사회적 지위의 제약 속에 조건부 자율성 안에서 움직이지는 않았나? 최대치의 자유라는 것은 상상된 개념, 허상이 아닌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요즘 들어

1) 노동집약적 작품

- 여기에선 바느질

2) AI, 최신 테크놀로지 활용 작품

- 여기에선 리얼 타임 엔진 3D 모델 + 공간 이동 영상작품

- 여기에선 VR기기

- 여기에선 LLM, 시각화, 데이터마이닝, 머신러닝, 드론

3) 기억의 정치학

- 여기에선 할머니 회원증, 엑스포 소품 등 당시 관련 자료 모두 소환


이런 테마가 많이 눈에 띈다.



내일도 멀리 갈거다. 그래서 나는 이제 기생수나 마저 읽다가 자야겠다. 오늘은 영화를 못 봤다. 다른 날 두 편 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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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6)


과고에는 천상계부터 축생까지 계급도가 있다. 외고나 예고는 대치, 분당 등 지역별로 그룹과외가 형성되어 있고 학부모라인에서 단단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예고는 개인 재능이 뛰어날 수 있는데 실기샘 화실을 다니지 않으면 성적이 안 나오는 인맥문제가 있고, 과고의 문제는 너무 실력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서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아예 머리가 너무 뛰어나거나, 고급고액과외를 통해 지식을 주입받거나, 선행을 너무 많이 했거나 이 셋의 경우가 아니면 계급의 하위권이다. 그냥 지방 일반중에서 과학과 수학에 흥미가 있고 주위에 비해 조금 잘하는 것 같아서 과고를 진학하는 경우 대부분 하위권 성적 깔아주는 라인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선택했기 때문에 쉬이 자퇴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예민한 사춘기를 열등감에 보내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교과서만 봐서 문제풀이가 안되고 교과서 하나가 완벽하지 않고

내신이나 수능에 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분명 나는 중학교 때 잘했고 중학교 때 하던식으로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몇 번씩 읽고 선생님이 주는 자료도 잘 이해하고 수업 때 졸지도 않았는데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왜 쟤네들은 그게 가능할까?


부모들에게 조금 쉽게 비유해보자. 요리클래스를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어머님, 이건 강력분이구요 이건 계량컵이예요 이건 노른자고 흰자는 이 도구로 톡하면 분리된답니다 쉽죠? 흰자에는 단백질이 많구요 (끄덕끄덕)


자 그럼 이제 창의적으로 만들어보세요!


네? 뭘 만들라구요?


주변을 돌아보니 각자 크루아상, 마카롱, 수플레, 크레이프,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다.


아니 어떻게??


저쪽에서 들려오는 말 "너 뭐할거야?" 아 나는 오렌지 리큐어를 넣어서 그랑 마르니에 수플레를 만들어볼려고 "와 그거 좋다. 

나는 바닐라 크렘 앙글레즈를 띄우고 머랭을 얹어 플로팅 아일랜드를 해보려고" "오 좋은 생각이야"


???!!



"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7)


여학생은 물리화학보다 생명과학쪽을 더 친근해하기 마련이다. 일단 수식보다는 단어가 좋다.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여아들의 뇌가 남아들의 뇌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언어계통이 발달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 침묵하고 있는 남아들에 옆에서 여아들이 재잘재잘 말하는 친숙한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생명과학의 시작부분이 다른 과목에 비해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쉽다. 모르면 외우면 된다고도 생각한다.


지난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생명과학은 2단원 인체파트는 일상생활 용어라서 할만하다고 생각하다가 3단원에 축!삭!돌!기!에 와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일본이 네덜란드 해부학서를 통해 한역한 서양의학용어에 그리스라틴어 기반 영어가 어지럽게 난립한다. 그리고 그 용어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좋은 점은 한글의 풍부한 모음덕분에 어떻게 읽는지는 대략 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어나 일본어에 비해 원어에 근접하다는 점.


여기서부터는 단어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그리고 아무도 단어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학생들은 절망한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나라 책, 신문, 전시에서는 보통 용어 설명을 안하고 넘어가는 것과 달리 일본 책, 신문, 전시는 개념정의와 그 독음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데 그게 학문의 출발이자 설명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무슨 뜻인지, 어디에서 유래한 말인지 왜 그렇게 쓰는지 써있지 않다. 옛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기본 주기율표 중 규소가 실리콘인데, 왜 규소냐? 에 대한 설명이 없다.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냥 문제풀기 바쁘다. 사지선다에 없다? 내신에 안나온다? 그냥 넘어간다.


규소가 실리콘인 이유는 이렇다. 일본이 네덜란드어 부싯돌 keisteen (슈테엔은 영어의 stone과 같다)의 kei를 硅로 음차했기 때문이다. 이 한자硅를 일본인은 케이라고 읽지만 우리는 규로 읽기에 일본은 kei+원소 우리는 규+원소=규소가 된 것이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실리콘이라는 서양말도 원래 단단한 부싯돌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문제가 과학학습 내내 반복된다. 그나마 물리는 학문의 중흥기를 거쳐 안정화된 학문이라 정교하고 엄밀한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헛소리를 안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 막 발달하고 있는 청소년기의 생물학은 난리다. 그래도 암기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해도 안되는 암기할 게 너무 많다.


문제의 그 축삭돌기 다음 페이지의 일부만 읽어봐도 어려운 한자기반용어와 어려운 그리스라틴어기반 영어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항작용은.. 교감 신경의 말단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고 부교감 신경의 말단에서는 아세틸콜린이 분비된다.


와우! 그리고 학생들은 이 말이 무엇인지 모른 채

교감신경->노르

부교감->아세

이렇게 노트필기 하고 외우기 바쁘다

선생님도 진도에 치여서 그렇게 가르친다.


지방 여고 이과는 내신1등급인데 수능3등급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해 최저학력기준을 겨우 채우거나 채우지 못해 인서울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교에 직접 가보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된다




지방 여고 이과는 내신1등급인데 수능3등급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해 최저학력기준을 겨우 채우거나 채우지 못해 인서울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교에 직접 가보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된다


여학생들이 물리화학에 잼병이라 생명을 전략과목 삼는데 시험 때 단어만 외워서 시험을 본다. 그래도 학생들도 말이 너무 어려우니까 수업시간에 전멸이라 가능하다. 내신따기가 과고나 강남지역 고교에 비해 쉬운 이유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다.

아세틸콜린은 아세틸기에 콜린이 결합한 에스터 화합물이라는 뜻이고

노르에피네프린의 노르는 하나가 적다는 말로


에피네프린(혹은 아드레날린)에서 메틸기 하나 뗀 구조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리스라틴어 어원도 어렵지 않고 화학식 상으로 의미가 있는데 (아세틸기 CH₃CO 유기산이니까)


아세틸+콜린이 아니라 아세~/스틸/콜라!

노르웨이에서 피넛버터 프린스!


어이없게 이런식으로 외우고있다. 아재개그로 재밌게 외우게하는 선생님이 있거나 스스로 개발했다면 그것도 능력인데 정확한 어원이해없이 무작정 암기하는 것이다


왜냐.. 아무도 설명 안해주기 때문. 교과서에 없기 때문. 시험범위가 아니기 때문. 교과서는 너무 양을 늘리면 수능범위 늘린다고 클레임먹기 때문에 늘릴 수 없기 때문.


이런 식으로 개념은 적은데 알아서 이해하게 냅두고, 갑자기 엄청 어려운 문제풀이를 하는 기형적 구조가 탄생한다


왜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가? 과학을 과학답게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가. 과학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가


1:1 비교는 어렵지만 대학수준 교재인 Campbell Biology12판의 해당부분을 보면 훨씬 더 자세하게 써있고 , 맨 뒤 글로서리에는 발음법과 정의를 다시 써놔서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그래서 차라리 영어로 읽는게 낫다고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더 잘 쓰여졌으니까 책만 읽어도 이해가 되니까 (물론 2천페이지라는 게 함정)


생물학을 외국에서 배운 사람과 한국에서 배운 사람은 일단 용어사용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전문지식은 한국어조사만 섞어서 교포처럼 사용하게 되고 주변사람들한테 잰채한다, 재수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일생생활 대화를 하는 것과 지식전달을 하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이다.


오늘 밤 참 달이 아름답네요를

tonight 참 the moon이 beautiful하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도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페인 때리면 prefrontal cortex 활성 전에 adenosine receptor block 생겨서 homeostatic sleep pressure가 인위적으로 낮아지고 결국 circadian entrainment에 disruption 오거든


이 말은 그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마시면 

뇌가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즉, 집중력 담당 전두엽이 준비되기 전에)

아데노신 수용체가 카페인에 의해 막혀서

원래 자연스럽게 줄어들어야 할 수면압력이 억지로 낮아지니까

생체 리듬(24시간 주기 조절)이 어긋날 수 있다는 뜻


간단히 말해 잠에서 완전히 깨기 전에 커피 마시면 과학적으로 해롭다는 말이다


이런 말에 상대는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맞아맞아 나 요즘 밤에 블루라이트 계속 expose 돼서 suprachiasmatic nucleus 완전 desynchronization(디셍크)됐잖아 그럼 pineal gland에서 melatonin synthesis 제대로 안 되고 결국 sleep latency 늘어나지. 그리고 그게 장기적으로 HPA axis에 chronic stress 주면서 hippocampal atrophy로 이어지고 있는 거 같아 웹툰에도 보면 의사끼리 영어단어에 한국어조사만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에피네프린! 이라고 해야지 심근강화 및 혈관수축 작용제! 라고 긴 말을 쓰기도 어렵고,


교과서가 영어단어를 그냥 음차해서 쓰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차피 논문도 영어로 쓰는데 영어가 익숙해서 이기도 하다

그럼 애초에 왜 한자용어로 번역한거야?

왜 배울 때는 쉽게 안 가르쳐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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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철학자의 말 - 내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빛나는 철학의 문장들
김종원 지음 / 윌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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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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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인제 진부령미술관에 다녀왔다


지방미술관은 가는 것 어렵지 않다. 시간이 들 뿐이다. 티켓값과 이동비를 치환한다. 왕복교통비가 4만원, 대신 미술관이 무료인 셈. 그 시간을 들여 갈만한 장소인지가 관건이다


봄에 너무 열심히 다녔나 5월 아트가이드잡지에서 크게 눈에 띄는 전시가 없다. 중하순에 열리는 것은 6월로 이월해도 큰 상관이 없다. 서울내에서 이제 갈만한 지역은 다 갔으니 교외를 다니자. 안산 용인 양주 성남 고양 양평 청주 이제 인제다

직통 시외버스가 있는 곳은 가기 어렵지 않다. 2만원에 티켓을 끊고 2시간 반 몸을 맡기면 된다. 티켓가격도 4-5배에 달하는 옆나라 일본에 비하면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다. 그곳은 상시 지진으로 인해 복구비용이 평소에 느슨하게 청구되는 구조다. 발생하지 않은 수리비를 미리 조금씩 내면서 분배하고 있는 셈


고속도로라고 해도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눈이 어지럽고 아프다. 학술세미나, Met talk를 들으면 좋다.


Robert Hur의 청문회나 민희진 간담회도 이동중에 들었다. 특히 학술세미나의 경우 "제가 잘 모르지만..." "이런 경우도 있지만..." 같은 겸양표현을 가서 앉아서 들으려면 고역이지만 이동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느슨하게 들으면 편하다.

시외버스로 진부령까지 갔지만 돌아오는 차편이 어차피 진부령에서 없다. 원통가는 시내버스 타고 내려오면서 여초김응현서예관을 들렀다가 다시 원통으로 가는 루트가 좋다. 인제군 시내버스는 전기차로 바뀌어 시트도 반들반들하고 승차감도 좋아 서울버스와 진배없다.




강원 전라 경상의 산의 폼은 각기 다른 것 같다. 강원은 산이 병풍처럼 내 눈 앞에 성큼 다가와있다. 안데스, 후지산, 히말라야는 너무 압도적이고 올라오지 말라는 듯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데 강원도 산은 그래도 친근해서 올라감직하다. 좀 너무 가까운 감이 있어 아침에 일어나서 졸린 눈을 부비면서 본다면 존재감이 남다를 것 같다

인제 나는 진부령미술관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보니 황태 건조보관소와 황태해장국 음식점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옥수수와 감자떡도. 맨날 똑같은 거만 먹으면 물리는 법. 산간의 감자와 해안의 동태를 교환한다. 물물교환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매일 보아 물리는 것보다 특별한 것을 원하기 마련. 유럽회화 좋아하는 우리네 마음도 똑같다


미술관 1층은 옛날 영화사진이 재밌었다. 두만강아 잘있거라는 많이 들어본 영화인데. 한국영상자료원고전영화에 있으려나. 기러기아빠는 21세기 용어가 아니었나보다. 누나의 한이라니..스크림을 연상케하는 검은 복면 소품이 조악하다


렌티큘러로 측면에서는 드로잉, 정면에서는 컬러유화로 표현한 그림이 재밌다. 밥풀로 만든 그림도 있는데 밥풀로 무엇을 표현했는지가 핵심. 꽃이나 나무보다는 능선 같은 선의 윤곽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 일본 미대 유학한 작가의 매우 세밀한 꽃과 나비 표현이 인상깊다. 흘러내리는 초록선이 나무와 바위를 동시에 표현했다. 달항아리의 표면이나 목재의 물성을 캔버스에 돌출시킨 작품도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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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 보고 왔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그의 매니저 사이의 아들, 소라 네오 감독의 작품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홍길동으로서 고뇌가 있는 분인데 음악적 특징은 빼다 박았다.


네오 소라는 전통적 읽기방식이 아니다. 감독의 창의적인 네이밍이다. 원래라면 하늘 공 空은 소라 혹은 쿠우가 맞는데, 소리 음音 중앙 앙央은 온오 혹은 오토오 정도로 읽었을 거다. 소리 음의 훈독인 네, 앙의 뒤쪽 부분만 살려 네오라고 해서 영어의 새롭다라는 라틴어 Neo라는 의미를 담았다. 새로운 하늘 정도의 의미로 읽히고 그 뜻은 음악의 가운데라고 표시했다.

영화제목에 속으면 안된다. 보통 제목과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 제목이 해피라고 해피한 영화가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화제가 된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퍼펙트데이즈>(2023)도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분)의 코모레비를 즐기는 나날을 그리는 것 같지만 막 가운데 삽입된 불안한 음악이 마냥 조용한 루틴 속 평화로운 내면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제목에 해피가 직접적으로 들어갔으나 해피하지 않은 영화를 생각해보면 여럿 떠오른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Happy Together>(1997)인데 두 주인공은 전혀 함께 행복하지 않고, 되려 두 남자의 고통스러운 관계와 아르헨티나에서의 외로움을 다룬 작품이다.

제목이 똑같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Happy End>(2017)도 부유한 유럽 가정의 붕괴와 허무를 다룬다. 토드 솔론즈 감독의 <Happiness>(1998)는 일그러진 삶, 고독과 소외, 성적 일탈 같은 불쾌하고 충격적인 현실을 블랙코미디로 그리고 있으며 마이크 리Leigh 감독의 <Happy-Go-Lucky>(2008)의 주인공이 그나마 명랑하고 낙천적이지만 주변 인물이 냉소적이고 폭력적이기에 사회적 병리와 마주한 주인공의 긍정은 도피인지 아닌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도 해피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일그러지거나 고통스러운 영화는 아니다. 이전에 홍탕에게 말한 바 있듯 무난한 맛의 영화다. 마트에서 계획한 음식을 구매해 예상한 맛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EDM 노래와 잔잔히 흐르는 OST의 사운드가 풍성해 해상도 높은 유럽회화를 보는 것 같다. 노래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레거시가 가득하다. 에너지 플로우의 진행 같은 (왼손 옥타브 아래 E F# G#) (오른손 A B E E E D F# A E) 부분도 귀에 들려온다.

다음은 기억나는 내용 몇 가지와 단상
1. 키토총리의 한자는 귀신의 우두머리 귀鬼두頭총리다. 총리연설의 TV라이브 송출 중 도시락에 맞아 볼에 김이 붙은 부분에서 弁当で襲撃されるがけがなし 이런 느낌의 자막이 있었다. 도시락으로 습격당했지만 상처 없음.

2. 미래적인 느낌은 CCTV카메라와 얼굴인식 데이터마이닝과 AI를 이용한 감시시스템이 하나, 구름에 레이저로 쏴서 행정고지와 공공안내를 하는 부분이 둘


3. 아나키스트인 고등학교 선생과 제자들이 저녁에 술 마시고 담배피며 동지들과 함께 권력을 비판하는 노미카이(술모임)와 교장실 점거행동이 일본 60-70년대 활동한 전공투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1969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와 같은 일이다. 다만 항쟁의 대상이 69년은 정부, 총리, 미군이었고 영화상으로는 정부, 총리, 감시시스템이다.

4. 재일조선인 3대인 어머니는 말했잖아(言ってたの)를 잇떼따노가 아니라 윳떼따노로 구어체음변화를 하여 아주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5. 재일조선인 음식점 메뉴판에 김치キムチ 한국 김韓国のノリ, 한국식모둠(韓国盛り合わせ)같은게 눈에 띈다.

6. 강당에서 룰은 지켜야한다고 항의하는 두 번째 인물(여성)의 딕션이 성우처럼 좋아 전달력이 훌륭하다.

7. 그림자극에 대한 레퍼런스도 있다. 영화에서 따로 보이스오버 나래이션이 없고, 인물들을 지켜보는 친구들의 목소리로 그상황을 나름 묘사하며 노는 장면이 세 번 등장한다. 하나는 교장선생에게 혼나는 장면, 다른 하나는 졸업 후 미국 디트로이트에 돌아간다고 아프리카계 일본인(흑인) 톰이 유타에게 말하는 장면, 마지막은 톰의 생일파티에 1층에 내려가 꽁냥꽁냥하고 있는 밍과 아타를 내려다보는 장면(상단중간에서 좌측중간으로 3량 정도의 짧은 기차가 4초 정도 지나간다) 셋이다.

8. 영화는 화보집, 영화잡지, 평론집에 수록될 것을 기대하고 좋은 스틸컷 장면을 7초 이상의 롱테이크로 넣었다. 마치 두 주인공이 비오는 날 지하 국수집에서 만나는 화양연화의 유명한 스틸컷처럼(캄보디아 유적지 틈 사이로 침묵의 절규를 하는 양조위도)


기억나는 것만 세 개. 유타가 어린애라고 불평하며 코우가 돌아가고 톰이 마트 봉지를 들고 뒤를 쳐다보는 장면, 밍이 음악연구회 동아리방 한 모서리에 서있고 아타랑 같이 프레임 왼쪽에 있는 장면, 유타 엄마가 유타 퇴학 당하고 백으로 5차례 존나게 패는 장면(오른쪽은 기울어진 도로를 배치하고 뒷쪽 건물과 도로가 차경으로 프레임 위쪽으로 잡히고 두 인물은 좌측에 있고 더 좌측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육교 마지막 장면. 육교샷은 육교의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장면부터 시작해 밍과 아타가 밍의 아버지가 큰 저녁 사준다고 헤어지고 저 멀리 둘이 머뭇거리다가 이별하는 장면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롱테이크다. 배우들이 열연했다.


9. 영화 처음에 유타가 코우에게 스키나 다이스키가 아니라 아이시떼루라고 말하긴 하지만 그다지 퀴어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10대 특유의 치기어린 표현 같은 것이다


10. 교장은 점거한 학생에 대해서는 빡치지 않는다. 비싼 스시 줘도 안 받으니까 먹어! 먹으라고食い(くい)! 라고 한다. 

그런데 어쨌든 교장이나


11. 사회시스템에 항거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이별에 아쉬워하는 10대 청소년을 그린 영화는 외국에는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 같다. 한국픽션은 입시, 서바이벌, 생존에 바쁘다. 일본은 3시에 수업 마치고 부활동하는 문화라서 그런가? 우리나라에 없는 감성이다. 학원집학교에 메말랐던 감성을 충전하기 위해 이런 영화를 찾아보기도 하는 듯.


정확히 10대에만 느낄 수 있는 아련한 감정이다


12. 재일조선인 코우는 특별영주권이 없어 자기만 끌려가는 억압적인 사회현실에 항거하며 데모도 나가고 하면서 유타에게 너는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강당신에서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은 코우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내던지면서까지 진실을 말하고 그 책무를 다하는 자는 유타다. 유타가 생각이 없어서 음악하면서 지내는게 아니라 음악을 하기에 5명의 친구들이 모일 수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기마저 진지해져버리면 너무 괴로우니까. 겉으로는 치기어리고 생각없어보여도 내면으로는 생각이 깊은 캐릭터다. 창고에서 마지막 우퍼를 챙겨올 때 정정당당하게 교무실로 들어가 신청서 없이 서랍에서 키 꺼내서 가져가며 시끄러워 うるせ하면서 벌점 감수하면서 유유히 나가는 것도 유타다. (교무실 전원 어이없음)


13. 교사와 교장 캐릭터가 아주 좋다. 이들이 없으면 무게감이 전혀 없을 뻔 했다. 이들이 안타고니스트로 있기에 영화가 아주 쫀득쫀득하고 매력적이다. 


14.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약자의 무기: 농민 저항의 일상적 형태라는 책에서 거대한 권력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저항의 형태를 설명한 바 있다. 졸업식에서 아타가 보여준 빠개진 Z를 자수로 수놓은 교복와 치마를 입어서 보여준 조롱도 그 한 형태다. 교토 졸업식 같은 것이 생각난다. 전통과 권력의 기득권이 강하고 단단하지 않다면 이런 조롱이 재미가 없다. 근미래의 일본인데 여전히 기립, 례, 착석 같은 군국주의 문화가 남아있다. 후미처럼 기립하지 않고 사람모아서 데모하고 항거하는 것도 저항이지만 유타도 저항의 한 형태다. 오히려 코우가 친구들에게만 분노할 뿐 명시적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저항하면 불안한 자신의 법적 지위가 박탈되니까 말이다.


15. 또 뭐 말할게 있던 것 같은데 일단 지금은 기억 안난다. 나는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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