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옌의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 입니다, 읽었다.


이 글에서 가장 독특한 설정은

전반부에 배치된 택배기사는 2020년대의 경험이고

후반부에 배치된 자영업자는 2010년대의 경험으로

시간이 역전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갑질, 무시, 피곤, 부족한 급여와 직장내 차별대우 문제에 시달리는 택배기사로서 기억(p49-165)과

중상모략, 유언비어, 사기, 덤터기로 우울해하는 오프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로서의 기억(특히 p260-262)은

모두 한 사람이 경험한 사실의 기록이다.


따라서 사회초년생 때 체력이 있을 때 택배기사를 임시로 하면서 돈을 모아 사업가로 거듭날 준비를 했다는 식의 선형적 발전관에 기반한 성장서사가 아니다.

젊어서 현장에서 고생하다가 나이들어서 관리직이 되었다가 아니라 아예 반대다.


이는 현대자본주의사회에서는 누구나 생애주기의 어느 시점에서든 고용주도 피고용자도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컨대 IMF때 공장 관리직이 퇴직하고 판매직이 된 경우도 있었고, 코로나 락다운 때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치킨집 사장을 그만두고 배달라이더가 된 경우도 있었다.


중세시대처럼 농업주기와 종교달력 따라 할 일이 꽉 차게 정해져 있던 고체 시대도 아니고

근대사회처럼 약간의 자유는 있으나 기술과 환경에 따라 인생 트랙이 정해져 있던 액체 시대도 아닌

모든 것이 뒤섞이고 유동하는 기체 시대인 현대는

누구나 조선일보의 독자도 한겨레 독자도 될 수 있다. (이전 포스팅에서 조선vs한겨레 차이 분석)


투자자본의 이동과 산업트렌드의 변동에 따라 사업가와 노동자의 위치는 갈마든다.

이때 어떤 역할을 선택하든간에 자신의 시간을 세밀하게 분절해 시간당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성공학과 처세술의 현현이다.

이는 철도시각표와 시계로 정밀한 근대적시간관을 정립하며 시작한 근대사회의 자본주의가 오늘날에 이르러 노동자 스스로 개인의 가용한 시간을 생산성으로 치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택배기사로서 저자는 월급을 분단위로 환산해 1분당 0.5위안 성과를 추산하며, 화장실은 1위안, 점심식사는 기회비용까지 포함해 25위안이므로 이러한 시간은 매일의 스케쥴에서 제거하려고한다.(p120) 


설령 매일의 삶에 필요한 여유일지라도 말이다. 리스트의 평가항목에 없으면 가치가 환산되지 않는다. 마치 너그러운 자연의 공유자원이나 어머니의 가사노동이 채산성 검토를 위한 평가항목으로 포함되지 않는 것과 같다.


원제는 나는 북경에서 배달합니다, 로 동사의 행위가 강조되었다.

我在北京送快递 송쾌체는 VO술목구조로 이때 체는 한국에서는 잘 안 쓰는 한자다. 우체국할 때 쓰는 전할 체다.

한국어는 나는~이다 라는 존재론적 평서문이다. 이런 뉘앙스에서는 존재는 한 지역에서 한 직책으로 정해진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책에서는 북경에서 택배만 했을 뿐 아니라 난닝의 의류사업 상하이의 자전거판매원 등 공간을 이동하며 여러 직군을 경험했기 때문에

원어 제목처럼 동사를 다이내믹한 행위를 강조하는 편이 더 알맞다.


한국은 두 번 등장한다.

1) 홍콩사장이 동업자를 통해 떼어 온 한국 중소브랜드 문군을 진품 짝퉁 반반 섞어 판매(p209)

2) 난닝에서 품질 좋은 학생 스타일, 한국의 이랜드 티니위니의 모조품  판매(p255)


저녁 10시 넘어 퇴근하는 고된 일과에도 그는 손에서 아이부쉬쇼우, 즉 책을 놓지 않는데 그가 읽는 책은 예를 들어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다.


이런 책을 읽는 지성 있는 택배기사기 때문에 평가절하당하는 하층 노동을 하면서도 최대한 선의를 베풀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려고 하지만 그 역시 갑질하고 꼬투리 잡는 진상에 파르르 떨 정도로 분노한다.

















아울러 일 때문에 책이 잘 읽히지 않고 때론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고(p163) 고백한다. 일본에서 작년에 직장인의 심금을 울리며 낙양의 지가를 올린 책 <왜 일하면 책을 읽을 수 없는가, 피곤해서 스마트폰을 보기만하는 너에게>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밀리의 서재가 이런 "공부해야하는데 책 읽어야하는데" 하면서 가처분소득이 있으나 체력과 시간이 없어 정작 완독할 수 없는 직장인의 죄의식을 자극해 마케팅한다.


팬데믹 시절 택배 노동과 함께 한 수준높은 독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 의류 가게와 온라인 쇼핑몰 하면서 문학청년의 꿈을 다지던 십년 전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때 그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아홉가지 이야기를 읽고 예이츠와 커포티(p266), 헤밍웨이(p267)를 좋아하다가 카프카와 카버(p280)를 논하며 버지니아 울프(p318)와 그녀의 중국 국내 미번역서까지 손을 뻗는다.


그런 그는 영문학과 졸업생이 아니다. 영문학과를 나와야만 문학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의 방증이다. 대학 학위와 지적이고 주체적인 삶은 밀접한 관계가 없다는 예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학교에서 안배한 호텔직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해 야간대학 광고학부에 진학하고자 주유소 알바를 그만두는(p214) 어려운 청년시절을 보냈다.

















최근 바이럴된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가 생각나는 경비원 일도 있다. 베이커리 직종에서의 지식은 돈과 시간을 들였기에 쉽게 전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경비원끼리 에스컬레이터 키고 껴는 방법 같은 지식은 쉽게 전수한다는 통찰이 흥미롭다. (p284) 파파이스 옥수수 버거 맛있겠다 진라면 수프스틱으로 텀블러에 라면국물 꿀꺽꿀꺽


책은 우리네 <어떤 동사의 멸종> <산재일기>와 비슷해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한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모든 경험이 병존한다는 점을 제외하고서도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직종을 경험한 예시가 책의 감칠맛을 한껏 돋운다.


이렇게 풍부한 현장 경험을 치밀하게 기록한 르포 문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미시적 디테일이 있다. 그리고 이런 세부적 다양성이 생명이다. 


예를 들어

언뜻 홀과 주방 같이 협력관계로 보이는 주유소 직원과 택배 기사 사이엔 알력과 화풀이가 존재한다는 것(p215)

중국은 4대보험이 아니라 5대보험(양로 의료 실업 산재 출산)이라는 것(p40)

위챗 부가기능으로 세뱃돈 붉은 봉투 무작위로 날릴 수 있다는 것(p51)이 있다.


특히 중국어의 특성상 한자 읽기가 어려워 물품 분류 같은 반복 노동에서조차 식자 능력이 중요하고, 글을 못 읽거나 식자 능력이 떨어진다면 해고를 당한다는 점이 놀랍다. 가독성이 좋아 문맹률이 극히 낮은 한국에서는 없는 중국만의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체자는 인구 규모를 생각했을 때 올바른 정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각자에게 맞는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중국에서 뿌리 내려야하는 이였다.

설령 베트남에서 가서 좋은 사업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실제 투자 및 이윤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기간에 한국인들 중에는 재미를 본 이도 있다.


그에 따르면(p247-249) 1980년대 같은 풍경의 하노이가 중국보다 10년 낙후된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로 돌아가 제패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관세, 정책, 통역, 법규, 풍습, 위생, 기회의 모든 점에서 어려웠다는 것

그러니까 모든 행복한 가정은 한 가지 이유로 행복하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듯 사업도 성공하면 노력과 운이라는 일반적인 이유지만 안되어야하는 이유는 수만가지인 것이다.


책은 나선형으로 느슨히 성장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순종적이고(p198, 232) 책임감있으며(165) 친절하고 상냥한(p3) 그가 


쇼핑몰의 로봇 판매사기 당한 어머니를 위로하고 군대 출신 Z주임의 훈화를 버티며 2명 뿐인 구역에 파견나가 남좋은 일만 해주고 상하이의 고급미국브랜드 자전거 판매원으로서 BMW 끌고 다니는 대학생 L과 손버릇 나쁜 절도범 D와 매니저 L 사이를 관찰하는 한편의 현장에서 만나는 익명의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 예우하려고 하지만


두리아 배송 위치가 다르다고 자기 돈으로 배상하라는 시비를 겪으며(p140-144)

광장경비원에 의해 제지당해 칼자국 난 조폭출신 담당자와 한바탕을 하고(p125)

유치원에서 책을 도둑맞아 변상하는 등(p149-155)

성인군자도 피할 수 없는 고초과 시련을 겪으며 마모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논어 양화편에서의 말마따나 마이불린(磨而不磷) 갈아도 얇아지지 않을 정도로 품성이 단단해져간다.


동료는 아우디 운전자에게 3천 위안 변상을 감수하고도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을 겪을 정도의 어려운 수련이다(p137)


중국어 원어로 읽어보고 싶은 잘 조탁된 좋은 구절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p211 개인의 인지 수준은 사회의 인지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

p221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그 생각은 왜곡 되어있었다

p290 개체의 지능이나 민첩성보다 번식력이 종의 유지에 결정적 조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선형 이야기와 에필로그의 좋은 문단은 사진으로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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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권에 진출하거나 투자하려는 사람들은 유머감각이 중요하다.

강호 동양학의 고수 조용헌의 도사열전 첫 머리에 2000년 초 DJ정권 시절 최규선 게이트 이야기가 있다.

복역 후 출소한 그에게 임수 일주에 수기운이 많고 관상이 재기발랄하니 아랍으로 가라고 했다고 조언했는데 그리고 실제로 아랍권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한다.

이때 사우디의 알 알리드 왕자가 그의 유머감각과 표정을 좋아했다고 한다. 웃음이 엄격한 율법과 척박한 기후를 해갈하는 오아시스다. 꽉 막힌 사회환경과 무덥고 건조한 지리환경에서 사람의 마음도 쉬이 각박해지는데 유머가 이 모두를 해소한다. 미토는 임수가 해갈하는 것.

알려진 그의 자산만 20조가 넘는 거부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숫자와 도표로 가득찬 정밀한 투자 포트폴리오가 아니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아랍에 스탠딩 코미디가 활성화되어있다는 점, 재밌는 틱톡에 거액을 후원하는 부자의 IP위치가 아랍이라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회계사 자격증이 아니라 별거 아닌 이런 위트가 시간대와 지역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

음악과 함께 유머야말로 인류의 보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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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수정함


1. 연세우유 교보문고맛 크림빵이 대실패라고 말을 했는데 그정도는 아닌 것 같다. 장점이 있다.

처음에는 밥 먹고 디저트로 먹어서 먹을수록 너무 물렸다. 교보문고 시그니쳐 디퓨저 향기나 가을 마롱을 기대했는데 전혀 매치가 안됐다.


그런데 진한 커피와 함께 마셔보니 커피 프랄린 크림과 페어링이 좋다. 레드 와인이 스테이크의 기름을 씻어주듯, 와사비가 참치 기름을 속아내듯 계속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해준다.


북커버를 닮은 비스킷이라는 문구도 쌈마이 짜친다고 생각했지만

연세우유 편의점빵이 그동안 나이브하게 뇌없이 엑셀로 조합해오던 이 크림 저 크림의 천편일률적 조합에서 교보문고라는 

전혀 생각 못했던 아웃라이어적 아이디어를 들고왔다는 점은 상품기획자의 혁신이다.

생각을 추가함


2.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이미리(손예진 분)가 남편의 해고에 대응해 집안의 사적경제(오이코노미아)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하는데서 어렸을 때 아버지 사업파산을 경험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험자만 알 수 있다. 어떤 불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되는 불운의 시작이라는 것을


200억 굴리던 사람이 파산해서 알거지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하다. 전략적 결정의 실패나 구조문제로 인해 같이 골프치던 김프로 최본부장 정사장이 어느 순간 모임에서 사라진다.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아직 집도 있고 약간의 자산이 있을텐데데 현 생활을 유지하지 않고 테니스, 댄스, 넷플릭스 등 등 추가 지출부터 없애고 필수 지출만 남긴다. 집도 팔고 집 팔면서 매트리스도 추가로 끼워판다.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불황에는 현금보유가 답이다. 자산은 감가상각되고 고정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대출비는 감당할 수 없기에 매각이 답이다. 지금 파는 것이 가장 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의 해고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 소속감 미비로 인한 자존감 하락 이슈와 그에 이어지는 가정 불화,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필요한 교육비 등 몇 수 앞을 내다본 것이다. 사건이 생겼을 때 아직 정당성이 살아있을 때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한다. 정신없을 때 진행해야한다. 버티다가 나중에 하면 왜 옛날에 안하고 지금하냐고 오히려 구성원의 불만이 생긴다. 이 모두 유경험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 사업 파산으로 댄스 수업을 끊고 친구들과 유리되고 예고 무용학과 진학을 못했거나 하는 경험이 있었을 수도. (추측이다)


다만 아내의 구조조정은 남편의 구조조정과 다르다.


시투 리투 두 대형견을 부모에게 보내는 결정은 어쩔 수 없이 해고하니 알아서 살아라는 마초세계의 무책임한 내보냄이 아니라, 우리는 사정상 돌볼 수 없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전근이다.


얼마든지 상황이 좋아지면 데려올 수 있다. 책상 빼서 손가락만 쪽쪽 빨게 하고 무시하는 게 아니다. 강아지 집은 남겨두고 아이들은 강아지 집에 누워서 체취를 맡으며 입양보낸 멤버들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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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한국 미술사 그림책 반짝반짝 그림책
안승희 지음 / 한권의책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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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가 고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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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


못생김이란 결국 바라보는 개인의 눈에 달린 것일까 아니면 못생겼다고 규정한 사회의 눈에 달려있는 것일까? 사회는 곧 개인의 집합인데 못생겼다고 말하는 여러 모둠이 미추를 결정하는 것은 아닐지


40년 전의 살인사건을 통해 아름다움과 자존감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심리 드라마로, 밀착된 시선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성인이 된 아들(박정민 분)이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외모 탓에 사회로부터 배척받았던 삶을 서서히, 다소 불편한 방식으로 알게된다. 관객을 의도적으로 꼬집는 불편한 장치는 한 두개가 아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에 대한 다큐를 찍던 중 알게 되는 어머니 유골 발견, 장례식장에 난입한 처음 본 친척들의 무례한 언사, 상속 포기에 대한 뻔뻔한 권유, 자매라는 자의 유골에 대한 모독, 자극적인 특종을 찾은 PD의 이유있는 호의, 이후 이어지는 수많은 연관인물들의 증언과 불편한 진실들. 이 불편함의 진열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연상호 감독은 으레 〈부산행〉이나 〈반도〉 같은 스펙터클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잘 알려져 있지만 <기생수>(만화기반드라마) <정이>(SF) <서울역>(애니)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술사다. 경계를 초월하는 자는 대개 핵심은 일관적으로 가져가야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간과 과학테마이나 웨스 앤더슨의 대칭적 구도와 파스텔적 색감 같은 것이 있다. 연상호의 경우 권력, 믿음, 노동 같은 것들이 있다. 앞서 말한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2억원의 상당히 저가형으로 제작된 〈얼굴>은 훨씬 절제된 내러티브 방식을 취하며 모든 것을 덜어낸 코어 서사로 승부한다. 따라서 곁가지를 제거한 연상호의 최신작에서는 그의 스타일상 장단점이 명확히 증폭되었다.


장점은 우선 심리 스릴러로서 매력이다. 시각장애인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내면 묘사가 발군인 영화다. 박정민은 부자를 모두 연기하며 솜씨있는 변주를 보여주고 권해효는 후회로 가득 찬 노년의 장인을 자연스러운 깊이감으로 묘사한다. 박정민 배우가 여러 예능에서 무명시절의 임성재 배우를 데뷔한 셈이라고 자랑해마지 않으나 작품에서는 거울상이 되어 백사장(임성재 분)이 전각가역 박정민의 뒷배가 되어주고 홍보해주고 결혼도 시켜준다. 최근 출판사 무제 설립 인터뷰를 통해 시각장애인인 아버지 존재를 언급한 박정민 배우의 출연은 개인 서사와 엮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엄마역의 신현빈의 얼굴은 단 한 번도 드러나지 않은 채 해골과 주변인물의 언급 속에서만 다뤄지며 관객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마지막에 사진으로만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과연 그 얼굴은 어땠길래 그렇게까지 비웃음과 경멸을 샀을까? 영화는 마지막에 이 수수께끼를 예리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작품 전체의 의도를 드러낸다.



스릴러였다면 마지막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끝나야 여운이 이어지겠지만 감독이 탐구하고자 하는 본질적 질문을 감안한다면 엔딩에서 괴물처럼 못생겼다는, 너무 못생겨서 사진도 안 찍었다는, 똥걸레 같다는 그 못생긴 엄마의 사진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관객들이 어? 하고 지나갈까봐 두 번씩이나 클로즈업하며 자 이것 좀 보세요! 하기까지 하며 의도를 부각시킨다. 이를 통해 영화는 치밀한 살인범 찾기와 함께 외모가 어떻게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감각을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결 더 깊이 파고든다.


이야기의 정서적 축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다. 시각장애를 지녔지만 탁월한 도장 전각가로 이름을 날린 아버지 영규(권해효 분)와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 동환(박정민 분). 한편 PD(한지현 분)는 영규를 취재하던 중 우연히 동환의 어머니 영희의 유해가 산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충격적 소식을 접하고 특종의 냄새를 맡는다.


아버지와 자신을 떠난 이유조차 알 수 없었던 어머니의 죽음. 그 미스터리를 둘러 싼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PD에게는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률을 올려 커리어를 쌓고 직장에서 인정받아 승진할 기회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이 연출은 감각적이고 솜씨있다. 어느 신에서는 현재의 인물과 과거의 인물이 대화를 하는 듯한 편집도 있었다. 이런 과거-미래 교차편집은 영화의 서사를 드러내는 핵심 장치다.


동환(박정민)의 시선 속에서 드러나는 젊은 날의 영규(박정민)는 아이러니하게도 박정민이 다시 연기한다. 이런 겹겹의 연출은 부자 관계를 상징적으로 묶어내고 진실을 추적하는 자와 진실을 감추는 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폭력의 가해자와 폭력의 은폐자가 같다.


노년의 영규(권해효)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모멸감과 무시를 이야기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따돌림당한 끝에 부모와 남편에게조차 비참하게 버려진 인물은 바로 영희다. 신현빈 배우는 어눌한 대사와 느린 리듬으로 순박한 심성을, 걸음걸이를 통해 집요함을 보여주며 이 상처투성이의 여성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배우는 얼굴을 가린 채 연출되어 미궁 속 존재로 남게 해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여성 영희의 초상을 신비롭게 극화한다. 아버지의 불륜을 들쑤셔서 가장 보호받아야 될 어린이가 집안 식구들로부터 신체폭력을 당한 것과 백사장의 불륜을 들쑤셔서 가장 보호받아야할 갓난쟁이 애엄마가 남편으로부터 신체폭력을 당한 것은 같은 맥락의 설정이다. 심지어 암매장된지 40년된 늦은 장례식장에서 언니와 동생은 집안 망신을 시켰다고 2차 언어폭력을 당하고, 강간당한 재봉사 진숙으로부터 사람들이 성폭행 대상이 누군지를 더 궁금해한다고 싸대기를 맞는다. 이를 통해 가해-피해의 복잡한 권력구도와 시어머니로부터 이어지는 여성 내의 적대관계, 진실을 향한 공방의 어려움을 시사한다.


영화의 진짜 무게는 살인의 퍼즐을 추리하는데 있지 않다. 못생겼다라는 낙인이 한 인간의 발언의 무게를 얼마나 추락시키는지, 또한 지방+빈곤+노동+여성+저학력+장애의 다중의 소수성이 얼마나 사람을 고립시키는가를 확인하는 데 있다. 맹인이지만 예술적 재능으로 기적의 장인이라 불렸던 영규는 물리적으로만 맹인이 아니라 관계적으로도 맹인인, 오직 자신의 사회적 위신과 명예 회복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 마지막 대사 "너는 나를 믿어야해 아니면 너는 아들도 아니고 기생충이야"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모두 각자의 결핍 때문에 사회에서 밀려난 이방인이지만 이방인은 더 먼 이방인에게 적대적이다. 감독은 이 난해한 관계를 통해 우리가 타인의 외모에서 확인하려하는 자존감 혹은 자기 효용성, 자기 가치의 문제를 날카롭게 제시한다.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은 얼마나 가깝고도 먼가


단점은 독특한 설정에 몰입감있는 앞부분에 비해 후반부가 아쉬운 용두사미라는 점이다. 이전 작품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되 지점이다. 늘 엔딩이 아쉬운 김지운 감독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김지운 작품은 엔딩이 이게 최선인가? 라는 의문이 들고 연상호 감독은 정말 이렇게 끝낸다고? 내가 본게 이게 맞나? 라는 의문이 든다.


연상호 감독의 연출 특징으로 꼽는 것 중 기독교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 표피 속에는 권력관계, 배신과 믿음이라는 더 큰 테마가 자리한다. <송곳> <100도씨> <대한민국 원주민>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의 노동, 소외를 모티프로 삼는 최규석 만화가와의 협업에서 조탁된 테마다. 이 영화에서도 기독교는 없지만, 목사 대신 백사장과 남편이 그 자리를 하고, 거대한 담론으로서 교리(계시록) 대신 산업화 시대의 발전주의 기치가, 모두의 신체를 규율하는 의례 대신 반복하는 노동의 일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믿었던 대상으로부터의 배신감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은 얼굴인데 영어 제목은 The Ugly (못생긴 자 혹은 못생김)이다. 제곧내다. 아름다움을 추앙하는 서사를 역전시켜 못생김을 추악하다고 여기는 사회의 압력에 대해 증거하는 이 영화는 미추라는 다른 벡터방향을 같은 에너지로 잔혹하게 숭배하는 사람들의 잔인함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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