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불멸의 화가 반 고흐

2024-11-29(금) ~ 2025-03-16(일)


1. 호불호가 있을 전시다. 볼 게 없다 vs 유명 작품 잘 보았다.


최근 일본여행 붐을 타서 일본에서 미술관 한 번 다녀온 사람들은 호흡이 짧다고 느껴질 것 같다. 작품의 절대적 가짓수가 적게 느껴진다. 국내에 고흐 소장 작품이 없다면 빌려오는 작품의 가짓수는 다 돈이다. 그러니 예산의 제약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핵심 작품을 들여오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몇 십 년 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반 고흐를 볼 수 있다니! 했겠지만 이제 한국사람들의 눈이 너무 높아졌다. 유럽여행 다녀온 사람들도 많이 생겼고, 가까운 일본의 서양전시는 훨씬 더 수준이 높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는 만족이 안된다. 애호가들이 실망하기 시작하면, 일본에 가서 보고 한국 전시는 안 가게 될 것이다. 미술전시의 외주화. 그로 인한 양극화. 도태되고, 이미지가 하향세로 돌아서면 겉잡을 수 없다. 일본만큼의 전시를 하자니 돈이 문제가 되고, 그만큼 예산이 안되거나 가성비가 안 맞고, 진퇴양난이다. 쉬운 선택은 이머시브전시다. 빛의 벙커 같은. 그러면 애호가들은 오지 않고, 서양 그림 봤다는 것에 만족하는, 평소에 전시를 안 보는 사람들이 아이들과 와서 재밌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눈앞에서 이동하고 소리 나오고, 하는 그런 이머시브전시가 연희문화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서 해바라기를 본 적 있다. X-Ray로 검사한 검사지를 보여주며 물감 특징 때문에 색깔이 바래서 지속적으로 보존처리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일본 도쿄 솜포 미술관에서 해바라기 작품을 봤다. 일본은 근대 유럽과 동시대에 살고 있었구나 생각을 했다.


3. 예술의 전당 반 고흐 전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세 가지. 초기 드로잉, 착한 사마리아인 그리고 직기와 직조공(1884 loom with weaver)다.


누드만 그리는 사람과 누드를 절대 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누드를 한 작품만 남겼다면 그 선택의 이유가 궁금하다. 반 고흐가 그렇다.


비슷한 맥락에서 반 고흐의 종교화는 드문데 착한 사마리아인을 그렸다. 말의 눈은 삐뚤고 작풍은 그의 스타일이지만 묘하게 다르다. 드로잉에서부터 유화까지 일관적으로 보이는 그의 작풍은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운동성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풍을 보면 흐르는 강의 유속, 수증기, 밀밭을 스치는 바람, 나무의 움직임이 하나의 방향성을 지닌 벡터처럼 시각화된다. 짧고 끊어지면서도 연속적인 붓터치는 파동의 흐름을 따라가며 역동적인 다이내미즘을 부여한다.


인물표현의 특징으로는 목각 인형 같이 각진 코와 튀어나온 뭉개진 귀, 대각선으로 기울어진 포즈, 얼굴과 발만 부각된 과장법, 곱등이 같은 등과 왜곡된 엉덩이와 넓적다리가 눈에 들어 온다. 이러한 표현들은 자연주의적 이상이나 리얼리즘적인 균형을 따르기 보다 인물의 심리상태와 정서적 무게감을 시각적으로 환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움직임과 감정을 붓질의 결로 치환한 것이다. 전시 작품 내내 반복된다.


드로잉에서 이런 인물묘사의 특징과 붓질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직기와 직조공은 왜냐? 그답지 않게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배치가 눈에 띄였기 때문. 이런 작품은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다. 아는 전시라도 가서 봐야하는 이유다. 세렌디피티. 어디서 무엇을 우연히 선물같이 만날지 모른다.


4. 아쉬운 것은 영어. 인칭형용사가 잘못 되어있다.


Van Gogh's fame undoubtedly stems from his extraordinary talent

as a painter and his distinctive, thickly painted his oil pantings, which are..


his가 두 번 나오면 안된다. 3달이 지났는데도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거나 아무도 안 읽겠지 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하이컬쳐는 사소한 디테일에서 품격이 갈린다. 외국인은 분명 읽을텐데, 이런 기본적인 문법실수는 치명적이다.


파인 다이닝도 디테일에서 무너지면 손님이 빠져나가듯이. 선진국 문화로 나아간다면 디테일에서 매섭게 집착해야한다. 디테일을 놓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살면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기껏 이뤄놓은 이미지가 다 망가진다.



4. 이것말고도 별로 원어민스럽지 않은 영어는 다른 파트에 있었다. 필기해왔다.


한글 : 반 고흐가 자화상에 집착한 이유는 모델료가 없어서 모델을 구하지 못하는 경제적 이유가 그 첫 번째이고, 네덜란드 시기부터 그의 주된 연구대상였던 인물화에 대한 그의 집착이 두 번째이다.


영어 : If Van Gogh's obsession with self-portraiture was due to the economic reasons of not being able to afford models, the second was obsession with portraitrue which had been hi main subject of study since the Dutch period.


특히 "모델료가 없어서 모델을 구하지 못하는 경제적 이유"에 해당하는 "the economic reasons of not being able to afford models"가 부자연스럽다. 직역하면 모델을 구하지 못하는 경제적 이유인데, 두 가지 점에서 어색하다.


우선 economic reasons of인데, 영어에서는 reasons for로 쓰거나, 혹은 아예 다른 방식으로 재서술하는게 좋다.

그리고 not being able to afford models는 문법적으로는 옳지만, of +ving to v o 구조로 써서 뚝딱뚝딱 거린다. 차라리 because he couldn't afford models로 풀거나 다른 방식으로 재서술하는 편이 좋다.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쓰면 원어민스럽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영어: Van Gogh’s preoccupation with self-portraiture stemmed first and foremost from financial constraints. Unable to afford models, he turned to himself as the most accessible subject. Beyond economic necessity, his persistent engagement with portraiture reflected a deeper artistic fixation, one that had been central to his practice since his Dutch period.


한글로 재번역하보면 이렇다.


한글: 반 고흐의 자화상에 대한 집착은 무엇보다도 재정적 제약에서 비롯됐다. 

모델을 살 여유가 없었던 그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주제로 자신에게 돌아섰다. 

(모델을 쓸 형편이 되지 않아, 그 자신을 가장 손쉬운 대상으로 삼았다.)

경제적 필요성을 넘어 네덜란드 시대부터 초상화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참여는 그의 실천의 중심이었던 예술적 집착을 반영했다.


여기서 중요한 표인트는 주어 술어를 명쾌하게 하나씩 설정하고, 부수적인 문장은 분사화하거나 전치사구로 빼서 선명한 구조를 통해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특히 신경쓴 부분은 Unable to afford models, he turned to himself as the most accessible subject인데,

Being이 생략되어있어 형용사의 주어는 he이고, (Being) unable to afford models, he..라는 문장이다.

unable은 he를 지칭하므로,

모델을 구할 수 없어, 그는... 이라고 해석하는 게 아니라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그는... 이라고 해석한다. 관형격을 늘 which 후치수식하지 말고, 전치수식할 수 있는데, 특히나 앞문장에서 의미상 연결될 경우 더더욱 그렇다.


다시 생가해보자 원래 한글의 의미요소에서 메시지를 뗀 다음 영어식 패턴에 맞게 재배치해보자

(1) 반 고흐가 자화상에 집착한 이유는 (2) 모델료가 없어서 모델을 구하지 못하는 (3) 경제적 이유가 그 첫 번째이고,

->

(1) 반 고흐가 자화상에 집착한 이유는 (3) 경제적 이유 때문인데, (3) 그 경제적 이유는 곧, 모델료가 없어서 모델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스텝밟아서 설명하는 방식이다.

->(1) 반 고흐가 자화상에 집착한 이유는 (3) 경제적 이유 때문인데,  (주어-술어)

   (3) 모델료가 없어서 모델을 구하지 못했던 그는 ...  (우리말의 관형격을 영어에선 분사구로 전치수식-주어-술어)-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살려서 이렇게하는게 최선이다. 

     모델을 쓸 형편이 되지 않아, 그 자신을 가장 손쉬운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것이다.



5.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과 정신의학이 발달하면서 영화, 문학을 비롯한 예술 비평에서 작가의 유년 시절을 들춰내어 작품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만연해졌다. 영화 속 빌런이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 때문이고, 화가의 그림이 어두운 이유는 유년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식의 해석이 흔해졌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작가를 한낱 과거의 굴레에 가두는 편리주의적 해석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거칠게 표현하면 이현령비현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작가의 불행했던 유년시절을 끌어와 작품을 해석하는 만병통치약이다. 


물론 작가의 유년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 수는 있다. 하지만 기억은 흐려질 수도 있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따스한 인연을 만나 상처를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은가. 가장 큰 문제점은 외부 이야기가 작품에 대한 정당한 접근을 방해하다는 점이다. 모든 창작물을 작가의 생애와 억지로 엮어 해석하는 것이 때로는 작품 자체를 온전히 감상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말이다. 작품이 곧 작가의 자서전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경직된 해석을 낳으며, 특정한 사례에서만 유효할 뿐 보편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장에서 “이 아줌마, 정신병이 있어서 이렇게 점만 찍는대”라는 소곤거림을 듣고, 반 고흐 전시에서 “정신병을 앓아서 색을 이렇게 쓴대”라는 속단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작품에 대한 몰입보다 작가의 병력에 집중하는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창작자가 구축한 예술 세계를 피상적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작품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회를 빼앗는다.


대안은 무엇인가?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시각적 분석과 작품 간 비교, 시대적 맥락 속에서의 조망이 우선되어야 한다. 언어로 그림을 표현하고, 다시 문자화된 시각적 표현을 실제 작품과 대조하며 감상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술은 결국 작가를 넘어 독립적인 존재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6. 작가의 생애를 끌어오는 만병통치약적 해석이 만연한 이유는 그게 동아시아의 맥락중심적 사고방식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인은 전체를 먼저 보고 개체를 본다.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큰 맥락을 먼저 본다는 뜻이다. 반면 영미, 유럽인은 개인에서 시작해서 사회로 나아간다. 작품을 볼 때도 개별 형태, 구성, 요소, 색 같은 시각적 요소에서 출발해 작가개인사, 연계작품, 역사적 사실로 나아간다.


동아시아인은 사회에서 시작해 개인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작품을 볼 때도 작가 출신지, 학벌, 사회적 지위, 교류관계, 수상내역에서 시작해 작품으로 들어간다. 이런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 작품 자체에서 시작해, 작은 사실을 통해 큰 이야기를 그릴 수 있어야 미술사의 시각분석에 가깝다. 그리고 이게 선진국 사람들이 미술관 박물관에서 무언가 골똘히 쳐다보는 이유다. 작품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 사실이 아니라.

작가의 사생활은 작품을 감상하는데 부차요인이다. 작품에서 시작해서 큰 이야기를 빚을 수 있어야한다.

7. 다른 예로 한국인은 영어를 써도 이렇게 쓴다. 스쳐지나가는 어느 SNS에서 읽었는데, 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관련없는 사람이며,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 쓰는 분석이 아니다. 한국인이 영어를 쓴다면 너도 나도 이런 패턴으로 쓸 것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문해력과 독해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작년에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는 이만큼 밖에 못 읽었네. 올해는 더 열심히 공부하기로 함!" 이것은 한글로 번역한 것이고,

원래 글쓴이는 영어로 이렇게 썼었다. I’ve been feeling lately that literacy and reading comprehension are declining worldwide. I started reading books last year, but this is all I've managed so far. This year, I’m determined to work harder!

그런데 원어민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어색하다. 마치 우리가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어를 들으면 문법이 맞아도 가끔 표현이 이상하다고 느끼듯이.

원어민은 개인에서 시작한다.

Started reading books last year but barely got through anything. Honestly, feels like people’s attention spans and reading skills are getting worse these days. Gonna try harder this year!"
작년에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 거의 아무것도 못 했네. 솔직히 요즘 사람들의 주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독서 실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아. 올해는 더 열심히 공부할게


구 트위터, 스레드, 페이스북, 뉴스댓글 등 원어민이 쓰는 글에서는 이런 식으로 쓴다. 주어를 종종 빼기도 하면서.


여기서도 보면 한국인은

1) 탑다운으로, 전체에서 개인으로 초점을 이동시키고

2) 외부상황이 그러하니, 나는 이렇다, 라는 식으로 큰 사회 맥락 속에 나의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한국인 뿐 아니라 일본인도 거의 대부분 이런 식으로 쓴다.


작품 자체에서 출발해서 기술적인 분석을 먼저하고 범위를 넓혀나가는 것이 더 적절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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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article/202501302118005

미국 피보디 박물관 한국실 ‘유길준 갤러리’ 5월 재개장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3/11/OFHRQVEO2VFPZODUNRDE7TZZV4/
'평안감사 도과 급제자 환영도'
오늘부터 31년 만에 국내 공개
美 피보디에식스 박물관 소장 유물
리움서 1년 넘게 복원·새 이름 붙여

옛 모습을 되찾은 조선 병풍과 활옷은 11일부터 4월 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관람은 무료. 두 유물은 5월에 재개관하는 피보디에식스박물관 한국실 ‘유길준 갤러리’에서 주요 작품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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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에 이미 가서 피에르 위그, 현대미술품 소장전, 고미술 다 보고왔는데

한 번 더 가야겠네. 4월 6일까지 안가면 미국에 가서 봐야,,,

국외소재문화유산 보존지원 프로그램이 3월 부터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벤트인줄 알았지 그게 이거인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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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예술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작품으로, 책으로, 유튜브로, 작가로, 도슨트로, 큐레이터로, 예술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몇백억에 작품이 팔리고, 몇백만 부가 팔린 책의 인세만 10억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조회수 몇백만이 넘는 유튜브 영상이라면, 조회수당 2원이라 가정했을 때 천만 원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의 이야기다.


현실은 다르다. 캔버스 3호F 한 장을 10만 원에도 못 팔아 재료비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은 100부도 팔기 어렵고, 인세로 70만 원을 받았다고 하면 700부를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원고를 도매가 100만 원에 넘기는 경우도 흔하다. 한편,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가 넘치는 네프콘 플랫폼에서는 주식, 부동산, 돈 버는 노하우 채널이 구독료 몇 십만원에도 팔리고 AI자동화를 사용해서 번역한 UX, 수익화에 대한 번역 전자책들이 다운로드 수만 건을 기록해 통장에 매달 몇 백만원씩 꽃힌다.


돈을 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상치 못한 것이 돈이 되고,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돈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학도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좋은 기술을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서 사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과 마케팅이 없으면 팔리지 않는다. 문과생들이 하는 실수도 비슷하다. 좋은 지식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 믿지만, 이미 알려진 것이거나 너무 어렵다면 외면받는다.


한편 사람들은 지식과 예술에 돈을 쓰는 것을 인색해한다. 적은 돈으로도 누릴 수 있고, 무료로도 최상급의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신문 한 달 구독료는 2만 원이지만, 매일 세상의 새로운 정보를 큐레이션해 제공한다. 인터넷에서 열람하면 무료다. 국립미술관과 박물관은 무료이거나 몇천 원이면 관람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2만 원대의 티켓은 부담스럽지만, 제작에 수만 시간의 훈련과 수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작품을 그 가격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헐값이다.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소장품 사진을 고화질 무료로 공유한다. 옛날이면 전문가를 어렵게 찾아가야 알 수 있었던 지식이 이제는 유투브 틱톡 플랫폼에 넘쳐난다. 세상에 재능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클릭 한 번이면 세계적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해외 전시는 관람객들이 사진과 영상을 찍어 공유하면서 굳이 몇백만 원을 들여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 10만원 이상의 값비싼 영어 원서 PDF도 도서관에서 찾거나 인터넷에서 공유된 파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일부 일본 미술관은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하지만, 바디캠을 이용해 촬영하는 중국인들을 여럿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지식과 예술로 돈을 번다. 하지만 왜 특정한 사람이 성공했는지, 출발 요인은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마치 불 타는 장작과 같아, 처음에 불 붙히는 것만 어려울 뿐 타기 시작하면 계속 자체적으로 탄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유명세가 유명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대개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다. 이를 한탄하는 사람이 많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타겟층을 정확히 파악한 영리한 처세이다.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너무 어렵거나 대중의 상식과 동떨어져 있으면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습과 복습이 중요하다는 공부법이 꼭 하버드 출신이어야 말할 수 있는 내용일까? 남해의 작은 섬마을 교사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을 꼭 유명인만 할 수 있는가? 쟁기로 밭을 가는 농부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인생의 진리는 복잡하지 않다. 심플하다. 다만, 그 심플한 이야기를 화려한 포장으로 감싸야 새롭고 가치 있는 진리처럼 보인다. 본질은 그대로인데.


지식과 예술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고 지식과 예술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 돈을 벌 때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돈이 생긴다.


좋은 전공 입문서를 천천히 읽으면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사람들은 강연을 듣고 책을 구매한다. 이미 인터넷에는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의 사진과 영상이 넘쳐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몇백만 원을 들여 여행을 간다. 레시피가 공개된 음식이라도 직접 요리하지 않고 사 먹는다. 밀키트로 떡볶이를 만들 수 있어도 분식집을 간다. 여과지 100매 3천원, 포트기 1만원, 드리퍼 2만원 초기비용만 투자하면 원두 200g 2만원 미만으로 집에서 5000원 커피 15잔은 내려마실 수 있는데, 굳이 카페를 찾는다.


누가 사진이론이나 미학이론에 대한 책을 읽고 매우 감동해서 남에게 가르치면서 식비도 벌어보고자 유투브를 했다고 생각해보자. 조회수가 나오지 않고 바이럴도 되지 않으며 오프라인 수강생을 구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관심있는 애호가들은 알아서 책을 읽기에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설령 강의를 듣겠다면 저자나 학벌과 명예가 있는 평론가의 강의를 듣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의 강연을 듣는다. 신진 무명인에게 새로 유입되는 사람은 기존 자신의 인맥이거나, 아예 생판 모르는 초보자다. 그런 초보자들은 무료일 때만 관심을 갖다가 유료화되거나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사라져 떨어져 나간다.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플랫폼에 자주 있는 일이다. 


누구나 반도체에 대해 들어보고, 반.도.체. 세 글자는 알지만, 반도체 웨이퍼 스택기법에 대해는 모른다. 웨이퍼를 적층할 때 각 층의 열팽창 계수가 다르기 때문에 비선형적인 열응력 발생한다는 것을 몰라도 얼마든지 반도체 지정학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양자 터널링을 몰라도 양자 컴퓨터가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은 할 수 있다. 철강, 바이오, LLM, 인공지능로봇 모두 마찬가지다. 대개 과학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진폭 범위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물리학 박사까지 오래 열심히 공부해서 TSV 기술을 사용할 때 비선형 회로 이론을 적용한 신호 전달 모델링에 대해 가르쳐주어 돈을 버는게 아니라, 반도체가 돈이 된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강단에서 유투브에서 해서 강연료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받아들이기 쉽다.


수학으로 비유해보자. 리만가설 같은 수학난제을 풀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삼각함수를 가르쳐 돈을 번다. 혹은 세계 7대 수학난제라는 재미있는 틱톡 숏폼을 만들어 돈을 번다. 양-밀스 진량간극 가설에 대해 가르치면 일반인은 커녕 이해할 수 있는 수학 전공생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니 이런 것이다. 수학교사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익힌 삼각함수와 미적분을 가르치면서 시간당 몇만 원을 벌고, 과고반, 내신대비라는 리패키징을 해서 같은 내용으로 시간당 몇십만 원을 번다. 수학뿐 아니다. 한국사도 스타강사가 되면 몇억, 몇십 억원을 벌기도 한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그런데 그들이 가르치는 수학 지식과 한국사 상식이 대단한 것인가? 과거와 별반 차이가 있을까? 이미 합의되고 고정되고 이전과 동일한 지식이다. 새로울 것이 없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은 조선건국은 1392년인데, 1932년이라고 새로 발견했다고 말할 수 없다. 1392년, 고정된 상식이다. 이집트인도 a2+b2=c2를 알았고, 뉴턴도 다윈도 일직선 위에 놓여있지 않은 3개의 점과 선분으로 이루어진 다각형은 삼각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뀌지 않늗나. 바뀌지 않고 새로울 것이 없는 무언가로도 돈을 번다는 게 중요하다. 수학 원리와 역사적 사례는 심지어 수 년, 수 십년 전 고등학생 때 처음 배운 지식조차도 아니다. 천 년 전 정착된 지식이다. 누구나 아는 그 지식을 리패키징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한국사를 통해 돈을 벌겠다면

'신라 법흥왕의 6세기, 율령 반포, 병부 설치, 공복 제정, 연호 사용'을 이 한 구절을 수천 수만번 반복해 노래를 부르고 모르는 학생들에게 외우게 시켜 시험성적을 올리게 해서 돈을 버는 것이지

경주의 서쪽, 서악 고분군 법흥왕릉 추정 묘를 발굴해 그동안 학계에서 받아들여졌던 5세기 돌무지덧널무덤, 6세기 돌방무덤이라는 정설과 달리 6세기에도 돌무지덧널무덤 흔적을 확인했다는 최신 고고학 지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문학자는 박사가 되기까지 초중고 12년, 학부 4년, 석사 4년, 박사 7년 등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로 학석박을 합쳐 6년 이상을 공부한다. 그러나 실제로 강의할 때는 그 모든 지식을 한 번에 전할 수 없다. 강연 1시간에 자신이 아는 것의 0.01%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륜이 쌓일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명강의가 최신 연구나 복잡한 이론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스브레이킹, 농담, 칭찬 같은 사소한 것들이 되려 더 중요하다. 학생이 재능이 없더라도 칭찬을 받으면 더 잘 배운다고 느낀다. 갓 졸업한 강사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최첨단 이론과 난해한 문제의 솔루션을 알려줘야만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은 90%가 아는 상식에 1%의 새로운 정보만 더해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정보의 60% 이상을 모르면 학습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는 한국 문화가 모르는 유럽 언어로 쓰여졌다면 단어를 해독조차 못 할 것이다.


물론 인문사회 문과생은 과학의학분야가 더 잘 나가고 기회가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 케바케다. 의대만 졸업하며 다 될 것 같지만, 월200에 응급실에서 고생하거나 개업해도 빚더미에 스트레스는 받는 경우가 많고, 과학분야에 인문사회보다 상대적으로 펀딩이 많은 것 같지만 주류학문과 그렇지 않는 학문, 혹은 돈 되는 연구실과 그렇지 않은 연구실, 펀딩 잘 따오는 중소기업 사장형 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의 차이도 허다하다. 어떤 과학기술자들은 경영경제를 할 것을 하며 후회하고, 어떤 과학기술자들은 30대 중반이 되면 연구역량이 떨어져 무시 받아 차라리 공부하면 할수록 인정받는 인문예술을 할 것을 하며 후회한다. 이 모든 게 다 사람 바이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오랜 트레이닝과 공부에 투자한 시간은 무의미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위치에너지가 높을 수록 운동에너지가 커지듯 많이 공부하면 그만큼 알려줄 수 있는 것도 많다. 수천만시간을 공부해야 0.01%를 전달했을 때 수만시간의 가치 있는 내용이 나오지 고작 수십 시간 공부해서 남을 가르쳐보겠다면 금방 바닥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굉장히 똑똑하고 촉이 좋아서 내용을 이해는 못해도 가르치는 사람의 숙련도와 공부정도는 금방 파악한다.


책으로 비유하자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수백권의 책을 읽고 수천시간을 들여 써도 책은 몇 백 부 안 팔리지만 그렇게 책을 쓰는 노력을 해야 내 안에 지식이 구조화 되어 바쁜 스케쥴 속에 강연을 다닐 때 커피 한 잔 마시고 책 한 챕터 분량을 1시간 떠들 수 있는 것이다. 강연에 가서 책을 쓰고자 하는 것은 순서가 안 맞다. 무대에 가서 연습을 시작하는 배우가 있는가? 이미 오랜 노력을 통해 대사와 워킹을 다 외운, 물이 오른 배우가 공연일정에 맞춰 그날의 무대에 가서 하루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 그리고 돈을 벌 때는 최첨단 과학과 예술을 알려줘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그것은 나의 여유시간에 하고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번 다음 그 돈으로 전문가들과 모여 하고 싶은 과학과 예술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최신 영미이론 원서를 사고 싶으면 수능 영어를 고등학생에게 과외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서 보는 것이다. 아이돌 지망생에게 보컬 레슨을 하고 번 돈으로 내 앨범 녹음하는 것이다. 심해 생명체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과고대비 생명과학 특강을 해서 펀딩을 제외한 사비를 충당하는 것이다. 캔버스 200호짜리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버는 게 안니라 성인대상 수채화반, 예고대비 드로잉기초를 가르쳐서 번 돈으로 내 작품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게 현실적이다. 누구는 그렇지 않던데요?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경우다. 피겨스케이터 지망생 수백 명이 김연아를 꿈꾸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 성악하는 사람은 모두 조수미를 동경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 누군가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전문적이 무언가로 돈을 벌었다면 칭찬하고 인정해주면 족하다. 나의 길이 그것이 아니었다 하여 내가 그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화가의 작품이 몇 십억에 팔렸다고 하여 내 그림 못 그리는 것이 아니고 어느 뮤지션의 음악이 빌보드 차트에 들어갔다고 해서 내 음악 못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연구실에 파격적인 펀딩을 겟했다고 해서 내 연구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질투심은 들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이 올라올 때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명상해서 다독여야한다. 현실에서 내 기회가 박탈된 것은 아니다. 내 창작이 방해받은 것은 아니다. 내 작품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런 오랜 기간이 지나 운이 좋으면 사회적 자아를 추구할 수 있겠지만, 운이 좋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공부하는 삶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포항시립미술관 전시에서 보니 박수철 작가처럼 대학 진학하지 않고도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갈뫼화실을 운영해 돈을 벌어 어떻게든 작품활동을 이어나가 원로작가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었다. 


왜냐? 내가 좋아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대중도 좋아하게 가르치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신 영미이론을 가르쳐서 용돈을 벌 수 없고 무명가수인 내 앨범을 팔아서 녹음실 대관비를 얻을 수 없으며 아무도 내가 좋아하는 심해 생명체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배우러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원래 생각보다 단순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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