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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림 사러 모네 집까지 찾아간 일본인

[아무튼, 주말]

[최은주의 컬렉터&컬렉션]

유럽 돌며 서양 걸작 수집한

日 사업가 마쓰카타 고지로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입력 2025.04.26. 00:33


마쓰카타 고지로(1865~1950). 국립서양미술관은 그가 수집한 컬렉션을 발판 삼아 1959년 문을 열었다. 그는 태생이 금수저였다. 부친이 메이지 시대 총리대신을 두 차례 역임한 마쓰카타 마사요시. 셋째 아들이던 그는 일찍이 미국 럿거스대·예일대에서 유학하며 서구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다. 학업을 마친 후 귀국해 부친의 비서관 등을 지낸 후, 1896년부터 가와사키 조선소(현 가와사키 중공업) 초대 사장으로 일했다. 당시 조선업은 전쟁으로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고, 불과 몇 년 새 천문학적인 성과급을 받게 된다.


그 돈으로 그는 미술품 구매에 열을 올렸다. 전해지기로는 그가 당시할 수 있던 돈은 3000만엔, 현재 가치로 약 30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마쓰카타는 프랑스 정부가 국립장식미술관 문으로 쓰기 위해 로댕에게 주문했다가 계약을 파기해 석고 상태로 방치돼 있던 ‘지옥의 문’을 브론즈로 주조하는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남아 있는 계약서에 60만프랑(약 142억원)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적혀 있다. 마쓰카타 덕분에 ‘지옥의 문’은 청동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지금 국립서양미술관 입구에 서 있는 ‘지옥의 문’은 같은 틀에서 주조된 작품. 여담이지만 삼성문화재단이 이 ‘지옥의 문’ 7번째 에디션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화가, 동양화가, 서예가, 사기장, 배첩장인, 민화가 등에게 인사이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은 가와사키 조선소 사장 마쓰카타 고지로가 현재 가치로 3천억에 이르는 거금으로 수집한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다.


우리는 교과서에만 본 모네, 고흐지만 옆나라에는 모네, 고흐 등의 근대서양미술품을 실제로 소장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마쓰카타가 모네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도 있다.


심지어 그는 프랑스 정부가 국립장식미술관 문으로 쓰기 위해 로뎅에게 주문제작했다가 재정난으로 계약파기해 방치되어있던 지옥의 문을 청동으로 주조하는 비용 전체를 부담하기도 했다.


20세기 초의 일본이란, 아무리 제국이고 동양 최고라고해도 유럽인에게 낯설지만 먼 곳이었을텐데, 로뎅 모네 아무도 극동에서 온 생경한 이방인이 돈이 많은데다가 자기 작품을 사고 지원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로댕이나 모네가 바라보는 세계는 프랑스 주류 화단에 고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밖에 못 봤을 것이다. 그들로부터 평가에 목매고, 프랑스 안에서 얼마나 자기 위신을 높일 것인가에 생각의 초점이 국한되어 있었을테다.


전혀 모르는 외국의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는 말이다. 최소한 교육받고 커리어를 쌓아나갈 때 모르는 일본인에게 지원받을거라고 염두에 두고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한국작가들이 한국동료들의 평가, 한국내부에서의 판매밖에 못 보는 것과 같다. 시야가 좁아져있다.


자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자. 유연한 사고전환을 해보자. 역사를 그대로 읽어내는 기록,보존,연구도 중요하지만 현대적으로 적용해보는 상상력도 동등하게 중요하다.


제조업으로 돈을 많이 번 베트남 재벌이 한국화가, 배첩장인과 도자기장인의 작품을 구매해서 콜렉션을 구매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한국 서예가들과 민화 화가들이 돈 많은 수퍼 아랍 재벌에게 투자받고 활동한다고 가정해보자


프랑스에서 자라 프랑스 전통 미술을 공부하고 프랑스 화단을 겨냥하여 작품활동을 했던 로뎅과 모네에게 일본인이 투자한다는 것은 그런 맥락이다


그럼 그런 상황이 오도록 차세대 작가들은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예컨대 베트남의 남방 토질을 연구해서 분청사기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이이경이 주연한 영화 645가 베트남에서 흥행한 이유는 우리처럼 베트남도 남북 이념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달항아리에 통합의 메시지를 넣어도 좋겠다. 한국화가는 한국 DMZ산수를 그리던대로 베트남의 산수를 그려주면 어떨까. 안 팔리던 천만원짜리 작품이 1억이 되어 분기별로 팔릴 수 있다.


또한 민화작가는 아라베스크 장식을 공부해서 한국화스타일로 해주면 좋겠다.


아랍예술에선 모하메드가 우상숭배를 금지했기 때문에 생명체를 본뜨는 아이돌을 그리지 않는다. 신이 아닌 인간이 생명체의 모습을 본따는 행위를 신성모독이라 여긴다. 그 결과 아라베스크 같은 식물이나 기하학적 무늬를 복잡하고 아름답게 발전시키거나 꾸란 구절을 아름답게 쓰는 캘리그라피가 최고의 예술로 여겨진다. 


서예가들은 페르시아어에서 많이 보이는 나스탈리크 서체를 연구해 초서와 합쳐도 재밌는 것이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50만원에 팔던 작품을 5억에도 팔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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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최초 외국인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임기시절 2017년에 한 해 소장품 예산 53억 중 약 25%인 13억을 들여 경매에서 구입한 김환기 작품, 새벽#3은 1964-65년작이다


오늘 새로 오픈한 공근혜, WWNN, 아라리오를 가려고 삼청동에 갔다가 어쩐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아트웍스파리 갤러리에 방문. 안국역 유명한 런던베이글뮤지엄 옆에 있는 곳이다. 기획전을 하지 않아서 소장품 교체된다고 월간 아트가이드에 공지 뜰 때만 간간히 방문했었는데 오늘은 그런 말도 없었지만 왠지 그냥 발길이 닿았다


아니 그런데 왠일이야. MMCA, 환기미술관, 강릉솔올 환기뉴욕전, 석파정, 평탕가나 등 왠만한 곳에서 환기작품을 다 봐왔는데 단 한 번도 못 본 1957년 작품이 있는게 아닌가! 대단히 잘 관리된 형태로 말이다. 오늘 주섬주섬 막 설치 중인 작품을 처음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세렌디피티였다


가격은 130만 유로, 한화로 22억. 뒤에는 각 9700만, 2700만하는 소형 회화도 같이 있었다.

김환기 작가가 프랑스 파리 체류 초기에 만든 작품이 아무도 모르게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갤러리 요청으로 사진은 올릴 수 없다. 


김환기는 56년 서울을 떠나 파리로 갔으니 57년이면 파리 체류 초기다. 교수직을 휴직하고 룩상부르크 공원 근처 아뜰리에에서 작품을 만들고 베니지트 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구매한 작품인 모양이다. 


57년 작품은 근처 갤러리현대 55주년 소장품전에서 하나 볼 수 있다(아래 사진 가장 왼쪽) 김환기작품 3점 전시하고 있다.



채도가 낮은 울트라 마린, 코발트 블루 계열의 색감이 고국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63년 이후 뉴욕체류 후반기 작품은 전면점묘로 고도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맛을 풍기며 테마도 우주, 별, 침묵과 무한같이 명상적이고 미니멀하게 바뀌지만 상대적으로 앞선 파리시절에는 한국적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산, 달, 달항아리, 나무, 새, 창 같은 전통 소재를 서정적인 색감과 얇게 쌓인 붓질로 표현했다. 서양의 수학적 비례에 근거한 원근법이 아니라 레이어를 배치한 듯한 평면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구체적이어서 놀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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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뮌헨이라는 도시가 있다

독일어로는 München 뮌셴에 가까운 발음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로는 Munich라 쓰고 각각 뮤닠, 뮈닠에 가까운 발음이다

스페인어로는 띨데를 붙여 Múnich라 쓰고 무니치라고 읽는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아

유럽 각국 사투리라고 이해하자


와 이탈리아어로 모나코 디 바비에라라고 쓴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세상에 마상에


물론 중국어처럼 慕尼黑로 쓰고 mùníhēi 무니헤이라고 읽는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

한자는 한국어로 모니흑이라 읽지만 60년대까지는

서반아(씨반야), 불란서(파란스)처럼 한자독음을 읽었지만

한자교육이 죽어서 이제는 서양원어대로 읽는게 대중화 되었다


물론 그래야 국제호환도 되고

한글의 훌륭한 모음 표기를 다 사용할 수 있다

Argentina를 영어식으로 아르젠티나 읽으면 틀린거고 아르헨티나가 맞아서 현지인에게 칭찬받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우리가 그리스어 원음에 가깝게 읽고 플레이토, 애뤼스토틀 같은 영어식 발음이 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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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에 다녀왔다


시청각은 옛날에는 종로 자하문로 한옥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효창공원역 근처 고지대 빌라 1층으로 이전했다. 시청각을 알게 된 계기는 이렇다. 올해 두산갤러리 아트랩전에서 전시장에 대한 메타인지를 다루는 노송희의 3D 영상작품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작품 안에 잠깐 스쳐지나가는 박사논문의 저자가 현시원이라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굳이 건축CAD로 만든 영상작품 안에 논문의 물성을 구현해 책장에 배치해두었으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돌아와 현시원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박사논문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박사주제 역시 전시공간 운영의 매체성이고 대상작가가 노송희였다. 이것은 뫼비우스의 띠인가? 현시원이 독립기획자로서 운영했던 장소가 시청각이라고 하여서 이후 몇 번 찾아가보았다. 두 사람 모두 전시도면과 아카이빙의 중요성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듯하다


쉽게 비유하자면 여행을 예시삼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여행가서 현지사람을 만나고 현지음식을 먹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해 사진을 찍어 브이로그를 만든다. 그런데 여행을 너무 많이 다니게 되면 어느 순간 여행지에 대한 비교하는 가이드북을 쓰고 싶어지기도 하고 장소, 일정, 소비내역 등을 정리해 트래블로그를 만들기도 한다


전시를 한 달에 한 두번 다닌다면 화제가 되는 전시장에 가서 예쁜 사진찍고 인스타에 올려 좋아요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흐뭇해 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지만, 전시를 많이 다니거나 전시장을 운영해보게 되면 전시장과 작품의 관계, 복수의 전시에 대한 정교한 비교, 각 작가의 특징에 대한 섬세한 분석 그리고 무엇보다 시계열적 아카이빙에 눈을 뜨게 되기 마련이다


전시, 여행도 그렇고, 영화, 애니감상뿐 아니라 피규어, 오디오, 광물, 수석, 분재수집도 모두 큰 틀에서는 같은 화두를 공유하고 있다. 시니피앙은 달라도 시니피에는 같은 셈. 개별 주제는 달라도 총체적 프레임은 일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시청각의 전시는 홍보를 하지 않아 종종 찾아봐야한다. 관심있는 자가 유념해서 소중한 경험을 제때 추수해야한다. 마케팅비를 써서 홍보하는 전시처럼 다종의 SNS에 올라오지 않고, 일본미술관처럼 연간 스케쥴이 나와있지도 않아 일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마치 빨래 돌려놓고 다른 업무를 보면서도 머리 속 저 한 켠에 그 사실을 잊지않고 있듯이, 젖병 삶아놓고 한소끔 끓는 동안 냄비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일은 거의 없고 다른 일을 하게 되는데 불 내지 않기 위한 반반의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듯이, 그런 마음으로 가끔씩 들어가서 확인해봐야한다. 지난 번엔 5일 잠깐 치고 빠지는 도둑전시를 했다. 한국어가 유창한 홋카이도 출신 비평가 콘노유키가 기획한 유빙이었다. 지금은 겉으로는 아동용전시지만, 주제의식은 어른용인, 캔버스에 바퀴를 달고 싶어, 이은 개인전을 하고 있다


잠깐 검색해봤더니 현시원은 오래 독립큐레이터를 하다(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다) 올해 3월부로 연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조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불사지체의 전단계를 얻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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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을 때는 당장 쓸 수 있는 천원 2천원이 아쉽다. 소득수준이 어느정도 보장되기 전까지는 가처분소득이 중요하다. 공무원이 월급인상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큰 돈이 생기고나면 수익률과 절세 같은 테마가 더 중요해진다. 프랜차이즈 지점장은 당장 하루 매출이 중요하지만 프랜차이즈 계열사 본사 입장에서는 당기순이익, 레버리지 같은 지표를 운용하는게 중요하다.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접근법이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없을 때는 한 권 두 권이 소중하다. 오래 공부해 자기 서재를 갖게 되면 지식의 매니지먼트가 더 중요해진다.


작년 규장각 전시는 단독 저서만 140권에 달하는 한국현대문학사가 김윤식 교수의 지성사적 자취를 톺아보는 전시였다.

그가 작업했던 서재 풍경을 재현해 어떻게 평생 읽고 평생 쓸 수 있었는지 그 어마무시한 생산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김윤식은 심지어 빠른 타이핑이 아니라 원고지에 글을 쓰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읽고 쓰며 한 학문분야 전체를 견인했다. 주제의 범위와 양에 있어 독보적이다


에디톨로지로 유명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쓴 초기 저서에서 독일에서 외국인으로서 전임강사가 된 팁을 밝힌 적이 있다. 편집가능한 형태로 지식을 메모카드에 분류해두었기 때문에 방대한 지식을 운용할 수 있어서라 했다. 그리고 그는 재작년 바우하우스에 관한 1028쪽에 달하는 창조적 시선을 썼다














https://www.snu.ac.kr/snunow/snu_story?md=v&bbsidx=150717

(사진출처는 서울대뉴스)


김윤식의 서재 책상 위에도 그런 방식으로 편집 가능한 메모카드가 가득했었다


꾸준한 생산성은 소스태깅에서 나온다. 쓰기보다는 정리가 중요하다



트립콤파니라는 여행가이드 유투브 채널이 있다. 최근 올린 일본도시영상은 거의 백과사전과 진배없다. 대사 하나 하나에 모두 직접 방문해서 찍은 영상소스가 증거로 나온다. 심지어 관형격을 말할 때도 순간적으로 지나가지만 일일이 근거화면이 있다. 그는 브이로그에서 영상을 찍은 후 일일히 보면서 이름을 붙이고 정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다. 독보적인 영상퀄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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