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성 좋은 신기술이 도입되어 표준화되면 노동시장 지형이 뒤집히는 단절(rupture) 혹은 분기점이 생긴다. 이때 그로 인해 직업군의 변화가 생기는데 특히 기존 고수익이던 직업군조차 소멸하거나 변형된다. 대우 좋고 워라밸 좋은 이 직업을 쟁취하기 위해 오랫동안 교육받던 이들과 해당 업계를 유지하려고 분투하던 이들이 갈 길을 잃는다. 양극화되고, 신규진입이 봉쇄되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는 상위만 살아남는다.


변화는 재편성이다. 직업의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 페이라인의 붕괴에 가깝다고 본다. 학벌, 인맥, 정보, 언어, 기술 등의 다양한 진입 장벽으로 외갑을 두른 특정 기술을 독점해 누리던 고수익 구조가 허물어진다. 이에 따라 왕족은 무너지지 않아도 자작은 무너진다. 업계의 하방은 무너지고, 새로이 등장하는 초고수익 직군은 기존 직군의 외연을 다시 규정한다. 설계, 감독, 통제, 전략, 표준화 등으로.


기술이 사회를 전반적으로 변화시킨 사례는 모두 익히 알고 있다. 

증기기관→전기→컴퓨터→인터넷이 그 대표적인 4단 분기점이다. 대충 써보면 대략 이런 느낌의 변화다.


1. 인간이나 동물의 육체노동을 기계동력으로 대체해서 제조업과 운송업의 생산성 폭발했고, 길드장인, 마부 등이 실직했다.


2.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해서 도시의 야간 경제를 출현시키며 시간마저 생산성의 한 범위가 되었다. 시간은 금이다. 전기기기 표준화가 산업 전반에 파급되었고, 가스등 점등인, 벨트나 풀리 정비공 등 공장 공정사들이 실직했다.


3. 컴퓨터가 대량 계산과 문서관리의 전자화를 가능케 해서 정보 노동의 구조를 변화시켰고, 타이피스트, 비서, 도면사 등이 실직했다. 중후진국에서는 사서는 상류층 엘리트가 하는 직업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4-1. 인터넷은 정보 접근의 민주화와 세계화를 이루어내 지식도매상과 중개인 구조가 붕괴했다. 여행사, 브리태니커 외판원이 실직하고, 정보 비대칭을 활용한 유학파, 일부 교수가 영향력을 잃었다.


4-2. 스마트폰은 인터넷에서 이은 2차 충격파다. 일상적 서비스의 실시간 네트워크화를 가능케했다. 모바일 검색과 리뷰 표준화로 오프라인 리테일 방문판매원이 실직하고 벼룩시장 신문광고가 급감했으며 우버의 등장으로 택시기사가 실직했다. 4-3. IoT, GPS 활용 데이터 산업 등도 이어진 흐름이다.


5. 이제는 (피지컬) AI,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인지 노동을 부분적으로 대체할 것이다. 지진 발생시 먼저 도착하는 P파 충격을 받을 고소득 전문직은 이렇다. 10년 안에는 재편성될 것 같다.


회계, 세무, 법무, 컴플라이언스의 초급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백오피스 전문직이 타격을 받는다.


전문 통번역가 중 일부. 이미 구글 번역기로 업계가 흔들렸는데 특히 산업 번역은 대량 축소될 것이다. 3중 언어나 소수 언어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거의 자동변환되고 능력자도 많은 영-프로 먹고 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비서 업무를 추가하지 않는다면. 혹은 정보보안이 요구되는 국제회의나 문맥이 많은 영화제 통역 같은 게 아니라면. 물론 대체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과 페이가 핸섬하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렇게 오래 공부하고 이 페이를? 하면서 신규진입자가 줄고 4-50대 중견이 계속 업계를 끌고 갈 것이다.


프로그래머도 위험하다. 빅테크도 상당히 많은 우수한 코더를 해고한 전례가 있다. 반복작업 중심인 코딩 기반 직군은 LLM 기반 자동화로 생산성 격차 확대될 것이다.


광고 크리에이티브 중 하위 단계가 하는 카피, 이미지 구성 등 표준화된 업무가 축소 될 것이다.  팀플하고 PPT만 만들다가 학창시절 끝난 경영대생은 어디로 가야하나


또 뭐가 있을까 CS는 이미 챗봇으로 많이 대체되었다. 오래 전 유퀴즈에 114 전화상담원이 나와서 이 번호를 계속 사용하는 노령 어르신들을 위해 운영한다는 말을 한 게 기억이 난다. 비상시 필요해서 남긴 공중전화 같은 역할이다. 공공성을 위해


인간사 직업의 대부분은 교육이다. 발 빠른 이들은 업계에서 살아남는게 아니라 진입자를 위한 교육으로 태세 전환을 했다. 사다리를 한 번 올라가봐서 올라가는 이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범대 독어교육과를 나와서 중고등학교 독어선생을 하다가 영어 재교육을 받고 영어 가르치다가 은퇴해 연금받고 사는 경우가 생각나는 가장 이른 사례다. 유학파의 영어교육, 국제학교 진입교육, 자연과학대와 공대 졸업생의 수능 수학 교육, 7급, 9급 공무원 시험 합격 후 시험과목 강사하는 경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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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도가의 세계관이 미국이 발달시킨 SF의 상상적 영역과 잘 맞다고 생각해요


SF 차세대 3대장이 모두 영어권에서 성장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든 미국을 경유해서 상상한 작품을 만들든 중국계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노장사상을 외계세계로 번안하고 있지는 않나 싶네요
진공의 우주와 무, 허적, 공은 어울리네요

앵글로색슨의 중세마법적 세계는 위계질서, 도제식 교육, 고전어 사용 영창 등이 굳이 비유하자면 도가라기보다 유교에 가까워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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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펼쳐보는 세계 전쟁 그림책 - 세계 역사를 바꾼 전쟁사 명장면을 한눈에! 한눈에 펼쳐보는 그림책
홍건국 지음, 김재일 그림, 홍성지 옮김, 임승휘 감수 / 진선아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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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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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
최태성 지음, 이성원 감수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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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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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노자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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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와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쓴 SF 작가 켄 리우의 도덕경 번역이 나왔다. 중국 간쑤성 출신으로 하버드 학부와 로스쿨에서 공부했다. 주경야독해서 낮에는 법률분야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테드 창만큼 유명하거나 작품이 미디어믹스되지는 않았나, 2011년의 <종이동물원은> SF상을 휩쓴 작품이다.


도덕경 전체 81장을 두 파트로 나누어, 파트1 도는 1-37장(p17-120), 파트2 덕은 38-81장(p123-192)으로 분류했다. 괄호는 한글번역본 기준이다.


몇 년 전부터 인문교양 베스트셀러는 고전 원서나 학술서는 전멸했고 다이제스트본이나 편집본, 혹은 처세술, 성공학, 에세이를 곁들여 멋진 표지로 새단장한 도서만 팔린다. 한국출판시장에서 이 책은 그런 트렌드의 일환으로 읽힌다.


도덕경의 아포리즘적 문체가 자기 생각을 곁들인 해설서를 가능하게 한다. 81장까지 일관적인 서사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에 책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상관 없다. 수수께끼 같은 구절이 오묘하고 깊은 의미가 있고 이를 저자가 참신하고 재밌게 설명하면 금상첨화다. 구절은 익히 다 아는 짧은 격언이라 수많은 독자들이 이미 내용에 대해선 익숙하다. 융통성 있는 자유로운 해설이 관건이다. 코멘트를 베푸는 저자가 원래 명성이 있는 경우 판매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될 수 있다.


전문 학술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일반 작가가 <사기>, <춘추공양전>, <예기>에 대해 해설서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도덕경>이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도서관에는 도덕경 한 권에 대해서만 수없는 번역서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도덕경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원문 전체를 무자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의역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극호와 극불호의 양극화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래에서 상술한다.


또한 1장에 이어 서문을 대신한 판본에 대한 코멘트 17쪽, 3장에 덧붙여 노자의 생애를 서술한 코멘트 8쪽을 제외하면 4쪽 이상을 넘어가는 코멘트가 많지 않다. 아니 파트2로 넘어가면 번역만 있고 코멘트는 없다시피하다. 파트1 37개장(1-37장)이 113쪽 분량인데(p17-120), 파트2 44개장(38-81장)이 70쪽 분량(p123-192)이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113쪽이 37개장인 파트1과 70쪽이 44개장인 파트2. 구성적으로 너무 기울어진 비중이다. 용두사미같다고도 느껴질 정도다. 앞에서 17쪽 분량으로 우다다 말을 쏟아내고 뒤로 갈수록 장만 보이니 왜 뒤에는 침묵했는지, 완전히 배태되지 않은 생각의 단상을 무리하게 출판한 것은 아닐지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게다가 코멘트 역시 한자 원문의 용례를 설명하거나, 영어로 이렇게 바꾼 이유가 아니라 관련없거나 벗어난 개인적 단상이다. 어그로나 트위터 문화에 대한 휘발하는 스레드 글 같은. 물론 원서의 문제고 역자나 한국출판사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번역시 도덕경 원문을 확인했을텐데 저자가 어떤 식으로 번역을 했는지에 대한 해설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어쨌든 독자는 두 가지 태스크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엇이냐?


원서에서 영어권 사람들이 더 읽기 쉽게 의역했다는 점, 코멘트가 적거나 아예 없거나 혹은 상관없다는 점. 그래서 도덕경 원문과, 켄 리우의 영어 원서와, 이 한글 번역본까지 셋을 들고 왜 이렇게 했을까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되려 인문교양 베스트셀러 도덕경 편집본이 해설이 너무 많거나 특정 연령대의 취향에 경도되어 있을지언정 더 친절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몇 가지만 보자

5장과 7장 등에서 성인은 Dao-aware이라고 번역했다.


25장 천대, 지대, 왕역대를 Dao, heaven, and earth are all grand, as is humankind라고 했다. 대개 이렇게 같은 문형으로 대구를 이루어 리듬감을 이루는 도덕경의 원문을 싹 다 병렬처리하는 특징을 보인다.


예컨대 30장에서도 

果而勿矜(과이물긍) 목적을 이뤘으되 자랑하지 않고 

果而勿伐(과이물벌) 목적을 이뤘으되 뽐내지 않고 

果而勿驕(과이물교) 목적을 이뤘으되 교만하지 않는다

After victory, don’t swagger, boast, swell with pride.라고 했다.

과를 목적이냐 승리냐 어떤 말로 번역할까하는 고민과 판단이 모두 재밌는 생각의 훈련이 된다.


원문의 문형을 바꾼 것도 있다. 예컨대 39장의 시작은 평서문인데 영어는 의문문으로 바꾸었다.

昔之得一者(석지득일자) 예부터 하나를 얻은 것이 있다 

What do they become when at one with Dao?


그리고 세미콜론으로 병렬해서 짧게 축약했다. 굳이 얻다라는 술어를 반복하지 않아 깔끔해보인다.

天得一以淸(천득일이청) :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아지고 

Heaven, clear;


地得一以寧(지득일이녕) :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해지고 

Earth, tranquil;


神得一以靈(신득일이령) : 신은 하나를 얻어 영묘해지고 

Spirits, animated;


谷得一以盈(곡득일이영) :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 가득 차게 되고 

Gorges, filled;


뭐 이런 여러가지 번역적으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아예 다 생략하고 없앤 것도 있는 것 같다. 도착어인 영어에서 적당한 역어가 없었거나 문맥상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거나. 그렇게 하려면 81장 전체를 한자-영어-한글 다 봐야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대충 포스팅은 이정도로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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