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말하면 새나간다 vs 사람의 행위와 관련없이 복은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복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른 차이를 보여준다. 삶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이자 동아시아 운명관의 분기점이다.
1. 복을 말하면 새나간다는 말은 언표가 우주의 기세를 자극하거나 운을 교란시킨다는 관념에 기반한다
복은 섬세한 기운처럼 여겨진다. 소리나 말로 흐름의 동세를 부정하면 균형이 깨진다고 생각한다. 언어 주술적 세계관이다. 언령은 행위다. 말하는 순간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되면 좋겠다, 곧 잘되겠지, 라고 말하면 그대로 된다.
이건 안될 것 같은데, 망했어, 하면 복의 흐름을 흩트릴 수 있다.
나아가 자랑하면 새어나간다는 생각은 과시, 자만, 조급함에 대한 경계라는 점에서 민속에 녹아있는 심리학적 교훈이다.
2. 반대로 사람의 행위와 무관하게 복은 자연스럽게 들어온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복을 기류나 바람처럼 자연발생으로 보는 비개입적 세계관에 기반한다.
복은 인간의 말이나 행위로 조작할 수 없는 우주의 순환 같은 것으로
복은 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조건이 맞을 때 스스로 스며드는 것이다.
도가의 무위자연, 불교의 연기법과도 맥을 같이한다.
설령 사람의 말이 힘이 있다고 해도 언표는 미세한 요인에 지나지 않고, 복은 더 큰 질서에 따라 드나드는 흐름이다.
복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고 했을 때 그 본질적인 기준인 복의 매질을 다르게 파악하기에 이에 따라 인간의 역할과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말하면 새나간다는 그 복은 도자기처럼 민감하고 깨지기 쉬운가? 사람의 말과 행위에 영향을 받는가? 그렇다면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몸가짐이라는 삶의 태도를 암시한다.
자연스레 들어오는 복은 흐름이나 기류처럼 인간 외부에서 생성되는가? 인간의 말과 행위는 주변적인 영향인가? 그렇다면 집착을 덜고 흐름에 순응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물론 실제로는 두 관념이 혼재한다.
같은 사람이 한편으로는 말 조심해, 부정 탄다, 고 언표의 힘을 두려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운은 돌고 도는거야,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가는지 같은 비개입적 자연주의를 신봉한다.
모순처럼 보이는 두 태도가 한 개인에게 공존할 수 있다.
누구도 복의 실체를 모르고 누구에게는 복이 누구에게는 저주일 수 있다. 개개인별로 다르게 느껴지는 복에 대해 보이지 않는 흐름과 인간의 미세한 개입이라는 두 프레임으로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
모순에 진실이 있다.